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제주 한라산 정상에 오르자 했다. 최여사는 아직 다리가 튼튼하니 충분히 올를 수 있다고 부추긴다. 사실 내 연배에는 무릎관절 이상으로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산이다. 대한민국의 최고봉에서 최여사의 전설을 만들어보자는 아들의 꼬드김이 마음을 당긴다.
제주도 올레길을 수없이 걸었건만 한라산은 오를 생각을 못 했다. 나무 높고 긴 산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던 터다. 저 높은 하늘과 맞닿은 정상에 서서 손을 뻗으면 기다리던 그리운 이가 손잡아 줄 것만 같다. 만일 누군가가 제주도 여행을 꿈꾼다면 제일 먼저 한라산 등정이 아니었나 싶다. 아들과 함께 제주의 상징인 백록담 정상에 서 보자던 그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제주도 도착 다음날, 이른 아침 한라산 출발지인 성판악에 도착했다. 햇살이 퍼지지 않은 오월의 아침 날씨는 쾌청하다. 더위를 식혀 줄 솔바람도 간간이 불어준다. 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에게 한라산이 베푸는 배려인 것 같다. 동호회나 가족들과 남녀 친구들로 보이는 이들이 출발지점에서 기념 촬영을 하느라 북새통이다. 탐방안내소에서는 등반의 안전을 위한 주의 방송을 하고 있다. 이제는 대피소에서 먹을 것은 일체, 판매되지 않으니 충분한 물과 먹거리를 챙겨 가라는 당부와 함께 자신의 쓰레기는 버리지 말고 꼭 챙겨오라고 했다. 한라산 환경문제 방송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한라산에 자신 있게 첫발을 들여놓았다. 백록담 풍경을 상상하며 초입에 들어서니 원시림의 조화가 절묘하다. 내게 산빛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계절이라면 단풍 진 가을이 아니다. 녹색이 짙은 오월이다. 마치 산이 싱그러운 초록 옷을 걸쳐 입고 봄빛 속을 걸어 성큼 내게로 오는 듯하다. 수줍은 듯 피어난 야생화의 고운 생명체의 참모습은 이런 청초하고 맑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모든 사람이 깨끗하고 순수한 아름다운 산 꽃에 마음을 빼앗기듯 나는 역시 싱그러운 초록에 빠져들고 싶다.
세상의 높은 곳으로 향한다. 화산으로 이루어진 제주에는 아디를 가나 돌 천지다. 마치 제주 사람들에게는 공기처럼 느껴지는 현무암이건만 돌이 깔린 산길을 걷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연과 필연으로 주어졌던 운명들이 모난 돌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방심하면 발목을 삐기 십상이다. 자연히 시선이 발끝으로 쏠리니 주변 경치를 둘러볼 겨를이 없다.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고부터 이것쯤이야 했던 생각은 달라졌다. 거칠고 길었던 올레길도 충분히 걸었건만 끝 모르는 오르막인 한라산 등정은 너무 달랐다. 산을 오르는 다른 사람들 역시 발길을 멈추기도, 또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기후변화 탓인지 여름이 빠르고 점점 길고 독해지나 보다. 얼굴과 목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멋진 풍경을 떠올리고 더 오르면 더 멋진 풍경만을 생각했다. 도무지 이승의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돌계단. 이쯤에서는 한 계단 오르기도 버겁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던 아들도 말문을 닫아 버렸다. 아무래도 내 체력을 무시한 무모한 도전으로 여기는가 보다. 이젠 되돌아갈 수도 없는 길이 아닌가. 사서 고생이다. 지금 나에게 적절하게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독하게 마음을 다잡고 묵묵히 걷는다. 아득히 정상이 올려다보이는 곳에 벼랑 계단을 오르고 있는 앞선 저들이 부러울 뿐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르다. 등산복과 장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폼나게 성큼성큼 오르는 사람, 자신의 체력보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버겁게 오르기도, 노루처럼 성급하게 뛰어오르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목표한 삶을 이루어 내듯, 지금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목적지는 같은 것이다.
