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꿈
명절 때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는 고향 가는 인파에 관해서 떠들어댄다. 어느 고속도로가 막히고 몇만 대의 자가용이 서울을 빠져나가고 기차표나 비행기표는 이미 예매가 다 끝났고... 뉴스시간의 아나운서들은 야단이나 난 것처럼 바쁘게 읊어댄다. 고향 가는 인파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나는 찡하게 밀려오는 서글픔을 씹지 않을 수 없다.
내 고향은 어디인가?
이렇게 어디론가 마구 달려가고 싶은 것은 나에게 이렇다 할 고향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때마다 철마다 갖은 고생을 무릅쓰고 고향에 갔다오는 동료들을 보면 마냥 부럽기까지 하다. 고향의 내음을 맡으면서 어린시절 뛰놀던 시내와 산과 들을 바라보면서, 도심에서 찌들은 영혼을 신선한 바람으로 가득 채울 그들을 생각하고, 찾아 갈 곳 없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하기야 넓게 보면 인간의 고향은 지구이겠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아늑한 고향은 어머니의 품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는 너무 기본적이지 않은가? 고달픈 매일을 살아가다가 자신의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향을 찾아가 변화한 자신과 어린시절의 자신을 번갈아 비교할 수 있고, 어린시절에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코흘리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참외나 수박서리하다 붙들렸을 때 어린 놈이 벌써부터 도둑질하느냐며 먹고 싶으면 찾아와서 달라고 하라면서 나중에는, 얼마나 먹고 싶으면 그랬겠느냐면서 수박 두 덩이와 참외 세 개를 선뜻 내주었던 짝귀 아저씨를 만날 수 있고...
고향.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해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서유럽은 일반적으로 도시나 농촌이 아름답고 모든 면에서 질서가 잡혀 있다. 특히 독일남부나 스위스쪽은 그림같이 아름답고 깨끗한 곳이 많다. 자동차를 타고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과연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방에 푸르른 들판이 널려 있고 마시는 공기가 너무 상큼하다. 종일토록 숲길을 산책하여도 피곤함을 모른다.
남의 떡이 커보이기 때문에 부러운 마음이 그토록 큰 것일까? 그러나 "남의 아버지가 아무리 좋아도 내 아버지는 아니다" 라는 말처럼 이국의 경치가 제아무리 아름답고 깨끗하다고 하여도 그곳은 내 나라 내 땅이 아닌 것을 어이하랴.
독일남부나 스위스의 경치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산뜻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러한 경치가 정겨움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아름답고 깨끗하지만 어딘가 낯선 느낌을 준다. 시골길의 기름기 흐르는 도로, 자로 잰 듯 반듯반듯 열지어 있는 포도나무, 울창하지만 계획적으로 조성된 삼림. 게다가 노랑머리, 흰머리, 빨강머리는 아무리 보아도 고향의 정겨운 맛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 모두 남의 땅, 남의 것이며 나에게는 낯선 것들이다.
어린시절의 아련한 고향추억을 가슴 깊이 뿌듯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정신분석하자 프로이트에 의하면 유아시절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은 커서도 남을 끔찍이 사랑할 줄 안다고 한다. 아기 때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마치 용암처럼 철철 흘러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유아기에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커서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받은 것이 없으니 마음이 메마르고 남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으므로 항상 남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빼앗으려고 한다. 커서 사랑받을 경우 그러한 사랑은 생명있는 싹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되고 말기 때문에 유아기에 사랑받는 것이 인간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마찬가지로 어린시절의 정겨운 고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또한 하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어린시절의 고향은 마음속에서 지위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서 우리의 꿈을 알차게 키워준다. 도시에서 산 사람은 도시를 고향으로, 시골에서 산사람은 시골을 고향으로 일생동안 간직하며, 외롭고 괴로울때 고향을 떠올리며 향수를 달램으로서 고독과 고뇌를 해소 시킬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삭막한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아무래도 더 풍요로운 인간성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시골뜨기"니 "촌놈'이니 하는 말로 시골 출신의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말을 한다. 매사에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고 어리숙하다고 해서 그런 말을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놓고 보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은 얼마나 약고 닳아빠졌는가를 쉽사리 알 수 있다.
나는 중.고등하교 시절 어쩌다 시골 사는 친구네 가서 며칠씩 산과 들을 쏘다닌 적이 있다. 보리밥에 김치만 먹어도 소화가 잘 되었고 매일같이 쏘다녀서 그런지 우수수 대나무잎 스치는 바람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저수지에 종일토록 쪼그리고 앉아 작은 붕어, 큰 붕어를 낚으면서 신바람나서 소리지르기도 하였다. 이랴 쯧쯧 어랴쯧쯧 서툰 솜씨로 낑낑 소를 끌고 풀 먹이러 가기도 하였다. 친구와 산에 올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싱그러운 산바람을 맞으면서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친구와 서로 눈짓하며 마음껏 노래도 불러보았다.
