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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함수곤의 `한밤의 사진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함수곤
한밤의 사진편지 제1989호 (13/8/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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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모 4총사 DMZ 330km 걷기 현장에 다녀와서
제가 교원대에서 정년 퇴임을 했던 해 (2006년)의 5월, 저는 아내와 함께 열 한살 때, 부모 손을 잡고 걸어서 피난갔던 서울에서 전주까지 230km 걷기에 나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걷기에 데해 아무것도 모르고 별 준비도 없이 그저 낭만적인 생각 하나만으로 무모하게 장거리 걷기에 감히 도전했던 것입니다.
수원도 가기 전에 발에 물집이 생겼고 온 몸이 저려오고 무릅 관절과 다리가 몹시 아파왔습니다.
우리가 공주를 거쳐 갑사 부근의 숙소에서 묵은 다음 이튿날 아침에 출발하려고 하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빗속의 걷기를 주제로 계속 걷자는 저와 중지해야 한다는 아내가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윤종영, 홍종남 님 내외분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희를 향해 지금 빗 속에 자동차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즉시 격론을 중지했고고, 가슴이 설래이기 시작했습니다.
논산역에서 두 분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우리에게 맛있는 불고기를 실컷 먹여 주셨고
저녁에는 유명한 강경 메기탕도 사주시며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온몸의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두 분은 우리와 함께 어느 정도 걸은 후 하룻밤을 합숙하고 상경하시겠다고 한사코 고집하는 것을 말려서 어두운 밤길에 귀가하시도록 겨우 겨우 설득했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비오는 날,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오고 한없는 그리움과 포근한 정을 느끼곤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후 제가 제주도 걷기를 했을 때 김용만 고문님은 서울 새벽 청과시장에서 사과 한 궤짝을 사서 비행기에 싣고 제주도 까지 날아와서 공항에서 표선까지 택시로 걷기 현장을 찾아와 참가 회원님들을 위로해주고 같이 걸어 주어 우리를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U자 걷기 제 1구간때와 3구간 때도 김용만 고문님은 강원도까지 과일을 사들고 먼길을 달려와 U자 걷기 참가 회원님들을 격려했고 감격시켰습니다.
그외에도 우리 한사모 회원님들은 U자 걷기를 하는 동안 박경재 총장님, 유선규 총장님, 조규향 총장님, 김재호 이사장님 등을 비롯한 수많은 분들을 길 위에서 극적으로 만났고 그들의 따뜻한 대접과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힘들고 외롭게 걸어가는 길 위에서 반가운 분과의 만남과 격려가 얼마나 걷기꾼들에게 힘을 주고 위로가 되는지를 절실하게 체험했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이가며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은혜를 입으면 대개는 그 은혜를 정작 베푼이에게는 보답을 잘 못하고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번에 한사모의 4총사 (박찬도, 이창조, 황금철, 안철주)가 서해안 임진각과 동해안 통일전망대를 내륙으로 잇는 DMZ330km를 12일 동안 걷는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바로 그전에 저희 부부와 회원님들이 외롭게 걸어갔던 그 시절, 저희에게 달려와서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셨던 윤 고문님 내외분과 김용만 고문님을 비롯한 고마웠던 수많은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바로 떠 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용감한 4총사들의 힘든 걷기 현장에 우리도 달려가자고 아내와 합의하고 저희 형편이 좋은 22일(목)을 방문 날짜를 속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4총사의 걷기 소식을 알리는 한밤의 사진 편지에 저희들이 그들의 걷기 현장을 한번 찾아거려고 한다는 계획을미리 밝혔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으면 저희만 조용히 살짝 다녀오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저희 예정을 밝힌 이유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좀 음흉한 저의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저와 아내 둘만 가는 것 보다는 혹시 가고 싶어하는 '회원님이 계시다면 그 분들도 함께 가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
둘째, U자 걷기를 통해 그런 위문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잘 알고는 있지만 개인 형편상 가기 힘들면 관심을 표한다든가 혹시 위문품이라도 전해주는 회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고,
세쩨, 지금 연일 33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연로한 회원들이 힘들게 걷고 있다는 사실에 회원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마음으로라도 응원하고 안전을 빌어주는 한사모의 분위기 조성에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기 ?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생각은 여지 없이 무너졌습니다.
4총사 걷기 소식 한밤의 사진편지를 읽은 회원이 위의 3가지 생각에 해당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한사람도 없었던 것은 아나고 꼭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영신 사묵국장님이 었습니다.
지난 19일(월) 그 편지를 읽은 김 국장님이 바로 저에게 전화를 해주었습니다.
" 4총사 걷기 현장에 가 볼 것이라고 쓰셨던데 며칠 날 가시려고 합니까?"
