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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3일(수) 13:30, 사당역 4번출구에서 '서울둘레길 5코스'를 출발하였다. 사전에 친구들과 미리 연락을 해야만 한 친구라도 함께 산책을 할 수가 있을텐데, 미리 연락을 못해서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다.
'서울둘레길 5코스'는 사당역(4번출구)을 출발, 관음사로 해서 관악산, 삼성산, 호암산을 거쳐 석수역에 도착을 하는 코스이다. 관악산은 높은 고도로 등반을 위한 산행(정상은 암반)이지만, 서울둘레길 5코스는 '관악산둘레길'을 따라 걷는 코스이다.
'관악산둘레길'은 자연경관이 그런대로 괜찬고, 곳곳의 역사, 문화유적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대부분의 구간이 숲길로써 비교적 난이도가 있는 코스이며, 서울의 산림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코스이기도 하다.
◈ 관음사
관음사는 관악구 남현동 519-3번지 관악산 북동 기슭, 남태령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서울 근교 사찰 가운데 영험있는 관음 기도도량 중의 하나였다. 관음사는 1943년 이후에 쓰여진 '봉은사본말사지(奉恩寺本末寺誌)'에 의하면 신라 진성여왕 9년(895) 도선대사가 세운 비보사찰(裨補寺刹) 중의 하나라고 전한다.
조선 초기에 쓰여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변계량이 관음사의 절경을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어, 이 무렵까지 관음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영조 때 쓰여진 '여지도서'에도 관음사가 보인다. 예로부터 관음사 아래에 있는 승방벌이라는 마을과 그 앞에 승방교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관음사는 작은 규모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철종 14년(1863년) 8월에 행념이 당시 철종의 장인인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시주를 받아 다시 고쳐 지었다. 1975년에 중창을 발원하여 7년여 동안 여러 건물을 차례로 중수하였다. 관음사 입구에는 수령 300여년의 느티나무가 있어 지정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 낙성대공원
관악산 북쪽 기슭 관악구 낙성대동 산 48번지에 위치한 낙성대는 고려시대 명재상이었던 강감찬이 태어난 곳으로, 성역화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그런데 강감찬의 본래 출생지는 지금 공원터의 동북쪽 약 100m 정도에 위치한 봉천동 218번지 14호와 19호 지역이다. 그가 출생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이 생가터를 낙성대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1973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강감찬 생가 일대를 성역화하여 길이 보전하라는 지시에 따라, 서울시에서 이곳 일대 약 1만평을 물색하여 이듬해 6월 10일에 준공하여 공원으로 지정하였다. 공원의 총 면적은 9,500평이고 성역화 지역은 3,500평이다. 공원 동쪽에 사당을 지어 ‘안국사(安國祠)’라 하고 영정을 모셨으며, 정면에는 외삼문인 안국문과 내삼문을 세웠고, 문안에 낙성대 3층석탑을 옮겨와 안치하였다.
특히 조경시설에 역점을 두어 공원 경내에 5만그루의 나무를 식재하고, 공원 입구에 큰 연못을 파서 구름다리를 설치하였으며, 성역화 지역 내에도 낙성교를 두었다. 따라서 광장과 놀이마당 등 휴식처가 마련되고, 관악산 기슭이라는 지리적 위치의 이점과 조화되어 사시사철 찾는 사람이 많아 서울 남부지역의 명소가 되고 있다.
낙성대 3층석탑(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은 봉천동 218번지의 본래의 낙성대터에 있던 것을 1964년에 보수하여 1973년에 현재의 낙성대를 정화하고 옮긴 것이다. 원위치에는 높이 2m의 유허비(遺虛碑)를 세워놓고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하였다. 관악구에서는 1988년 이후 9, 10월이면 '낙성대 인헌제'라 이름한 제례의식과 민속놀이 등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강감찬 장군의 위업을 기리며, 주민화합과 향토애를 고취시키기 위한 축제이다.
◈ 서울대학교
1946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국립 종합대학이다. 대학본부와 14개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진 관악캠퍼스와 의과대학, 간호대학 등으로 이루어진 연건캠퍼스로 나뉘어 있다.
서울대 정문쪽으로 오는 경우,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하차하며, 호암교수회관 및 기숙사를 거쳐 후문으로 오는 경우에는 '낙성대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이 두 지하철역에서 서울대까지는 도보로 약 25~35분 거리이므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 약수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봉은본말사지》에 따르면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김처사(金處士)라는 사람이 초가삼간을 짓고 수도하던 것이 절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후 1880년(고종 17)에 명성황후가 법당을 건립하면서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천주교삼성산성지
삼성산은 관악산의 지산이다. 삼성산은 원효, 의상, 윤필 세 분의 성인이 움막을 짓고 수도에 정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성산에 있는 삼막사(三幕寺)의 유래도 거기에서 나왔다. 그런 삼성산에도 '삼성산성지'라는 천주교 성지가 있다. '삼성산성지'는 기해박해(1839년) 때 효수된 세 명의 프랑스 신부들의 무덤이 있던 자리를 성역화한 것이다.
세도 가문이었지만 안동 김씨는 천주교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폈다. 하지만 뒤이어 집권한 풍양 조씨는 천주교 탄압에 앞섰다. 그렇게 해서 발발한 것이 헌종 5년에 있었던 기해박해였다. 이로 인해 권력의 중심은 풍양 조씨로 넘어갔다. 그런 면에서 기해박해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간의 권력투쟁의 부산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기해박해로 인해 앵베르도 주교(한국명 범세형)와 모방, 샤스탕 신부 등이 새남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주검은 노고산(마포구 노고산동)을 거쳐 삼성산에 묻혔다. 이후 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성역화했고, 지금의 '삼성산성지'가 조성 되었다고 한다.
이 성지는 산 중에 있어서 그런지 조용히 사색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삼성산성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삼성산 숲이라는 소나무 군락지도 있는데, 이곳도 사색하거나 시집을 꺼내 읽기 좋은 곳이다.
◈ 호압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407년(태종 7) 왕명으로 창건되었다. 당시 삼성산의 산세가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 과천과 한양에 호환(虎患)이 많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호갑사(虎岬寺) 또는 호암사(虎巖寺)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고, 다만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義旻)이 상궁 남(南)씨와 유(兪)씨의 시주를 받아서 법당을 중창한 기록이 있다. 1935년 만월(滿月)이 약사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약사전과 요사가 있고, 약사전 내에 약사불과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었다.
◈ 년월일/집결 : 2020년 12월 23일(수) / 2,4호선 사당역 4번출구 (13:30)
◈ 산책코스 : 사당역-관음사-낙성대-서울대-관악산둘레길-삼성산성지-호압사-산림욕장-호암산폭포-석수역
◈ 참석자 : 나홀로
◈ 뒤풀이 : 모듬순대, 갓김치 등에 막걸리 /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