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종려주일설교.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17-30)
--------------------------------------------------------------------------------------------------------------------------------------
오늘은 종려 주일이고, 이번 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 하실 때, 수 많은 군중 들이 “호산나(이제 구원 하소서), 호산나”를 외치고, 종려 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맞이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종려주일입니다.
종려나무는 부활과 승리를 상징하며, 이스라엘의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나무였습니다. 군중들은 이스라엘이 로마 압제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독립된 왕국으로, 이전 다윗 시대의 영광을 되찾아줄 인물이 예수님 일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구원자로(정치적인 지도자) 맞이 했습니다.
종려주일 이후 일 주일 간의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월요일에는, 성전 청결과 무화과 나무를 저주(행함은 없고 형식만 가득)하셨고,
화요일에는, 유대지도자들과 논쟁(5대논쟁-권세,납세,부활,계명,다윗)하셨고,
수요일에는,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향유 부은 사건이 있었고,
목요일에는, 최후의 만찬, 제자 세족식, 겟세마네 기도가 있었고,
금요일에는, 잡히시고, 문초와 고난과 처형을 당하시며 죽으셨고,
토요일에는, 무덤에서 안식하셨고, 부활 주일 새벽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 금요일에 일어난 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골고다(Golgota)는 ‘해골’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굴골렛(gulgolet)’ 혹은 아람어 ‘굴굴타(gulgulta)’에서 온 것입니다. 처형 장소의 지형이 마치 사람의 두개골을 닮아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골고다는 라틴어로 ‘칼바리아(Calvariae)’라고 하며, 이 라틴어에서 영어 ‘칼바리(Calvary)’가 파생되고, 우리말 성경은 이 영어에서 갈보리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17, 18절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른 두 사람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포함 세 사람이 처형 대상이었습니다. 짧은 두 구절이지만, 아마도 예수님의 인생 가운데 가장 길고, 슬프고, 처절하고, 고통의 한계에 다다른 참혹한 시간 이었을 겁니다.
저는 성경 본문을 묵상 하는 가운데 이 두 구절 속에서 진한 피냄새, 땀냄새, 그리고 고통의 비명과 절규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마치 군중들의 함성과 군인들이 희롱하는 말은 무음 처리 되고, 예수님 시점에서만 모든 소리가 들리는데, 그것도 가장 크게 볼륨을 올려 놓은 듯이 제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설교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다시 강대상 앞에서 엎드려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2천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현재도 진행형이고,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그날 까지 계속 진행형입니다. 여러분도, 설교 들으시고 오늘 집에 가셔서 이 본분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생동감 있는 주님의 고통의 소리가 들려 지실 겁니다. 그러면 저와 똑 같이 주님이 매달리신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참회와 은혜의 시간을 갖게 되실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이 금요일 오전 9시였고, 운명하신 시간이 오후 3시였습니다.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시간을 역산 해보면, 금요일 새벽 1~3시쯤에 잡히셔서 공회앞에 끌려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으시고, 아침 6시쯤에 빌라도의 판결을 받은 후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전 8시쯤 홍포(자색옷)과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향했으며, 9시에 손과 발에 못이 박힌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저는 이런 고난의 과정을 시간순으로 적어보면서, 당시의 현장의 장면이 상상으로 떠올려 지는 것만으로도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떠 했을까요?
십자가 밑에서 처형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의 모습은 세 부류였습니다.
첫째 로마 군인들은, 소란의 대상이 된 인물을 처형하는 일이 부담스러운 듯이, 빨리 끝나라는 마음 뿐이었을 겁니다. 이 와중에 일부 병사는 벗겨진 예수님의 옷을 서로 가지려고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사람이 죽어가며 내 지르는 비명과 피 흘림이, 그저 짐승을 잡는일과 마찬가지 였을 겁니다.
둘째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피 흘림과 절규를 지켜 봐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생생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은 참으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통함과 참담함으로 통곡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물도 메말라 버릴 지경이었을 겁니다.
셋째 유대인들과 구경 꾼 군중들은 신성모독한 자가 받을 당연한 결과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조롱 하면서,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 자신이나 구원해 봐라! 어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봐라!”(우리말 성경 마 27:40), “남을 구원한다더니 정작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군!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니 어디 한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지”(우리말 성경 마 27:42) 끝까지 예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예수님이 사기꾼이라는 것이 증명 되었다는 듯이 의기 양양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철저하고 냉철한 율법 주의자들이었는지 19-2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들은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처참하게 죽어가는 생 지옥과도 같은 피 비린내 나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 쓰인 글귀가 잘못되었다고 시비를 겁니다. 십자에 달린 패에는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유대인의 왕”(I.N.R.I -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ישוע הנצרי ומלך היהודים , Ἰησοῦς ὁ Ναζωραῖος ὁ Bασιλεὺς τῶν Ἰουδαίων)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그것이 몹시 못 마땅했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써달라고 거칠게 항의를 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이들에게 있어서 정적 이었다고 해도, 지금 눈 앞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데도 자신들의 이익과 자존심을 앞세워 극도의 이기심만 내세우는 모습을 보니, 정말 해도 너무 한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혈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기능이 자기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는데, 이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정당화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율법주의, 외식적이고 가식적인 겉치레 신앙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 줍니다. 이들을 보면서, 믿음 없는 자기 확신과 허무 맹랑한 주장들이 얼마나 무서운 기형적인 괴물을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이 십자가 상에서 친히 남기셨던 말씀, 이른 바 ‘가상 칠언’이라고 불리는 말씀 중에 세 가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는 있지만, 고난 주간을 준비하면서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누어 드린 말씀을 보시면서 함께 읽겠습니다.
