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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성당 마당에서 바라본 제일교회(왼쪽). 교회와 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마주보고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은상 선생이 가사를 쓰고, 박태준 선생이 작곡한 '동무 생각'입니다.
가사 속에 두 번이나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대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작은 언덕입니다.
작곡가 박태준 선생이 이곳에 있는 계성학교를 다니던 시절 로맨스를 추억하며 1922년 지은 노래라고 합니다.
학창시절 가슴에 담았던 신명여고 어느 학생을 백합으로 흠모하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청라'는 푸른 담쟁이를 뜻합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며, 근대 작곡가의 젊은 가슴을 울렸던 담쟁이는 이제 대구를 대표하는 식물이 됐습니다. 대구시는 회색 도시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1999년부터 담쟁이덩굴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까지 도심 1694곳에 211만 그루, 올해도 10만 그루 이상의 담쟁이를 심었습니다.
도심을 담쟁이로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은 담쟁이 잎이 대부분 떨어졌지만,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을 보면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고풍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대구에서도 담쟁이덩굴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청라언덕에서 출발하는 '대구 근대골목 투어'입니다.
100년 안팎의 근대 건축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대구광역시 중구 골목투어'라는 큰 테마의 여러 관광코스 가운데
제2코스입니다.
볼거리가 다양해 가장 인기가 많은 길입니다.
'대구의 몽마르트르'로 불리는, 출발지점 청라언덕.
19세기 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태평양을 건너왔던 선교사들이 살던 서양식 주택 3채는 담쟁이덩굴로 덮인 채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청라언덕을 지나 계산성당을 향해 난 '3.1만세 운동길'을 걷다 보면
당시 대구의 전경이 빛바랜 사진 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음악다방, 고 박정희 대통령이 결혼식을 올린 계산성당이 잇따라 나옵니다.
성당 뒤편의 모퉁이를 돌면 일제에 저항했던 시인 이상화 고택, 민족 운동가 서상돈 고택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 지은 제일교회와 계산성당 첨탑이 마주 보는 광경은 흡사 유럽의 작은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대구에 처음 들어선 개신교회인 (구)제일교회도 있습니다.
약령시 한의약박물관, 진골목, 화교협회(화교소학교) 등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총 길이는 약 1.7㎞.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면 2시간 정도 걸립니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지난달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렸던 '2013 아시아 도시 경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대구 도심이 가진 역사와 문화적 자산에 이야기를 입히면서, 문화와 예술을 도시재생 사업에 접목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연간 2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올해는 정부의 지역문화브랜드 대상,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등을
휩쓸었습니다.
지난해에는 '한국 관광의 별'과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곳 100선에도 선정됐습니다.
# 대구 몽마르트르서 시작된 근대사 산책…겨울인 탓에 코끝이 시큰한게다
- 청라언덕 위 예쁜 서양가옥, 스윗즈·챔니스·블레어주택
- 드라마 '각시탈' '사랑비' 찍어
- 대한독립만세 외친 학생들 내려왔다는 3·1만세운동길
- 1899년 한옥으로 지어진 사적 290호 계산성당과 웅장한 대구제일교회도
- 도심 한복판에 남아있어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시인 이상화
- 국채보상운동 주도한 서상돈 고택도
- 한약내 후끈 풍기는 약령시
- 긴 골목 뜻하는 진 골목, 음식점·커피점 아기자기해
- 미도다방 약차 한 잔도 정감
대구시 유형문화재인 스윗즈주택의 야경. 1910년 완공됐는데 허물어진 대구 읍성의 일부를 기초석으로 사용했다. 대구 중구청 제공 |
대구 근대골목투어의 출발점인 청라언덕에 섰다.
대구제일교회 첨탑 뒤로 서양식 주택 3채가 보인다.
유명세 탓인지 지난 12일,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간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관광객이 많았다.
벤치에 앉아 관광안내 책자를 읽고 있는 중년의 여성.
