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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고백(마16:13-20)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은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느냐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잘 모른다면 그는 결코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믿음을 가져야 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이 시간 여러분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참된 신앙은 참된 고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지식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뭐라고 고백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신앙의 내용입니다. 바른 신앙을 고백해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바른 신앙을 고백해야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바른 신앙을 고백해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이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어려서 주님을 믿을 때는 그저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가고 하나님이 축복해주시고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정도였습니다. 내가 거기서 죽어야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이 생명의 신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신 것을 알고 내 마음에 영접하였을 때 비로소 예수님과 내가 연합하였다는 진리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마음중심에 모셔들여서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의 참 실체입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생명을 말할 수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야 여러분 속에 생명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앙고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야 여러분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오는 것이고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 예수님을 나의 주인이십니다.
저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제가 주인이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데로 꿈꾸고 결정하고 선택하였습니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모세가 40세에 힘이 넘치고 패기가 넘치니까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민족을 찾아가 애굽사람을 쳐 죽일 정도로 혈기가 왕성했습니다. 그것은 실패였습니다. 내 힘으로 내가 주인되어서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보면 다 실패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다 벽에 부딪치고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아!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깨달음이 간단한 것같지만 아닙니다. 삶의 현실에서 벽에 부딪쳐 봐야 이것이 실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제가 강합니다. 제가 제 생각대로 하고 제 고집대로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내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내 맘대로 삶이 이끌어지지 않을 때, 내 몸이 아파 누워 있을 때, 아 내가 주인이 아닌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나는 내 맘대로 산다고 하였는데도 여전히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얼키고 뒤엉킬 때 하나님 앞에 비로소 내 자신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의 계획과 나의 뜻까지 다 내려놓았습니다. 나의 자존심도 내려놓았습니다. 나의 욕심도 다 내려놓았습니다. 전에는 내 생각이 죽어지면 내게 다가온 모든 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다 내려놓으면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거기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평안이 거기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책상에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고통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나의 주는 내가 아니라 나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면 구원자이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주권이 주께 있음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되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지로 선택하지만 거기서부터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려면 반드시 전제되는 것이 나의 십자가입니다. 내 십자가 없이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내가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져야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주인이 되실 때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주권이 바꾸지 않는 한 여전히 여러분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이라고, 아닙니다. 참 신앙은 주권이 바뀐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인정할 때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내 주인이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당신은 나의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진정한 하나님나라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한번 같이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2. 예수님의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라는 삼중직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왕이라는 의미는 통치자라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의 왕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마음에 모셔들이고 나를 통치하게 될 때 내 속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왕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고 고백하고 그분의 통치에 순복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나의 제사장입니다. 내가 죄를 범할 때마다 예수님 앞에 나아와 내 죄를 자백하면 어떤 죄라고 용서해주시고 깨끗하게 씻어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의 선지자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나의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것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이 이 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인간 스스로 구원의 길에 이르기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로, 어떤 사람은 과학으로, 어떤 사람은 도덕과 윤리로, 그러나 모두가 실패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음을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전에 구약성경의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깨달았습니다. 행함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단지 율법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해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그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죄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와 질고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가 이룬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되고 그의 죽음이 내 죽음이 되면 내가 할 수 없는 그것을 예수님이 이루셨기에 그 안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염려합니까?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데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죄로부터의 구원, 중생의 은혜가 여러분가운데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질병으로의 구원, 신유의 은혜가 여러분가운데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활속에 있는 연약함, 불완전함으로부터의 구원, 성결의 복음이 여러분가운데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의 나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전에는 내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내가 이 다음에 죽으면 천국에 가서 만날 분이라고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난 후 저는 이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셔서 내 생각과 내 기도 속에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막연하게 저 어디엔가 계신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거에 내가 구원받았을 때 만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멀리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성막을 짓도록 하시고 그 가운데 계셨다는 것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형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내가 믿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내 신앙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랑하는 나사로의 가족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예수님은 머뭇거리시다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만에 찾아가셨습니다. 그 때 마르다가 마중 나와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요11:21-22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리아는 죽기 전에 오셨으면 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지향적 믿음입니다. 이전에만 오셨다면 내 오빠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지금은 예수님이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은 믿음입니다. 과거지향적 믿음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그러니까 마르다가 또 이렇게 말합니다.
24절,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뭡니까? 이제는 미래에 부활 때 다시 살아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미래지향적 믿음입니다. 미래는 그렇게 될 줄 몰라도 오늘은 아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25,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찾으시는 믿음은 오늘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어제의 믿음도 아니고 내일의 믿음도 압니다. 오늘의 믿음,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은 오늘 믿음을 증거하고 오늘 나의 삶을 통해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신앙이 실제가 될 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주이십니다.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객관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았다면 오늘은 체험적 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삶을 통해 증거해보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관계를 맺고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그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은 권세요, 특권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자녀의 권세가 얼마나 큽니까? 아버지의 권세가 곧 자녀의 권세입니다.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세때문에 자녀가 그 권세를 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고 책임져 주실 것을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반응을 보여 주셨습니다.
1)첫 번째 반응은 1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신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백하게 하신 분이 혈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고백했다는 것은 성령이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고전12:3하)"…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인 것입니다.
2)두 번째 반응은 18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네 이름은 베드로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라고 개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은 반석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큰 바위라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다시 그 이름을 베드로라고 불러 주셨습니까? 그의 신앙고백을 듣고 이제 그 인생의 전환점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반석이 되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많이 흔들리고 육신을 좇아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네 신앙처럼 그렇게 네 자신이 누구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알고 바른 신앙 위에 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생애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베드로라는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부름을 받은 것이고 그분이 원하시는 교회를 위해서 모두 다 순종하고 헌신하는 것이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람이 교회의 주인일 수 없습니다. 교회에 일찍 등록하였거나, 늦게 등록하였거나 주님의 교회에서 다 하나일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교회에 대해서 주장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주장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음부의 권세란 세상의 권세와 사탄의 권세, 죽음의 권세가 하나님의 교회를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의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을 쳐부수고 탈출하여 저편에 있는 생명과 영생의 세계로 가는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전투적입니다.
예수님이 주인되신 교회는 결코 음부의 권세가 이지 못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능력인 것입니다.
3)세 번째 반응은 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요한계시록 3:7에도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시는 열쇠입니다.
예수님이 천국 열쇠의 주인이시라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물쇠에는 꼭 맞는 열쇠가 하나만 있습니다. 꼭 맞는 열쇠가 들어가야만 자물쇠는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의 어떤 비슷한 진리로 천국을 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을 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러면 이 열쇠를 예수님이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는 베드로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만 열쇠를 주었다는 뜻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게 주었다는 뜻입니다. 결코 베드로 개인이나 열두 사도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교회에게 위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 이 천국 열쇠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영혼을 살리는 구원의 복음을 맡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우리 학생들이 수련회에 가서 그 지역에 어른들을 찾아가서 경로당에서 한 2-30명의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는 학생들을 보니까 너무 기뻤습니다. 거절하지 않으시고 관심을 갖고 물으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천국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이 천국의 열쇠로 나만 들어가면 다 되는 것입니까? 내 주변에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고 그들에게 이 천국복음을 전파하여서 함께 들어가는 것이 천국열쇠를 받은 자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앙고백은 이론이 아닙니다. 나의 신앙고백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그리스도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교회인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복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여서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구원하는 진정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