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1971년 원주에서는 가톨릭 문화운동과 민족문화운동을 화이부동(和而不同) 차원에서 융합하려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싹텄다. 그 중심에 김지하가 있었다. 김지하는 가톨릭의 진보적 사상과 남미의 해방신학 및 개신교의 민중신학적 맹아를 일찌감치 예감했다. 1971년 지명수배자가 되어 강원도 탄광지역에 피신해 있던 김지하는 그 무렵 ‘금관의 예수’란 희곡 한 편을 썼다.
김지하는 이 희곡에서 거지 창녀 문둥이 술주정뱅이 같은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이 예수의 머리에서 금칠한 장식을 벗겨냄으로써 예수를 본래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로마제국과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권력화한 기독교 계층에 의해 콘크리트에 갇혀 있던 예수가 ‘가시관을 쓴 예수’, 정치범으로 십자가형에 처형된 예수로 전위(轉位)된다.
예수 고상(苦像)의 웅변에 성직자와 수녀, 신자들이 흐느껴 우는 등 ‘금관의 예수’는 기독교계에 크나큰 파문을 일으켰다. 주제음악인 ‘주여, 이제는 여기에’는 김지하의 글에 김민기가 곡을 붙인 노래로, 양희은이 음반으로 내서 유명해졌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금관의 예수' 공연과 김민기
1973년 무렵, 지학순 주교와 김지하 시인을 중심으로 카톨릭권의 문화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 일환으로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를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하였다. 이 공연에는 김민기 외에 많은 연극패 탈패들이 참가했던 바, 이를 계기로 김민기는 연극패, 탈패들과 본격적인 교류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노래 '금관의 예수('주여 이제는 이곳에'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첫 발매된 양희은의 음반에는 '주여 이제는 그곳에'로 제목이 달려있었다)'는 첫 공연지인 원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작곡되었다.
이렇게 우울한 노래는 금지곡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후에 양희은이 음반에 취입한 곡이다. 이 이야기는 모두 70년대 중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회의 부는 이전에 비할 수 없이 증가했지만 그것이 오직 한쪽으로만 기울기 시작하던 그 시절.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임하는 주의 존재가 필요했던 시절의 간절한 욕망을 담은 이 노래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서슬 퍼렇게 들리는 것은 한국 사회의 아픔이고 또 한국 교회의 상처이다.
-양희은이 음반에 담을 때는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가 '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로 바뀌고,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가 '어두운 북녘땅에 한줄기 빛이 내리고'로 바뀌는 등 각종 코메디가 자행되었다. 단어 몇개를 바꿈으로써, 우리의 아픔을 헤집으려 만든 노래가 삽시간에 북쪽을 비판하는 노래가 된 것이다. 박통, 브라보.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가사 ♬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겨울 한 복판 버림 받았네, 버림 받았네)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로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 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 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차디찬 세상 더는 못 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분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출처 : 인터넷 여기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