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2월 27일
살라망카에서 레온까지는 버스 3시간 거리인데 직행 버스가 하루 한 번밖에 없다. 그래서 바야돌리드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는 걸로 예매를 해뒀다. 1시반에 살라망카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3시 10분에 바야돌리드 도착, 터미널에서 점심을 사 먹고 레온으로 가니 7시가 넘었다. 밤중에 호텔을 찾아가는 건 처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이다. 도시간 이동은 항상 오전에 했는데, 1박하는 살라망카와 2박하는 레온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오늘만 오후에 출발한 것)
레온은 스페인 북서부에 있던 옛 레온 왕국의 수도였던 (지금은) 작은 도시. 아스투리아어와 가까운 언어인 레온어(혹은 레온 방언)가 남아 있지만 사용자가 많지는 않다고 한다. 몇 만명 정도?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많이 들르는 길목이며, 랜드마크는 레온 대성당. 1205년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말그대로) 큰 성당이다. 레온이란 단어는 우리말로 사자란 뜻이다. 스페인 국기 한가운데 방패 안에 보이는 사자 그림이 바로 이곳 레온의 상징(문장)이다.
터미널에서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이 도시의 메인로드다. 크리스마스가 아직 끝나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다. 대성당 앞에서 (배낭을 멘 채로) 사진 몇 장 찍고 보니 예약해 둔 숙소가 바로 근처에 있다. 숙소 위치가 그만큼 좋다는 얘기겠지.
체크인을 하는데, 모로코 출신이라는 친절한 남자 직원이 한국 예찬을 한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한국 축구도 좋아하고 (그러면서 모로코의 4강 진출 자랑도 곁들임)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이 호텔에는 한국 음식이 있다고 자랑을 한다. 그것도 공짜라고. 한국 음식이라니 뭔 소리야?
방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하 식당을 보여주겠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식당 한켠에 온갖 컵라면들이 놓여 있다. 4시부터 8시 사이에 와서 맘껏 먹어도 된단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는 홈쇼핑에서 엄청 광고해대는 유명한 안마기가 주루룩 놓여 있는데 그것도 공짜란다. 와! 좋은 호텔이네! 이런 특별한 호텔의 비밀을 푸는 키워드는 '한국인 순례자'? - 역시나, 사장님이 한국분이란다. 한국인 순례자들을 상대로 특별한 영업을 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우연히 들른 위치 좋은 숙소에서 공짜로 컵라면을 먹어보게 생겼으니 우린 땡큐지. 순례자는 아니지만 발맛사지도 한번 해봐야지. Inn Boutique Leon, 2박 105유로.
# 2022년 12월 28일
대성당은 아껴두고 우선 산 이시도르San Isidor 성당부터 가보려고 나섰는데 구시가지 한쪽을 둘러싼 오래된 성곽이 눈길을 끈다. 묵직하고 튼튼해 보여.
산 이시도르 성당은 10세기 처음 지어졌고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된 유서 깊은 성당이란다. 명칭의 유래는 7세기에 활동한 세비야의 대주교의 이름. 그의 유해가 이곳에 묻혀있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많은 보물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성배(도냐 우라카의 성배)와 종탑 꼭대기의 수탉 장식(실제 종탑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박물관 안에)이 유명하다고 한다.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 보니 크고 화려한 예배당이다. 그런데 뭐, 예배당은 예배당이고... 보물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밖으로 나오니 문앞에 있던 걸인이 손가락으로 건물 오른편을 가리키며 뭐라뭐라 한다. 못 들은 척(못 알아듣고) 성당 건물 사진을 찍고 있으니 더 강력하게 손짓을 해댄다. 뭐라는 거지? 못 이긴 척 (사람들을 따라) 오른쪽으로 (100미터쯤) 돌아가 보니 박물관 매표소가 나온다. 아하! 여기구나!
5유로씩 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 규모가 엄청 크고 그림과 공예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구경을 하다가 문득 직원에게 수탉은 어디 있어요? 라고 (팜플렛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봤더니, 여기요! 하, 마침 이 방이다. 무거워서 그랬을까, 바닥에 놓여 있다. 그렇더라도 작은 물건도 아닌데 내 눈에는 왜 안 보였는지... 직원은 쑥스러워하는 나를 문밖으로 데리고 나가 탑 꼭대기를 가리켜 보인다. 저 위에 있는 수탉은 복제품이고 이게 진짜에요.
2층으로 올라가니 발코니로 나갈 수가 있다. 잠시 밖에서 (아래 길거리와 종탑의 수탉을) 구경하다가 들어와서 사람들이 몰리는 데로 따라가 보니 성배라는 것이 보셔져 있다.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다는 혹은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를 담았다는 전설의 성배는 중세 유럽의 역사와 문학에 많은 이야기를 남겼고, 그리고 진짜 성배라고 주장하는 물건도 여기저기 많다는데, 그중에서도 이곳의 성배와 발렌시아 대성당의 성배가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자웅을 다투고 있단다.
성당 가까이에 가우디가 건축한 보티네스 저택Casa de Botines이 있다. 문이 닫혀 있어서 1시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표를 사려고 했더니 웬일인지 그냥 들어가란다. 좋다고 들어가긴 했는데 0층과1층만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0층에는 이 건물이 지어진 배경과 과정이 설명되어 있고, 1층에서는 (가우디와 무관한) 현대미술품들이 전시중이었다. 2-3층과 옥상 투어는 저녁에만 하는 건가?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가우디 건축물 내부를 (공짜로) 구경한 걸로 만족하고 점심을 먹으러...
그런데 이 시간 (오후 2시 무렵) 식당들은 문을 닫았거나, 열었어도 식사는 안 된다거나, 자리가 없거나 해서 밥먹기가 만만치 않다. 서너군데 들렀다가 실패하고 결국 아이스크림집에서 빵을 먹었다.
비가 오기 때문일까, 어제 저녁 중심가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더니 변두리쪽(?) 골목과 광장은 썰렁하다.
7유로를 내고 들어간 레온 대성당은 기대 이상으로 크고 화려해서 깜짝 놀랐다. 추가로 3유로를 더 내고 들어간 박물관의 규모도 엄청나서 또 한번 놀랐다. 두 번 낸 입장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