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목을 베어보지 못한 국민은 혁명을 말하지 말라!” 단두대에서 국왕 루이 16세의 목을 벤 로베스피에르의 말로 알려져 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테르미도르 반동까지 5년 동안, 프랑스 정치는 자코뱅파(Jacobins)와 지롱드파(Girondins)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급진파인 자코뱅은 온건파 지롱드 지도부 29명의 국민공회 의원직을 박탈하고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의장석을 향해 왼쪽에 자코뱅파, 오른쪽에 지롱드파가 앉았는데, 여기서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라는 정치적 개념이 등장했다. 자코뱅파는 평등의 구호로 무산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며 '죽음의 단두대 공포정치'를 펴다가, 테르미도르 반동(Convention Thermidorienne)으로 온건파에게 권력을 빼앗겼다. 로베스피에르는 자기가 목을 벤 루이 16세와 똑같은 방식으로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자코뱅의 독재가 끝나고 온건 부르주아의 총재정부가 들어섰지만, 정치적 승리에 도취한 권력층의 부패와 혼란이 이어지자,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황제가 된다. 프랑스혁명으로 왕정을 뒤엎고 태어난 공화정이 10년 만에 막을 내리고, 왕정보다 더 권위적인 제정(帝政)으로 뒷걸음친 것이다.
도시 소시민과 무산대중을 지지기반으로 한 자코뱅은 경제적 약자 보호와 평등주의를 강조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주장했고, 지방의 부유한 상공업자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를 기반으로 한 지롱드는 경제적 자유와 사유재산 보호를 주장했다. 두 정파는 정치이념의 차이를 대화와 토론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갈등과 대립으로 서로를 말살하려다가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모두 말살되고 말았다. 내우(內憂)가 외환(外患)을 부른 것이다.
조선 선조 때 이조전랑(吏曹銓郞) 문제로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라진 당파싸움은 경신환국(庚申換局)을 계기로 서인이 보수·강경파인 노론(老論)과 온건·소장파인 소론(少論)으로 나뉘었고, 노론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시파(時派)와 벽파(僻派)로 또 찢어졌다.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 이후 온건파인 남인(南人)과 급진파인 북인(北人)으로, 북인은 광해군 때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으로, 소북은 영창대군 옹립 문제로 유당(柳黨) 남당(南黨)으로 또다시 나뉘었다.
임진왜란 직전, 동인 김성일과 서인 황윤길이 일본의 침략 의도를 조정에 달리 보고하는 등 나라의 안전보다 정파적 이익을 앞세운 당파싸움을 일삼다가 왜적의 침략을 맞았다. 청나라가 침입한 병자호란도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을 둘러싼 척화파(斥和派)와 주화파(主和派)의 대립으로 국방을 소홀히 여긴 당쟁(黨爭)이 그 원인의 하나였다. 내우가 외환을 불러온 셈이다.
정치만이 아니다. 퇴계 이황의 주리론(主理論)을 숭상하는 영남학파(嶺南學派)와 율곡 이이의 주기론(主氣論)을 따르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대립은 서로를 '역적의 사상'으로 몰아붙이는 당쟁의 무기로 변질되었고, 성리학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교조주의로 탈바꿈했다. 퇴계학파인 남인과 율곡학파인 서인 사이의 예송논쟁(禮訟論爭)은 효종의 상복(喪服) 문제에서 성리학 이념 논쟁을 거쳐 정권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으로 치달았다.
학문의 성취나 능력에 관계없이 '우리 당파'가 공직임용의 기준이 되었고, 당파가 다르면 배척되거나 희생되기 일쑤였다. 조선 후기의 영조와 정조는 당쟁을 끝내기 위해 노론과 소론을 평등하게 대우하며 당파의 균형에 힘을 쓰는 탕평책을 폈지만, 당쟁의 밑뿌리를 뽑아내지는 못했다.
4·19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한민당 계열의 구파와 자유당 탈당파 및 관료·법조인 출신이 주축인 신파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했다.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은 구파가, 총리는 신파가 차지했지만, 별도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구파의 반발로 민주당은 극심한 분열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정치적 혼돈과 불안정은 5·16 군사쿠데타를 불러온 원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내우에 외환이 덮친 격이다.
현대 민주정치에서 정당들의 선의의 경쟁은 독재와 독선을 막기도 하지만, 나라와 국민의 이익보다 당파적 이해관계가 우선하면 다시금 예전의 당파싸움으로 후퇴하게 된다. "정당은 국가의 공동선을 위해 원칙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결합이어야 하며, 단순히 권력을 나누기 위한 파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영국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통찰이다.
지금의 정치는 예전과 다른가. 전당대회를 앞둔 여당은 대통령 지지파와 당대표 지지파가 맞붙은 명청대전이 한창이고, 야당은 12.3 계엄에 대한 찬반을 시작으로 전대표 지지파와 현대표 지지파로 갈라져 파벌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심지어 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의 ‘탱크데이’ 발언도 정치권의 다툼으로 이어진다.
어른이 어린 학생들을 공격하다니… 아동주졸(兒童走卒)이라, 철없는 아이나 어리석은 어른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 못난 어른들이 배재고 학생들을 가해자라고 낙인찍었지만, 피해자라는 광주일고의 교장은 배재고 학생들에게 “고개를 들고, 어깨도 펴라.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어른답게 격려했다. 정치권의 졸렬한 어른들과는 달라도 얼마나 다른가.
보수와 진보는 선악의 대결이 아니다.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는 관점,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혁(保革)은 경쟁하고 견제하면서 정책의 균형을 이뤄가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의 좌·우파는 나라사랑과 국민보호의 정책대결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고, 오로지 정치권력을 빼앗고 지키려는 밥그릇 싸움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는 듯하다.
여야가 모두 다음 총선 공천권과 대통령후보 자리를 놓고 내부싸움이 격렬하다. 집안싸움이 거세지면, 집밖에서 누군가 쳐들어온다. 내우가 외환을 부르는 법이다. 여야 정치권의 집안싸움이 그토록 참담한 끝을 만나지 않기 바란다.
이 우 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PEN.KOREA 인권위원장)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아네트의 단두대 쳐형
Statue of Edmund Burke
[출처] (LA조선일보 칼럼) 내우가 외환을 부른다|작성자 leegad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