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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설
이 청춘가는 1920년을 전후로 해서 많이 부르게 된 노래로서 예전에 부르던 (이팔 청춘가)를 약간 변조한 노래로 곡조도 비슷하고 사설도(1,2절까지는) 같다.
청춘가는 글자 그대로 청춘을 구가한 노래이며 청춘남녀의 신세 한탄이 나오며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로서 구조 이팔 청춘가의 (이팔은 청춘에 소년 몸되어서 문명의 학문을 닦아를 봅시다) 이러한 옛날 글방 훈장처럼 의젓하게 청춘을 훈계한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곡조는 단조롭지만 씩씩하고 경쾌하며 비애조가 섞여 있는 이 노래는 지금도 많이 애창 되고 있다.
안팎 두 귀씩으로 되어 있어 후렴도 없으며 장단은 굿거리 12박자로 현대음악으로는 4분의3박자 ~ 8분의6박자로 되어 있다.
종전에는 사설이 몇 절 밖에 안 되던 것을 이창배님과 황용주님께서보충하여 작사,및 개사를 하였다.
해 설
사발가는 서울 지방의 민요중의 하나로서 1910년 한일합병 직후 나라를 잃은 겨례가 지닌 울분을 토로한 노래이다.
(석탄백탄 타는데 연기만 펼펼 나구요 요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아니 나네)이렇게 시작 되는 이 노래는 석탄이나 백탄이 타오르는 데는 검고도 희 뿌연 연기나 나지만 나라를 잃은 설움에서 가슴 속 깊이 타오르는 울분의 응어리는 어느 누가 알겠느냐 분에 복받쳐서 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소연 겸 부른 것이 지금의 우리 민요의 한 가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석탄 백탄....)의 첫절만 부르던 것을 이창배님이 보충 작사 하였고 황용주님이 개사하여 지금에 이른다.
아 사발가도 1세기 가까이나 되는 동안에 변화가 많이 되었다고나 할까?
장단은 굿거리 12박자 (8분의6박자, 4문의 3박자)에 맞추어 부르며 본절이 굿거리 12박자 4장단이며 후렴이 같은 3장단으로 짜여져 있다.
해 설
베틀가는 부녀자들이 베틀에 앉아 무명 명주같은 피륙을 짤 때 일의 수고로움을 잊고 보다 능율을 올리기 위한 노작가요의 하나이던 것이 (1900년경 부터)차츰 세속화되어 오늘날 서울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속요로 옮겨 졌다.
여인과 베틀은 참으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인의 노동, 여인의 생산,희망, 꿈, 사랑, 수심이 모두 이 베틀에 서리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베틀에 앉은 아름다운 여인의 뜨거운 정기라고 이를 수 있다.
베틀노래는 각지방마다 산재 해 있어서 경북의 김천, 안동, 영일, 경남의 통영,강원도 통천, 횡성, 황해도 평산, 충청도 공주등 지역의 산재해 있는 노작가요가 있다.
이 베틀가는 베를 짜는 부녀자들의 애환이 담긴 것을 소재로 하여 지은 애수에 어린 보편화 된 민요이다.
이 노래는 고 이창배님의 작사가 많고 또한 근자에 황용주님이 개사해서 넣은 사설이 많다.
장단은 굿거리 4분의 3박자, 8분의 6박자로 맞추어 부르며 본절과 후렴이 각각 2장단으로 되어 있다.
해 설
이 오돌독은 서울 지방에서 흔히 부르는 민요로서 제주도 민요(오돌또기)와 비교 해보면 사설 내용은 다르지만 곡조는 비슷한데가 많다.
이 노래의 원마루는 서로 같은 데가 많은 반면 후렴은 전연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오돌또기는 1900년대를 전후로 해서 제주도 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었던 민요로서 남국적인 정서가 풍기는 노래이다.
이것이 그 뒤에 서울로 전해져서 많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오돌독은 서울의 창법으로 원 제주도 것과는 많이 달라져 후렴까지도 변모 된 것으로 명쾌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장단은 굿거리 8분의6박자 이고 제주도의 오돌또기는 타령 장단이다.
해 설
이 한강수타령은 서울지방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로서 한강에 배를 띄우고 유유자적 뱃놀이를 하며 재자연을 읊으며 선유하는 모습을 담아 노래한 것으로 양산도와 경복궁타령과 같이 입창에 든다.
이 한강수타령의 파생된 시기는 1870년경 경복궁타령과 같은 시기에 나온 노래로서 전문적인 소릿꾼 들에 의해서 짜여진 노래로서 비 전문가는 부르기가 좀 까다로운 노래이다.
