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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
6/2(토)
야구를 하러 나갔다.
야구는 선수 18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두가 필수적으로 참여해야했다.
나는 9번 타자였다. 우리는 민수가 만든 야구 배트로 야구를 했는데,
배트가 너무 무거워서 들고있는 것만으로도 팔이 아팠다.
나는 대장님께서 알려주신 번트 자세로 날아오는 공에 배트를 갖다댔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공이 맞았다. 나는 총 세번 중 세번 모두 공을 쳤다.
물론 모두 아웃되긴 했으나, 공이 앞으로 날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고
덕분에 야구에 대해 약간의 호감을 갖게 되었다.
사실 번트는, 학교 체육 시간에 야구를 배울때 잠깐 나왔던 내용인데,
내가 이걸 진짜 쳐보게 될 줄을 정말 몰랐다.
상황이 안좋을때나, 그냥 자세로는 치기 어려울것 같을때
배트를 살짝 대주는 기술이라고 배웠었는데.
나같이 배트를 제대로 휘두르는 것이 불가능한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기술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도 써먹어야겠다.
날씨는 선선하고, 노을이 질랑말랑하는 붉은빛 하늘은 무척 예뻤다.
이 속에서 야구를 하는 우리들은 정말 행복하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2루수 자리를 지키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미래의 나를 생각했다.
분명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한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간직해두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터키 페티에에서 멋진 하늘 아래, 큰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놀았던’ 그 시절을
매우 그리워하고 부러워할 것이었다.
나는 문득 시간을 잠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순간을 하루동안만 멈추어둘 수 있다면.
지금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지고,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인지 충분히 곱씹어본 후에
다시 이 순간을 맞고 싶었다.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내겐 필요했다.
그러나 물론 시간은 그렇게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기에
이 순간도, 야구도, 노을도 모두 1시간안에 끝이 났다.
그렇게 나는 이순간을 그리워할 미래의 순간을 떠올리느라, 정작 이 순간은 또 놓쳐버렸다.
써니쌤이 만드신 영상이 생각났다.
영상 속 장면들은 편집되고, 음악이 덮어지면서
모두 희망차고, 즐거워보였다.
신나고 경쾌한 음악속에,
우리는 세계여행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행복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비디오 장면 속에 있던 실제 나는 어땠었는가?
물놀이를 할 땐 춥고 힘들다는 생각뿐이었고,
영상에는 매우 재미있게 나온 디베이트를 준비하며
나는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프고, 짜증이 났다.
대장님이 찍으신 윈드서핑 영상 속 나는 멋지게(?) 서핑을 했지만,
실제로 나는 그때 다리가 떨리고 팔이 아파서, 끝나는 시간 계산만 하고 있었다.
왜 음악을 덧붙이고 편집하고 나서야
나는 그 순간이 행복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걸까?
왜 그제서야 그때가 참 좋았다고 얘기하는 걸까?
그때, 내가 참 좋았다는 그곳에 있었을 그때,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끼면 참 좋을텐데.
카르페디엠. 시즈 더 모먼트.
이것은 올해의 나의 목표다.
다 흘러가버린 후 과거가 된 순간을 추억하기란 쉽지만,
현재 내가 서있는 순간을 잡기란 참 어렵다.
어떻게 즐겨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에도 벌써 그 순간을 놓친것이다.
그러니 일단 아무 고민없이 현재를 마주하는 것부터 연습해야겠다.
대장님께서 자전거를 사셨다.
이걸 여행 중에 타고 다니실거라면서.
들고 다니기 무겁고 힘들텐데,
대장님은 참 소년 감성이신 것 같다.
자유로운 영혼과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계신다.
과연 이 자전거가 앞으로 제 역할을 잘해낼지, 지켜봐야겠다.
6/3(일)
아빠가 좋아하는 체리를 처음으로 먹어봤다.
아빠가 그렇게 체리를 많이 먹을 때도, 나는 한번도 체리에 손을 댄적이 없었다.
체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었다.
알맹이가, 내가 좋아하는 사과나 배 못지 않게 달큰했다.
이제야 아빠가 왜 이렇게 체리에 집착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나는 참 안먹고 살아온 음식이 많은 것 같다.
그것도 아예 먹어보지도 않고, 무슨 맛인지도 모른채 피해온 음식들.
역시 직접 먹어봐야 알고, 직접 해봐야 안다.
