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의 음악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
배제된 것과 같은 답답함과 그침없이 흐르는 악상, 그리고 우주적인
보편성 등이 여실히 잘 나타나 있어”
서양 음악사를 통 털어 바하(1685-1750)만큼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존경의
대상이 된 작곡가도 드물 것이다. 그들은 바하의 작품을 음악의 양식으로 또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왔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 온갖 실험주의에 젖어있는 현대음악가들도 그들의
등뒤에서 항상 <음악의 아버지>인 바하의 숨결을 들어야만 했다.
그레고리안성가로 부터 원류한 서양음악은 중세의 노래, 13세기의 다성음악의 발달과
르네상스시대를 거쳐와 바하라는 거대한 호수에 모여 새로운 전기를 맞이 하였다.
바하는 당시 유럽각국의 다양한 음악 양식을 그의 음악에 흡수하여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로까지 발전시켜 고전파와 낭만주의 음악의 기문을 확고히 마련해 주었지만 그의 음악은
멘델스존이 1829년 (마태수난곡)을 베를린에서 재현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세인의 관심 밖에
있어야할 운명이었다.
바하는 만년에 눈병을 앓아 거의 실명하였고, 그의 사후 그 소중한 악보들은 교회의 선반 위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있어 신학교 학생들이 소품용 샌드위치를 쌀 종이가 필요하면 선반으로
달려가 그 악보를 찢어가곤 했다. 그는 평생을 신과 교회와 귀족들을 위해 음악으로 봉사하였고,
그 자신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조차도 모르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에 흐르는 화성적인
요소와 대위법적인 요소의 힘의 균형, 리듬의 강렬함, 경건함과 진실함, 그 무궁한 음악적 착상은
지금도 생생한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742년에 출판되었다. 이 곡의 명칭은 바하가 그의 제자인 골드베르크를
위해 작곡한 것이 연유한다. 당시 그의 제자는 카이저리그 백작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 백작이
심한 불면증에 걸려있어 골드베르크그의 상전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을 달래주기 위한
연주곡으로 글라비어곡을 바하에게 의뢰하여 이 곡이 탄생된 것이다.
바하는 그때까지 일반 변주곡은 조금밖에 작곡하지 않았지만 일단 이 양식의 곡을 쓰자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장대한 변주곡의 세계를 펼쳐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과 함께
이 장르의 쌍벽을 이루었다. 이 곡은 하나의 주제와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작곡기법을 총동원하였다.
바하의 음악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 배제된 것같은 달달함과, 그침없이
흐르는 악상, 그리고 우주적인 보편성이 이 곡에서도 여실히 나타나 있고, 이러한 평범성과
범우주적인 곡의 성격이 캐나다의 기인(奇人) 피아니스트인 굴드의 이질적이고 자유 분망한 곡
해석도 가능하게 했다. 글쎄, 그 옛날의 백작은 이 곡을 듣고 편안히 잠을 잘 잤는지 알 수 없지만,
현대의 우리들은 바하가 가꾸어 놓은 변주곡의 현란한 음률의 화원 속에서 기쁨에 겨워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 ‘서상중’의 ‘음악이 있는 공간'에서
https://youtu.be/G7EEACEefH0?si=2ZRtQTtAi8N1IU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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