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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2차 산행] ♣ 백두대간 설악산 공룡능선 (1)
▶ 2018년 9월 16일 (일요일)
* [산행 코스] ▶ 설악동 소공원(02:00)→ 신흥사 일주문→ 설악교→ 비선대→ 금강굴[장군봉] 입구→ 마등령(1,327m)→ 오세암 갈림길→ 나한봉(1,276m)→ 1,184봉→ 1,275봉→ 천화대(범봉) 갈림길→ 신선봉(1,218m)→ 무너미고개(하산, 희운각 갈림길)→ 천불동 계곡→ 천당폭포→ 양폭[산장]→ 오련폭포→ 귀면암→ 문수담→ 비선대-와선대→ 설악교→ 설악동 소공원(16:00)
* [프롤로그] — 2018년 가을,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는 지구
풀잎에 맑은 이슬이 맺히는 백로(白露, 09.08)가 지나고 나니,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가을로 가는 길목이다. 파란 하늘이 더욱 높아가고 오곡이 영글어가는 가을이다. 생각해 보면, 지난 여름은 참으로 혹독했다. 그런데 그 무지막지한 더위가 물러가는가 했더니, 전 세계는 기상이변(氣象異變)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9월 들어 일본에서는 혹가이도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어서 태풍 ‘제비’가 강타하여 간사이공항이 바다에 잠기고 오사카 등지에서는 집이 무너지고 달리는 자동차가 나뒹굴어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리고 또 다른 태풍, 올해 전 세계에서 발생한 태풍 중 가장 강력한 슈퍼태풍으로 알려진 ‘망쿳’이 필리핀을 초토화시킨 뒤, 홍콩에 상륙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그리고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강력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상륙하여 강풍과 폭우로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을 냈다. 자연의 재앙이 전 지구를 휩쓸고 있다.『가이아의 복수』라는 책의 제목이 실감 난다. 이 지구적 재해가 단순히 계절적 현상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Lovelock)이 쓴『가이아의 복수(The Revenge of GAIA, 2006)』에는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류에게 묵시적 경고를 담고 있다. '가이아(GAIA)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大地)의 여신’, 즉 ‘지구(地球)’를 상징한다. 이 책에서 ‘가이아’란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有機體)로 표현한 개념이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환경 위험인 지구온난화의 위험성과 그 대책, 그리고 잘못된 환경인식이 초래한 위험성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자상하게 설명한다. 딱딱한 과학 이론이 아니라 지구환경을 유기체적 관점에서 지구와 환경과 인간의 삶에 대해서 설명한다.
가이아(GAIA)는 빙하기나 운석 충돌 같은 엄청난 격변 속에서도 정화력(淨化力)과 복원력(復原力)으로 생명체들이 생존(生存)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금 지구는 심각한 열병을 앓고 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가이아’가 더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초래했다는 게 러브록의 진단이다. 요즘 폭염이나 장마, 그리고 갖가지 기상이변도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킨 탓이라는 이야기다. 급기야 온난화가 폭력이나 범죄와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온도가 섭씨 2도 오를 때마다 범죄는 15% 증가하고, 집단분쟁은 지역에 따라 50% 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연구팀이 지난 수백 년간 발생한 살인·성폭력·분쟁·내전 등 60개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지구온난화가 사회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물론 정치·경제·사회적 요인의 관련성이 더 크다는 반론도 있다. 아무튼 인류가 지구를 계속 괴롭힌다면 지구[가이아]는 인류를 내침으로써 자신을 돌볼 것이라는 러브록이 주장이 단지 경종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짜증을 내지만, 정작 우리는 훨씬 심각한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는지 모른다. ‘가이아의 복수(復讐)’ 말이다. 인간이, 편리한 문명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무분별한 개발과 무절제한 소비, 엄청난 각종 쓰레기를 양산하는 생활 구조 등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이아가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맹자가 일찍이 말한, ‘하늘에 순응하면 살고 하늘에 거역하면 죽는다.(順天者存 逆天者亡)’는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 — 실질적인 비핵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편, 우리나라, 9월 평양정상회담은 북한의 전략 전술과 전체주의 국가의 집단적인 환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좋은 말과 화려한 의식의 성찬(盛饌)도 한반도 상황의 엄중함을 가리지 못한다. 기대했던 핵 리스트나 핵 폐기 일정 같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는 역시 이번에도 빠졌다. '평화, 새로운 미래'를 외친 평양 공동선언은 역설적으로 한반도 평화가 얼마나 험난한지 입증한 것이었다. 북한이 핵을 내려놓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 다시금 증명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소폭탄의 3종 전략 핵무기를 갖춘 국가가 핵을 포기한 적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구애적 종북정책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대전환으로 진전되기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오늘의 산행지] — 백두대간 설악산(雪嶽山) 공룡능선 종주
오늘 우리는, 살아있는 우리의 땅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악산을 품으러 간다. 장엄한 설악산을 품고 있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백두산(白頭山)에서 지리산(智異山)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이다.