앞으로는 일단 다 먹어보리라.
그리고 결정하리라. 내 스타일인지, 아닌지.
<체리 씻는 방법>
1.통에 물을 담는다.
2.거기에 체리를 넣고 체리를 빠르게 물로 헹궈준다.
(손으로 박박 문지르거나 할 필요없이 먼지만 빼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체리의 꼭지를 따면 안된다->그러면 체리에 물이 들어가서 단맛이 사라진다)
3.헹궜으면 빨리 물에서 빼놓아야한다.
이게 말로는 쉬워보이지만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대장님께서 가르쳐주셨는데, 체리를 씻을 때마다 헷갈린다.
체리 씻는 것을 열심히 연습해서, 하반하에서 ‘체리를 가장 잘 씻는 사람’이 되고 싶다.
6/4(월)
서핑센터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우리는 한달 동안 윈드서핑을 배웠다.
보트에 올라가는 것부터 앞으로 나가는 것, 턴하는 것까지.
이제는 모두들 꽤 잘탄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휙휙 돌거나 기술을 부리지는 못하지만,
혼자 나갔다가 돌아올 수는 있다.
처음 윈드서핑 배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고꾸라지기만 반복했을 때,
진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가망이 있는걸까, 어차피 안될거 그냥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윈드서핑을 잘타지는 못해도 즐기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기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주째가 되며 나는 조금씩 배위에서 균형을 잡기 시작했고,
3주째에는 혼자 어느정도까지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배 위에서 이런저런 잡생각들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도 갖게 되었고,
바라던 대로 윈드서핑을 조금씩 즐기게 되었다.
모터 보트나 대장님의 카누로 여러번 구출되며, 혼자 라이프 오브 은재를 수십번 찍기도 했으나, 모두 쓰릴넘치는, 나름 의미가 있는 경험들이었다.
처음 우리는 8명의 학생만 서핑레슨을 받기로 했었다.
하지만 우리의 경청하는 태도와 열심히 하려는 자세에 감동한 서핑센터 직원은,
우리 모두가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우리는 수업시작 10분전에는 미리 도착해 세일과 보트를 준비해놓았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사용한 장비들을 다시 제자리에 잘 정리해두었다.
대장님은 요리를 할때마다 만든 음식들을 서핑 센터 직원분들에게 가져다주었셨다.
우리의 행동에 또 감동한 직원분은, 원래는 잘타는 5명에게만 발급해주기로 했던 윈드서핑 자격증을 우리 모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발급해 주셨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됐다.
그것은 작은 행동들, 기본적인 태도였다.
하반하에서 나는 이런 작은 마음의 씀씀이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우는 것 같다.
하반하 덕분에 나는 가는 곳마다 좋은 인연을 맺고 친구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도 그랬다.
서핑센터 직원들과 우리는 엄청 친한 사이가 되었고, 나중에 다시 이곳에 놀러오기로 약속했다.
벌써 한달이 지나 페티에를 떠나지만, 떠나는 곳에 다시 돌아올 거점을 만들게 되어 기쁘다.
슬로바키아에선 미로 아저씨네 카페가, 우크라이나에선 카텔리나의 집과 바실아저씨네 커피호스텔이, 터키에선 이 윈드서핑센터가 거점이다.
나중에 꼭꼭 다시 오리라.
이름: Doreen bunge aykurt
이 분은 원래 독일분인데 터키 사람과 결혼해서 15년을 터키에서 사셨다고 한다.
그 터키 사람이 우리가 ‘이안’이라고 부르는 윈드서핑 선생님이시고, 그 가족들이 모두 함께 이 윈드 서핑 센터를 운영하는 것이다.
내가 받은 윈드서핑 자격증.
내가 자격증을 받다니ㅋㅋ
사실 이거 받아도 되나 조금 망설여지긴 했으나, 그냥 낼름 받았다.
한국에는 윈드서핑을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을테니,
‘윈드서핑 쫌 한다’고 어디가서 자랑할 수 있겠다.
(진짜 실력은 보여주지 않는걸로ㅎㅎ)
6/5(화)
또다시 이동이었다.
나는 버릴것들을 찾아 헤맸다.
긴팔 한벌과 긴바지 한벌.
그리고 스키복을 버린 후 내가 가장 의지했던 남색 후리스.
