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문학](2016.봄-여름호)<중국조선족 시특집2>11인선-남영전
오정묵 김춘산 리홍규 리호원 한영남
류대식 전경업 리상학 김창영 봉창욱시인
-조선족시단을 주도하는 시인들!! ◇-남영전 오정묵 김춘산 리홍규 리호원 한영남 류대식
전경업 리상학 김창영 봉창욱시인
◆-한국 종합문예지[작가와 문학]에서는 2015년 가을-겨울호부터 서지월 편집자문위원께서
중국조선족 시를 찾아나섰다. 그들의 삶이 묻어있는 시를 통해 동족의 정서를 함께 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문학이 살아있는 한 민족문화의 꽃은 계속
피워 나갈 것이다. 만주땅에 산재해 있는 조선족 시를 한국시단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더없는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중국조선족
시특집> 그 두번째 기힉연재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남영전 시-'봇나무'
외2편 ■오정묵 시-'고향집
비술나무' 외2편 ■김춘산 시-'무라 무라 무라' 외1편 ■리홍규 시-'항아리' 외2편 ■리호원 시-'할빈의 병'
외2편 ■한영남 시-'나는 조선토종이외다'외2편 ■류대식 시-'중앙대가에 앉아' 외2편 ■전경업 시-'저기 울리는 북소리가'
외2편 ■리상학 시-'선인장'외2편 ■김창영 시-'집안 가는 길'외2편 ■봉창욱 시-'오녀산에 올라' 외2편
----- 북방조선족 시인들의 다양한 시적 구가와 성취도
서지월(시인.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공동의장)
두번째 중국조선족 시특집의 시인들은 하얼빈의 젊은 시인들과 그 궤를 같이하는 길림 심양 환인 조선족 시인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아마도 이들이 앞으로 조선족시단의 명맥을 이어가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음을 밝힌다. 한국의 현대시는 눈코
뜰 새 없이 발전을 거듭해 왔는데 이 핑게 저 핑게로 뒤쳐져 왔던 조선적 시인들 가운데 미래가 밝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시 작품 한 편 한 편의 그 면면들을 뜯어보았는데 손색 없을 정도로 부단한 노력의 흔적도 확인 되었다. 이 기회에 맗하고 싶은
것은 한국시인으로 동북삼성 만주땅에 울려퍼지고 있는 과거 저명시인으로는 정지용시인 정도가 아닌가 하는데, 올해부터 남도의 가락으로 힘 있는
서정시를 남긴 송수권시인 이름을 건 시문학상이 하얼빈에서 개최될 것 같다. 이는 순전히 중국 조선족시인들께 새 바람을 불러일으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럼으로서 한국의 좋은 시와의 접근도 원활하게 이뤄지리라 믿는다. 한국 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말로 시를 쓰는 조선족시인들께 경의를
표하며 용기를 주는 일에 서슴치 않을 것을 다짐해 본다.
■남영전 시-'봇나무' 외2편
봇나무
남 영 전
바람의 채찍질에 등이 구불고 눈보라 물어뜯어 옷이 찢겼네
근육은 불거져서 돌뼈가
되고 살가죽 갈라 터져 창상이 되고
하늘은 너에게 공정치 못하건만 너는 하냥 쓰러질 줄 몰라라
돌바위에
뿌리박은 부락들이네 자랑차게 머리 쳐들 산민들이네
봇나무여 봇나무 굴함없고 불멸하는
족속들이여
국내성
남 영 전
황성옛터에 흙모래 씻겨가고 누각은
무너졌구나 푸른 벽돌 붉은 기왓장 여기 저기 잡초에 묻혀 있고 나그네 집 주춧돌도 신음하누나
그 옛날 초연은
꽃구름으로 비껴오고 그 옛날 피보라 봄바람으로 스치이네 살벌한 전화의 이야긴 먼 기억 속에 아련할 뿐… 옛성과 맥풀린
손바닥 위에 지금은 레루와 철교 아파트들 즐비하여라
무거운 력사의 한 갈피
부여잡고 바라볼수록 생각할수록 무너진 국내성 옛터에 가냘픈 나팔꽃 분홍치마 주름마다 붉은 이슬
머금누나.
호태왕비
남 영 전
일월의 성스런 빛발 하백의 영험한 서기 은장도
날카론 서리 활궁의 강인한 탄력 피 젖은 설음과 지성의 향불들이 모여모여 웅위로운 비석으로 우뚝 솟았다
미친 듯한 비바람은 몇해였더냐 끔찍스런 눈서리는 몇해였더냐 포학스런 이끼는 몇해였더냐 루루천년 바람의
칼날도 눈비의 채찍도 이끼의 이발도 뿌리의 발톱도 찍을 수 없었다 부실 수 없었다 씹을 수 없었다
허물 수 없었다 타래치는 불길이 하늘거린들 무너질 수 있으랴 흩어질 수 있으랴 산악인 양 솟아 끄덕 없었다
우뚝 솟아 거연한 너 깨뜨릴 수도 없앨 수도 굽힐 수도 후릴 수도 없어 끈질긴 그 뼈대 우람진
그 심방 하나도 부러워 하나도 탐이 나 온갖 잡귀 쓸어들어 광분하였다 더더구나 잔악한 그 놈 바다 저쪽 끌어다
철통같은 감방속에 가두려 했다
우뚝 솟아 거연한 너 천고풍상 이기고 만고원한 삼키며 묵묵히 묵묵히
세상을 굽어보고 세상을 깨우치며 불굴의 넋을 다시 기른다 영생의 넋을 다시 기른다.
◇-
남영전시인은 중화인민공화국 55개의 소수민족 중에 조선민족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중국문단에서도 큰 별로 평가되는 시인이다. 1971년 중국
문단 데뷔해 길림성 장춘시 성급 대형문예잡지 『장백산』총편 및 길림신문사 사장을 지냈는데 중국 조선족을 위해 공헌한 바도 아주 크다. 특히
남영전시인의토템시는 전중국문단에서 각광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그 빛을 더하고 있다. 여기 게재된 시는 시집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天地人)』,
『백의 넋』에 수록된 작품들로 조선민족의 긍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봇나무는 중국 만주땅 전역에 산재해 있는 자작나무의 일종으로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풍경은 가이 수채화를 방불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지 않고 만주땅 전역에서
눈비바람을 무릅쓰고 꼿꼿히 자신을 지탱해 온 끈질긴 민족성으로 노래하고 있다는게 의미깊게 읽힌다. 조상 없는 후손이 어디 있으며 조국
없는 백성이 어디 있겠는가. 일제치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만주땅에 메아리쳤던 독립군의 함성이 바람 불면 그 봇나무의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로
들려오는 듯, 이제는 그 후예들이 그 터전을 지켜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시인은 깨어있는 눈으로 '근육은 불거져서 돌뼈가
되고 /살가죽 갈라 터져 창상이 되'어도 '하냥 쓰러질 줄'모른다 했거니와 '돌바위에 뿌리박은 부락들이네 / 자랑차게 머리 쳐들
산민들이네'라고 읊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굴함없고 불멸하는 족속들이여'라며 민족성을 봇나무에 비유해 힘있게 표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은 산엣나무인 봇나무가 만주땅을 대변하는 우리 민족성을 지켜나가는 자존의 나무로 인식되는
것도 설움과 애환의 삶에 길들여져 있지 않고는 쉬이 노래 되어 읊조려지는 것이 아니라 본다. 역시, 중국 만주땅 나아가서는 중국 전역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남영전시인의 작품에서 우리는 잔잔한 흐름 같으면서 그 속에 아리랑민족의 기상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이 재삼 확인된다 하겠다.
