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형제봉
빽빽하게 들어선 침엽수림 위로
어둠이
거대한 초콜릿바처럼
솟아올랐다
--- 진은영, 「단식하는 광대」에서
▶ 산행일시 : 2011년 8월 31일(수), 맑음
▶ 산행인원 : 6명(설앵초+2, 드류, 하나늘, 하늘재)
▶ 산행코스 : 설악동→설악골→설악우골→공룡능선(나한봉 전위봉 직전 안부 →1275m봉
→1173m봉)→범봉 직전 안부→잦은바위골 상류 →100m폭→50m폭→비선대→
설악동
▶ 산행시간 : 15시간 37분(휴식과 조식,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3.5㎞
▶ 교 통 편 : 설앵초 님 승용차로 가고 옴(하나늘 님 운전)
▶ 시간별 구간
04 : 13 - 설악동 소공원 호텔설악파크 주차장, 산행시작
04 : 46 - 비선대
05 : 05 - 설악골 입구
06 : 00 - ┤자 석주길 갈림길
08 : 18 - 대슬랩
10 : 18 - 공룡능선(나한봉 전위봉 직전 안부)
10 : 57 - 1,275m봉
11 : 28 - 노인봉(1,173m)
11 : 54 - 범봉 직전 안부
12 : 20 - 범봉과 칠형제봉 사이 계곡 합수점
14 : 20 ~ 16 : 50 - 100m폭 하강
17 : 20 - 50m폭
18 : 33 - 천불동계곡 진입(잦은바위골 입구)
18 : 55 - 비선대
19 : 50 - 설악동 소공원 호텔설악파크 주차장, 산행종료
1. 천화대 능선
▶ 설악골, 공룡능선(나한봉 전위봉 직전 안부)
새벽 4시를 약간 넘었다. 아까부터 긴 박자로 늘어진 목탁소리가 들린다. 신흥사 일주문을 지
나 통일대불 앞 너른 마당에 들어서고 문득 하늘을 우러른다. 아, 여기에 온 우주의 별들이 다
모였나 보다. 하늘이 별들로 꽉 들어찼다. 저마다 다투듯 원근강약 빛을 발하여 황홀하기 그
지없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우주관 천체 같다. 세심교(洗心橋) 건너서는 하늘 가린 숲속 길.
헤드램프 밝힌다.
식은골 가는골 합수한 계류는 밤으로 쉬지 않고 흐른다. 저 물소리 구령 삼아 걷는다. 단숨에
비선대다. 우리말고도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뒤따라 쉰다. 난간에 기대 장군봉을 바라본다.
설악의 수문장으로 뭇 산악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장군봉이다. 저렇듯 어둠속에서도 미
동조차 않는 의연한 자태여서 그럴 것.
철다리 건너자마자 금강굴 마등령 오르는 갈림길 흘깃 보고 토막골 지나 머리 위로 바위 삐쭉
내민 산모퉁이 돌면 설악골 입구다. 지체하지 않고 잠입한다. 골 건너 오른쪽 산비탈 흐릿한
길로 간다. 멋모르고 우리 뒤를 따라 오는 등산객의 헤드램프가 보이더니 산모롱이 돌자 되돌
아갔다. 천화대 오르는 등산객들의 불빛이 왕별로 보인다.
헤드램프 벗어나면 어두워서 보이는 것 없으므로 좁은 테라스, 비탈길을 막 간다. 설악골 진
입 30분 정도 지나 본격적인 계곡 너널이 시작된다. 리지성 바위가 흔하다. 오르내리며 암질
익힌다. 천화대 오르는 석주길 지나고 설악좌골 우골 갈림길. 우골로 간다. 다시 Y자 계곡. 오
른쪽은 마등령 샘터 쪽으로 가는 길. 우리는 왼쪽으로 간다.
가파른 슬랩이 연속하여 나타난다. 오르는 걸음마다 경치가 달라진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의
실례다. 그에 취했음인가. 2m 정도 되는 슬랩을 오르다 발이 미끄러지며 엎어지고 암벽에 가
슴을 세게 부딪쳤다. 순간 숨이 멎고 아찔하였다. 엎어진 채로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갈
비뼈가 몇 대나 나갔을까. 여기서 온 길로 나 혼자 빠져나갈 수 있을까. 숨을 조심스럽게 깊이
들여 마셔보았다. 왼쪽 가슴에 걸린다.
다행인지 다친 곳은 없었다. 아침밥 첫술 뜨기 전에 설앵초 님 친구분이 밥과 술로 정성 들려
설악산 신명께 고수레한 덕분이리라. (내로라하는 암벽등반전문가가 끼니때마다 고수레하는
것이 의외다). 숨쉬기가 약간 거북할 뿐이다. 이후의 상황을 마저 얘기하련다. 바로 나타나는
대슬랩 2곳을 자일 걸고 올라 공룡능선에 진입하고, 1,275m봉, 노인봉을 지나 잦은바위골
100m폭도 별 탈 없이 하강하였다.