"바로 가보고 싶지만 형편이 이번 22일(목)이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저는 그날 선약이 있습니다만 잘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김 국장님은 다시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 날 선약을 내주로 변경했습니다. 저도 대표님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 그래요 정날 고맙습니다. 그럼 22일 아침에 만납시다"
" 저희 내외가 22일 아침 오전 8시에 댁으로 가겠습니다. 대표님은 댁에서 준비하고 기다리시지요."
저는 김 국장님의 전화를 받고 참으로 기뻤습니다. 한사모애 한 분이라도 이런 분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몇번이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걷기를 통해 받은 은혜를 우리 두 집에서라도 이렇게 조금 돌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고 기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2일(목) 아침 김영신, 윤정자 님 부부 회원님은 승용차에 수박, 참외, 거봉포도, 쵸콜릿, 생수, 캔맥주 등 먹을 것을 가득 싣고 아침 8시 정각에 저희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저와 아내는 그들의 차에 합승해서 8시 20분경, 폭포동을 출발해서 4총사가 걷고 있을 현장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송추-의정부-포천 -철원 코스로 달렸습니다.
철원군 동송읍을 조금 남겨두고 윤정자 단장님이 안철주 걷기 단장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안단장님은 철원의 예전 노동당사 흔적지를 지나서 현재 동송읍 쪽으로 걷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동송읍내를 천천히 달리며 전방을 주시했습니다.
김영신 사무국장님이 옛날 이곳에서 군 복무를 했기에 이 부근의 사정을 잘알고 있어 여기를 찾아 오는데 조금도 헤메지 않고 직통으로 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윤정자 단장님이 먼저 발견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박찬도, 이창조, 황금철, 안철주 님 4총사를 철원 땅 길가에서 만나서 우리는 포옹했습니다.
수염은 길었고 얼굴은 까맣게 그을렸고 4일 사이에 초췌해진 것 같았습니다.
마침 길가 개울가에서 쉬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철주 대령님의 인연으로 현역 군병사가 박찬도 황금철 님의 발이 편한 신발을 구입해가지고 '달려와 전하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안회원님을 제외한 세분 회원님이 모두 발에 물집이 생겨 걷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군에서 약품과 치료 도구를 가져다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윤단장과 아내는 동송읍으로 나가 점심식사 장소를 '찾아 보도록하고 김영신 국장남과 저는 4총사와 함께 동송읍을 향해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짊어지고 걷고 있던 쇠덩이처럼 무거운 엄청난 무게의 배낭은 우리가 타고 온 차에 실었습니다.
배낭을 벗어낸 4총사는 아마 거기서부터 날아갈 것 같았을 것입니다.
약 1시간 40분 정도를 함께 걸어서 동송읍에 윤단장이 찾아 예약한 '민통선 갈비'란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등심을 구워서 맥주와 함께 건배했습니다. 김영신 국장님이 '파이팅'이라고 건배했고 안철주 단장님은 '안전'하면 우리가 '제일'하고 답창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4총사는 모두 피곤한 다리를 쭉벋고 눕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먹고 남은 과일과 맥주 그리고 4총사의 무거운 배낭을 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22일 밤 4총사의 숙소인 '승포회관'이란 숙소로 향했습니다. 안 단장님이 예약해둔 방을 찾아 싣고 간 배낭과 간식 등을 잘 정리해서 보관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 반 경에 다시 서울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제 겨우 4일간을 걸었는데 이들의 걷기는 우리가 보기에 매우 힘들어 보였습니다.
첫째는 날씨 탓이였습니다. 33도가 넘늠 폭염 아래 그늘이 없고 인도도 없는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정말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저도 이들과 1시간 40여분간 걷는데 3회 이상을 쉬었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며 옷이 다 졌었습니다.
둘쩨 엄청나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숙소에서 차에 싣고 간 배낭을 2충 숙소애 운반하는데도 엄청나게 힘이 들었습니다. 무슨 짐이 그렇게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세째, 걷는 길 주변에 식당 숙소, 휴식처 등의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점이었습니다. 아침식사를 할 수없어 대강 간이식으로 해결하고 출발하기도 하고 저녁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U자 걷기외 비교하면 배낭 운반, 숙소, 식당 휴식, 등의 면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4총사가 걷고 았는 가마솥 무다위 속의 현장을 찾아보고 그들의 걷는 모습을 보며 잠시 함께 걸어도 보았지만 기쁨과 반가움은 잠깐이었고 서울로 돌아오는 귀가 길 내내 시종 머리가 무거웠습니다.
저녁 7기가 다 되어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김 국장과 윤단장 부부는 우리를 내려주고 사당동까지 한시간은 더 달려야 합니다.
이날 하루 종일 김국장 부부가 너무나 고생이 많았습니다. 마음 속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4총사의 2013년 뙤약볕 걷기 현장을 다녀온 것은 오래 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4총사의 걷기는 8월 30일까지 계속됩니다.
함수곤 드림
Adagio (italian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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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함수곤의 `한밤의 사진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함수곤
첫댓글 살인적인 이 무더위에 걸으시는 분 ,또 위문가신 분 모두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