백두산 영봉으로부터 시작한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북쪽의 2,000 미터 급 고봉을 거느리고 남으로 남으로 뻗어오지만, 휴전선이 가로막혀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통금상태가 되어 있다. 그것도 어언 60여 년이 지났다. 그 민통선(民統線) 안에 민족의 비원을 안고 솟아 있는 향로봉(香爐峰, 1,296m)은 백두대간 남한 구간의 시작점으로, 비로소 자유를 얻어 장엄하고 아름다운 산군을 거느리고 남행을 해 나간다. 강원도 인제와 고성을 잇는 46번 도로의 진부령(529m)을 넘어온 산줄기가 미시령(857m)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국립공원 설악산 영역에 들게 된다. 진부령은 추가령(楸哥嶺)·대관령(大關嶺)과 함께 3대 영(嶺)에 속한다.
* [설악산 공룡능선] — 백두대간이 뻗어 내려오는 장엄한 산줄기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미시령 남쪽의 황철봉-마등령으로 뻗어가, 비로소 공룡능선(恐龍稜線)의 기암준봉을 마루금으로 하여 남으로 내달리는데, 공룡능선은 백담사 계곡의 내설악과 천불동 계곡의 외설악의 경계를 이루는 분수령이다. 설악은 있는 그대로 빚어진 비경을 지니고 있지만, 나한봉-1,275봉-신선대를 비롯한 장대한 공룡능선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대청에서 북을 뻗어 나온 화채능선이 있고, 서쪽에는 중청-소청에서 뻗어 내린 용아장성의 험준한 산세들이 포진하고 있어 가히 방대한 장관을 이룬다. 공룡능선은 희운각에서 잠시 숨결을 고르고 나서, ‘죽음의 계곡’을 옆구리에 끼고 아주 급격한 경사면[등산로 폐쇄 구간]을 치고 올라 거산 대청봉(大靑峰, 1,708m)으로 솟구친다. 이 정상의 거봉이 주위의 모든 산을 거느리고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으니, 이름 하여 바로 대청(大靑)이다.
천(千)의 얼굴을 가진 설악산(雪嶽山)은 계절마다 다양한 색깔로 바꿔가며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데, 금강산에 버금가는 남한 제일의 명산(名山)이다. 일반적으로 지리산(智異山)은 장중한 육산(肉山)의 능선이, 주왕산은 기암절벽(奇巖絶壁), 그리고 오대산 소금강은 아름다운 계곡(溪谷)이 가장 뛰어난 명승으로 꼽는다면, 설악산은 이 세 산들이 가진 특징을 모두 갖춘 명산(名山)이다. 설악이란 지명은 겨울에 흰 눈이 덮인 모습[雪景]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하지만 설악산의 진미는 역시 단풍(丹楓)이다. 공룡능선을 그 설악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면서 그 진면목을 한 눈에 보여줄 것이다.