【가상칠언(架上七言, seven words on the Cross) 】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다” (요 19:26,2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 27:46, 막 15:3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5. “내가 목마르다” (요 19:28),
6. “다 이루었다” (요 19:30)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오늘 본문에는, 3언, 5언, 6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6언의 말씀이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3언의 말씀이 인간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유언과, 가장 사랑했던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의 예수님의 모습이라면, 6언의 말씀은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신적 권위를 지닌 예수님의 일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실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① 세상을 새롭게 재 창조하시는 권능의 말씀이며,
② 구약 성경의 예언이 완벽하에 이루어지는 성취의 말씀이며,
③ 인류에게 구원의 포문을 열어 주는 소망의 말씀이며,
④ 사망과 멸망의 공포를 걷어내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이신 예수님만이 선포 할 수 있는 유일한 전능자의 포효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온 몸에 소름과 감동의 전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이 한 마디의 말씀을 완성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이 말씀을 선포 하시기 위해 모진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순종하셨습니다. 이 위대한 말씀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완벽하게 유효하며,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영광과 진리의 말씀으로 기억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위대하신 말씀을, 공허한 메아리로 흘려버리거나, 문자로 기록된 글자로만 받아들셔는 안 됩니다. 내 심장을 강하게 타격하는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받아 들여야만 부활의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제대로 받아 들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주변에 있던 세 부류의 사람들을 기억하시면 답이 나옵니다.
(군인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피와 살이 튀는 데도, 그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모르는 군인들처럼 냉담하고 무지한 마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칠언의 말씀을 하든, 칠십 언의 말씀을 하든, 죽기 전에 미쳐서 헛소리 하는 정도로 알았을 겁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군인들에게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거는 것처럼, 아무 쓸모 없는 무용한 넑두리 일 뿐입니다. 무지, 무관심, 무감각, 무차별적인 거부의 마음으로는 “다 이루었다”는 위대한 말씀을 받아 들이기는 불가능 합니다.
(유대인들)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시기하고, 증오하고, 저주하여, 결국 십자가에 못을 받아 죽이는데 성공한 유대인들은 어떻습니까? 겉으로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팻말 조차 자신들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는 돈을 받고 증인을 매수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세를 착복하고,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압제자들에 아부하며 매관매직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성전에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 보라고 손을 들어 큰 소리로, 오랫 동안 기도 했습니다. 거짓, 기만, 위선, 가증, 탐욕이 가득한 마음으로는 “다 이루었다”는 위대한 말씀이 가당치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토해버리고 싶은 썩은 내 나는 버러지와 같은 자들 일 뿐입니다.
(마리아와 여인들+요한) 마지막 남은 자들인 마리아와 여인들, 그리고 제자 요한의 마음을 들어 보십시오. ① 아들이 처참하게 죽을 것을 알았지만 자기 몸에서 난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며 자신의 몸과 살도 찢겨져 나가는 듯한 참담한 심정의 육신의 어머니의 마음이 거기 있었습니다. ② 자신이 가장 사랑 받았다는 것을 알기에, 붙잡히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요한의 마음이 거기 있었습니다. ③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예수님을 도우며 뒷바라지 했던 이름도, 빛도 없는, 수 많은 여인들의 마음이 거기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마음 마음들에는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마치 천둥과도 같은 소리처럼 들렸을 겁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칼로 가슴 판에 새기는 절대 믿음의 음성으로 각인 되었을 겁니다.
마리아와 여인들, 그리고 제자 요한, 이 사람들의 마음 마음들이, 곧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어야 하고, 우리 00교회의 모든 성도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무관심의 마음으로는, 거짓된 마음으로는, “다 이루었다”는 마음이 감동으로, 은혜로, 선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가슴을 찢으며 통곡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위험도 불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택함 받은 제자의 마음으로, 그리고,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죽도록 충성하는 순종의 마음이 되어야만,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임마누엘”의 말씀으로 강력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 번 종려주일과 고난 주간을 지나시면서 다른 모든 것 다 내려 놓으시고, 오직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데 온 마음과 시간을 쏟아 부으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마지막 주님의 보았던, 그리고 “다 이루었다”는 음성을 똑똑하게 들었던 신실한 자들의 마음 마음들을 품으십시오. 성령이 역사하셔서, 여러분을 십자가에 우리 주님이 달려 계신 그 때 그 현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십자가 앞에 가장 가까이에 다가가셔서 “다 이루었다“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듣고, 즉각 반응 할 수 있는 준비된 마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우리 주님과의 복된 만남을 간절히 사모하시며, 부활절 소망의 시간으로 나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영원한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참되고 진실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셔서, 다 이루신 우리 주님을 따라 영생의 나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활과 영생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