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결과물

[월아]

1.
"환상적인 이란 선수들과 모험이 매우 자랑스러웠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결승에 오를 자격이 충분했지만, 여기서 끝나버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정에 매우 만족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8년 동안 이 팀에서 선수들을 지휘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팬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말은 이란의 케이로스 감독이 아시안컵에서 일본과의 준결승전을 치른 후에 남긴 말이다. 이란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3골을 내주고 주저앉고 말았다.

케이로스 감독은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이란은 내 커리어 중 최고의 팀이었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계속 있을 것이다"라며 선수들과 팬들에게 감사하며 이란에서의 8년의 여정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케이로스 감독은 콜롬비아 축구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란에서 8년 동안이나 대표팀을 지휘했다. 8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상징성은 대단하다. 특히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이것은 2~3년 안의 단기간에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감독과 선수들 간의 긴밀한 관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경기란 심리적인 요소가 강하고 언제나 어려운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 위기와 고비를 이겨내고 강력한 팀으로 거듭나면서 극복해야만 좋은 성적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 뒤로는 좋은 외국인 감독이 없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말해서 4년 뒤의 월드컵을 겨냥한다면 외국인 감독이 결코 좋은 대안이 될 수 없겠다. 한국의 문화와 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기에도 벅찬 기간이기 때문이다. 긴밀한 신뢰와 원활한 소통 없이는 큰 대회의 긴박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겠기에 말이다. 축구란 11명의 팀 경기이기에 강한 자신감과 함께 뛰어난 조직력이 없이는 결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는 경기에 틀림없다.

그런데 일본의 축구팀이 주는 교훈은 아주 강렬하다. 외국인 감독을 해임하고 국내 감독으로 나선 러시아 월드컵에서 당당히 조별예선을 통과했고 우승 후보라는 벨기에와의 16강 전에서 명승부를 펼쳤다. 과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아시아팀 중에서 최고의 성적을 만들어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승리한 일본 대표팀 하지메 모리야스 감독의 소감을 들어보자.

“최종 스코어는 3-0이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운 경기였다. 이란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힘든 싸움을 각오했다. 그럼에도 우린 용기를 잃지 않고 부딪혔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소감을 담백하게 전했다.

감독과 선수들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선수들이 한 팀으로 강한 자신감과 조직력을 발휘해야만 승리가 주어진다는 것. 이런 것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결코 승리란 주어지지 않는다. 어렵게 예선전을 통과하고 꿈의 무대인 월드컵의 본선에 진출한다고 해서 더 무엇이 다르랴.

요즘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외국인 감독의 한계가 이번 아시안컵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대표팀의 감독 자리. 그런데도 아직 그런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가지 길이 보이기에 다행스럽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봄에 얼음이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땅은 질퍽하게 변한다. 그런 땅도 비가 내린 후에 비로소 본연의 땅으로 거듭난다.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기에 그런 실패를 거울삼아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이겠다.

3.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팀은 첫 경기부터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그런 패배 뒤에 두 번째 경기에서 바로 승리를 가져오기란 사실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감독도 흔들리고 선수들도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선연하게 보였다. 그러나 세 번째 경기는 조금 달랐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처지에서 철지부심.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한발 더 뛰면서 마침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것도 디펜딩 참피온 독일이라는 강팀과의 경기에서 말이다.

이런 자신감은 월드컵이 끝난 뒤까지 이어졌다. 국내에서 가졌던 강팀들과의 평가전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외국인 감독이 곧 좋은 성적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지금 아시아를 보면 모든 나라가 외국의 유명한 감독들을 모셔왔다. 그렇다고 좋은 성적들을 내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요즘은 아시아에서 가히 일본의 전성시대이다. 이런 일본을 살펴보자. 바히드 하릴호지치 감독은 알제리를 이끌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 대한민국에 참담한 패배를 안겼다. 그것도 4골이나 쏟아부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 하릴호지치 감독은 일본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 직전에 자국 출신의 국내 감독으로 급작스럽게 교체되었다.

자국 출신의 감독으로 교체한 일본은 결과적으로 최고의 좋은 선택이 되었다. 월드컵에서도 당당하게 예선을 통과했고 우승후보인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는 명승부를 펼쳤다. 또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이란을 두들기고 당당하게 결승에 올랐다.

이런 일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우리에게도 일본처럼 자국 출신의 감독이 필요한 시기는 아닐까. 신태용 감독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가 겪었던 경험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겠다. 시행착오 속에서 흔들리고 참패를 겪었지만 그런 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승리의 가져왔던 감독이니까.

추운 겨울 뒤에야 따뜻한 봄이 찾아오듯이 패배란 때로는 성장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됨에 틀림없다. 항상 곁에다 쓸개를 두고 언제나 쓸개의 쓴맛을 맛보며 설욕을 다짐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 성어도 연상된다. 패배의 괴로움을 참고 인내하며 철지부심 노력할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진리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축구가 한 단계 더 도약하자고 외치고 있다. 아시안 컵에서 이란과 일본의 후반전 경기가 정답을 가르쳐준다. 경기에서 자신감을 뺀다면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고 자신감으로 무장되었다면 승리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물에 틀림없겠다.

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