기암고봉의 암릉이 장관을 이루는 공룡능선(恐龍稜線)과 용아장성(龍牙長城)은 설악산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설악산 암봉들이 웅장한 모습과 다채로운 경관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의 화강암 관입과 이에 수반되는 암질 및 구조적 차이에 의한 차별침식의 결과이다. 즉 대규모의 화강암의 관입은 장대하고 광대한 경치의 기본 틀을 형성하고, 암석이나 절리에 따른 차별침식은 험준한 지형을 비롯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경관을 만들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큰 산을 보통 '악산(岳山)'이라 하였는데, 그 중 바위가 높이 솟은 산 이름에 보통 '악(岳)' 자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 승려와 풍수가들은 서울의 관악산(冠岳山), 충주의 월악산(月岳山), 전주 모악산(母岳山), 원주 치악산(雉岳山), 개성의 송악산(松岳山), 속초의 설악산(雪嶽山)을 6대 악산으로 뽑았다. 설악산 일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자연자원의 서식지로 1982년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설정되었으며, 2005년 12월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은 설악산 일대를 '카테고리Ⅴ(경관보호구역)'에서 '카테고리Ⅱ(국립공원)'로 승격시켜, 그 가치를 인정하였다.
*[산으로 가는 길] — 서울-양양간 고속도로를 타고, 삼경(三更)의 밤을 가르다
이번 산행은 무박(無泊)으로 출행하는 원정(遠程)이었다. 9월 16일, ‘이른 새벽산행’(02;00)을 위하여 전날인 15일 밤 11시 30분, 서울 군자역을 출발했다. 우리의 금강버스는 작년에 개통한 서울-양양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양양J.C에서 동해고속도로에 진입, 속초의 설악산 입구인 북단양I.C에서 내려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캄캄한 새벽 2시였다. 소요 시간은 두 시간 남짓 걸렸다. 그 동안 대원들은 소등한 차 안에서 내일의 산행을 위하여 눈을 붙였다. 모두 달리는 차 속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나 호산아의 경우, 달리는 차 안에서는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조용히 잠을 청해 보지만 끝내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이 차박(車泊)의 여정이 여간 힘들지 않다.
설악으로 가는 심야버스(금강고속 권용길 기사님)에는 김준섭 회장, 한영옥 부회장, 박은배 총무를 비롯하여 유형상·김재철 대장이 포진하고, 호산아·장병국·남정균 고문, 김의락 자문위원, 언제나 한결같은 전진국·안상규·강재훈 님, 문리버 강완식·신시호 님과 친구분, 그리고 류 경 님과 하회탈의 지기 두 분, 꽃구름 지기 이달호 님, 장영서·이명자·이경숙 님이 동행했다. 특히 전평국 님과 바람처럼 김정출 님이 오랜만에 참석하여 반가웠다.
*[산행들머리] — 국립공원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 → 신흥산 일주문→ 비선대
깊은 밤 새벽 2시 17분, 설악동 소공원에서 산행에 돌입했다. 옛날로 말하면 야심한 사경(四更)이다. 캄캄한 설악의 밤, 대원들은 각자 이마에 헤드랜턴을 장착했다. 깊은 밤이다. 오늘은 선두에 김재철 대장이 서고 중간에 김준섭 회장, 후미에 유형상 대장이 담당한다. 김 회장과두 대장은 모두 무전기를 휴대하여 높은 산 야심한 산행에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오늘의 산행은 ‘설악동 소공원’을 출발하여 ‘비선대’에 이르고, 거기에서 해발 1,327m의 ‘마등령’을 치고 오른다. 이른 아침 6시 경 ‘마등령’에 올라 동해의 일출을 맞이하고 거기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백두대간의 공룡능선을 타고 희운각으로 향한다. 나한봉-1,185봉-1,275봉 등 공룡의 등지느러미가 돌출한 듯한 기암절벽의 오르고 내리며 마지막 암봉인 신선대에 올라 대설악의 장엄한 풍경을 가슴에 안는다. 공룡능선의 남쪽 암봉인 신선대는 장중한 대청·중청·소청을 비롯한 서북능선과 용아장성의 내설악, 화채능선의 외설악 등을 한 눈에 조망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희운각과 천불동 계곡이 갈라지는 무너미고개에서 점심 요기를 한 후, 천불동계곡을 타고 내려와서 산행들머리인 비선대로 회귀(回歸)하는 코스이다. 총 산행거리는 장장 19.7km이다.
