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을 맞아
시라쿠제 여행
시칠리아 섬의 동쪽, 아래 부분에 위치한 시라쿠사.
최초의 시라쿠사의 기록은 B.C 734년부터 시작된다.
B.C 5C경에는 그리스 본토를 능가하는 도시가 건설되어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고
B.C 212년까지 에트루리아와 로마에 대항을 계속해 왔다.
이후 시라쿠사는 다양한 왕조의 지배 하에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아랍, 노르만, 아라곤 등등. 이들이 오랜 세월 애착을 가지고 건설한 이 도시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산타(성) 루치아의 고향이다.
유명한 민요 산타루치아도 생각난다.
성녀 루치아는 서기 283년 부유한 귀족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루치아 5살 때 별세한 후 홀어머니와 함께 성장했다.
루치아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 병의 치유를 위해
카타니아 아가다 성녀 성지로 기도하러갔다.
루치아의 꿈에 성녀 아가다가 나타나 어머니의 병은 나을 것이며
루치아는 시칠리아의 영광이 될 것이라고 루치아의 순교를 암시했다.
어머니의 병이 치유되자 동정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원하게 되었다.
동정서원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재산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딸의 서원을 모르고 어머니 에우티키아는
이교도이자 부유한 젊은 호민관과의 결혼을 약속해 버렸다.
호민관은 루치아가 약혼을 파기하고 결혼을 거부하며
동정을 지키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자, 루치아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발했다.
집정관은 루치아를 강제로 매음굴로 보냈고, 화형에 처하려고 불속에 넣었으나
모두 하느님의 보호로 루치아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그러자 두 눈을 뽑는 고문과 목을 칼로 찔러 이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박해 때인
304년 12월 13일 동정 순교하게 되었다.
순교일인 12월 13일이 성녀 루치아 축일이다.
성녀 루치아는 가톨릭, 영국 성공회, 루터교, 정교회 모두
공통으로 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분이다.
루치아는 빛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성녀 루치아는 이름 그대로 어둠을 밝히는 빛나는 순교자로서
빛을 받아들이는 눈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시라쿠사 성녀 루치아 성당(La Chiesa di Santa Lucia alla Badia)
이 성당에는 카라바죠의 유명한 1609년 그림인
'성녀 루치아의 매장(Burial of St. Lucy)이 걸려있다.
이 그림 때문에 성당 내부에서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카라바죠는 로마에서 '키아로스쿠로'라는 기법(음영법)으로 그렸다.
3차원의 입체적 물상을 평면의 화면에 실물에 가깝도록 보이게 하기 위해
빛과 그늘의 밝고 어두운 차이를 이용하여 그리는 화법이다.
카라바죠는 그림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1606년 살인사건에 연류 되어
로마에서 도망쳐 각지를 떠돌다 몰타로 갔으나 잡혀 투옥되었다.
1609년 몰타 감옥에서 탈출하여 시라쿠사에 도착해 이 그림을 그렸다.
시라쿠자 눈물의 성모님
1953년 8월 29일과 9월 1일 사이,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을 묘사한 석고상의 눈에서 수차례나 눈물이 흘렀다.
이 성상은 어느 젊은 부부의 침대 머리에 모셔져 있었다.
이 부부의 이름은 안젤로 야누소와 안토니아 쥬스또인데
농사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시실리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시라쿠제에 살았다.
그때 마침 안토니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저는 성상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나는 즉시 시누이와 숨고 안토니아 스가즈라타를 불렀고,
그들이 와서 제곁에 서있었지요.
나는 그들에게 눈물을 가리켰어요.
처음에 그들은 내가 임신으로 고통 중에 있었기에
환각에 빠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그게 아니라고 고집했고,
그제서야 그들이 더 가까이 서서 바라보았는데,
성모님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마침내 보게 되었습니다.
눈물은 뺨을 따라 흘러 내렸고, 침대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깜짝놀란 그들은 문으로 달려나가 이웃 사람들을 불렀지요.
이웃 사람들 역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이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날로 군중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안토니아 외에 188명의 목격 증인들이
나중에 교회 법정에서 이 눈물사건에 대하여 증언했는데, 그
증인들은 사회의 각계각층에 속한 사람들로서 경찰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사진기의 렌즈로 포착한 결과
두 개의 음화(NEGATIVE)로 나타났고,
두 필름은 눈물이 흘러 흩어지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었다.
의학 위원회가 구성되어 더 자세히 검토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외견과 알칼리성 그리고 구성을 검토한 결과
사람의 눈물과 비슷하다고 말한 따름입니다"
성모의 눈물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던
비오 12세의 기억할만한 말씀은 곧 조사에 착수케 하였다.
결과는 즉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시실리 주교단은 이 사건에 대하여 일치된 의견을 발표하였다.
1953년 8월 29일과 9월 1일 사이,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을 묘사한 석고상의 눈에서 수차례나 눈물이 흘렀다.
두오모 광장
두오모 광장은 시칠리아 두오모 광장 중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다.
연한 아이보리빛 건물들이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어서
고개를 올려 한바퀴 돌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영화 '말레나'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도도한 자태로 걸어가는
장면이 이 곳에서 촬영되었다.
너무 아름다워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했던 말레나.
말레나가 하이힐을 신고 두오모 광장을 걸어가면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에게로 향한다.
남자들은 추파를 보내고, 여인들은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낸다.
시라쿠사 두오모 성당
시라쿠사 두오모 성당은 BC 5세기에 지어진 아테나 신전터에
7세기에 교회를 처음 세웠다.
그 이후 아랍지배시 에는 모스크로, 다시 노르만 점령시 에는
교회로 얼굴을 바꾼 영욕이 깃든 두오모이다.
신전터였다는 것은 외부 벽이나 내부의 기둥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전과 로마시대의 흔적과 바로크식 건축양식의 혼합된 다양성 때문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내부는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주제단도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 대신
예수탄생을 그린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아래 작은 스테인드 글라스도 단아하고 아름답다.
B.C 4세기 시라쿠사를 다스리던 참주 디오니시오가
이 동굴을 정적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는 동굴의 특성상
이곳에서 죄수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말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축일 맞으신 루치아 자매님들~
영명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더욱 큰 기쁨과 평화 누리시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2월 13일)을 맞아 이태리 시칠리아 시라쿠사 여행을
세잎 클로버 님 덕분으로 편안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