시 <국내성>에서도 보면 황성옛터나 다름없다고 읊고 있다. 한국 경주에는 신라 천년 왕궁터 월성(반월성)이 있고, 북한의
개성에는 고려 500년 왕궁터 만월대가 있다. 만월대에 관한 시조가 많이 회자되는데 태종 이방원의 스승 원천석의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 석양을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하노라'가 있는가 하면, 스승 목은(牧隱) 이색 그리고
포은(圃隱) 정몽주와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야은(冶隱)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 어저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 <황성옛터>가 있는데 경북
영천 출신 시인 왕평이 글을 짓고 이애리수가 노래한 것이다. 1930년대 전수린이 어느 날 고향인 개성에 들렀다가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달
밝은 밤에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작곡한 노래라 한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이다. 신파극단 취성좌(聚星座)의 서울 단성사(團成社) 공연 때
여배우 이애리수가 막간무대에 등장하여 이 노래를 불러 삽시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나라 잃은 지식인의 심회를 폐허에 빗대어 읊은
노래다.
남영전시인 역시 고구려가 멸망한지 1400여년이 지난 고구려 제 2도읍인 압록강변 집안의 국내성을 둘러보고 읊은 시이인
것으로 여겨진다. '흙모래 씻겨가고 / 누각은 무너졌구나 / 푸른 벽돌 붉은 기왓장 / 여기 저기 / 잡초에 묻혀 있고 / 나그네 집 주춧돌도
신음하누나' 여기에 지금은 북한으로 통하는 철교와 아파트가 즐비해 있는데 시인은 '가냘픈 나팔꽃'이 피어 '분홍치마 주름'을 두른 채
'주름마다 붉은 이슬 머금'고 있다고 그 심경을 나타내어 주고 있다.
시 <호태왕비>는 어떤가. 원표기로는
'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인데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광개토대왕비로 불리는데 더 익숙해 있다. 호태왕비 역시 고구려 흥망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이민족들의 땅이 되기도 했으며 그 역사의 피비린내는 굳건히 견디어 온 호태왕비만이 알고 있고 보면 말이다. 고구려인의 상징이며
조선민족의 한이 서려 있기도 한 것이다. 시인은 '우뚝 솟아 거연한 너 / 천고풍상 이기고 /만고원한 삼키며 /묵묵히 묵묵히 / 세상을 굽어보고
/ 세상을 깨우치며 / 불굴의 넋을 다시 기른다 / 영생의 넋을 다시 기른다.'며 고구려의 혼과 얼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오정묵
시-'고향집 비술나무' 외2편
고향집 비술나무
오정묵
긴긴 겨울밤 밤마다 제 먼저 잉잉 울면서 바람과 추위
앞에 사정하네 오정묵이를
춥게 굴지 말라고
봄이면 낮에 낮마다 나를 기다려 움직이지 않는 비술나무 나지막한 지붕 너머로 긴 목
빼들고 빨리 오라 손 흔드네
가을이면 바람할미 멀리 데리고 사라질까 두려워 자기 먼저 뛰어내리네 지붕
위에 마당 앞에
내 발 디딜 때마다 인사하는 소리 바스락 바스락......
가을의
소리
오 정 묵
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울움소리에 눈 들어 바라보니 제 고향 찾는
나뭇잎소리로다
싸늘하게 부는 가을 바람소리에 머리 들어 바라보니 뚝뚝 떨어지는 찬
빗방울소리로다
민들레꽃 (1)
오 정 묵
어머님 닮아서 하얀 젖 떨어지는 노란
꽃
민족 얼 닮아서 솜털같이 부드러운 새하얀 씨
오늘도 해란강 기슭에 봄이 오면 민들레꽃 노랗게
핀다 민들레씨 하얗게 날린다
두레두레 두레마을을 이루면서 들에 들에 맨들에!
◇- 시 <가을의
소리>는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이 두만강을 건너 이주해 간 북조선 땅이 훤히 바라보이는 그곳, 이민족의 간절한 심사(心事)를 잘 읊어낸
작품으로 더욱 감동적이다. 2006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시집『 가을의 소리』에 수록된 표제시인 <가을의 소리>는 전형적인
서정시이다. 이국정서가 흠뻑 묻어있는 이 시에서 우리는 이민족의 그리움을 읽을 수 있어 더욱 감동적이다. 보라, '남으로 날아가는 / 기러기
울음소리에 / 눈 들어 바라보니 / 제 고향 찾는 나뭇잎소리'라 읊었다. 그 기러기 울음소리는 고향을 찾아 날아가는 행위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제는 늙고 병들어 몸은 못 가도 마음, 혼이라도 고향을 향하는 간절한 이민족의 심사(心事)로 읽히는 것이다. 여기 중첩된 이미지로 나뭇잎
소리가 바스락 거리는데 역시 고향을 향한 간절한 몸짓의 소리인 것이다. 서정시의 비유와 상징의 절창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나아가 '싸늘하게 부는
/ 가을 바람소리에 / 머리 들어 바라보니 / 뚝뚝 떨어지는 / 찬 빗방울소리'라 읊었다. 역시 가을 바람소리와 찬 빗방울소리의 대비가
돋보이는데 여기에서는 정착해 머물러 살아가고 있는 회한의 심사(心事)가 깊이 배어있는 대목으로 읽히는데 가을 바람소리와 찬 빗방울소리가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이주해 살아가는 만주땅 조선민족의 망향을 달래는 가을날인 것이다. 어쩌면 고향에 대한 나아가서는 고국에 대한 간절한
갈망인지도 모른다. 용정의 강덕진료소 소장이기도 하며 중국의 명의(名醫)로 알려진 팔도촌 태생인 오정묵시인은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사이섬(간도,間島) 일대 두만강변 천평벌의 어곡전에서 유기농볍 벼농사를 경영하며 어곡미(중국 황제에게 바치던 볍쌀)를 생산하고 있는가 하면,
용정의 윤동주 생가 왼편 송몽규 문익환 나운규 등 한민족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이 거쳐간 집터를 새로 복원해 문화공간을 조성해 조선민족이 얼과
긍지를 살리는데도 기여해 오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시 <고향의 비술나무>에서는 '내 발 디딜 때마다 / 인사하는
소리 / 바스락 바스락......'거린다고 읊었는데 한국에서는 생소한 이름의 나무이다. 만주땅에서는 어딜 가나 가로수로 줄 지어 서 있는 풍경이
눈에 띄는데 꼭 우산이나 양산을 받쳐든 모양으로 줄기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는게 진풍경이다. 역시 조선민족을 상징하는 나무라 한다. 국적이나
지역특색을 무시하고 마구 이 나무 저 나무를 가로수로 심어놓은 한국의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할 수 있다.