자고 일어나면 어떨까. 너무 피곤하여도 잠이 잘 오지 않는 법. 비몽사몽으로 밤을 보냈다. 이
튿날 일어나니 몸 상태가 어제보다 나빠지지는 않았다. 피골, 화채봉, 피골능선으로 10시간
넘는 산행을 강행하였다. 산행 후 속초 척산온천에 들려 냉온탕 들락날락하고, 해변 물횟집에
서 저녁식사 잘 마치고, 장사항의 풍차 꾸민 비싼 찻집도 들렸다. 일행 태운 차는 자정을 넘긴
늦은 밤인데도 굳이 우리 집을 경유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왼쪽 가슴이 숨 못 쉬게 아프다. 기다시피 하여 집
에 들어가고 자리에 눕기조차 어렵다. 반듯이 천장을 보고 누워야 한다. 기침하기가 아주 고
역이다. 괜히 목구멍이 간질간질하여 기침이 나오려고 한다. 날 새자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
레이 사진을 각각 다른 각도로 석장을 찍었다. 4번 갈비뼈가 부러졌단다. 전치 6주! 특별한 치
료법은 없다. 소염 진통제 등 알약 3개 5일치를 준다. 그저 집에 가만히 있으란다.
어차피 다칠 일이라면 산에서 다치기 행운이고, 다칠 산이라면 그래도 설악산 그것도 설악골
이라서 호강이다.
2. 이른 아침의 집선봉
3. 멀리는 달마봉
4. 가운데가 공룡능선 노인봉(1,173m)
5. 공룡능선
6. 공룡능선 1,275m봉 옆 암봉
7. 울산바위
다시 설악우골이다. 짧은 슬랩을 슬링 잡고 오르면 30m 넘는 대슬랩이 나타난다. 외길이다.
예의 설앵초 님 친구분 선등. 하네스 착용하고 자일 건다. 자일은 추락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자력으로 올라야 한다. 암사면 매만져 돌출한 부분을 붙들거나 틈 벌어진 데에다 손끝을 끼거
나 암면에 양손바닥을 밀착하여 올라야 한다. 손맛? 조마조마하여 느낄 여유가 없었다. 슬랩
을 밑에서 바라볼 때에는 저 정도면 붙어볼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붙고 보니 거의 수직절
벽이다.
대슬랩은 한 번 더 나온다. 자일을 걸었지만 중턱은 수직이어서 하나늘 님이 좁은 테라스에
웅크리고 하늘재 님과 나는 그의 어깨를 딛고 오른다. 슬랩과 계곡 너덜이 끝나면 잡목지대가
이어진다. 이 역시 뚫기가 쉽지 않다. 가파른 사면에 일제히 역방향으로 누운 잡목이다. 눈 측
백나무 밀생지역에 들었다가 허방 위로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한다.
선두의 연호로 방향 잡아 공룡능선으로 올라선다. 나한봉 전위봉(흔히 ‘큰새봉’이라고 한다)
직전 야트막한 안부다. 이제 1,275m봉 오르고 내리는 길. 길 좋다마는 때 아닌 한여름이다.
작열하는 불볕으로 숨이 턱턱 막힌다. 모자챙에는 땀이 장마통 낙숫물로 떨어진다. 오가는 등
산객들이 많다. 그들도 수인사 나누기 귀찮아하고 숨 할딱인다.
노인봉(1,173m)은 공룡능선의 맹주인 1,275m봉을 바라보기 좋은 장소다. 하늘에 도전하는
듯한 용맹스러움, 날씬하면서도 듬직한 품새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노인봉을
돌아 천화대 능선으로 들어서면 1,275m봉은 후덕한 또 다른 모습이다. 암봉 2좌를 오른쪽 산
허리로 돌아 넘는다. 깊은 절벽 서너 군데가 나무숲으로 가려있어 트래버스 할 때 특히 조심
해야 한다.
범봉 직전 안부. 허리께나마 범봉을 직접 내손으로 만져보는 것만도 대단한 영광이다. 그 암
벽에 기대고 어루만진다. 따스하다. 왼쪽은 설악좌골, 오른쪽은 잦은바위골로 내린다. 양쪽
다 길이 뚜렷하다. 우리는 잦은바위골로 간다. 가파르게 내려가는 너덜길이다. 건너편 칠형제
봉이 발아래 세공품으로 보이더니만 계곡 합수점에 이르자 고개 뒤로 한껏 젖혀 수수만년 고
성으로 보인다.
8. 1,275m봉
9. 공룡능선 노인봉과 천화대 범봉 사이 암봉
10. 맨 왼쪽으로 범봉 꼭대기가 보인다
11. 천화대 능선
12. 칠형제봉
▶ 100미폭, 잦은바위골
그늘진 암반에 모여 점심밥 먹으며 진행상황을 면밀히 검토한다. 칠형제봉을 오를 것인가,
100m폭으로 하산할 것인가. 칠형제봉을 오르내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다는 진단. 100m폭
으로 간다. 까마득한 절벽 그 위에 선다. 고개 들어 건너 집선봉 연봉을 구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범봉 안부로 다시 가서 설악골로 빠지자는 말을 왜 꺼내지 못했던가. 후회막급이다.
