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가는 배 / 장희한
나는 어디서 왔을까
또 나는 어디로 떠가는 것일까
정처 없이 떠가는 배
긴 항해는 끝이 나는가 보다
자꾸만 배의 밑바닥에서 물이 새고 있다
틀어막고 땜질해도 고장이 나는 배
노을은 물 면에 황금빛으로 젖어 들고
어둠은 저 멀리 손짓하고 있다
일어섰다 쓰러지는 파도
바다는 수만 년 저런 몸짓을 하고
철석 철 석 하는 파도 소리 누구의 애끓는 울음인가?
바다가 하늘에 있고 하늘이 바다에 있는 바다
끝없이 노 저어 가면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이승과 저승
온 길을 모르니 가는 길을 어찌 알랴?
가다가다 좌초하면 그만인데
오늘도 고장 난 배를 끌고 땜질하려고 간다.
삶이라는 고장 난 배의 항해
― 장희한 「떠가는 배」 평론
장희한의 「떠가는 배」는 인간 존재를 '고장 난 배'에 비유하여 삶과 죽음, 시간과 운명, 그리고 존재의 불확실성을 성찰한 철학적 서정시이다. 이 작품은 바다라는 거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이 누구나 겪는 노년의 현실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운명을 담담하면서도 깊은 사유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배'라는 오래된 문학적 상징을 통해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동양적 허무와 서양적 실존의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는 첫머리부터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질문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또 나는 어디로 떠가는 것일까
이 두 행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다. 철학과 종교가 수천 년 동안 탐구해 온 존재론적 질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묻지만, 그 질문은 곧 모든 인간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삶의 출발도 모르고 종착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이 첫 연에서 압축적으로 제시된다.
이어지는
정처 없이 떠가는 배
는 시 전체를 지배하는 중심 은유이다. 여기서 배는 인간의 육체이며 동시에 삶 그 자체이다. 목적지를 알고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방향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떠밀려 가는 배라는 설정은 인간의 유한성과 불안정을 상징한다.
특히 두 번째 연은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자꾸만 배의 밑바닥에서 물이 새고 있다
이 한 구절은 노년의 삶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새는 물은 늙어가는 육체일 수도 있고, 병든 장기일 수도 있으며, 기억이 새어 나가는 시간일 수도 있다. 인간은 평생 자신의 배를 수리하며 살아간다.
틀어막고 땜질해도 고장이 나는 배
이 표현에는 삶의 비애가 응축되어 있다. 아무리 건강을 돌보고, 병을 치료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인간의 몸은 결국 조금씩 무너진다. 시인은 이를 과장하거나 절망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이 담담함은 뒤이어 등장하는 풍경과 아름다운 대비를 이룬다.
노을은 물 면에 황금빛으로 젖어 들고
노을은 하루의 끝이며 인생의 황혼이다. '황금빛'이라는 표현은 죽음을 어둠이 아니라 완성의 빛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미학을 보여준다. 삶은 끝나가지만 세계는 여전히 아름답다.
이어지는
어둠은 저 멀리 손짓하고 있다
에서는 죽음이 공포가 아니라 하나의 초대처럼 표현된다. 손짓하는 어둠은 두려움보다 숙명을 상징한다. 이 시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죽음을 비극으로만 보지 않고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연에서는 시적 긴장감이 더욱 높아진다.
일어섰다 쓰러지는 파도
파도는 인간의 삶을 닮았다. 태어나고 사라지고 다시 일어나는 반복 속에서 존재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이어지는
바다는 수만 년 저런 몸짓을 하고
라는 구절은 시간의 스케일을 인간에서 우주로 확장한다. 인간은 짧지만 바다는 영원하다. 이 대비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특히
철석 철석 하는 파도 소리 누구의 애끓는 울음인가?
는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시적 질문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한 의인화를 넘어 자연의 소리를 인간 역사와 생명의 울음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파도는 수많은 생과 사를 기억하는 거대한 시간의 목소리가 된다.
네 번째 연은 철학적 깊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바다가 하늘에 있고 하늘이 바다에 있는 바다
이 구절은 현실과 초월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을 형상화한다. 수평선에서는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된다. 그 경계의 소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노년의 정신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끝없이 노 저어 가면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이승과 저승
에서는 삶과 죽음이 대립하는 세계가 아니라 연속되는 여정으로 그려진다. '가물가물'이라는 부사는 죽음의 신비와 모호함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철학을 완성한다.
온 길을 모르니 가는 길을 어찌 알랴?
이 문장은 불교의 화두처럼 읽힌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을 모르며, 죽은 뒤도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존재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또한
가다가다 좌초하면 그만인데
라는 표현에는 허무가 담겨 있으면서도 체념만은 없다. 좌초 역시 항해의 일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한 행.
오늘도 고장 난 배를 끌고 땜질하려고 간다.
이 문장은 이 작품의 백미이다.
시인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배가 고장 났다고 항해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땜질을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끊임없이 수리하며 하루를 견디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작품의 미학적 성취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배'라는 하나의 중심 은유를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한다는 점이다. 배, 바다, 파도, 노을, 항해, 좌초라는 이미지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세계를 형성하며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각각의 이미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존재론적 사유를 떠받치는 구조로 기능한다.
또한 시는 철학을 설명하지 않고 풍경으로 보여준다.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면서도 관념에 머물지 않고, 바다와 배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사유를 시각화한다. 이러한 점은 서정성과 철학성을 균형 있게 결합한 작품의 중요한 미덕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노년의 삶을 비극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육체는 낡고 배는 새지만, 화자는 여전히 땜질을 하며 항해를 이어 간다. 삶의 의지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의 반복 속에서 드러난다. 바로 이 절제된 태도가 시의 품격을 높인다.
아쉬운 점과 보완 가능성
한편 몇 가지 보완점도 보인다.
첫째, 일부 표현은 다소 설명적이다.
"긴 항해는 끝이 나는가 보다"
라는 구절은 독자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시인이 직접 해설하는 느낌을 준다. 노을과 새는 배의 이미지만으로도 인생의 황혼은 충분히 전달되므로, 이 부분은 조금 더 함축적으로 다듬을 여지가 있다.
둘째, 마지막 연의
"가다가다 좌초하면 그만인데"
는 구어적인 친근함이 장점이지만, 앞선 연들의 장중한 분위기에 비하면 다소 힘이 풀리는 인상도 준다. 표현을 조금 더 응축하면 종결부의 긴장감이 살아날 수 있다.
셋째, "땜질"이라는 현실적 표현은 작품 전체에 사실성을 부여하지만, 반복 사용되면서 다소 직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상징성과 현실성 사이의 균형을 조금 더 조정한다면 시의 여운이 한층 깊어질 것이다.
종합 평가
「떠가는 배」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고장 난 배'라는 일상적이면서도 강력한 은유 속에 담아낸 수작이다. 시인은 삶의 덧없음을 말하면서도 절망에 머물지 않고, 오늘도 배를 수리하며 다시 바다로 나서는 인간의 의지를 조용히 노래한다.
이 작품의 진정한 감동은 죽음을 말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데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좌초할 것을 알면서도 노를 놓지 않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장희한은 담백한 언어와 깊은 철학으로 형상화했다.
결국 「떠가는 배」는 삶은 완전한 항해가 아니라 끝없는 수리의 과정이며, 인간은 완성된 배가 아니라 매일 스스로를 고쳐 가는 존재라는 깊은 진실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성찰은 현대 서정시가 지향해야 할 깊이를 보여 주며, 노년의 삶과 인간 운명에 대한 사유를 품격 있게 담아낸 의미 있는 성취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