■김춘산
시-'무라 무라 무라' 외1편
무라 무라 무라
김춘산
눈빛 하나마저 그토록 찬란했던 나의
향아! 나의 향아! 손길 하나마저 그토록 따스했던 나의 향아! 몸짓 하나마저 그토록 사랑이였던 나의
향아!
봄날의 소담한 민들레 여름날의 싱싱한 포플러 가을날의 조용한 맨드라미 겨울날의 깨끗한 설중매 아,
향! 고향의 꽃이였던 향아!
나의 정신이였던 사상이였던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였던 향,
향아!
개울가에 앉아서 흐르는 물결 바래며 언덕에 누워서 흐르는 구름 바래며 무라, 무라,
무라.....
흙냄새 깡그리 씻고서 풀냄새 깡그리 씻고서 품냄새 깡그리 씻고서 나이트클럽 상가수..... 값싼
사람냄새 풍긴다는 아, 향, 향아!
네가 없는 시골과 네가 없는 옛날과 네가 없는 나와 네가 없는
너도 이젠 향불을 꺼버리고 무라, 무라, 무라..... 아아, 향! 향아!
사막이 흐르는 건
김춘산
다리 긴 낙타 저문 고개고개 넘어가며 흔드는 방울소리에
목이 흰 모야차
주모가 치맛자락, 자락 날리며 나그네 부르는 술향에 바람이 일면 감동처럼 이랑을 만들고 바람이
자면 추억처럼 주름을 펴면서
천년의 모래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늘의 별과 이야기 하면서
조용히 흐르는 건, 맘에 사랑이 있으면 흐르듯이 맘에 꿈이 있으면 흐르듯이 우리가 서로를 합창
하면서 흐르듯이 우리가 그리움을 달구면서 흐르듯이
사막이 흐르는 건 알알의 모래알이 흐르는 건 아직도 얼지
않은 꿈이 있었서 이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길이 있어서 이다 사막이 흐르는 건 천년의 사막이 흐르는 건
사랑의 사막이 흐르는 건 절로 흐르기 싶어서 흐르는 것이다
◇-원초적인 사랑이라 할까, 풋사랑이라 할까. 가장 티없이
맑고 깨끗했던 지난 시절의 그리움이 애절하게 안겨드는데 실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작품으로 읽혔다. 이런 사랑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삭막한
삶이었겠는가. 아름다운 과거는 추억의 등불같아 꺼지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시를 대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함을 억제할 수
없었는데 조선족 시 가운데 이런 스타일의 시를 처음 대했으며 이처럼 호흡이 큰 영혼을 부르는 듯한, 빨려들게 하는 작품도 처음이었다. 이런
작품은 쉬이 쓰여지는게 아니라 미당 서정주시인의 표현을 빌면 몸서리치도록 겪어보거나 심중의 깊은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퍼올려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작품으로 읽혔다. 중국 조선족문단에서는, 단군 이래 오천년 역사의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미당 서정주의 시를 대하기도 힘들텐데 미당
서정주의 호흡이 큰 시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다지도 살고 싶은가>라는 제목도 유장한 이 시와 같이 볼륨을 배가
시키고 있다는데 놀라웠다. 미당 서정주의 시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다지도 살고 싶은가>에는 섭섭이와 서운니와
푸접이와 순네라하는 네 명의 소녀가 나온다. 그런데 그 네 명의 소녀는 이승의 사람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 옛날의 보리밭길 위에서 기대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여긴 오지 마… 여긴 오지 마… '하며 그 네 명의 소녀가 외친다. 시인은 '내가 아조 가는 날은
도라 오련가?'라고 말하고 있다.
김춘산의 시 <무라 무라 무라>에서는 '향'이 등장하는데 '봄날의 소담한 민들레 /
여름날의 싱싱한 포플러 / 가을날의 조용한 맨드라미 / 겨울날의 깨끗한 설중매'인데 비유도 뛰어나다. '고향의 꽃이였던 향'이었기에 서정주의 네
명의 소녀와 같은 소꼽친구였음엔 분명하다. 그리고 '개울가에 앉아서 / 흐르는 물결 바래며 /언덕에 누워서 / 흐르는 구름 바래며 / 무라,
무라, 무라.....'속삭이는 것이다. 아마도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 같으나 알아차릴 수 있는 서로간의 텔레파시인 것 같다. 그리고, '이젠
향불을 꺼버리고 / 무라, 무라, 무라..... / 아아, 향! / 향아!'라 부르짖는 것 보면, 역시 이승의 '향'은 아닌 듯하다. 단순하지
않는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는 이런 작품이 조선족시인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여간 으아하지 않다.
다른 작품 <사막이 흐르는
건>에서도 현란한 수식을 배제하면서 담담한 문체로 끌고가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읽혔다. '천년의 모래알들이 /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 하늘의 별과 이야기 하면서 / 조용히 흐르는 건'에서 확이되듯 대자연의 조화를, '맘에 사랑이 있으면 흐르듯이 / 맘에 꿈이 있으면
흐르듯이 / 우리가 서로를 합창 하면서 흐르듯이 / 우리가 그리움을 달구면서 흐르듯이' 꿈과 염원이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사막이 흐르는 건
'절로 흐르기 싶어서 흐르는 것'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대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포용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김춘산시인은
1962년 출생,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리사, 연변작가협회 회원, 현재 흑룡강성조선말방송국 문예부장으로
있다.
