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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4일 대림절 넷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104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마1:18-25(신1)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인생의 갈림길에서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탄절을 준비하는 마지막 대림절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 마음의 결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제공한 후(1-17) 오늘 본문에서 그의 탄생의 구체적인 내용을 전합니다. 1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하였지만, 아직 결혼이 성사되기 전에 그녀가 잉태한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당시의 약혼은 결혼 계약이었습니다. 신랑이 이 계약에 따라 약 1년 정도 신부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때 결혼은 성사되어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은 결혼 계약에 따라 이미 마리아의 남편이었습니다(19).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였지만, 그녀의 남편인 요셉은 이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요셉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요셉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와 이혼할 생각을 하였습니다(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율법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공개적인 재판 대신(신22:23-27)에 은밀한 이혼을 택하였습니다. 다른 이유의 이혼장을 작성하여 두세 사람의 증인 앞에서 마리아에게 주었다면, 그가 원하는 이혼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신24:1).
이것은 요셉이 마리아의 공개적 수치를 배려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자신도 이 수치가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는 마리아의 잉태가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천사의 말대로 ‘무서워하였’(20)습니다.
요셉이 은밀한 이혼을 생각할 즈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그에게 말했습니다(20-23).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요셉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꿈에서 이 천사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마리아의 잉태가 공개되어 수치와 조롱을 당하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믿을 수 없기에 원래 계획대로 공개적 수치를 피할 수 있는 은밀한 이혼을 진행하여야 하였을까요? 요셉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인생의 갈림길(crossroads)에서 결단하여야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인생의 갈림길에서 결단하여야 할 요셉과 같이 거의 동일한 문제와 상황에서 씨름하며 결단하여야 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약 700년 전에 국가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았던 ‘다윗의 자손인 아하스 유다의 왕’이었습니다. 아하스의 상황과 그의 결정을 살펴보면, 요셉에게 말한 천사의 말(20-23)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도 믿음의 결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앗수르가 점점 강성하여 당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위협을 대항하기 위해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유다가 그 동맹에 참여하도록 압박하였습니다. 아하스와 백성들은 그들의 동맹 소식에 바람에 흔들리는 숲같이 흔들렸습니다(사7:2).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에 대항하는 그 동맹에 가입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였기에 안보를 위하여 앗수르에게 굴복하는 동맹을 맺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의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아하스에게 가서 이런 동맹들이 아닌 오직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길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사7:3-9). 여기서 그의 아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또는 남은 자는 회개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심판의 재앙과 구원의 약속이 들어 있는 이중적인 의미의 이름입니다.
사7:9절입니다.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는 말씀에는 ‘아하스 너는 누구냐? 다윗의 아들, 즉 다윗 언약의 사람이 아니냐?’라는 질문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하스에게 ‘스알야숩’을 보고 ‘회개하고 남은 자’가 되라, 여호와의 약속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사7:9b).
이처럼 아하스는 요셉이 천사를 통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는 하나님 구원의 약속을 들었던 것처럼, 이사야를 통하여 여호와의 구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아하스는 요셉과 같이 이 약속에 대한 불신과 믿음의 문제로 결단하여야 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께서 아하스가 회개하여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한 ‘한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사7:10), 그러나 그는 그 제안마저도 거절하였습니다(사7:11-13).
그래서 여호와께서 친히 ‘징조’를 아하스 왕이 대표하는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22-23)에 인용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사7:14-15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여기서 ‘징조(표적)’는 불신의 눈에는 비밀로 숨겨져 있지만, 믿음의 눈에는 그 비밀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이 아들이 우리와 함께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이기에, 그 아들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요1:14)이며,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이시라(요1:18)는 의미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14)에서 ‘처녀’는 불신의 죄악으로 율법 언약에 따라 여호와의 철저한 심판을 받을 ‘딸 시온(예루살렘)’(사1:8)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쳐녀(딸 시온)가 아브라함 언약에 근거하여 오직 믿음으로 ‘남을 자’인 ‘여호와의 싹’(사4:2) 또는 ‘거룩한 씨’(사6:13)에 대한 여호와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사6:12-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것은 유다의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철저한 심판을 통하여 오직 남아있을 자는 오직 ‘거룩한 씨’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처녀가 낳은 아들, 임마누엘’(14)의 징조는 불신의 아하스와 유다에게는 알 수 없는 비밀이지만, 믿은 남은 자들에게 계시 된 여호와의 철저한 심판과 그 심판을 통하여 유일하게 남은 자인 거룩한 씨를 통한 구원에 대한 징조입니다.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15)는 앗수르를 통한 불신의 유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으로 임마누엘, 아들이 가난과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사7:21-22).
