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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아니 석유
ㄹ o
쿵 쿵..
먼 ~먼 우레같은 포성이
연일 귓전을 때리고
화염병 굴리는 고함소리에 뒤이어
아비규환의 피범벅 살범벅
한 알의 잘익은
이란 수입산 석류 한알
무심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순치될 수 없는 광기의
바다건너 물건너
내전을 생각는다
어찌하여 신앙심의 본질은
자문 자답마저 거세된
맹목적 몰두인가
무르익을수록
두통을 유발하는
이 한덩이 신앙은
한마디로 아수라
여성성을 가두는 나라에서 온
이 석류가
여성성을
다시금 피어나게 한다는
이율배반의 아이러니
생존이라는 화두 자체로
골 때릴 그들에겐
차라리 애증이 없는 세상으로
일가족을
수출해 버리고 싶은 열망이
굳게 그러쥔
이 주먹 속에 담겨있진 않을까
석류 아니 석유
환호성도 잠시
결국 축복이 아닌
이글거리는 연옥불같은
신의 저주였음을...
낮달 考
ㄹ o
보고싶은 얼굴
다 보면서
어떻게 사나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쌀과자처럼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오래된 만복감이나 되새기며
긴긴 하루 해를 다스리는
저 허기
나의 10대, 그리고 가출
류윤모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어렴풋하다. 10대 후반 출가가 아닌 가출을 하여 강원도 일원을 떠돌고 있었다. 당시 왜 도시로 눈길이 쏠릴 산골 소년이 도시가 아닌 강원도까지 생뚱맞게 올라갔을까. 지금 생각하면 나도 당시의 내 마음을 알 길이 없다.
부글거리는 浮氣 때문이 아니었을까. 알 수 없는 반항심으로 국토의 최북단까지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고픈, 낡은 배낭을 메고 시외버스에서 내려 먼지 푸석이는 신작로 길을 벗어나 연고라고는 있을 턱이 없는 후미진 산촌을 터벅터벅 걷다가 농번기, 농사일을 하는 촌부가 있으면 일부러 말을 붙여서 일을 거들어주고 감자와 옥수수를 짓이겨 내오는 감자밥을 얻어먹고는 걷고 또 걸었다.
마치 부글거리는 나 자신의 육체에 화풀이라도 하듯.
해거름에 사위四圍는 어둑어둑해지고 갈 곳도 , 오라는 곳도 없는 길손인 나는 산모퉁이를 돌아 무섬증에 마을로 들어섰는데 나지막한 집들이 드문드문 산자락 아래 조갑지처럼 붙어 있었다. 특별할 것이 없는 강릉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 병풍 같은 산자락에 둘러싸여 마을은 늦게 해가 뜨고 일찍 해가 떨어지곤 했다. 9월인데도 으스스 한기가 옷깃 속으로 파고 들었다.
나는 집이 드문드문 독가촌으로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의 산그늘 아래서 두어 방울 눈물을 버렸다. 해가 지는 광경을 마을 어귀의 한 느티나무 그늘아래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어두워지면 잠잘 곳마저 없을 것 같아 발길을 마을로 떼 놓았다.
역시 강원도는 낯선 젊은이를 한뎃잠에 들게 할 정도로 인심이 야박하진 않았다. 서까래가 훤히 드러나는 방이었지만~ 즈므마을, 지금도 즈므라는 지명이 지금도 생각하면 사람이 없고 내일이 없는 저무는 황량한 들녘의 상징처럼 떠오르곤 한다
.
요즘도 나는 네온사인 화려한 도시보다는 외롭고 쓸쓸하고 그래서 조금은 외진 즈므 같은 곳에서 안정적인 위안을 받아오곤 한다.
즈므, 라는 지명을 입속말로 되뇌다 보면 지금도 산그늘이 다정하게 다가서는 것 같고 말없이 그 산그늘의 품에 파묻히는 나 자신의 모습 또한 다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
곰곰 생각해보면 낯설고 물 선 그 마을을 찾아들었을 때 볼 붉은 소년의 어리다면 어린 나이의 나는 그 쓸쓸한 공간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즈므마을, 불현듯 한 번쯤 그 마을을 다시 찾고 싶을 때가 있다. 시인 노발리스는 ‘마음이 외부의 현실적이며 개별적인 모든 대상에서 놓여나서 스스로를 느낄 때 이상적인 본연의 마음의 자리가 찾아온다.’고 했다.
앞뒤 생각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은 멀리 떠나 나를, 내 안을 직시하는 여정이다. 지금 길을 잃고 갈등에 휩싸여 있는 그대 멀리 떠나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돌아볼 일이다.