■리홍규 시-'항아리' 외2편
항아리
리홍규
어떤 여자가 어떤 친구가
나에게 어떤 항아리를 하나 보내왔다
뭘 담으랴? 친구지만 녀자친구가 아닌 그 녀자는 내 물음에 생긋 웃기만
했다
어떤 녀자인 그 친구가 어떤 친구인 그 녀자를 항아리에 버무려넣었다
뭘 꺼내랴? 녀자지만 녀자친구가
아닌 그 친구는 내 물음에 빙긋 웃기만 했다
항아리도 실실 웃기만 하는데
양파의
진실
리홍규
양파의 껍질을 벗긴다 벗기고 보면 청초한 녀인처럼 살결이 희다 조선백자만큼 말쑥하고
윤기가 돈다 그러나 양파를 벗기려면 벗기는 자가 울어야만 한다 이건 여자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그리고 탱탱하고
옹골찬 저 유혹! 한 껍질 또 한 껍질 벗기고 보면 속살은 끝끝내 보이지 않고 눈물만 한바가지 쏟아야 한다
잎 너른 난초와의 푸른 눈맞춤
리홍규
책상 위에 잎 너른 난초 창가 한 쪽으로 너무
기운 듯 싶어 백팔십도 빙 돌려놓았더니 마주보던 얼굴까지 빽 돌아가버렸는데
어느 날 새벽 시를 쓰다
보니 잎 너른 난초들이 나를 향해 생긋 생긋 웃고 있었다
벽을 향해 있는 동안 자기도 내가 많이 보고
싶었다는 듯 푸르게 푸르게 웃고 있었다
◇리홍규시인의 시 <항아리>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게 풍기는 조선족
시인으로는 이색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항아리를 여자에 비유해 씌어졌음이 연상되며 항아리의 존재론적 접근이 신선하다. '녀자지만
녀자친구가 아닌' 이런 역설적 의미도 부여하면서 애매성과 상상력의 확대라는 점에서 여러 말들의 뉘앙스가 시적 울림을 배가시키는 것은 틀림없고
보면 말이다. 시 <양파의 진실>에서는 양파의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이건 여자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는 비유가
신선했으며 <잎 너른 난초와의 푸른 눈맞춤>에서는 평범한 난초와의 일상을 시가 되게 한 재간이 돋보였다.
내가
하얼빈에 가서 저녁 늦은 시간이었는데 저녁을 먹으며 리홍규시인으로부터 깜짝 놀란 말을 들었다. 시를 이야기 하다 보니 한국의 시인 중에
송수권시인의 시를 안다는 거였다.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더니 인터넷을 보고 알았는데 시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더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깜짝 놀랄 일도 아닌데 깜짝 놀란 이유는 한국에서 시를 공부하거나 시를 쓰는 시인들도 송수권시인을 모르는 시인들이 많이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만주땅을 누비며 가는 곳마다 온갖 조선족시인들을 만나보아도 송수권시인을 말하는 시인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시인등단의 등용문으로 최고의
현대시창작강좌로 익히 정평이 나 있는 대구시인학교에서도 처음 입문할 때 송수권시인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내 경험이기도 하지만, 이 기회에
솔직히 말하면 송수권시인을 모른다면 한국에서는 올바른 시인이라 할 수 없고 제대로 된 시인이라 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떤 이는 서지월시인이
송수권시인과 가장 친하니가 하는 말이겠지 또는 송수권시인이 서지월시인과 같은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니까 하는 말이겠지 하고 케케묵고 진부한 말을
할지 몰라도 그게 아니라는데 있다. 여기서 송수권시인이라는 말이 나와서 송수권시인 예를 들어 말해본 것이지 김명인도 모른다면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참고로 한국에서는 1920대 시인, 1930년대 시인, 1940년대 시인, 1950년대 시인, 1960대시인, 1970년대
시인, 1980년대 시인....이렇게 구분해 시인을 언급하는데 송수권 김명인이라면, 한국시단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으며 시를 쓰는 시인이라면
1970년대 시인인 송수권 김명인의 시를 바싹하게 알고서 자신의 시쓰기에 매진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라는 말이다.
리홍규시인은
1963년 흑룡강성 연수현 출생으로 치치할사범대학 수학부를 졸업, 흑룡강성 진달래시인축제 시인상, 흑룡강신문 수필공모 대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수필부문),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시부문), 흑룡강성 정부소수민족문학상, KBS 해외한국어방송대상 등 수상. 연변 심련수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우리가 살며 사랑하는 방식“(한국문학사상사), 시집 “하느님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가“ 를 출간했다. 현재
흑룡강성조선어방송국 부국장, 흑룡강성조선족작가협회 회장, 하얼빈시창작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리호원 시-'할빈의 병'
외2편
할빈의 병
리호원
할빈은 겨울이면 입원해야 했다 3계절 도시를 괴롭히던 사람들은 이제야
흰붕대를 칭칭 감도록 허락했고 꽁꽁 얼어붙은 신음을 경청하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시장은 아픈 도시를 걱정해서인지 강 건너 북쪽
상처난 곳에 얼음 찜질을 허용했다 그러자 한랭치료는 연말부터 이듬해까지 걸렸고 구난요청에 속힌 사람들이 돈을 들고 병문안을
온다 할빈의 병은 고질이 되어선지 50여년째 재발하고 있다
그네 100년 타기
리호원
배가
고프면 그네를 타지 심장의 진폭만큼 인내를 흔들며 100년 굶은 나무에 그네를 타지
서러움이 돋으면 그네를
타지 간이 젖을 만큼 눈물을 흔들며 100년 마른 나무에 그네를 타지
언젠가 나무에 목을 메고도 배고파 죽었을 그
사람 보이지 흔든 만큼 굶었을 100년이 보이지
꽃 한송이 때문에
리호원
꽃이 옷을 벗는
그날부터 향기가 진동하는 그때부터 인간은 봄이 되었노라 코스모스처럼 마른 마음으로 밤처럼 어두운 거울 앞에서 벗다
남은 잎을 들고 닦다 남은 이슬을 안고 꽃을 향해 경례를 한다 화분을 향해 절을 한다 그러나 꽃의 아릿다움은 자신이
자신에게 새운 절박한 생의 비문이었을 뿐 향기는 온 힘을 합쳐 울었다 인간은 모든 능력으로
웃었다
◇-하얼빈의 특수성을 리호원만이 가진 목소리로 잘 표현하고 있는 시가 <할빈의 병>이 아닌가 생각된다.
리호원시인의 시가 갖는 무게가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즉물적인 사고에서 탈피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킨 중후함이 그것이다. 잘 알다시피 하얼빈은
러시아풍이 유별난 도시여서 그런지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가 하면 겨울이면 세계빙등축제를 개최하기에 얼어붙은 송화강 얼음이 몸살을 할 정도이다.
시인은 일축하여 '할빈의 병'라 했다. 명소가 된 하얼빈을 '할빈의 병은 고질이 되어선지 50여년째 재발하고 있다'고 위트있게 표현하고 있는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시 <그네 100년 타기>도 의미심장하게 와 닿은 작품이었다. '배가 고프면 그네를'탄다?