뭘 얻겠다고 경험하지 못한 육신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지, 내가 언제 높은 곳에 서기 위해 기를 쓰고 살았던가. 오직 내 분수에 맞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아왔던 삶이 아니었던가. 육신에 고통이 주어지니 정상을 올라야 했던 의미마저 깡그리 잊고 말았다.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바라본 한라산은 머리에 하얀 구름 띠를 두르고 한없이 평화롭고 경이롭게만 보였다. 막상 산속으로 들어와 보니 거칠고 험하다. 이 거대한 산속에서 인간이란 자연의 한 자락에도 못 미치는 작은 현무암 조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 스스로 검은 돌길을 걷는 고행을 자초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산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원망에도 아무런 내색 않고 툭툭 차는 거친 발길질도 묵묵히 참아준다.
사방이 넓은 산마루에는 죽어 뒤엉킨 나무들이 하얀 뼈처럼 널브러져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살아낸다는 주목이다. 세월의 풍상에 시달리고 꼬이고 굽이지고 휘어지다 결국 견디지 못해 쓰러진 나무들, 녹색이 짙은 오월임에도 자신의 색을 잃어버리고 흰 속살을 드러낸 고사목이 장성처럼 서 있다. 나무들의 생이 거친 것이나, 힘들게 살아낸 찌들어 망가진 사람의 생이나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다. 죽은 구상나무가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냉기가 온몸을 파고든다. 살갖을 에이는 여름의 날씨가 얄궂다. 연신 콧물이 흘러내린다. 오월 말, 이른 폭염 주의를 예보한 산 아래 날씨와 완전 다르다. 백록담이 가까워지니 계단은 더 가파르다. 밧줄을 잡고 간신히 한 발짝씩 정상을 향하지만, 세찬 바람이 몸을 날려 버릴 기세다. 지금 나의 모습은 물기 없는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외로운 담쟁이의 질긴 힘줄처럼 느껴진다. 살아온 시간들의 아픈 상처까지 숨으로 내뱉는다. 마지막 코스에서 육신의 관절과 근육들이 온통 아우성을 질러댄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에 도착했다. 한라산 분화구가 뿜어 굳어진 기이한 형태의 현무암이 백록담을 둘러싸고 있다. 내 역량을 초월한 기막히는 경험의 기적 같은 순간이다. 분화구에 생긴 호수,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백록담이다. 사슴만 먹는다는 신비스러운 물도 선명하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던 기가 막힌 비경이다. 자연이 주는 이 경이로움에 울컥인다. 백록담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한라산의 광활한 풍광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두고두고 보려고 카메라에 담는다. 오늘 오른 아들이 세상을 살아내는 동안 많은 덕을 쌓은 그 덕을 내가 보는 건지, 아니면 나의 조상님께서 덕을 쌓아 오늘 내가 덕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게 올라온 고통이 한순간 사라진다. 성취감에 한껏 취한다. 많은 전설을 품고 있는 민족의 영산에서 산의 정기를 느껴보며 표지석에서 아들과 인증샷을 남긴다.
정상 아래 사방으로 펼쳐진 풍광들이 아득하다. 마치 제주가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고 중심에 내가 서 있는 느낌이다. 오름도 집도 한라산 아래서 납작 엎디어 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다리가 후들거리고 종아리가 땅겨도 즐겁다. 느지막이 인생길에 도전하길 잘했다. 한라산에 오르길 참 잘했다.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사람들은 더 높은 곳을 꿈꾸나 보다. 살아내는 동안 바람과 비와 폭풍과 마주했던 많은 날을 허물었다. 이 순간의 황홀감으로 남은 생을 잘 살아낼 것 같다.
구름과 바람이 잠시 쉬었다 가듯, 정상에서 하산한다. 9시간 등정을 마무리하고 출발했던 성판악에 돌아왔다. 탐방안내소에서 한라산 등정 ‘인증서’를 받았다. 내 생에 가장 많이 걸었고,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마법처럼 느껴지는 하루다. 자신의 과한 욕심이 엄마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 등정 내내 큰 후회를 했다는 아들, 비로소 활짝 웃는다.
“우리 대단하신 최여사!”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세상 한참을 살아내야 할 아들에게 가장 힘센 추억 하나 남겨준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삶은 비 오면 물 흐르듯, 바람 불면 나뭇가지가 춤을 추듯 순리대로 살아내려 한다. 비좁았던 마음에 큰 산 하나 들어온 듯하다.
첫댓글 최작가님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