글/류윤모
류윤모시인
출생경북 상주시 출생. 2008년「예술세계」등단
2014 제14회 울산문학상. NUN 뉴스 논설실장
시집 『내 생의 빛나던 한 순간』『사랑하라 벼랑위의 목숨들처럼』외
아라리 아라리 정선 아라리
류윤모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오
...............................................................................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를 좀 건네주게
젊은 아낙이 고단한 밭일을 하며 처연한 가락으로 불렀을 정선아리랑.
산 첩첩 물 망망 강원도 심심산골로 시집간 여인이 출구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읊조리던 가락이
구전으로 구전으로 내려오는 노래입니다.
강원도 아리랑의 버전이 500가지 갈래가 넘는다 하니 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가히 인류문화유산으로 등
재된다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산 넘고 재 넘어 버선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걷고 걸어 수십 리 산길을 나와 버스나 기차에 몸을 싣지 않고는
험한 산길, 태산준령으로 가로막힌 코딱지만 한 산촌을 벗어날 길이 없었으니 살아온 날도 까마득하고 살아갈 날도 까마득했을,
아라리 아라리 정선 아리리였을 테지요.
비탈진 산자락을 나무뿌리 파내고 풀뿌리 뜯어내며 손바닥에 피멍이 들고 터지길 거듭하다보면 못이 박히고
손가락이 갈퀴가 되도록 화전을 일구어 고작 강냉이나 감자를 몇 가마니 얻어먹는 것이 호구지책이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았을까요. 그마저도 날이 가물면 초근 목피를 못 면했을 테고요.
강원도 아리랑을 듣다 보면 목석같은 사내라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 팍팍했을 아낙들의 처지가 전이되어
끝없이 눈물이 샘솟곤 합니다.
또 다른 버전의 정선아리랑은 남편을 찾아 허위단심 찾아갔지만 보고도 본체만체 돈담무심, 출가를 결심하는
여인의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강원도 아리랑은 5음 음계 중 가장 높은 음으로 시작하여 차차 낮아지는 형식으로 느리고 구슬픈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장단은 판소리를 비롯해 각 지방의 무속음악에 흔히 쓰이는 곡조입니다.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 천봉 /팔만 구 암자
유점사/ 법당 뒤에/ 칠성단 도도 못고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나달라고
정성을 말고……
타관객지 /외로이 /난사람 괄시를 마라.
……………………
눈앞에/ 왼갖 것이 /모두 시름 뿐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살아서는 뙈기 밭농사의 노예로 말목이 묶여 벗어날수 없는 처지의 육체적 고초, 아들을 못 낳는다는 시부모의
구박에 정신적 복달림, 남편의 외도…….
강원도로 시집간 산촌 아낙들의 울음과 한탄에 가락이 붙고 아리랑, 아라리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되어
함께 듣다보면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옛 여인들의 삶은 왜 이리도 슬프기만 한 걸까요. 하지만 슬픔에도 흥을 담을 줄 아는 우리 민족 정서
는 참으로 융융할 따름입니다.
나를 바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나라
/가 아닌.... 발병 난다/는, 역설의.... 정선읍에/ 물레방
아는/ 사시장철 물을 안고/ 뱅글뱅글 도는데 /우리 집에
/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는 비유적 애원.
우리는 지금 내전양상의 분열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보갚음과 앙갚음이 아닌 역지사지의
화해의 정신이 반드시 필요한 때입니다.