그것도 '100년 굶은 나무에 그네를' 탄다?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거기다가 '흔든 만큼 굶었을 100년이' 보인다고 했다. 평범하지 않는
발상과 의미부여가 시적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유희로 타는 그네가 아니라 그네의 내력이 말해주듯 희노애락을 함께 해 온 그네가
인간에게는 동반자적 존재로 치환한 걸로 해석된다. 100년 마른 나무의 역사란 3대에 걸쳐 끊어지지 않은 혈연의 가족사로
읽혀진다.
<꽃 한송이 때문에>라는 제목을 한 시를 보자. 꽃이 피는 것을 두고 새 세상을 맞은 듯한 시인의 경건함이
묻어있어 중량감을 더하고 있는 작품으로 읽혔다. 여기서 가장 빛나는 대목이 있는데 '꽃의 아릿다움은 / 자신이 자신에게 새운 / 절박한 생의
비문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개화의 화사함도 좋지만 절박한 심정적으로 피어난 꽃이라는 정의가 그것이다. 거기다가 '향기는 온 힘을 합쳐
울었'는데 '인간은 모든 능력으로 웃었다'는 상호 대치되는 표현의 뉘앙스 또한 일품이다. 지기 위해 피는 꽃이라는 개념이 떠올려지듯 그러나
한순간의 생명이 아닌가. 모처럼 고급시를 대한 기분이 새삼스럽다.
리호원시인은 1966년 흑룡강성 태생으로 연변대학에서
현대조선언어문학을 전공했으며 로신문학원을 수학했다. 시편《불멸의 상상》등으로 흑룡강성 제3기 소수민족문학상 1등상을
수상했으며<송화강>잡지 주필을 거쳐 <송화강> 잡지 부총편, 하얼빈시조선민족예술관 촬영부 부장으로
있다.
■한영남 시-'나는 조선토종이외다'외2편
나는
조선토종이외다
한영남
이제부터 나를 부를 양이면 아리랑이라 불러주오
엄마의 배에서 떨어져 나와
강보에 싸일 적부터 숙명처럼 하아얀 색 물려받은 놈 조그만 발바닥 퇴마루에 타박타박 찍을 적부터 엄마아빠
가갸거겨 익혀온 놈 이제부터 나를 부를 양이면 도라지나 더덕이라 불러주오 아무래도 나는 배달의 한 놈이요 단군과
주몽의 피를 이어받은 놈이요 락동강을 젖처럼 빨며 커온 놈인 것을 무궁화 만발한 삼천리에서 춘향과 심청을 자랑하며
론개의 지조에 머리도 숙일 줄 아는 놈인 것을 옹배기속 텁텁한 탁배기에 찝찔한 명태쪽지면 닐리리와 양산도를 섞을 수
있는 놈인 것을 이제부터 나를 부를양이면 가야금이나 퉁소라 불러주오 쪽지게 진 할배에게 엉덩짝도 맞아본 놈 할매의
물함지에 안겨 때도 씻어본 놈 두루마기 치마자락에서 성황당냄새도 맡아본 놈 황소같은 놈 민들레같은 놈 그리고 김치나
썩장같은 놈 이제부터 나를 부를양이면 풍산개나 진도개라 불러주오 아니아니 차라리 나를 조선토종이라 불러주오
꿈에 고향에 갔더라
한영남
꿈에 고향에 갔더라 고향은 꿈에도 어릴 적 추억이기만
하더라
앞벌 가없이 펼쳐진 논에서는 밤마다 개구리 울음소리 노래가 되고 풀이 미여지게 자란 산골짝 실개천은 숨어서
소리로만 가더라
머리들어 하늘을 보면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흰구름 기다려도 버스조차 오지 않는 언덕길이 하루내내
고스란히 낮잠에 빠져 있더라
어디선가 개구장이 오빠가 물쑥을 꺾어들고 불쑥 나타나줄 것 같아 순이가 댕기 매고 뿌리내린
고향 흙에 코를 쿡 박아도 옛말이 아홉 컬레씩
그리고 하오의 고요로움이 엷은 가락으로 들려오더라
꿈에 고향에
갔더라 고향꿈에서 나는 언제나 클줄 모르는 열네살이더라
거기에 추억은 울바자처럼 서
있었네
한영남
눈이 내리고 있었지 동화만큼이나 아름다운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어 그리고
밤이였지 아무에게라도 전화를 하고 싶은 그런 푸근한 밤이였지 열어놓은 기억 속으로는 옛날 아슴한 이야기들이 청첩이라도
받은 듯이 달려오고 겨울밤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지 그속을 나는 아이처럼 환성을 지르며 달려가고 그래서 나는 다시
그 손가락을 빨던 소년이 되였지 괜히 네 생각이 나서 나는 너에게 눈줴기를 뿌리고 너는 고드름을 창처럼 꼬나들고
나를 향해 달려왔지 강아지가 갑자기 부끄러워 고개를 드니 더없이 맑은 밤하늘에서는 별들이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 그래서 울었어 시집 못간 가시내처럼
한영남의 시에서 어찌 보면 놀라울 것도 없어 보이지만 놀라운 것은 분명
만주땅에서 태어나서 살아온 조선족 시인인데 <나는 조선토종이외다>, <꿈에 고향에 갔더라>, <거기에 추억은
울바자처럼 서 있었네> 이 3편에서 보아도 한국과 조금도 다름없는 전통적인 삶의 정서와 풍경 그대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민족성이
있고 그 민족의 문화가 꽃을 피운다는 것, 그 어떤 것으로도 말할 수 없는 그리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민족의 고결한 숨결이 아닌가.
그 민족의 전통과 풍습이 그 민족의 자산이라는 것, 비록 잊혀져 가지만 힘겹게 붙들고 있는 자가 시인이라는 것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한국에서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울바자'인데 우리 조선민족의 문화유산 다름 아니리라. 울타리를 말함인데 거기 강낭콩 줄기도
기어오르고 잠자리도 놀다가고 남풍도 불어와 넘고.....이 얼마나 정겨운 우리네 시골 채마밭이 있는 풍경인가. 한영남시인은 추억이 울바자처럼 서
있었다고 읊은 것이다. 그것도 눈이 내리는 날의 풍경 속에서 '옛날 아슴한 이야기들이 / 청첩이라도 받은 듯이 달려오고 / 아이처럼 환성을
지르며'말이다.누구나 잘 아는 정지용시인의 시 <향수>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읽혔다.