벌써 이것들을 안입은지 꽤 되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버리기로 했다.
내 가방은 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벌써 옷주머니 한개가 줄어들었다.
가방을 싸는 동안 얼마나 공간이 생겼을까 너무 기대했는데,
처음 한국을 떠날때보다는 확실히 많이 여유가 생겼다.
돌아갈때 여기에 기념품들을 꽉꽉 채워넣어가는게 나의 목표다.
떠날땐 이렇게 방을 깔끔히 치우고 가는 것이다.
베개, 이불시트는 모두 벗겨서 침대위에 모아두고,
바닥은 빗자루로 쓸어 쓰레기가 없도록 하고,
화장실은 물기없이, 떨어진 머릿카락 없이 깨끗이 청소해야한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진정한 여행자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한달간 이 숙소를 내어준 주인아줌마에 대한 감사 표현이라고 했다.
이것은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역시 한국애들은 더럽고, 정리도 안해’가 아니라
‘어머 한국애들은 참 깨끗하고, 정리도 잘하고 부지런하네’라고 생각하게 될테니까.
어쨌든 이렇게 자기가 머문곳을 잘 정리하는 것은 여행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옷을 버려서 생긴 배낭 공간에 처음으로 ‘공동짐’을 넣었다.
‘공동짐’이라함은 함께 쓰는 물건을 말한다.
그동안은 내 짐만으로도 쩔쩔맺던 터라 공동짐을 드는 것은 꿈도 못꿨는데,
이제 나도 모두의 일을 위해 한 몫하게 된 것이다.
내가 든 공동짐은 두루마리 휴지.(1개)
조금 창피하긴 하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내 가방을 대장님께 맡겼던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의 이동날이 생각났다.
그날 나도 하반하에 꼭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내 역할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때 받았던 은혜를 갚고 싶다.
우리는 원래 캠핑장에 머무르려고 했었다.
주변이 온통 잔디고, 주위에 다른 건물이라고는 하나 없는 그런곳에 말이다.
거기서 북연습도 하고, 오카리나도 불고, 자유롭게 뛰어놀 계획이었는데,
이번에도 변수가 생겼다.
우리가 잘 방과 침대가 준비되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대장님께서는 모두가 방에서 자는 것을 조건을 예약을 하셨다는데,
오늘 가보니 방이 2개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식당에 책상과 의자를 치우고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야하는 상황이었다.
대장님께서는 곧바로 다른 숙소로 가자고 하셨지만,
써니쌤께서는 이 숙소를 고집하셨다.
넓은 공간과 분위기가 써니쌤 마음에 아주 드셨나보다.
써니쌤은 대장님을 설득하고, 우리를 설득하고, 주인 아저씨와의 가격 협상에 나섰다.
대장님과 우리야 써니쌤 말이라면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주인 아저씨가 준비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높은 가격만 요구하는 바람에
결국 우리는 다른 숙소로 이동하게 됐다.
협상 실패 후 써니쌤의 모습이다.
매우 처참한 표정을 짓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찾게 된 숙소는 ‘부메랑’이라는 게스트하우스다.
중국인 아주머니가 주인이신데, 우리에게 아주 친절하시다.
처음 계획과는 다른 숙소에 묵게 됐지만,
변수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과, 또다른 좋은 공간을 만나게 되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해서,
쎌축을 떠나기 전에 주인 아주머니와 중국어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6/6(수)
쎌축 케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은터라 잔뜩 기대하고 케밥집에 갔다.
빵이랑 고기가 바삭바삭하고, 거기에 케찹과 마요네즈를 뿌려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이스탄불에서 먹은 케밥보다도 맛있었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나는 케밥이 좋다.
그동안은 다가갈까말까 간을 보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너무 좋아서 달려가 껴안을 정도이다.
케밥은 나에게 있어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는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스탄불에서는 항상 케밥을 반밖에 못먹었는데, 이번에는 혼자 하나를 다먹었다.
이렇다 진짜 케밥에 꽂혀서 케밥마니아가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쎌축에 머무는 동안은 매일 점심으로 케밥을 먹을테니, 그동안 질리도록 먹어야겠다.
아이들이 모두 손을 들고 있는 까닭은?
케밥을 한개 더 먹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더니, 이렇게 모두가 손을 들었다.
이 날 이후 더이상은 먹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않는다.