못난 조상들이 편을 갈라 싸우다 일본에 나라를 내주고 식민지를 살아내야 했던
여인들의 가시밭길 같은 삶, 6·25 동란으로 남부여대,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이 땅의 어머니들의, 어린 자식들을 건사하고자 노심초사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 이 땅에 재연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ND
추억 속, 그 겨울의 동치미 맛 류윤모 산촌의 겨울 해는 노루꼬리만큼이나 짧다. 해가 이마에 걸리면 낮 동안 녹아 질척거리던 마당이 다시금 얼기 시작한다. 처마 끝엔 고드름이 송곳같이 서늘하고 잔뜩 흐린 하늘에 컴컴해진 집집마다 서둘러 호롱불을 밝힌다. 일찍 저녁을 먹고 호롱불 아래 홀로 앉아 책장 넘기는 소리만 적요하던 밤, 소년은 ‘스스슥슥 삭삭삭’ 뒷 봉창의 눈발 치는 소리에 가만 일어서 방문을 연다. 앞마당도 지붕도 하늘도 온통 하얗다. 마당의 나무들도 흰눈을 깁처럼 감고 서 있다. 세상이 온통 함박눈의 고요에 휩싸여 있다. 방안에 이글거리던 화롯불도 사그라지고 식은 재만 남았다. 출출하고 뭐 요기 할꺼리 없나 궁금하던 끝에 숙제를 하다 마루에 나와서는 ‘어머니, 밀가루나 하늘에서 마구마구 퍼부어 주었으면 좋것네.’ 하면서 어머니가 거처하시는 안방으로 들어선다. “뭐 먹을 거 없는가 엄니” “녀석!. 뱃속에 거지라도 들어앉았남. 찰밥 남은 거 한 사발 있는데 먹을래” 호롱불빛에 바느질하시던 젊은 어머니의 대답이다. 내가 작은방에서 건너온 속내를 읽으시곤 부엌으로 나가 찰밥 옹배기를 밥상 위에 꺼내 놓고는 마당 한켠에 있는 움집으로 가셔서는 항아리 뚜껑을 열고 동치미와 잘 삭은, 치렁치렁한 잎사귀가 그대로 달린 먹음직스런 무김치를 꺼내 오신다. 찬밥에 동치미, 벌건 무김치를 와삭거리며 먹는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는 흐뭇한 눈길로 지켜보신다. 한지 창 밖의 눈발 치는 소리와 서늘한 동치미 국물, 찰밥은 환상적 궁합이다. 밥맛도 분위기가 좋으면 한결 더 난다. 창 밖에는 흰눈이 펄펄 날리고 아랫목은 뜨끈뜨끈, 고구마 덕이 놓인 윗목은 냉돌. 어둠을 도려낸 것 같은 호롱불빛 아래..............천지 사방이 유정해지고 어머니의 가르마 아래 반듯한 이마와 눈썹, 오뚝한 콧날을 처음보기라도 하는 양, 아들은 오래오래 바라다본다. 세상은 어쩌면 이리도 평화로울까. 적막강산의 마을에 눈 덮인 따끈따끈한 구들방. 까씰까실한 새로 시친 이부자리에 뻗친 발에서 온기가 온몸으로 눈 녹듯 전해오고 소년은 더없는 안온함을 느낀다. 새둥지가 이리 포근할까. 양지쪽 벼 짚가리 속이 이리 아늑했던가. 살얼음 낀 동치미국물을 한 모금씩 마셔가며 찰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뚝딱 비우는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는 대견한 듯 그윽이 지켜보신다. 집집마다의 김장 풍경도 볼만했다. 입성도 변변찮아 옷깃 속으로 찬바람이 오소소 파고들던 그 겨울, 동네 우물터에서 두레박으로 찰박찰박 샘물을 길어서는 무를 씻고 노란 속고갱이 배추도 쪼개어 씻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아낙들의 손은 이내 곱아 발개져서는 소금을 쳐서 한나절 절여 두었던 김장 배추를 소쿠리에 건져서 집으로 옮겨왔다. 남정네들은 양지쪽 담벼락 아래에 김장독 묻을 구덩이를 허리 높이까지 파고. 아낙들은 김장 배추의 속에다 무생채, 양념 고춧가루 버무린 것을 비벼 넣는다. 김칫독은 미리 정갈하게 씻어 말려 두었다, 무를 큼지막하게 썩뚝썩둑 썰어 양념과 버무린 무김치, 새벽부터 샘터에서 길어온 정한 샘물을 길어 부어 소금 간을 하고 잎사귀도 자르지 않고 무를 그대로 넣은 동치미는 통고추를 그대로 동동 띄운 비주얼부터가 맛깔스럽다. 배추 무김치 항아리를 새끼줄을 걸어서 파놓은 구덩이에 조심조심 내리고 흙을 가장자리부터 채운다. 묻고는 볏짚으로 두툼하게 움집을 해서는 겨울나기를 했다. 불현듯 흰눈이 무장무장 내린 움집에 동치미를 꺼내기 위해 한기에 온 몸을 떨며 고무신을 들들 끌고 가던 그 겨울의 시골 풍경이 그리워지곤 한다. -류윤모 NUN뉴스 논설실장- 신지수 류윤모 설악산 대청봉! 쇠꼬챙이로 후벼 파는 듯한 통증으로 하여 살아서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알고 살아왔다. 그에게 그곳엔 남모르는 트라우마가.... 산악회의 혹한기 겨울 산행 결정이고 집행을 해야하는 총무인 그로서는 산행에서 호불호 간에 빠질 수가 없엇다. 대학 졸업반 등반 써클에 홍일점 여학생 후배 하나가 들어왔다. 선머슴애처럼 스포츠머리, 청바지에 청카바. 옷도 아무렇게나 어깨에 걸치고, 화장기없는 민낯에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깔깔거리며 남자선배들을 형이라 부르던 해맑은 후배.