한영남시인은,1967년 길림성 안도현
출생, 중고시절부터 시를 발표했으며(나하고 같음), '갈대는 저렇게 싱거워가지고', '환절기에 건강을 주문받습니다', ‘굳이 네가 불러주지
않아도 수선화는 꽃으로 아름답다’, '무깍지동네', '우리 서로 얘기 좀 합시다', '보리밭은 바람 아니더라도 설레이는것을' 등 시, 수필,
평론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해온 시인이다. 연변일보 제일제당상,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중국조선족동시
탐구상, 중국조선족수필상, 도라지장락주문학상 등 다수 수상했으며, 시집 <하나님 눈을 너무 깊이 감으셨습니다>출간했다. 중학교 교원,
『문학과예술』잡지 편집, 연변인민출판사『별나라』잡지사 편집, 흑룡강신문사 기자를 거쳐 현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성작가협회 조선족창작위원회 회원. 중국연해조선족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류대식
시-'중앙대가에 앉아' 외2편
중앙대가에 앉아
류대식
중앙대가에 홀로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본다 구름은 바람따라 흐르고 사람은 구름따라 흐르는데 내가 아는 사람 하나도 없고 나를 알 사람 또한 하나도 없어라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젊은 사람 늙은 사람 모두들 마음속에 산같은 이야기들을 담았으련만 중앙대가를 거니는 발걸음 저리도
가벼울까 가벼운 그 발걸음에 중앙대가는 항상 넉넉하다
천남지북에서 모여온 사람들의 흐름 순간순간 스치는
인연이라도 서로서로가 있기에 세상은 항상 차 있고 서로서로가 있기에 세상은 낭만이 넘쳐나고 서로서로가 있기에 세상은 홀로 있는
사람도 외롭지 않다
바람은 구름따라 흐르고 사람은 바람따라 흐르는데 오고가는 사람들 모두 다 내 풍경이요 나 또한 그
누구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
빨래하는 녀인 -그림 "빨래하는 녀인"을 보고
류대식
하아얀 녀인이 하아얀 달빛 아래 토닥토닥 빨래를 하고 있다 어둠이 방치 아래서
산산히 부서진다
하아얀 녀인이 하아얀 냇가에서 참밤참방 빨래를 하고 있다 달이 손 아래서 산산히
조각난다
하아얀 녀인이 하아얀 냇가에 하아얗게 앉아 토닥토닥 참방참방 뭔가 자꾸 멀리멀리 떠나
보내고 있다
어둠
류대식
불을 끄니 어둠이 목을 조인다 아악ㅡ 주먹으로 어둠을 치니
주먹이 아프다 발길로 어둠을 차니 발이 아프다 잇빨로 어둠을 물어뜯으니 잇빨이 시리다 아악ㅡ 벌컥 불을 켜니 어둠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주먹이 아플 뿐이다 발길이 아플 뿐이다 잇빨이 시릴 뿐이다. 어둠이 유리창 너머에서 멀거니 집안을
들여다 본다
◇-만주땅 흑룡강성의 성도 하얼빈시의 중국 10대 보행거리의 하나인 중앙대가를 아는가. 청석으로 짜맞추었는데
러시아풍이 짙게 풍기는 이국적인 도시이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의사가 이토오히로부미를 적격한 곳이기도 한데, 중앙대가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떠올려 보는 아주 노련한 작품으로 읽혔음을 밝혀둔다. 류대식시인의 <빨래하는 녀인>도 보라. 시를
빈틈없이 참 잘 쓰고 있지 않은가. 익숙한 언어이고 표현이지만 필요한 말만 적재적소에 배채한 능력이 돋보이는데 새로운 것은 이 한 편의 시가
열어주는 울림인 것이다. '하아얀 녀인이 / 하아얀 냇가에 / 하아얗게 앉아'라는 동의어 반복도 생동감을 주지만 '토닥토닥 참방참방 / 뭔가
자꾸 /멀리멀리 떠나 보내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 와서 절창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시 <어둠>에서도 보면, 평범한 대상인
어둠을 끌고 와 시의 소재로 삼았지만 어둠과의 전쟁이랄까 하여튼 그냥 평범하게 읽히는 시가 아닌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경북 포항의 일간신문인 경북일보「아침시단」에 매일 시 1편씩을 4년 가까이 해설과 더불어 소개한 적이 있는데, 매일
시 1편씩이니까 1주일에 5일 5편으로 한달에 20편의 시가 신문지상에 소개되었다. 한국의 시인들 작품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특히 만주땅 등
중국에 산재해 있는 조선족 시인들 시를 100 편 이상을 소개한 것 같은데 조선족 시인들 시가 발표될 때마다 참으로 반응이 좋았다. 왜냐하면
한국시인들 시야 그게 그건데 조선족 시인들 시를 대할 때 다들 찡하게 와 닿더라는 것이었다. 즉 조선족들 생각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과 조선족 그들의 삶이 시속에 그대로 배어 있어 훤히 들여다 보는 것 같더라는 공감을 느낀 것이었다. 수많은 조선족시인들
시 한 편 한 편을 소개하며 유별나게 한번 만나 보았으면 하는 시인이 있었으니 바로 하얼빈 유대식시인이었다. 물론 류대식시인의 시
<중앙대가에 앉아>를 대하고부터다. 하얼빈을 여러 번 간 경험도 있기에 내가 중앙대가를 잘 알기도 하지만, 여느 대도시에서나 인파의
물결이라는게 있기 마련인데 젊은 시인인 것 같은데 이토록 유장한 가락으로 시를 쓰는구나 하는 놀라움이 그것이었다. 물론 이밖에도 김혁일 양아청
같은 시인도 떠오른다. 내가 그들 시에 매력을 느꼈기에 어디 사는 조선족시인인지는 아직 몰라도.
류대식시인은 1967년 흑룡성성
오상시 출생으로 연변대학교 조선언어학부 본과,석사 졸업, 흑룡강성 해림시조선족고등학교 교원을 거쳐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총편조리 역임했으며 현재
흑룡강신문사 기자로 있다. ’제1회신인평론문학상’ 등 다수 수상했다.
■전경업 시-'저기 울리는 북소리가'
외2편
저기 울리는 북소리가
전경업
저기 울리는 북소리가 정녕 천만년 태고의 울음소리더냐
저기 울리는 북소리가 정녕 우리들의 혈액을 뿜어주는 심장의 박동소리더냐
가고 오는 날새들의
흐느낌 소리는 여운의 떨림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데
발뿌리를 땅에 묻어둔 만리장성을 가슴 속에
쌓아둔 무리들의 눈동자에는 서릿발 창검만 난무한다.