100m폭은 상단 30m 물줄기 바로 옆 수직벽을 내린 다음 하단 60m를 왼쪽 잡목지대로 내려
야 한다(나머지 10m는 완만한 슬랩이다). 자일이 60m짜리 정자일 2동이라면 폭포 정면의 암
벽으로 내리는 것이 깔끔하다는데 자일이 30m짜리 2개여서 잡목지대 중간에서 멈췄다가 잇
는 것이다. 설앵초 님 친구분이 자일 설치하고 먼저 하강하여 확보를 보아준다.
시간이 꽤 걸린다. 하강하기 기다리는 일각일각이 가슴 두근거리는 긴장의 연속이다. 입안의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바닥은 몇 번이나 바지자락에 문질렀지만 곧 축축하니 땀이 밴다. 비
너로 확보 줄 거는 것도 겁난다.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있
어 용기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데는 하늘재 님과 나만 초짜고 다른 이들은 전문가다.
드디어 내 차례. 주자일 묶은 소나무를 꼭 부둥켜안고 있는 나에게 설앵초 님이 하강기를 걸
어준다. 하강기 아래 엉덩이 쪽으로 내뻗은 오른손은 절대로 자일을 놓아서는 안 되고 하강기
위쪽의 왼손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란다. 부둥켜안은 소나무에서 떨어진다. 엉덩이를 뒤
로 쭉 빼라는데 잘 되지 않는다. 왼손은 나도 모르게 자일을 꽉 움켜쥔다. 하네스가 허리를 조
여 되게 아프다. 자일을 느슨하게 잡아 슬슬 내린다. 오로지 면벽하고서.
100m폭 상단에는 깊은 소가 있다. 그 옆 암반으로 내린다. 밑은 아찔하여 차마 내려다보지 못
한다. 하나늘 님이 맨 벨트식 하네스가 덜 아플 것 같아 바꾼다. 왼쪽 잡목지대로 하강한다.
설앵초 님 친구분은 우리를 굴비 엮듯 중턱의 참나무에 확보 줄로 모두 엮어놓고 자일 회수하
여 설치한다. 다시 하강. 역시 겁난다.
하강 완료. 뒷맛을 느끼려고 방금의 과정을 곰곰이 더듬어보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밤에 자다가 경기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슬랩의 연속이다. 깊은 협곡이 나온
다. 슬링 걸어 오른쪽 수직사면으로 트래버스 하여 통과한다. 50m폭 상단. 아트 울프를 초대
하고 싶은 잦은바위골의 1급 경점이다. 칠형제봉의 섬세무비한 결결의 암벽이 압권이다.
50m폭은 왼쪽 암사면으로 살금살금 돌아내린다.
잦은바위골을 빠져나가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자일을 세 번이나 더 걸어야 한다. 마지막
왼쪽 수직암벽 트래버스. 확보 줄 걸고 자일 잡고 지난다. 이윽고 천불봉계곡. 어둑하다. 물소
리 머문 너른 소를 보아도 알탕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여느 때와는 달리 기진하
여 등산화 벗기조차 귀찮아서다. 비선대휴게소에서 시원한 맥주잔 부딪치며 오늘 무사한 산
행을 자축한다.
설원교 지나고 더욱 어두운 숲길. 반딧불이 안내한다.
13. 100m폭, 저기를 내려왔다
14. 칠형제봉, 50m폭에서
15. 칠형제봉, 50m폭에서
16. 칠형제봉, 50m폭에서
17. 칠형제봉
18. 잦은바위골
19. 비선대 앞 장군봉
첫댓글 좋은 곳 구경시켜 주셔서 감사한데...가슴을 다쳐서 어찌합니까 빨리 나으셔야 할텐데...
몸조심 하시구여...살살다니시면 괜찮습니다. 저두 갈비 나가고 산에 갔슴돠...
복대로 가슴 꽉 매고 천천히 다니시면 됩니다.
ㅎㅎㅎㅎㅎㅎㅎ아니 그렇게까지 다녀야 하나요 ㅎ 이럴때 좀 쉬시라구 하시지요 ㅎ
산진이님 매주 새로운 산행기 안 보여주셔도 되니 몸조리 잘 하시길요
지난 산행기 다시 읽어도 좋습니다 너무 너~~~~~~~~~~무 ㅎ
설악 가본지도 꽤 되는데, 안가도 덕분에 구경은 잘합니다. 설악우골의 30m 넘는 대슬랩이나, 100 m 폭 에서 떨어졌으면 생명이 위험하였을텐데,
설악골의 2m 짜리 슬랩에서 다치셨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하늘이 도운것이라고 생각하셔야겠습니다. 빨리 완쾌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진 한장 한장이 압권입니다.
빠르게 회복 하시기를..
빠른 쾌유를 빕니다. 어휴 안따라 가길 잘했네. 새가슴이라서. 휴--
사진은 예술인데....아픔이 있으셨군요.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빨리 완쾌하세요...
설악산은 언제봐도 예술입니다. 거기 서 있는 사람들도 예술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