안먹을 사람 손들라고 한다. 그게 훨씬 계산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두 케밥을 기본 2개씩 먹는다. 그런다음 또 하나를 더 먹는 아이들도 꽤 많다.
나는 아직 이 정도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는데, 이 아이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지 신기하다.
우리는 모두 터키 현지 음식 케밥과 사랑에 빠졌다.
6/7(목)
오카리나를 연습하기 위해 숙소 근처의 잔디밭에 갔다.
우리는 여기서 할아버지 시계를 불었다.
오카리나 수업 후에는 매트를 깔고 수박과 라마준(터키 피자같은 것)을 먹었다.
집 앞 텔레토비 동산에 김밥을 싸가지고 가서 돗자리를 깔고 먹는 것이
나의 로망이었는데,
하반하에서의 생활은 그 자체로도 소풍이다.
엄마, 아빠는 마당에서 밥을 먹자고 해도 그렇게 안나가주셨는데,
여기선 써니쌤, 대장님이 먼저 우리를 데리고 나가신다.
이런 소풍과 나들이가 나는 좋다.
밖에서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데
왜 우리 가족은 집안에서 먹는 것만 고집할까?
아무래도 내가 돌아가면 가족들 모두를 데리고 집을 나서야 겠다.
6/9(금)
요즘 나는 길거리를 다니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르하바’하고 인사한다.
그러면 원래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활짝 웃으며 ‘메르하바’하고 다시 인사해준다.
인사는 정말 신기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인사만 받아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지니깐 말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 받지 않는 걸까?
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이상한 행동일까?
인사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이 할 수록 좋은 것 같은데.
나는 여행중에는 꼭 그 나라 인삿말을 배워서,
만나는 사람들마다에게 큰소리로 인사할테다.
<스피킹: 나는 누구인가>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스피킹과 디베이팅입니다.
공책을 아무리 오랫동안 붙들고 있어도 글이 안써지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원고를 쓱쓱 쓸 수 있는 친구들이 저는 정말 부럽습니다.
이번 주제 ‘나는 누구인가’는 특히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80대 노인에게 물어도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17살인 제가 받은거잖아요.
솔직히 원고를 쓰는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봤는데요. 몇번을 지우고 다시쓰고, 지우고 다시쓰기를 반복한 결과,
그냥 제가 아는 제자신, 꾸밈없는 제 모습이 가장 ‘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에 대해 적은 정보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이름: 이은재
나이: 17세
생일: 2002년 10월 *일(개인정보인 관계로 가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족: 엄마, 아빠, 오빠
종교: 기독교
거주지: 경기도 파주시 ***하우스
키: 155센티미터
몸무게: 약 45키로
생김새: 동그란 안경을 씀, 눈이 작음, 코가 곧지 않고 중간에 약간 튀어나옴, 입술이 작고 얇음, 손가락이 길고 손톱이 예쁨
질병: 큰 질병은 없으나 앉았다 일어날 때 조금 어지러움(아빠쪽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암이 있으셨고, 엄마쪽의 할머니가 고혈압, 당뇨가 있으심)
좋아하는 것: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엄마와 수다떨기, 영화보기(공상과학이나 공포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좋아함), 연극, 뮤지컬 보기(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빨래’), 야경,시내 구경, 쇼핑
싫어하는 것: 움직임을 동원하는 모든 활동, 운동
좋아하는 음식: 단음식(아이스크림, 과자, 초콜릿 등), 견과류(아몬드, 호두, 피칸 등)
싫어하는 음식: 딱히 없음(브로콜리 정도?)
식사시 특이사항: 먹는 속도가 많이 느린 편임
잘하는 것: 딱 얘기할 만한게 사실 없음
성격: 열심 성실, 걱정이 매우 많고 자주 불안에 떰, 우유부단함, 계획적임
장래희망: 인권변호사(롤모델: 박준영 변호사), 정신과의사(롤모델: 정혜신 박사)
집에서 나: 부모님 말씀 잘듣고, 걱정 안끼치는 딸, 집안의 희망, 집 대표
학교에서 나: 모범생, 선생님 말 잘듣는 선생님이 딱 좋아하는 학생, 연예인에 관심없고 시대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재미없는 친구
하반하: 약하고 비실비실한 아이
하반하에서 발견한 새로운 나의 모습: 끈기가 생각보다 약함(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쉽게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림), 개인주의적임(혼자하는 게 더 편하고, 그것을 선호함. 함께 하는 일에 있어서 배려심이 많이 부족함.)
