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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립국어원에서 ‘아웃도어’의 순우리말 표현을 ‘야외활동 차림’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웃도어(out door)의 직역인 ‘문밖에서’에서 글 어원(語原)하고 있는 것 같고 실제로 아웃도어 상표가 대부분 외래어임을 감안한다면 다행이다 싶다.
글쎄, 우리가 언제 적부터 이런 아웃도어를 입기 시작했을까? 언제 적부터 상가 좋은 자리나 백화점, 마트 내의 손님들의 왕래가 빈번한 의류 코너에 아웃도어 상품들이 화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T.V 프라임 광고 시간대에 잘 나가는 아이돌스타들이 입은 유명 아웃도어가 방영되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내 자녀들이 부모님들의 생일선물이나 특별한 날에 수백만 원이 되는 아웃도어를 세트로 장만하여 주는 것이 최상의 효도상품이 되었을까? 생각해보자. 우리의 중. 고등학교 시절이나 20대 청춘의 시절에는 아웃도어 다시 말해 등산복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잘해야 형이 입던 청바지나 군복 물들인 것이 옷차림이고 신발은 농구화나 스파이크라는 검은색 운동화가 전부 이였다. 심지어는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은 친구들은 집안에 있는 워커라는 군화나 통일화 같은 것을 신고, 산에 올랐다. 그러고도 우리는 수락산, 삼각산, 관악산 등 서울 근교 산을 참 씩씩하게도 잘도 오르고 내렸다.
사는 형편이 다 거기서 거기고,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절이라 산에 오르는 대부분 등산객의 옷차림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즘 말로 메이커니 브랜드 따위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때이었다. 물론 그때도 형이 속한 대학 산악회 동호회에서는 진짜로 튼튼하고 단단한 외제 등산 장비를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러면 언제부터 아웃도어가 우리의 일상에 친숙하게 되었을까? 내 생각으로는 지금의 아웃도어 열풍은 아프고 쓰린 눈물을 바탕하고 있다고 본다. 90년대 말 IMF의 칼날에 많은 실직, 명퇴자들이 회사에서 내쫓기게 되었고 당장 갈 곳이 없게 되다 보니 아침에 멀쩡한 출근 복장으로 나와서 가까운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가족들에겐 차마 말을 못하고 물 한 병, 책 한 권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가 퇴근 시간 맞춰서 내려오는 타의의 백수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들이 산에서 내뱉은 한숨과 회한이 얼마나 깊고 컸던지는 당사자 외에는 모른다. 산에 올라가는 날들이 길어지다 보니 겉옷이라도 등산복으로 갖춰 입게 되고 신발도 바꿔 신게 되다 보니 차츰 아웃도어 시장이 커졌다고 본다.
실제로 지금 외국 유수 브랜드 제외하고 국산 토종 브랜드의 회사 출발시기가 대략 90년대 중후반임을 알 수가 있다. 아웃도어가 야외활동 차림이라는 순우리말로 바뀌었다 해도, 아이돌스타가 멋들어진 모션으로 화면을 꽉 채우며 다가와도 그 옷에는 누군가는 남모르게 울었던 기억이 있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