친구와 이별하면서 완행열차에 앉아 멀어지는 친구의 고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친구가 부러웠고 친구네 고향이 부러웠다. 다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온몸이 긴장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도시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향은 마치 어머니의 품과도 같다.
어른이 되더라도 아련한 고향은 따스한 품으로 언제나 우리들을 감싸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마구 고향을 버리게 되었고 도시가 거대하게 됨에 따라서 요새 사람들은 거의 고향을 상실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정에 메마르고 각박하며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에 가득 차 있는 것일까?
나는 피셔 디스카우(슈베르트의 연가곡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독일의 가수)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즐겨 듣는다. 즐겨 듣는다는 것은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흔쾌하다거나 기쁨에 들뜬다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래가 가슴에 와닿기 때문에 듣는다는 것이다.
겨울 나그네는 추운 날씨에 언 몸으로 정처없는 길을 떠나며 어느 마을 동구 밖에서 잠시 쉬려고 하지만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그에게는 따뜻하게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몸을 녹여줄 작은 방도 없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어디로 갈지 모를 내일과 한겨울의 추운 날씨 그리고 얼어붙은 땅과 나무들 뿐이다.
고향이 없는 사람, 고향을 잃은 사람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땅과 내와 산만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 역시 얼어붙어 그에게서는 삶의 따사로움을 전혀 느낄 수 없다. 현대인은 어쩌면 고향을 상실한 겨울 나그네인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어린시절에 자신의 영혼에 삶의 힘을 일깨워준 고향이 아닌, 돈과 권력과 명예를 삶의 알맹이로 착각한다. 아니 현대인은 오히려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자신의 고향인 것처럼 환상 속에 살아간다. 고향을 잃은 사람은 삶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나 마찬가지이다. 순간순간에 이끌려서 돈과 권력과 명예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 현대인이다.
나는 평양 근처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5년간 살았다. 하도 오래 된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버지는 평양에 직장이 있었고 한 달에 한두 번 시골집에 다니러왔다.
햇살 따가운 여름 한낮, 잠자다 깨어보면 아무도 없었고 나는 질겁하여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왕왕 울어대며 먼지 풀풀 나는 신작로를 따라 콩밭 김매는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학질이다 이질이다 해서 자주 아팠고 늘 누워서 지내던 기억이 아물거린다.
여섯 살 나던 해에 평양으로 이사왔다. 집도 크고 길도 컸다. 집 앞 길거리의 가로수가 무척이나 컷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림자를 만들어 주었다. 옆집 동갑나기 계집아이와 자주 싸웠다. 그 아이네 커다란 누렁이가 무서웠지만 악에 받혀 틈잇는대로 돌멩이로 누렁이를 때리거나 몰래 뒤로 가서 한 방 발로 차고는 옆집 계집아이를 때린 기분으로 의기양양하였다. 평양에서도 자주 아팠다. 어머니의 손에 끌려 도립병원에 자주 다녔지만 의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주사를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는 기억에도 없다.
평양에서 6.25를 맞았다. 고모네로 피난갔다가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갔다. 전쟁이 끝나자 부산에서 서울로 오다가 잘못 되어 인천에 정착하였다. 서울로 이사와서 십여년 살다 독일로 유학갔다.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하여 전에 전혀 알지 못하던 서울 변두리에 집을 얻어 정착하였다.
도대체 내 고향은 어디일까?
고향이란 우선 어린시절 내 삶에 가장 인상깊은 여러 가지 영향을 준장소일 것이고, 다음으로는 언제나 찾아가서 지난날 모든것을 다시 확인하고 되살려 보고 깊은 곳이리라. 물론 조상대대의 산소가 있으며 여전히 집안 어른들과 친척들이 살고 있으며 찾아가면 반겨줄 어릴 적 친구들이 몇 명쯤은 있는 곳이 고향다운 고향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는 정말 고향이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억지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고향이 많다. 내가 살았던 모든 곳은 다 나의 고향이다. 태어난 곳, 피난갔던 곳, 독일의 남부도시 등은 내 영혼을 키워준 곳이며 나의 삶에 힘을 불어넣어 준 잊을 수 없는 나의 고향들이다.
물론 장소는 다르고 그곳의 사람들도 달랐지만 그곳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꿈을 심어 주었고 내 마음 속 깊이 지워질 줄 모른 채 오늘도 살아서 숨쉬고 있다. 세상에 고향처럼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고향이 소중한 만큼 고향의 산촌과 고향친구 그리고 고향의 추억 또한 더없이 소중하다.
현대인은 고향을 망각하고 있으며 고향을 상실해가고 있다. 고향을 상실하면 삶의 꿈마저 잃고 만다. 꿈이 없는 인간은 더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하기야 허황된 굼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이상과 야망과 동경의 꿈은 우리의 인간성을 풍요롭게 해주는 꿈이다. 고향은 우리의 풍요로운 꿈을 영원히 간직해주는, 어머니의 따사한 품과도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