유엔이 신입사원 채용 문제로 이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
유엔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스토리? 굴곡진 삶에 대한 얘기일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스토리 또한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일 뿐
정말 솔직한 나 자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써니쌤께서 가장 철학적이게 나를 표현해보라고 하셨는데,
저는 발표를 준비하며 가장 기본적인, 가장 솔직하고 꾸밈없는 내가
가장 철학적인 ‘나’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한 제가 접니다.
나를 한단어로 얘기하라고 한다면 그냥 ‘나’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멋진 단어도 생각이 안나거든요.
나는 새다. 새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날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오뚜기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람이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들도 생각해봤는데, 이런건 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있어보이는 문구들일 뿐이겠죠.
저는 한단어로 표현할 만큼 단순한 사람이 아니고, 또 그렇게 단순화되고 싶지도 않기에
그냥 모든 저를 포함하는 ‘나’를 나라고 하고 싶습니다.
열린 결말로요.^^
(회피라고 한다면 회피겠지요. 하지만 그 이상 무어라 얘기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번 스피킹을 또 이렇게 무사히 잘 마쳐서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다시 찾아올 공간이 생겼으며 낯설었던 음식과 친해져가는 은재의 모습 속에 진정한 여행자의 향기가 물~~씬 풍기네.
여행의 의미 중 하나가 추억쌓기라면 벌써 넘치고 흐를정도의 추억만들기를 하고 있는듯~~^^
이은재. 느긋하게 배짱을 좀 부리니 여행자의 멋이 팍팍 나네...사실 몸이 건강하고 자율적 시간을 사용하는 자는 모두 지구촌 어디에 있거나 그곳을 초특급 휴양지처럼 누릴 수 있지. 마치 5살 이전의 아이들이 놀고 먹고 자고 모든 행동에 예쁨을 받듯이, 어른도 마음이며 기분은 늘 그렇게 살아야 좋은 지구인이 아닐까 싶기도 해. 지구촌엔 온갖 사건 사고, 슬픈 일들이 많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매일매일이 기적이고 축복이고 감사할 거리로 넘치기도 하고...그 틈바구니에서 무사한 하루를 누리며 복을 만끽하는 거...아주 멋져!!! 화이팅, 이은재, 너는 은근히 매력뭉치구나?!!!
근데 은재네 팀, 넘흐 재밌네. 배움의 오묘함을 말한 준휘, 은재를 따돌리고 1등한 준우, 오렌지나무 오디나무를 발견, 자칭 가족 분위기 메이커 호근, 8기 추억을 간직한 준형, 나는 남이 생각하는 그대로다 라고 인정하는 민석, 올리브나무에 추억할 게 있는 우진, 분홍빛 석양이 물든 하늘에 반한 말없는 몽상가 지원, 부모님께 감사하는 정우, 생활 패널티 11달러에 심쿵한 동군, 호기심 많고 밥을 좋아하는 11살 세훈, 복이 많은 호준이, 국제 표준 사이즈에 깔끔남 재훈, 삐뚤윤수 정상윤수라는 자기 심판관 윤수, FROMIS 9의 덕후 민수, 다들 손꼽아 기다리는 승환...흥미 진진하네..그들과 더불어 은재. 멋지다!!
은재야.엄마가 요즘 마당 청소를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 이 열심이 네가 올때까지 계속된다면 우린 마당에서 밥을 먹을수 있을거야 ㅋ
스키장 케밥집 단골 손님 하나 확보했군^^
음식에 대한 열린 자세..여행 중 가장 맘에 드는 너의 변화다.
떠날때 깔끔하게 방을 치우고 가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인걸? 진정한 여행자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로구나.
이번 보고서의 하일라이트는
협상 실패 후 처참한 표정의 써니쌤 사진인데 ㅎㅎㅎ써니쌤 생애 최고의 인간적인 매력을 뿜뿜하는 인생샷이 아닐까 생각된다. 쌤한테 꼭 보여드려^^
은재야. 이제 너도 집에 오면 정리정돈 잘할거니? 기대할게^^
은재양 찬찬히 적어준 보고서가 늘 고마워요.
은재양은 내가 준우에게 바라던 그런 자식의 모습이네요. 은재 부모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