이사야는 계속해서 이 ‘임마누엘, 아들’의 징조를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심판(사7:16), 유다의 심판(사7:16-8:8), 앗수르를 포함한 민족들의 심판(8:9-10)을 통하여 믿음으로 남은 자들의 구원으로 설명합니다. 사8:8b-10절입니다. “임마누엘이여, 그(앗수르)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여기서 민족들의 ‘함성’(9)과 ‘계획’(10)은 그들이 다윗 언약의 가문인 유다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패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로 제시됩니다.
그런데 여호와가 앗수르를 통하여 심판하신 ‘그 땅이 임마누엘의 땅’(사8:8)이기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사8:10)는 처녀(유다)에게 태어난 임마누엘이 불신의 유다와 함께 여호와의 심판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남은 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사야는 앗수르를 의지하는 불신의 유다를 여호와는 앗수르를 통하여 심판하실 것이지만, 여호와가 다윗 언약에 따라 불신의 유다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때문에 유다가 그 심판을 통하여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를 포함한 이방 나라들은 창조(율법) 언약에 따른 여호와의 심판으로 모두 패망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것을 ‘여호와의 고난받은 종의 노래’(사42:1-9, 49:1-6, 50:4-11, 52:11-53:12)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예언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종’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유일한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철저한 심판으로 멸망하는 불신의 유다 가운데서 어떻게 남은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직 믿음입니다. 사8:11-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를 오직 경외하며 믿는 자(13)에게는 여호와가 ‘성소’(14)가 되시지만, 그를 믿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불신(우상숭배)자에게는 그가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14)과 ‘함정과 올무’(14)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여호와께서 친히 아하스에게 주신 ‘임마누엘의 징조’는 불신의 유다에게는 그의 철저한 심판의 징조임과 동시에 끝까지 다윗 언약의 여호와를 오직 믿고 의지하여 남은 자들에게는 그의 구원을 상징하는 징조입니다.
성도 여러분,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의로운 사람이며, 다윗의 자손인 요셉은 이사야 서에 있는 아하스 왕이 받은 ‘처녀가 낳은 아들, 임마누엘의 징조’에 대한 비밀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처녀 마리아의 잉태에 대한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있었기에 불신의 아하스 왕과 다르게 결단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불신으로 심판당하는 유다 중에서 다윗 언약의 여호와만을 믿는 남은 자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마1:20-21절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셉은 이사야 서에서 예언된 임마누엘의 징조와 같이 ‘자기 아내(약혼자)인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들이 성령으로 된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특히 그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질 그 아들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21)을 알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죄에서’는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에서’입니다. 이는 언약의 하나님은 율법 언약에 따라 그들의 죄에 대하여 반드시 철저하게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은 임마누엘이신 그 아들, 즉 예수에게 믿음으로 속한 백성입니다. 즉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통하여 오직 남은 자이신 임마누엘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그에게 속하여 남은 자들이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방법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오직 믿음으로 남은 자가 된 그에게 믿음으로 속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것을 마태복음을 통하여 앞으로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갈림길에서 현몽한 주의 사자의 말을 통해서 요셉은 다윗 언약의 여호와만을 믿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24-25절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은 세상 사람의 오해로 인한 멸시와 조롱, 그리고 수치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그것들을 감당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절을 바로 앞둔 마지막 대림절에 우리는 성탄절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아하스 왕 같은 불신의 길일까요? 요셉과 같이 믿음의 길일까요?
성도 여러분, 어떠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요셉과 같이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령으로 잉태하고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통하여 우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복음만을 믿기를 결단하면서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죄 많은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오신 아기 예수만이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 가운데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유일한 남은 자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철저하게 예수만을 오직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불신의 아하스같이 우리 안에서 불신(우상숭배)이 없는가를 살펴보아서 있다면, 회개하시어 요셉과 같이 믿음으로 기쁨의 성탄절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115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