유럽 어느 작은 도시의 공원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대도시의 고층 빌딩 틈에서 100년 넘게 살아남은 서양식 주택은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더구나 서양의 묘지가 그렇듯 청라언덕에는 주택가 한가운데
'은혜의 정원'이라는 작은 선교사 가족 묘지까지 있다.
청라언덕의 서양식 주택은 이곳에서 살았던 선교사들의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선교사 스윗즈가 살았다고 해서 스윗즈주택, 챔니스가 거주했던 챔니스주택, 블레어주택 등이다.
■ 역사에 이야기를 입히다
20세기 초 대구에 왔던 선교사들이 머물던 서양주택은 담쟁이덩굴로 덮여 있다.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1910년 완공된 스윗즈주택은 대구시 유형 문화재 24호다.
1999년부터 선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주택의 기초석은 대구 읍성이 친일파 관료에 의해 허물어질 때
옮겨 집 짓는 데 사용한 것이다.
대구 읍성의 흔적이 청라언덕으로 이동해 살아남았다.
스윗즈주택 마당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서양식 사과나무가 서 있다.
챔니스주택은 드라마 '각시탈' '사랑비' 등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만큼 '예쁘다'.
챔니스주택에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피아노가 전시돼 눈길을 끈다.
블레어주택은 동산에 세워진 최초의 선교사 주택이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것으로 당시의 미국 주택양식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가치를 평가받는다.
블레어주택 2층에는 3·1 운동 특별관이 마련돼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은혜의 정원' 묘비에 적힌 글이다.
병원을 설립하고, 근대교육을 도입했던 선교사들이 남긴 유산에 비하면 오히려 초라할 정도다.
그러나 불꽃 같은 삶을 타국에 다 바치면서도 공로를 알아주기조차 원하지 않은 선교사들의
소박하나 열정적인 흔적이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곳에 잠든 선교사 가운데는 미국에서 숨을 거뒀으나 대구에 묻히기를 원해 이장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일교회 신관 왼쪽에 계산성당을 향해 내려가는 골목이 있다.
3·1 만세운동길이다.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만큼 평범하다.
그러나 골목길 벽을 보면 20세기 초 대구 시내 전경사진과 3·1운동 당시의 장면 등이 전시돼 있다.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그 날처럼 태극기도 펄럭인다.
1919년 당시 청라언덕 주변에 있던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등의 학생들이
이 골목을 지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로 집결했다고 전해진다.
■ 계산성당과 제일교회
청라언덕에서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3·1만세운동길.(위), 청라언덕에 있는 박태준 작곡가의 가곡비. |
3·1만세운동길을 빠져나오면 정면에 계산성당이 보인다.
정면으로 봐도 보통의 성당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음악다방 '쎄라비'에 들러보자.
다방 입구에는 드라마 '사랑비'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일본어로까지 적인 '세트장 입장료 5000원'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빨간색 다이얼 공중전화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럽의 유명 성당과 비교해 화려한 맛은 덜하다.
그러나 천장을 올려다보면 정갈하고 깔끔한 분위기가 압도한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이색적이게도 한복을 입은 조선 시대 순교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대구 중구청에 따르면 계산성당은 1899년 로베르 신부가 한옥으로
지었다.
경상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1901년에 불에 타 전소했고, 1902년에 프와넬 신부에 의해 설계된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100년을 넘긴 전통 때문에 사적 290호로 지정돼 있다.
계산성당 뒤에는 (구)대구제일교회가 있다.
위압감을 줄 만큼 웅장하다.
대구시 유형문화재 30호.
1893년 대구·경북 최초의 개신교회인 남성정교회를 모태로 시작됐다.
1997년 청라언덕에 새 예배당이 신축되면서 현재는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거대한 종탑은 물론 교회 사면이 온통 담쟁이덩굴로 뒤덮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고딕양식을 잘 나타내는 건축물이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건축물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 시인 이상화와 뽕나무길
일제에 저항한 이상화 시인이 살았던 고택. |
계산성당 주차장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에 이상화·서상돈 고택과
계산예가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상화는
1939년부터 1943년 숨지기 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최근 도심 재개발로 허물어질 뻔했지만, 시민들의 강렬한 보존 여론
때문에 철거를 면했다.
