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가는 길
차박차박, 단비 온 세상을 적셔도
마음밭은 자갈밭, 자갈만 키우고
청산은 구름 두르고 하늘만 키운다
강물이 흘러도 그릇만큼만 목 축일 뿐
그저 지나는 세월에 마음 벼릴 뿐
그저 청산은 청산이라 푸를 뿐.
--- 윤중호, 『청산을 부른다』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10월 27일(토), 비, 안개
▶ 산행인원 : 14명
▶ 산행시간 : 8시간 49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6.1㎞(1부 6.4㎞, 2부 9.7㎞)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2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58 - 제천시 봉양읍 명도리(明道里) 명도1교, 산행시작
09 : 50 - 618m봉
10 : 19 - 삿갓봉(625m)
10 : 47 - 백곡산(百谷山, △763.8m)
11 : 50 ~ 12 : 42 -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문바위마을, 1부 산행종료, 점심
14 : 00 - 석기암(石機岩, 902m)
14 : 45 -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요부골 2.1㎞
15 : 18 - 감악봉(紺岳峰, 885.9m)
15 : 45 - 감악산(紺岳山, 945m)
16 : 03 -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임도로 백련사 경유 요부골로 가는 길
16 : 53 - 천삼산(天參山, △818.6m)
17 : 47 -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明岩里) 요부골, 산행종료
1. 문바위마을
▶ 백곡산(△763.8m)
늦가을, 이른 아침, 비, 바람, 안개, 그리고 미답의 산. 모름지기 산꾼에게는 가슴 설레는 단어
들이다. 수일 전부터 예보한 오늘의 일기불순(日氣不順)은 산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는 한
때 권태로운 산길의 게을렀던 걸음을 일신할 호기가 아닐 수 없다. 꽤 오랫동안 적조(積阻)했
던 남당 님, 가자산 님도 예의 환한 얼굴을 내밀었다.
윈도우브러시가 차창 빗물을 부지런히 훔쳐 들머리에 가까워지자 마치 특작부대 치누크 낙
하 준비하듯 혹은 베트남 우림에서 람보가 머리끈 질끈 동여매며 무장하듯, 차안에서 그렇게
우장 갖춘다. 등산화 끈 조이고, 스패츠 매느라 찍찍이 찍찍 뜯었다 붙이고, 스틱 총검인양 늘
어 빼고, 배낭 커버 씌우고 …, 부산하다.
“북쪽 중앙을 남류하는 용암천(龍岩川), 팔송천(八松川)과 지류 원박천(院朴川)을 합하여 북
류하는 주포천(周浦川)이 주포리에서 합류하여 제천천(堤川川)을 이루어 면의 동쪽 중앙을 동
류하면서 미당천(美堂川)을 합친다.” 봉양읍(鳳陽邑)의 지리적 설명이다. 우리는 명도1교 아
래 팔송천을 건넌다. 까맣게 물때 끼어 미끄러운 징검다리 넓적 돌을 발로 더듬어 조심조심
건넌다.
산기슭 비에 흠뻑 젖은 풀숲을 뚫는다. 잰걸음 앞사람이 풀숲 헤쳐 빗물 턴 덕을 본다. 가파른
오르막인 잣나무 숲 간벌지대가 나온다. 공제선까지 넓다. 사방 잡목 속 널린 나뭇가지를 비
켜가기가 아주 고약하다. 땀난다. 겉은 비로 안은 땀으로 젖는다. 한 피치 걸게 올라 잣나무
숲을 벗어났지만 잡목의 저항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30분 걸려 오른 봉우리. 길이 풀린다. 소나무 숲길. 방화선으로 났다. 안개 자욱하여 이 또한
가경이다. 안개가 붉은 건 등로 주변의 단풍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수종(樹種)은 다르지만 영
화 ‘제3의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다. 낙엽 흩날리는 가로수 길, 두 손
을 코트 주머니에 깊숙이 찌른 채 마틴스를 스쳐 지나가버리는 안나, 그 우아하고도 냉혹한
뒷모습. 이 숨 막히는 장면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치타의 현음.
618m봉. 바람 피한 사면에 비스듬히 서서 휴식한다. 걸음 멈추고 쉬면 금방 서늘해진다. 한속
들까봐 막걸리 권주를 사양했는데 스틸영 님이 준비한 부침개를 보니 바로 입맛이 동한다. 안
개는 봉봉을 가리고 지척도 가린다. 앞뒤 일행 간격을 수런거리는 말소리로 가늠한다. 너른
헬기장을 지나고 약간 우뚝하여 ‘삿갓봉’이라 쓴 표지 걸린 625m봉을 넘는다.
느긋이 오르던 등로가 가팔라지고 소슬바람은 안개 쓸어내기 지친다. 나도 지친다. △763.8m
봉. ‘백곡산’이라 새긴 자연석의 아담한 정상 표지석이 있다. 백 개의 골짜기를 거느렸다고 하
여 백곡산이라 한다. 이름 붙은 산 한 좌를 거저주웠다. 삼각점은 깨져 ┼자 방위표시만 보인
다. 정상 남향에는 무덤 1기가 자리 잡았다.
백곡산에서 산간 9번 도로가 지나는 문바위마을까지 대개 내리막길이다. 산허리 길게 도는
길을 따랐다가 골로 가는 길인 줄 알고 부리나케 생사면 치고 봉우리 오른다. 머뭇거리다 지
도 정치하고 갈 길 살펴 내리니 방금 버렸던 그 길이다. 산마루는 초동(初冬)인데 산자락은 만
추(晩秋)다. 산빛이 곱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은 만산홍염(滿山紅焰)이기도 하다. 흐드러졌다.
