길이23 높이19 너비13cm인 오석, 단봉경입니다.
예전에 개미키우기에 빠진 적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하필 개미에 꽂힌 것인지 생각해본적은 없었습니다.
막연히 동식물에 관심많은 내 성향이 우연히 개미를 선택했나보다 라고 생각했지요.
어느날 문득 내가 유튜브 속 개미영상에서 자극받아 그 취미에 몰입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더 생각해보니 내 유튜브에 왜 개미영상이 올라왔을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게 유튜브의 엉뚱한 알고리즘으로 생겨났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몇년전 우리나라에서 주식붐이 불어 개나 소나 다 주식한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이번엔 예외가 아니어서 유튜브로 주식에 대한 여러가지를 검색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개인 주식투자자를 일명 개미라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주식과 개미투자자가 연관되어 검색되었을거고
그게 알고리즘으로 제게 나타난게 엉뚱하게 곤충 개미였지요.
말하자면 유튜브가 주식 관련 영상의 알고리즘으로 곤충 개미영상을 올린 겁니다.
저는 이렇게 뜬 개미영상을 어쩌다 클릭하게 되었고
이 선택이 다시 알고리즘을 강화하여 곤충 개미 영상이 더 많이 뜨고
저는 다시 반복적으로 클릭하고 또다른 개미관련 검색을 하였겠지요.
전혀 다른 맥락의 개미가 같은 알고리즘으로 나타났지만 덕분에 개미에 관심이 깊어졌을게고
그러다 개미 관련 블로그나 까페를 들락거리면서 직접 개미를 키우기 시작했을 겁니다.
요며칠 사이 알고리즘이란 단어가 자꾸 떠오릅니다.
내 오늘 하루가 지난 날에 내게 이뤄진 패턴과 알고리즘으로 형성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허무적으로 자꾸 드는 겁니다.
하루가 알고리즘이라면 한 주, 한 달, 일 년도 알고리즘이고 생애 전체도 알고리즘일 뿐일지 모릅니다.
알고리즘이라고 같은 곡의 변주곡만 울려대는 것이 아니라고 유튜브는 보여주지만
내 삶의 사건은 이미 알고리즘으로 생겨난 이벤트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비슷비슷한 사건을 겪는 건 관계의 패턴이 알고리즘을 형성시켜 이루어지는 것이고
어쩌다 특이한 에피소드나 이벤트는 주식개미와 곤충개미의 엇갈린 알고리즘식으로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거지요.
우리는 어제의 하루를 검색하며 오늘의 알고리즘이 강화되었고 그 결과 더 진행된 알고리즘의 사건과 관계가 내일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이죠.
세상일이 어찌 이렇게 단순하겠습니까만
호킨스가 말한바대로 같은 의식 수준에서는 비슷한 사건만 내가 선택한다는 거지요.
그 선택은 나의 자유의지라 하지만
눈 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이미 나타난 현상과 관계에 이거냐 저거냐 하고
늘 (사지선다형도 아닌) 이진법으로 선택하기를 강요당하는 입장에서는 결국 자유의지란 없지요.
자유롭고 창의적인 선택을 우리는 꿈꾸지만
상상하고 생각하고 보는 현실이라는 게 항상 자기 수준으로만 알아챌 수밖에 없잖아요.
육식동물이 비건을 선택하는 자유의지라는 것은 그 개념 자체가 없고
생존이 목적인 우리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지 않는 생존방식은 인식되지도 않을겁니다.
얕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그 바다를 벗어날 수 없고 그 깊이의 바다 외에는 선택할 수가 없지요.
결국 비슷한 사건이 변주되고 변환되며
같은 곡조가 론도형식으로 녹턴이나 랩 버젼류로 반복될 뿐이라는 거죠.
삶의 방식이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 반복 패턴일 뿐이라면 삶의 의의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도 그 무한회귀 패턴을 반복하고 그 알고리즘의 부력에 갇히는 겁니다.
의문이나 질문은 그 자신이 토대로 하는 신념 위에서 일어나므로 그 질문이 답을 제한한다고 합니다.
결국 질문이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영원히 동일한 패러다임 안에서 끝나지 않는 질문과 의미없는 답의 동어 반복일 것입니다.
위 오석의 단봉경도 결국 지구 상의 동어 반복, 동일한 패러다임, 론도, 반복패턴, 프랙탈, 메크로, 강력한 알고리즘일 뿐입니다.
오늘 내 우물 위 하늘은 allness이고 greatness이며 nothingness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