고택에는 이상화 선생의 꼿꼿했던 성품만큼이나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빛이 바래고 손때가 묻은 책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고, 책상과 장롱, 각종 그릇과 앨범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당에는 선생의 시비가 서 있다.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빼앗긴 국권 회복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 선생의 고택도 바로 옆이다.
1850년 김천에서 태어난 서 선생은 17세 때 보부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해 마침내 대지주가 됐다.
대구의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고 시작한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고택에는 서 선생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사진과 문서가 있는데 당시의 생활상이 흥미를 끈다.
피곤해진 다리를 쉴 만한 곳이 '계산예가'다.
깔끔한 한옥형태로 지은 근대 체험 전시관이다.
대구 계산동 일대를 무대로 활약했던 예술가들의 영상물과 각종 사진 자료가 많고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다.
대구 출신 음악가들의 음악 감상은 물론, 간단한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나와 왼쪽으로 꺾어서 조금만 가면 뽕나무 골목, 두사충이다.
'두사충'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을 왔던 명나라 장군의 이름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귀화했다.
두사충은 조선의 열악한 의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뽕나무를 보급했고, 이곳이 뽕나무 골목으로 불리게 됐다. 지금도 두사충골목에는 뽕나무 몇 그루와 시커멓게 익은 오디 색깔이 선명한 벽화가 남아 있다.
■ 진(긴)골목을 따라서
한의약박물관 입구. |
뽕나무골목을 지나면 한약 냄새가 후끈 풍긴다.
조금 과장하면 골목 전체가 한약방이다.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이 바로 그곳에 있다.
마당에는 족탕 시설이 있는데 겨울이라 가동은 중단됐다.
골목은 영남대로로 이어진다.
영남 지역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길이다.
과거의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예전의 모습을 추억할 만한 벽화가 자리를 대신한다.
'대구 근대골목투어'의 종점을 향해 간다.
길은 '종로'로 접어든다.
'종각이 있던 길'이란 의미로, 예전에 대구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특히 이곳은 소설가 김원일의 작품인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됐다.
'마당 깊은 집'은 한국전쟁 이후 대구를 배경으로 주인공 길남이가 자라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골목 곳곳에는 작품의 설명이 붙은 안내판이 있다. 길
쭉한 얼굴의 빼빼 마른 아이가 등을 잔뜩 구부리고 책을 읽는 동상은 종로의 명물이다.
관광객들은 동상 옆에서 서서 또는 함께 책을 읽는 포즈로 저마다 사진을 찍는다.
종로에서 진골목으로 들어서는 길은 안내 간판을 유심히 살펴야 찾을 수 있다.
진골목은 '길다'의 사투리 '질다'에서 생겼다.
긴 골목이란 뜻이다.
폭 2~3m 골목 사이로 각종 음식점과 커피점 등이 있다.
예전에는 대구의 유명한 정치인을 비롯해 기업인 등이 몰려 살았던 곳이라 한다.
특히 작고 깔끔하게 통일한 가게 간판이 인상적이다.
■ 마무리는 약차 한 잔으로
진골목 끝자락에 미도다방이 있다.
커피전문점에 밀려 이름조차 생소해진 '다방'이다.
분위기는 1980년대 그대로.
한때는 다방 아가씨가 9명이나 될 정도로 북적거렸다.
많을 때는 하루 2000명이 다방에 들렀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 사랑방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담 정인숙 여사는 33년째 미도다방을 운영하고 있다.
약차 한 잔에 2500원. 옛날 과자가 함께 나온다.
대구 중구청은 금요일마다 야경투어도 한다.
근대골목투어를 중심으로 경상감영공원 등이 추가된다.
목요일 오전에는 진골목을 중심으로 맛집투어도 있다.
동대구역에서 대구 지하철 1호선(대곡 방면)을 타고 반월당역이나 서문시장역에 내리면 된다.
(053)661-2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