낙엽송 숲 내리고 개울을 건넌다. 우리 기척 알아챈 개 짖는 소리로 농가 주인이 나오고 길을
안내한다. 아마 우리가 그네 집 주위의 채마밭 철조망 울타리를 함부로 넘어갈 것 같아서일
게다. ‘감사합니다’ 합창하며 농가 안으로 들어 빠져나간다. 비는 여태 참았다는 듯 세차게 내
린다. 이 빗속에서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실로 난감하다.
다리 밑이다. 둘도 없는 명당이다. 여름철 햇볕 가리고 물놀이하는 쉼터인가 보다. 너른 평상
이 깔렸다. 빙 둘러앉는다. 도로 빗물 내리는 수구(水口)의 외줄 폭포, 차 지날 때마다 대폭으
로 떨어지는 저쪽의 물벼락.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너 쉭쉭대며 쇠고기 무국과 라면에 이어
커피 끓이는 소리. 또한 그 맛이라니. 나중에 두고두고 생각날 이 가을날의 정취다.
2. 팔송천 건너서
3. 백곡산 가는 길
4. 바람 피한 사면에서 잠시 휴식
5. 백곡산 가는 길
6. 백곡산
▶ 감악산(紺岳山, 945m), 천삼산(天參山, △818.6m)
2부 산행. 여섯 명이 컨디션 난조로 산행을 포기한다. 문바위마을. 문바위가 어디에 있을까?
두리번거리니 농가에 커다란 자연석을 대문의 문설주로 세우긴 했다. 이 아랫녘 밤나무골에
감악산을 오르는 주등로가 있지만 우리가 거기 탄탄대로로 가는 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석기
암 내린 끝자락 능선 잡는다. 옹골찬 능선이다. 잡목 없는 평원 같은 길이다. 갈지자 크게 그
리며 오른다.
비는 오락가락한다. 줄곧 오름길이다. 숨이 가빠 더운 입김 연신 토하여 안개 더욱 짙게 보탠
다. 길은 외길. 바윗길이 자주 나온다. 일로직등. 그저 공제선 쫓다보니 영춘기맥 석기암이다.
석기로 보일 바위는 오른쪽으로 280m 떨어진 899m봉인 데 여기가 더 높아 석기암이라 한 게
아닐까? 길 좋다.
이제 능선은 영춘기맥이자 감악산 주능선이다. 영춘기맥은 석기암에서부터 감악산, 싸리재
넘어 치악산 남대봉, 비로봉, 천지봉, 매화산, 전재까지가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심하고 주변
의 조망하는 풍광이 뛰어나 그 하이라이트 구간이기도 하다.
쭉쭉 뺀다. 오른쪽으로 산허리 도는 길을 마다하고 냅다 직등하였다가 엉뚱한 지능선으로 빠
지고 연호 소리에 뒤돌아선다. 길게 오래 떨어진 안부는 ┼자 갈림길. 왼쪽은 요부골 2.1㎞.
내린 만큼 오른다. 슬랩 덮은 데크계단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만천만지한 안개로 아무 볼
것이 없다. 발아래 천길단애도 안개에 가렸다.
밧줄 달린 슬랩 섞어 한 피치 급하게 올라 지도상의 감악봉이다. 휴식. 배낭 벗어놓고 목 추긴
다. 감악산 정상은 북쪽으로 더 가야 한다. 잠깐 떨어졌다가 되게 오른다. 백련암 가는 ┤자
갈림길을 지나고 이 산을 감악(紺岳)이게 한 기암과 거암이 나타난다. 예의(禮意)가 아닐까?
안개로 조망은 무망이지만 슬랩 돌아 감악산 주봉인 일출봉 정상에 들른다. 충청북도 표준규
격인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전망대 다 놔두고 간다. 월출봉도 가는 걸음으로 올려다보고 지나친다. 뚝 떨어져 ┼자 갈림
길 안부. 왼쪽은 백련사를 경유하여 요부골로 내리는 임도다. 여기서 화은 님과 메아리 님은
요부골로 내린다. 나머지는 도계 따라 서진한다. 잔 봉우리 숱하게 오르내린다. 비닐 노끈 달
린 슬랩을 돌고 ┼자 능선 분기봉. 싸리재로 내리는 영춘기맥은 직진하고 도계는 왼쪽으로 간
다. 김전무 님이 슬그머니 탈출해버렸다. 14명 중 5명이 남았다. 내 뒤가 허전해졌다. 불안하
다. 신가이버 님이 내 뒤를 받쳐 몰이 한다.
날이 어두워진다. 급하다. 줄달음한다. 이 통에 천삼산 더덕들이 살판났다. 천삼산의 산 이름
은 영약인 약초가 많이 난다고 하여 천삼(天蔘)을 따왔다. 주위 산릉을 목측하기 어려워 버벅
댄다. 천삼산(△818.6m)에서 남진한다고 했는데 너무 일찍 방향을 틀었다. 내리다 보니 천삼
산이 오른쪽 건너편에 있다. 가파른 사면을 대 트래버스 하여 지능선 두 개를 횡단한다. 도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선답의 인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갔다 왔다 우르르 다시 간다.
요부골로 내리는 지능선. 여태 느껴보지 못한 환상의 세계다. 가을의 절정은 여기에 있다. 날
은 이미 어두웠는데도 형형색색의 단풍은 수백 아니 수천수만 개의 샹들리에 단듯 산길을 환
히 밝힌다. 꿈길인 듯 고혹적이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가다 멈추고 둘러본다. 산길 아껴
내린다. 요부골 도로에 내려 꿈 깬다. 비는 다시 거세게 뿌린다.
8. 등로의 단풍
9. 문바위마을 주변
10. 감악산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