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계사회
황제가 중국의 지도자가 되는 이야기를 하였다.
황제 이전의 중국 사회는 어떠하였을까?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시기를 4-5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그들은 동물처럼 살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동물과도 싸웠고, 다른 무리의 사람들과도 싸웠다. 식량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건 투쟁을 하였던 것이다. 동물들보다는 머리 굴리기가 발달하였으므로 생존을 위해서, 생산을 위해서,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면서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구석기가 끝날 무렵에 인류는 떼거리로 모여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혈연 가족 단계를 거쳤고, 점차적으로 모계 씨족사회로 나아갔다. 약 8천 ~ 6천 년 전이다. 이 시기에 농사짓기를 익혀서 정착생활을 했다. 발굴조사에 의하여 황허 중류의 앙소문화에서 가장 뚜렷하다.
신석기 초기가 모계 씨족 사회가 가장 잘 나타났다. 농사 뿐아니라 활을 발명하고, 도자기를 만들고, 베를 짜는 기술을 발전시킨 때는 신석기 시대이다. 고대인들은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집단생활을 했다. 집단은 혈연으로 맺으진 씨족이 중심이었다. 씨족은 공동체이다.
이때는 복잡한 혼인 관계에 의해서 씨족의 운영권을 여자들이 쥐고 있었다. 할머니-어머니 - 딸 - 손녀로 이어지는 계보는 분명하였다. 남자들은 남자에서 남자로 이어지는 분명한 계보를 세우기가 어려웠다.
인간 사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족외혼이다. 모든 인간사회는 족외혼이 기본 구조이다. 남자는 성장하면 다른 씨족에 장가를 들고, 그쪽 씨족에 가서 일을 해주어야 한다. 여자는 다른 씨족에서 남자를 데리고 온다. 이런 사회를 모계 씨족 공동체라고 한다.
(*족외혼은 아마존 강 유역의 원시부락으로부터 최고의 문명국가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라면 공통으로 가진 혼인습속이었다. 혼인 관계에 의하여 인간 사회의 관계가 형성되더라 하여, 인류학자는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기본구조를 족외혼이라고 하였다. - 구조주의 인류학)
6-7000년 전의 중국은 모계씨족 공동체 사회였다. 우리가 앞에서 지역에 따라 ~문화, ~문화라고 하였던 시대에 해당한다. 대표적으로 앙소문화이다. 서안의 반파 유적지의 발견되었다.(앞서 본 강채마을도 같은 시기의 앙소문화 유적지이다.) 이때만 해도 남자들은 여전히 수렵 중심의 생활을 했고, 여자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안정적인 생산활동을 했다. 이때의 원시촌락은 상호 평등했고, 다 함께 노등을 하면서 생활을 영위했다. 모계 사회에서는 우두머리라고 하여 특별한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중대한 사항은 씨족회의에서 결정했다.
(* 이 시기의 무덤을 발굴하면 부장물에서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여성 묘에서 더 많은 부장품이 나올 때도 있다. 아마 여성 샤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씨족 사회를 나타내는 성(姓)자를 보면 여성 사회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힘이 센 남자가 더 유용하게 되었다. 이로서 씨족 사회의 권력이 여자에서 남자에게로 이동이 나타났다. 이제는 지도자로서 황제가, 염제가, 치우가 나타났다. 이들은 물론 작은 씨족 공동체의 지도자가 아니다. 씨족보다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진 부족의 지도자들이다.
첫댓글 '하느님이 여자인 시절도 있었다.' 신화를 공부해보면 이 말이 거짓이 아니다.
'원시신화'룰 쓴 캠벨은 '이곳에서는 여자가 최고였다. 자식은 낳는 존재일 뿐아니라 식량을 재배하고 생산하는 것도 어머니였다. 식량을 공급하는 자가 지배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신화에서 태양신은 여자이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여신인 누트는 하늘이 되고,. 남신인 게브는 땅이 되어, 둘이 결혼하여 수많은 신을 낳는다.
중국에서는 최초의 신이 여신이었다는 문헌적 기록은 없다. 그러나 문헌적 기록이 없는 대신에 선사시대 유물로 여신 소조상을 수없이 많이 발굴했다.. 이것은 중국에서도 하느님이 여신이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다시 모계사회로 회귀하고 있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