본절, 후렴이 각각 12박 4장단의 굿거리에다 양악으로는 8분의 6박자이다.
해 설
이태평가는 1945년 이후에 많이 불리워진 민요이다.
본래의 창부타령을 축약한 가락으로 주로 잡가를 부르던 이들에게서 전창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송파 산대놀이 예능보유자 이셨던 허 호영님의 말에 의하면 해방직후에 문 호월씨가 작곡 하였다고 한다.
어느 말이 정말이든 간에 오래도록 전래되어 오는 전통민요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곡태는 재래의 창부타령을 변조한 것으로 신이 오른 것같은 흥겨운 가락에 그 잦아지는 듯한 후렴의 뒷 맛으로 태평가는 널리 환영되고 만인들에 회자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름이 태평가라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그러한 내용과는 아랑곳 없이 남녀의 정서를 엮은 서정시로 되어 있는 것을 황용주님이 다시 작사를 하여 태평가라고 하는 곡목의 뜻을 살려 가사 내용에 반영하였고 개사와 편곡을 하였다
장단은 굿거리 12박자, 8분의6박자에 맞추어 부른다.
해 설
황해도 은률 지방에 예전부터 성창되어 오던(도라지 타령)이 있는데 이것은 산염불조와 같이 아주 느려서 세마치(3박자) 장단에 맞추어 부르기는 너무 늘어져서 늦은 중모리 장단에 넣어서 불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1940년을 전후해서 명랑하고 경쾌한 민요조로 3박자의 약간 빠른 장단으로 변형되어 오늘 날의 도라지 타령이 되었다.
본절이 3박자 16장단이며 후렴이 같은 박자 12장단으로 되어 있고 가사는 중의법을 쓰고 있으며 경쾌한 리듬으로 인해서 고전 무용곡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이 도라지 다령도 처음에는 몇 소절안되는 것을 황용주님이 일부를 작사해서 보충을 하였으며 개사와 편곡을 하여 정리하였다.
장단은 3박자(8분의 6박자)로 보편적으로 느린 왈츠에 속한다.
해 설
예로부터 수많은 꽃타령 중에서 매화타령은 뛰어난 경기지방의 민요이다.
매화타령 이라고 이름을 붙인것을 다른 소리가 대개 그렇듯이 후렴에서 "좋구나 배화로다"라고 하는데가 있어서 매화타령이라 했을 것이다.
또한 이 소리는 서울의 12좌창 가운데 달거리 끝에 매화타령이 붙는데 사설이나 곡태로 보아 독립된 민요로 보아도 틀림없고 요즈음은 으례 따로 부르는 때가 많다.
장단은 굿거리(4분의 4박자)로 맞추어 부른다.
해 설
이 아라랑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전국에서 애창되고 있으며 또한 세계 어느 곳을 가나 아리랑을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 져 있다.
아리랑이 구전 민요로 오랜 세월 동안 전해 오면서 구 유래에 대한 설도 구구하고 각 지방에 따라서 파생된 별조도 수 없이 많다.
각 지방에서 파생된 아리랑을 보면 서울의 본조 (아리랑)(긴아리랑)(진도아리랑)(별조 아리랑) (해주 아리랑)(신 아리랑)등 외에도 수많은 아리랑이 있다.
그러므로 지방에 따라서 가사도 음률도 여음도 각기 다르다.
서울의 본조인 이 아리랑의 장단은 3박자로서 보통 4분의 3박자와 아주 느리면 8분의9박자에 맞추어 부른다.
해 설
서울 경기 지방에서 많이 부르는 이 긴 아리랑은 한 없이 길게 느린 한배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창법 부터가 본조 아리랑과 다르고 그 가락도 또한 한없이 애절한데다가 원마루의 가사 내용도 눈물의 별한이요 불같은 규원을 부르고 있어 듣는이로 하여금 슬픈감회를 느끼게 한다.
이 긴 아리랑의 곡태가 이별가의 흐름과 같이 길고 느리게 내 뽑으며 또한 고음과 처음을 다 같이 써야 되는 넓은 음역으로 되어 있어서 성량이 없이는 제대로 표출하기가 어렵다.
긴 아리랑은 본조 아리랑이나 같이 생긴지가 오래 되렀을 것이라 구구한 아리랑의 파생설과 아울러 이 긴 아리랑도 오랜 세월동안 우리 소상들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온 민요이다.
이 노래를 고 박춘재 선생과 광무대에 출연하던 김 송죽씨가 극장이나 가설 무대에서 많이 불렀다고 한다.
장단은 느린 3(8분의9)박자에 맞추어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