신지수 특별히 예쁘달 수는 없는 중성적 외모지만 웃을 땐 덧니가 매력적인.. 남학생들이 에워싸게 하는 보호본능이 있었다. 아무도 상상못했던 그녀와의 밀애는 들통이 났고 공식적인 커플로 인정받게 되었다. 졸업기념 산행으로 설악산 대청봉을 사회라는 정글로 내딛는 도전의 의미로. 산악인들에게도 난코스로 소문난. 단풍철이기도 하니 설악산 대청봉 북벽을 정복하자는데 의견의 일치. 새벽부터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지루한 시간을 달려 설악산 아래 휴게소에 당도했다. 배낭을 멘 지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형, 오늘 내가 형이 알면 깜짝 놀랄만한 선물 준비했어. 기대해도 좋아” 백허그를 하곤 귓속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응, 선물, 오늘이 무슨 날?…” 오늘이 무슨 날인데, 생각을 되짚어봐도 생일도 아니고 특별하달 것이 없는 날이었다. 선발대가 이미 자일을 걸어 내려 준비상황 이상무. 라는 무전기 교신이. 북벽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천야만야한 직벽이라서 그는 지수의 등반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 수많은 등반으로 경험을 쌓았다지만 가파른 산세가 연약한 여성의 도전을 호락호락 받아들일 만치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3개의 자일을 순서대로 타고 오르는 난코스였다. 공교롭게도 그는 A팀, 지수는 B팀에 편성되어 같은 시간대 나란히 자일을 타고 오르게 되었다. 옆에서 ‘힘내라.’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사내자식이 뭐가 무섭냐, 이 정도 산을 겁내면 남자도 아냐. XX을 떼버려야 해” 그가 농담을 건네자 상기된 얼굴로 깔깔거리던 그녀는 “여자만도 못한 찌질이 형 XX이 달렸기나 한지 내려가면 한번 확인해 볼까나 ㅋㅋ” 그렇게 7부 능선까지 오르다 기진맥진해 서로 말이 없었다. 재겨 디딜 틈도 없는 바위틈새에다 등산화 앞꿈치를 밀어 넣으며 자일을 움켜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공포 그 자체. 그때 9부 능선쯤 오르던 준호가 소리쳤다. “낙석이다.!” 순간 우르르 굴러내려 오던 바위는 파석이 되어 순식간에 옆의 지수를 덮쳤다. 손쓰고 말고 할 겨를도 없었다.깨진 바위에 맞은 지수는 절벽 아래로 꽃잎처럼 곤두박질 쳐 내려갔다. 그렇게 첫사랑을 허무하게 잃은 설악산은 그에게 있어 단풍과 오버랩된 붉은 상흔이 되살아오는 기억조차 되살릴 수 없는 아픈 곳. 그후 설악산은 다시는 찾을 수가 없었다 40 중반에 회사가 기울어 사오정 퇴직을 하고 보니 재취업도 쉽지 않고 산이 아니곤 딱히 찾아갈 만한 곳도, 만만한 취미조차도 없었다. 새로 가입한 산악회 결정인지라 번복도 불가능하고 아픈 추억도 추억이기에 새삼스레 그리워지는 건 수십 년 세월의 레테의 강을 건너왔기 때문일까 잎새가 진 겨울인지라 휘휘한 바람 떼가 나목 사이로 산정을 훑으며 무시무시하게 넘는다. 북벽 아래 기억 속의 등반코스를 되짚어 걷다가 눈앞에 반짝이는 무엇을 발견했다. “목걸인가…” 금속을 주워서 본 그는 낯익은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순간 그는 쇠망치로 정수리를 후려 맞은 듯한 충격에 얼어붙었다. 이건 내가 지수에게 생일 선물로… 그런데 목걸이 아래 가느다란 유리대롱이 달려있고 누런 종이가 말려들어 있었다. 잘 열리지 않는 뚜껑을 열어 습기 번진 볼펜 글씨를 희미하게 나마 읽을 수 있었다. -형,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우리의 분신이 이 뱃속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거 아냐. 이 깜짝 선물을 정상에서 공개하려고 해. 뜻 밖의 선물 받고 형이 어떤 표정 지을까. 아마 나를 으스러져라 껴안고 마구 마구 돌겠지. 사랑해 형. 하늘만큼 땅만큼- 그는 현기증이 일어 그 자리에 삭은 재처럼 풀썩 무너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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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면서
어떻게 사나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쌀과자처럼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오래된 만복감이나 되새기며
긴긴 하루 해를 다스리는
저 허기
지극히 공감이 가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