*[신흥사 일주문에서 비선대까지] — 칠흑의 어둠 속, 이마에 불을 밝히고
신흥사 입구에서 설악교까지는 평탄한 길, 대원들의 이마의 랜턴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고 있다. 어두운 길목에는 장대한 소나무가 실루엣으로 언뜻언뜻 다가온다. 설악교의 밤물소리가 청랑하다. 와선대의 비취빛 수면(水面)이 랜턴의 불빛을 받아 거울처럼 빛난다. 비선대는 수직의 미륵봉이 장군처럼 솟아있는 절벽 아래 반석을 타고 내리는 맑은 물이 소(沼)를 이룬다. 비록 캄캄한 어둠 속이지만 비선대의 너럭바위를 타고 내리는 물소리가 서늘하게 다가온다.
* [비선대 ; 산행 들머리] — 금강굴 갈림길, 그리고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돌밭길
비선대의 쇠다리를 건너서 산행들머리, 본격적으로 ‘마등령 산행’이 시작되었다. 여기부터 길고 가파른 돌밭길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고행의 길이다. 마등령 길은 워낙 험난한 급경사를 이루는 구간이어서 올라갈 때나 하산할 때나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젊은 시절, 일찍이 마등령은 몇 차례 오르내렸지만, 그때마다 마등령은 격렬한 고통은 안겨주었다. 사위는 캄캄하니 오직 보이는 것은 발밑의 돌계단이나 돌밭이다. 오늘의 긴 여정을 생각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어둠 속에서 ‘금강굴 갈림길’의 이정표(里程標)를 만났다. 비선대에서 0.4km 올라온 지점이다. 금강굴(金剛窟)은 비선대 서쪽에 솟은 장군봉(또는 미륵봉) 중턱 수직의 절벽에 뚫린 자연 석굴이다. 깊이는 18m, 면적은 23.1㎡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면벽 수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은 신흥사의 부속 암자이다. 금강굴 앞에 서면, 천불동 계곡과 기암거봉의 외설악의 장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민속학자 황호근 등이 설악의 기이한 경관 8곳[雪嶽八奇]을 정할 때, 이곳을 ‘금강유혈(金剛有穴)’이라고 표현했다. 우람한 바위로 된 미륵봉 절벽 한 가운데 금강굴 같은 큰 굴이 생긴 것이 신기롭고 기이하다. 금강굴은 길고 가파른 철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절벽에 붙어 있는 계단길이 아찔하다.
우리는 다시 산행을 계속해 나갔다. 가파른 돌계단을 치고 오른다. 캄캄함 밤하늘에서 성긴 빗방울이 떨어진다. 밤기운이 서늘하지만 이미 온몸은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라 땀이 흐른다. 선두와 후미의 차이가 많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가파른 돌길이 잠시도 여유를 주지 않는다. 비선대에서 마등령 정상까지 3.5km, 거리도 거리지만 실은 엄청나게 고도를 높이는 팍팍한 여정이다. 동해의 해수면이 ‘해발(海拔) 고도’의 제로 포인트라면 1, 327m의 마등령을 오르는 일은 바로 그 고도를 에누리 없이 그대로 올리는 일이니 여간 힘들지 않다. 대원들은 묵묵히 산행을 계속했다. 말없이 걷는 모습이 마치 성자의 발걸음을 연상케 한다. 후미의 대원들이 따라오는 기미가 없다. 가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 [미명의 어둠 속] — 성긴 빗방울이 떨어지는 산길
새벽 4시 55분, 비선대에서 1.8km 올라온 지점에 이정표가 있다. 마등령까지 꼭 반을 올라온 지점이다. 그러나 가파른 경사는 조금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숨이 턱에 차고 서늘한 어둠속에서 온몸에서는 땀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여리고 성긴 빗방울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본격적인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한 치의 내리막길이 없는 오로지 오름의 철학만이 있는 산길이다. 가파른 길을 그렇게 계속해서 돌밭길을 치고 올랐다.
