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는 여러 종류의 돌이 있다. 수석을 취미생활 하는 사람들은 그저 돌이 좋아서, 그리고
돌은 환금성換金性이 있기에 많은 시간 탐석探石을 하며 생활한다. 돌 한 점에 수 백, 수 천 만
원을 호가하는 돌들도 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 없는 인생의 걸림돌은 생기기 마련
이며, 또한 이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곤 한다. 걸림돌의 사전적 의미는 ‘길을
걸을 때 방해가 되는 돌’로 일을 해 나가는 데에 걸리거나 막히는 장애물을 비유적으로 이르
는 말이며, 살다보면 갖가지 걸림돌을 만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추석전날,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내자內子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은 급체인 줄 알았
는데, 상황은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동네병원은 휴무라 인근 부산대양산병원 응급
실로 향했다. 환자는 계속 통증을 호소하였다. 간단한 수속절차는 한없이 길었다. 조용하리라
생각했지만 응급실은 부산하기만 했다. 피, 소변검사, X-ray 촬영을 하고 링거에 진통제를 투
여하자 내자의 통증은 다소 진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두 번의 피검사를 마치고, 결론은 체했
다는 진단이 나왔으며, 담당의사의 퇴원 결정으로 비로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허나 그
녀의 복부 통증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날 추석 당일 종부宗婦인 그녀를 두고 추석절
사節祀를 지내려 혼자 길을 나섰다. 급하게 제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교통체증으로 한없이
길었고 멀기만 했다. 이날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다음날 오전부터 통증이 또 시작되어 구급차
를 불렀다. 다시 양산대병원으로 이동하는 도중 어느새 통증은 사라졌다. 이왕 나선 김에 인
근 병원에 들려 영양제라도 한 대 맞으려 응급실을 찾았다. 이곳도 만원滿員이었다. 똑같은 검
사가 진행되었고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는 염증수치가 상당히 높다라며 CT를 찍자고 했다. 그
리고 이내 촬영된 영상을 보여주며, 담관膽管에 돌이 차 있는 그림이었다. 이곳에서는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여러 곳을 수소문 끝에 해운대백병원으로 가란다. 소견서와 사진을 가지고
바로 병원으로 이동했다. 입원실을 배정받고, 연속으로 진통제를 투여했지만 상태는 여전하였
다. 연휴기간이라 전문의도 출근치 않았다. 이 정도의 병은 심각하진 않았지만 환자에게는 고
통의 시간이었으리라.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십여 년 전에도 똑같은 이런 증세가 있어 집 옆의 병원에서 시술을 받았는데, 그 당시 의사
의 미숙함과 마취시간의 잘못 계산으로 마취가 깨어난 상태에서 시술은 진행 중이라 의사의
당황함과 환자본인의 통증의 단 발마는 수술실을 타고 흘러나오면서 또한 가족모두에게도 고
통의 연속이었다. 여태껏 본인은 물론이지만 식구들에게도 ‘트라우마’로 여전히 남아있다. 연
휴가 끝나고 담당교수가 출근하면서 이내 시술이 시작되기 전, 내자는 통증이 사라졌다며 CT
를 다시 찍자고 했지만 묵살하고 수술대로 보냈다. 끝내고 나온 교수는 담관의 돌이 사라졌다
며 고개를 젓는다. “참! 이상하네요. 사진에는 돌이 채워 있는데 그 돌들은 어디로 갔지?” 짐
작컨대 내자의 신체구조상 많은 통증이 수반되면서 담석은 괄약근이 열리면서 빠져나간 것 같
았다. 4일 후 다시 똑같은 확인 시술을 받고 열흘 후 집에 올 수 있었다. 긴 시간이었다. 인
간은 곤혹의 밑바닥에서 이따금 혼잣말을 중얼대는 법이다. ‘올 추석은 거꾸로 쉬었다’는 김빠
진 말을 하면서 자신의 사색의 울타리 안에서 맴돌 뿐 좀처럼 밖으로 나가진 못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무언가 담고 산다. 누구는 모래를, 누구는 자갈, 그리고 바윗덩어리를….
가슴속에 쌓아온 누군가의 상처로 가장 무거운 돌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
다. 기분 좋게 쏟아내면 후련하겠지만, 그러나 쏟은 돌들은 누군가는 주워 담아야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 지인과의 전화통화음이 들려온다. “영감이 돌을 돌아하니 나도 돌을 좋아하는
가 보네.” 그녀 말이 부적절하게 느껴지지만, 맑고 갠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툴툴 털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