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
욥 23:10-14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세상 누구보다도 자기가 제일 큰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당하는 고통은 절반으로 줄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만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서러워지고 불쌍히 여겨지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고난을 당하면서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10) 고 말했습니다.
지금 욥은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억울한 고난입니다. 욥처럼 억울한 고난을 당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로로 어려운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그가 당하는 고난을 자기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시며 자신의 고난을 용광로에서 금을 단련하여 순금으로 만드는 것처럼 자신을 의롭게 하시는 것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고백이야 말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신앙고백입니다.
욥은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욥은 부자였습니다.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습니다(3).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갑자기 거지가 되었습니다.
스바 사람과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무참하게 종들을 죽이고 많은 재산을 약탈해 갔습니다(1:15,17).
욥에게 특별한 율법적인 죄가 있어서 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욥의 자녀들을 다 잃었습니다. 아들 일곱과 딸 셋, 열 남매가 잘 자랐고, 형제간에 매우 화목했습니다.
열 남매 모두가 맏아들 집에 모여 음식을 먹고 즐길 때 갑자기 큰 바람이 와서 집 모퉁이를 쳐서 집이 무너져 아들 딸 열 남매가 다 죽었습니다.
자식들의 죽음으로 당하는 고통은 뼈를 깎는 것처럼 아픈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욥은 건강을 잃었습니다. 재산을 잃는 것도 힘든 고난이며, 자식들을 잃는 것도 참기 어려운 고난입니다.
재산도 중요하고 자식들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건강은 더욱 중요합니다.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습니다(2:7).
견딜수가 없어서 재 가운데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었습니다(2:8).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욥은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6)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온 몸에 상처가 나서 썩어 문드러져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성할 정도의 아픔을 주는 고통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말은 더 이상 상처가 낫을 수 없어서 죽은 후에라도 하나님을 보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욥의 상처는 회복될 가능성이 없을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이 지금 재난과 슬픔과 극심한 질병으로 거의 다 죽어 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욥이 고백하는 신앙의 고백을 보라.
그는 하나님의 명령하신 말씀 앞에 탈선된 삶을 살아오지 않았노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인이 겪는 고난의 이해 할 수 없는 과정인 것이다. 이유를 찾기 어려운 복잡한 고난이 인생살이에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 고난의 풀무 불 가운데서 건지시고 그 환난의 사자 입에서 막아 내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작정(作定)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변덕쟁이가 아니시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일정하시다.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계획이나 생각을 돌이킬 수는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전능자이시다. 하나님은 마음에 작정하신 것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갖고 몸과 마음과 생각과 힘과 뜻과 정성을 모아서 겸손하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복해 나아가만 할 것이다.
욥의 길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듯이 우리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뜻을 본문을 통해 발견하시길 바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 가는 길을 아신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10절)
욥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23:9)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통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나를 외면하시고 나를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할 때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절망일 뿐입니다.
그러나 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절망적인 고난의 극치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라는 말은 ‘하나님을 찾아도 찾지 못했지만 그러나 나는 알았다’라는 말입니다.
욥은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나’ 하나님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은 오른 쪽으로 돌이키시니 뵈올 수가 없다’(8,9)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욥은 하나님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지만 하나님은 욥 자신을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는 고백입니다.
욥은 하나님은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14)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고차원적인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고난 중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나를 위해 작정하신 대로 이루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고난 중에 있는 성도 여러분은 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아보아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어떤 고난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는 길을 아십니다. 고난의 연단을 통해 여러분을 순금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과 “내가 가는 것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욥의 고백을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14절)
오늘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그분이 자신을 계시 즉 나타나시는 방식으로 사용하시는 어떠한 일을 하실 때에,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반드시 성취되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지 않으시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작정이라는 단어입니다. 작정이라는 말은 어떤 것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미리 어떤 것을 하기로 정하고 계획하는 것으로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말은 나를 위하여 정하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욥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결정하신 것입니까?
13절에서 그는 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 가리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뜻을 정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에서 있어서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그의 뜻은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정하다는 말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변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삼상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둘째로는 그의 뜻을 그분 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또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돌이키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뜻을 가로 막아 정하신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거나 막아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욥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그분이 하시고자 하시는 것을 막아 서며, 돌이키게 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반드시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의 세번째는 하나님의 작정은 그가 지으신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특히 하나님의 작정의 꽃은 인간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탁월하고 위대한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욥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욥의 이 고백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를 알게 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작정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섭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 행하시는 것을 의미하는데 섭리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첫째로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셋째 : 순금같이 나오리라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10절)
지금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끔찍한 불행과 재난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찾아 나서느라 씨름하고 고뇌하고 있다.
14절에 보면,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욥이 하나님께 대하여 그런 고백을 한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대 소사 앞에 이런 고백의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성도들의 나아가는 길을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하나님께서 성도 각 사람을 향해서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욥은 자신의 당한 불행과 재난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겪고 있는 자신의 불행을 하나님이 자신을 순금을 얻으시기 위해 금을 단련하듯이 단련하시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사실 욥은 마음의 불안정으로 인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영적 씨름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 본문인 23장 2절에 보면,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고 했다.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처절하고 솔직한 고백인가. 욥은 지금 자신이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겁다고 했다.
너무나 엄청난 불행을 당해서 탄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부르짖고 탄식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안에서 주를 향한 충성과 성실함으로 살아가는 인생에게 천대의 복을 약속해 주셨다.
물론 인생이 살아가다가 보면 별의별 어려움과 고난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정금처럼 단련해 가고 계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