그런데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어두운 새벽 4시 50분, 돌밭의 너덜지대가 아닌 흙길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경사는 여전했다. 그래도 흙길은 걷기가 아주 수월하고 편안해졌다. 랜턴의 불빛이 길목의 야생화를 비춘다. 보통 구절초라고 부르는, 하얀 들국화 몇 송이가 어둠 속에 조용히 피어있다. 길은 비교적 완만한 흙길로 이어졌다. 지형적으로 산허리를 감아 도는 길이다. 두어 번 오르내림을 지나고 나서, 차고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샘터에 도착했다. 해발 1,000고지의 산록에 솟아나는 물은 참으로 ‘생명의 약수’가 아닐 수 없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물을 떠서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신선한 물이 뜨거운 가슴을 쓸어내린다. 김남조 시인의 표현으로 ‘은총의 샘’이다.
* [세존봉 금강문] — 하늘을 찌르는 절벽, 고릴라바위
아직도 캄캄한 새벽 5시 18분, 마등령까지 1.0km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지났다. 김준섭 회장을 비롯한 대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다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절벽 암봉이 지나는 길손을 압도하는 산길이었다.
새벽 5시 55분, 고릴라바위 아래의 고갯마루, ‘금강문’에 도착했다. 마등령에 오르는 마지막 관문 같은 이곳은 거대한 수직의 절벽 사이에 난 통로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절벽의 북쪽의 산봉이 ‘세존봉(世尊峰)’이니 이곳이 ‘금강문(金剛門)’이 된 연고이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엄습하고 성긴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먹물 같은 어둠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뿌연 어둠 속에서 험준하고 거대한 산줄기가 실루엣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아아, 바로 오늘 우리가 타고 넘어야 할 공룡능선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대청봉과 중청봉의 거대한 산 능선이 검푸른 하늘 속에 솟아 있다. 가슴을 가득 채우며 다가오는 설악의 위용이 시선을 압도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새벽의 설악을 조망한다. 이어지는 길, 금강문 고갯마루에서 길은 가파르게 아래로 쏟아진다. 그리고 다시 철계단이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철계단의 중간쯤 방향을 바꾸는 길목에 약숫물이 철철 넘쳐흐른다. 마등령 바로 아래 있다던 바로 그 샘물이었다.
* [여명의 설악산] — 어렴풋이 보이는 공룡능선, 대청과 중청의 실룻엣
목을 축이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내렸다. 오전 6시 4분, 마등령을 0.5km로 남겨둔 지점이다. 완만한 산길과 너덜지대를 지나, 다시 솟구치는 아득한 계단 길, 계단은 희부윰하게 열리는 시공(視空) 속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처럼 올려다 보였다. 오늘 산행의 일차 포인트인 마등령은, 지옥 같은 이 오르막길이 끝나는 정점에 있다. 마등령은 오늘 아침 우리의 천국(天國)이 될 것이다. 날이 훤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계단의 중간쯤에서 바라보니 뒤쪽으로 우리가 지나온 금강문 위에 솟은 고릴라바위가 촛대처럼 우뚝하고, 남쪽으로는 공룡능선의 기암연봉이 장엄하게 이어지고 그 뒤쪽에는 동쪽의 화채능선, 남쪽의 대청봉과 중청봉이 쌍봉낙타의 등처럼 아득하게 솟아있다.