과정
전경업
저기 지나가는 까마귀야 너는 황진이의 소리라도 얻어듣고 오느냐 훨훨 나는
비둘기야 너는 화담선생의 콩이라도 주어먹고 오느냐 울어우는 개구리야 너는 만석선사의
한숨소리라도 받아듣고 오느냐
별들이 가물대는 비술나무 아래서 너와 나와 그와 땅과 바다와 하늘과 우주와
억조창생을 하나하나 주어서 바늘귀에 꿰보면 오호라 그것들은 한방울의 향수로 녹아 눈동자에 고여라
춘설(春雪)
전경업
불길처럼 치솟아 우뢰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하늘을 쪼개여 꿈의
나라로 탈출하려던 그 붉은 피 랑자한 몸부림은 저렇게 한송이 함박눈 눈꽃송이로밖에 피여날 수
없었나이까
님이시여 님이시여 짓쪼아서 가루가 되여도 한 가닥 넋만은 살아남아 가냘프게 죽지도
못하는 님이시여
그래도 식지 않는 불후의 욕망은 아득히 도망쳐가는 안개마냥 다시 돌아와
저렇게 몸부림하는것이나이까
님이시여 님이시여 불러도 들어주지 못하는 님이시여
◇-내가 길림의
전경업시인을 만나자마자 우람한 체구와 두드러진 얼굴이 저 고구려 광개토대왕이나 백제의 계백장군을 떠올렸음을 부인할 수 없음은 왜일까. 거기다가
전경업이라는 이름을 대했을 때는 또 조선시대 후기의 명장이자 무속신앙에서 섬기는 임경업 장군(林慶業 將軍)이 연상되었다. 임경업장군은
광해군 10년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당시 친명반청(親明反淸)의 사회 분위기와 함께 우국충정에 뛰어난 충신이자 무장으로 평가받았으나. 심기원의
모반사건과 관련되어 인조 24년에 친국(親鞫)을 받던 중 김자점(金自點, 1588~1651)의 명을 받은 형리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불운한
장군이었으나 민간에서는 임경업장군 신이 흔히 잡귀를 쫓아내고, 병을 낫게 하며 무병장수와 안과태평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으며 또한 임경업
장군은 무당들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박수(남자무당)는 무신도 형태로 임경업장군 신을 모시며, 만신(여자무당)은 임경업장군신의 상징으로
‘고비전’이라 하여 종이를 오려 만든 것을 신당의 벽에 걸기도 하는 풍속이 전해내려 온다. 하여튼 풍모가 대단해 보이는 전경업시인은 이와는
상관 없는 듯 한국으로 말하면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걸출한 조선족 작가다. 시를 쓰며 평론도 하고 서예에도 일가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길림시궁중예술관(길림시조선족문화관) 관장이기도 하다.
시 <저기 울리는 북소리가>에서 보면 시인의 풍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듯 장엄한 북소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저기 울리는 북소리가', '천만년 태고의 울음소리'이어야 하고 '우리들의 혈액을 뿜어주는 / 심장의
박동소리'이어야 하는데, 가슴 속에 만리장성을 쌓고 '서릿발 창검만 난무'하는 세상이니 그 통탄을 질타하고 있다. '북소리'의미를 효과작으로
등장시킨 작품이다. 정의는 사라지고 불의가 만연한 세상임을 넌지시 보여주는 시세계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시 <과정>에서는
'저기 지나가는 까마귀야 / 너는 / 황진이의 소리라도 / 얻어듣고 오느냐 / 훨훨 나는 비둘기야 / 너는 화담선생의 콩이라도 /
주어먹고 오느냐'에서 얼비치듯 시인의 풍류관도 엿보인다.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선생을 모르는 이 없다는 증명도 되거니와 그들의 삶이 얼마나
풍류적이였는가 말이다. 이렇듯, 시<춘설(春雪)>에서는 '짓쪼아서 가루가 되여도 / 한 가닥 넋만은 살아남아 / 가냘프게
죽지도 못하는 님이시여' 에서 보이듯 한(恨)도 많은가 보다. '다시 돌아와 저렇게 몸부림 하는' 춘설인 것이다. 비유가 아주 돋보이는 구절로
읽혔음을 밝혀둔다. '님이시여 / 님이시여 / 불러도 들어주지 못하는'것임을 어쩌랴.
■리상학
시-'선인장'외2편
선인장
리상학
사막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매마른 젖가슴 짜고 짜서 한방울
두방울 돋아나는 젖으로 동년의 꿈을 키우셨습니다
사막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장알 박힌 두 손으로 엉덩이 툭툭
쳐주시며 사나이 성품을 키워주셨습니다
사막은 나의 스승입니다 갈증으로 불타는 가슴에 인내의 뿌리 생존의 법칙을
심어주셨습니다
사막은 나의 고향입니다 선인들의 유골 가슴으로 묻고 후손들의 가슴에 꽃다발 안겨주며 삶의 도리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나는 사막의 아들입니다
민들레
리상학
소박한 오솔길
가에 뿌리 내린 외로운 삶이였습니다
비바람에 찢긴 상처 흙먼지로 싸맨 힘겨운 삶이였습니다
그리움에 타들어가는
아픔 가슴속에서 늘 쓴맛으로 소용돌이쳤습니다
오랜 세월 남 모르게 흘린 눈물로 곱게 피워올린 노란 태양 한
송이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였습니다
보름달
리상학
님이 오시려나 보다 달이 둥글게
웃는다
님 떠나시던 날 님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계수나무 한그루 심었습니다 달은
님 오시는 날
님께 맛있는 음식 대접하려고 옥토끼 한마리 길렀습니다 달은
록음 짙은 계수나무 바라보며 살찐 옥토끼
가슴에 안고 홀로의 외로움 얼마나 찢었을가 홀로의 그리움 얼마나 삼켰을가 달은
아, 님이 오셨나 보다
달이 둥글게 웃는다
◇-시인의 삶이 평범하지 않듯 바라보는 시각 또한 예사롭지 않음이 확인 되는데 라상학시인의 시가 잘
말해주고 있다. 시인이 '나는 사막의 아들입니다'라고 명명하고 있듯이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이 자식을 키우고 가문을 이으며 살아온 삶이 얼마나
지난했던가. 거기다가 전쟁을 맞았거나 흉년이 들거나 했을 때는 허리마저 휘어졋고 보면 <선인장>이 지탱해 온 삶 다름 아닌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시인은 '후손들의 가슴에 꽃다발 안겨주며 / 삶의 도리를 일깨워 주셨습니다'라는 교시적인 비유도 눈에 띄는데 이처럼
시인은 그 시대의 깨어있는 존재임엔 분명한 것 같다. 시 <민들레> 역시 '소박한 오솔길 가에 / 뿌리 내린 외로운 삶'이며,
'비바람에 찢긴 상처 / 흙먼지로 싸맨 힘겨운 삶'이다' 거기다가 '오랜 세월 / 남 모르게 흘린 눈물로 / 곱게 피워올린 / 노란 태양 한
송이'라 했으니 옛말로 고진감래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작품으로 읽혔다. 시 <보름달>에서도 보면, 보름달로 차오르기까지의 정성과
노고의 산물이라는 것, 그래서 드디어는 '아, 님이 오셨나 보다 / 달이 둥글게 웃는다' 이렇게 미완에서 완성에 이르는 궤적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리상학시인은 길림시 도라지 잡지사 주필로 있다.