* [마등령(1,327m) 정상] — 날이 밝다. 그러나 흐린 하늘
오전 6시 30분, 드디어 오늘 산행의 일차 포인트인 마등령(馬等嶺)에 도착했다. 설악동을 출발한 지 꼭 4시간 만이다. 설악동을 기점으로 5.3km를 치고 올라온 것이다. 김준섭 회장과 김재철 대장을 비롯하여 호산아 고문, 안상규, 신시호, 강완식, 류경 대원과 하회탈의 지기 두 분, 이명자, 이경숙 등 세 분의 여성대원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어 고단한 여정을 함께 했다. 그런데 앞서 마등령에 올라온 김정출, 장영서 대원은 이곳 마등령에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지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아간 것이다. 7시 정각, 유형상 대장이 장병국 고문, 박은배 총무, 전진국 대원과 함께 도착했다. 후미의 환자가 생겨 그것을 수습하느라 많이 늦어진 것이었다. 마등령 정상, 비는 오지 않았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 금방 땀이 식고 온몸이 추워오기 시작했다. 방한복을 챙겨 입고 정상의 공터 가장자리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해발 1,327m의 마등령(馬等嶺)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준령(峻嶺)이다. 이제 우리는 오늘 산행의 첫 포인트인 백두대간의 꼭지에 이른 것이다. 이곳 마등령에서 남쪽의 희운각대피소 구간(5.1km)이 오늘 우리가 산행하는 백두대간 공룡능선(恐龍稜線)이다.
마등령(馬等嶺)은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계를 이루는 분수령으로 예전에는 행상인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고개가 너무 가팔라서 산턱을 어루만지면서 오른다는 뜻에서 ‘마등령(摩登嶺)’이라 불렀고, 멀리서 보면 ‘말등 같다’고 하여 ‘마등령(馬登嶺)이 되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외설악의 금강굴(金剛窟)·비선대(飛仙臺)가 있고, 서쪽에는 내설악의 오세암(五歲庵)·백담사(百潭寺)가 있으며, 남으로는 공룡능선(恐龍稜線)이 주봉 대청봉(大靑峰)을 향하여 내달리고, 북으로는 저항령(低項嶺)·황철봉(黃鐵峰)을 지나 미시령(彌矢嶺)으로 연결된다. 이곳 마등령에서 미시령 구간(7.50㎞)은 중요한 야생식물군락지로, 2026년까지 국립공원특별보호구로 지정되어 출입이 통제(統制)되어 있다.
* [마등령에서의 조망(眺望)] — 내·외설악의 진경이 한눈에 들어오다
오전 7시, 이른 아침이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는 했으나 구름이 끼어 하늘은 흐렸다. 아쉽게도 동해의 그 장엄한 일출은 볼 수 없다. 서서히 밝아오는 시공 속에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설악산의 산세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등령은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 다음으로 높은 곳으로, 내·외설악의 많은 봉우리들을 조감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서면, 멀리 동쪽으로 동해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내설악의 일부가 보인다. 남으로는 외설악 천불동계곡의 기암괴석과 절경이 바로 내려다보이며, 북으로는 세존봉이 보인다. 이 마등령은 산봉이 언제나 운무에 쌓여 윤곽이 희미하게 나타날 때의 모습은 매우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더욱 마등령에서 가장 절경을 이루는 곳이 천화대(千花臺) 연봉이며, 천불동으로 이어지는 기암 연봉이 절경을 이루는데 오늘은 뿌연 운무로 인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발 아래 보이는 계곡은 마등령 능선과 천화대 능선 사이의 ‘설악골’이다. 물은 천불동계곡 문수담 아래에서 합류한다. 오늘 아침은 흐린 날씨여서 그 깊은 계곡의 절경을 마음껏 볼 수 없어 참 아쉬웠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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