■김창영 시-'집안 가는
길'외2편
집안 가는 길
김창영
유리왕이 지나온 길을 따라 2천년 지난 세월 후 나혼자 그 길
간다 아직도 생돼지 울음소리 들려오는 듯 꿀꿀꿀꿀..... 하늘의 뜻이런 듯 제사상 제물운명 벗어나 어디론가 길 떠난
생돼지 나보다 먼저 길 떠난 그 생돼지 숲에서 튀여나올 듯 물속에서 튀여나올 듯 혼강을 허리에 휘감고 가다가 혼강과
갈라져 루하(짤붉)와 손잡고 가다가 압록강이 먼곳까지 마중 나와 반기여준다 생돼지 울음소리 하늘로 올라가고 나만 홀로 남아
텅 빈 하늘 날으는 까마귀 울음소리 손바닥 위에 받아쥔다
서탑. 51
김창영
여기 탑아래
서서 귀 기울이면 평안도 경상도 함경도 절라도뿐이 아닌 온갖 말씨들이 다 모여 꿍시렁꿍시렁 말씨잔치 벌린다
서울 가면 서울말씨 평양 가면 평양말씨 저들 끼리끼리 놀지만 여기서는 친구하며 다정하게 보낸다
언제 우리 여기 탑아래 모여 팔도 말씨자랑 벌리고 서울 평양에서 두분 특별 손님 모셔와 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 보여주면 좋을까 몰라
서탑. 54 -심양사람들
김창영
탑 아래서 해와
별의 이야기 듣는다
때론 "경회루"에 들려 두부 넣고 끓인 청국장 맛을 보고 "묘향산"에서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그려본다
탑속에 내 집 있는양 탑 아래 서면 몸과 맘 편안해지고 외출시에는 탑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든다
언제부턴가 심양사람들 가슴속에는 탑 하나씩 서있다
◇- 시
<집안 가는 길>을 보면 재미있게 읽힌다. 돼지를 키워 나라의 제사에 쓰려고 울에서 꺼내다가 그만 돼지를 놓쳐버려 그 생돼지가 달아난
곳이 지금의 압록강변 집안땅이였다 한다. 도망쳐 달아난 생돼지를 잡으러 뒤쫓아갔더니 비옥한 땅이라 신하들의 청을 받아 당시 제2대 유리왕이
도읍을 옮겼는데 이래서 집안땅이 고구려 제2수도가 된 것이라 한다. 집안이 고향인 김창영시인은 이 길로 고향에 가고 있다. 김창영시인이 명언처럼
한 말이 생각난다. 조상 산소나 지키며 무사안일하게 살 게 아니라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비바람 휘몰아쳐도 넓은 세상에 나가 꿈을 펼쳐보겠다고
해 고향안 집안을 떠나 큰 도시인 심양으로 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연작시인 <서탑>을 보자. <서탑> 은
어떤 곳인가. <서탑>이 부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김창영시인의 의해 <서탑>은 이제 <서탑> 그 자체가 아닌
그 우위의 정신사로 자라잡고 있는 것이다. <서탑.51>에서 잘 말해주고 있는데 서탑은 '평안도 경상도 함경도 전라도뿐이 아닌 /
온갖 말씨들이 다 모여 / 꿍시렁꿍시렁 말씨잔치 벌'이는 곳이다. 즉 1945년 8.15 해방 전 한반도에서 건너간 조선민족들이 터를 잡아
살아온 곳이 아니던가. 또한 시인은 <서탑.52>에서, '이 세상 살아가는 법 정해져 있을가마는 / 하늘아래 말없이 서있는 탑을 보면
/ 참 희한도 하다. 무거운 가슴이 탁 틔이고 / 머리속 어지러운 생각들이 한곬으로 흐르고 / 그럼으로 새롭게 내 령혼을 깨우는 / 탑의 무언이
진실히 진실히 들리나니'라 읊고 있다. 그것이다. 조선민족들이 터를 잡은 상징적인 지명인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때론
"경회루"에 들려 / 두부 넣고 끓인 청국장 맛을 보고 / "묘향산"에서 찔레꽃 붉게 피는 / 남쪽 나라 내 고향 그려본다'(<서탑.
54>) 고 읊고 있다. 이 모두가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는 조선민족의 삶의 체취이며 정서인 것이다. 시인은 '탑속에 내 집 있는양 /
탑 아래 서면 / 몸과 맘 편안해지고 / 외출시에는 탑을 떠올리며 / 잠자리에 든다'(<서탑. 54>) 고 했는데 참으로 설득력 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심양사람들>이란 심양 서탑부근에 터잡아 살아온 조선민족 그 후예들을 일컫고 보면
말이다.
김창영시인은 1967년 요녕성 집안 태생으로 연변작가협회 이사, 료녕성작가협회 회원, 심양시조선족문학회 회장을 맡았는가
하면 료녕조선문보 기자로 있다.
■봉창욱 시-'오녀산에 올라' 외2편
오녀산에 올라
봉 창
욱
서문구 주춧돌 꿈 안고 살아가는 고구려인 물 마시던 천지 마르지 않네
초병처럼 량창 지키고
섰는 우거진 억새풀 사이 청태 낀 연자돌 가볍게 옛사람과 숨소리 나누네
세월의 흔적 묻은 성벽 아래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나뭇잎들 뛰어내리네
어머니 젖줄기 ㅡ백두산폭포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봉 창
욱
당신은 햇살과 웃으며 달빛과 속삭이며 나의 피부로 스며든다
당신은 바위와 살짝
스치며 용암과 분신쇄골 되며 나의 마음으로 흐른다 당신의 흐르는 소리에 따라 가슴을 땅에 대고 머리
위로 두 손 펴 눈을 감고 하늘을 고이 받든다
나에게 어제가 내일이라면 봉 창
욱
만약 나에게 어제가 내일이라면 할아버지께 고사리손으로 먹을 더 갈아 올릴 것이고 천자문도 외웠을 것이다 만약
나에게 어제가 내일이라면 할머니 따라 한번 더 산나물 캐러 갈 것이고 약초 캐어 할머니께 약 한 첩 더 사 드릴
것이다.
만약 나에게 어제가 내일이라면 고생 많았던 아버지 품에 단한번이라도 안길 것이고 인생의 고됨도 덜어 줄
것이다 만약 나에게 어제가 내일이라면 지팡이 디디며 마을끝까지 바래주는 어머니를 단한번이라도 꼭 안아 줄
것이고 치매에 앓았던 어머니 몸 한번 더 씻어올릴 것이다 만약 나에게 어제가 내일이라면 숨 막히는 실(实)이 꿈처럼 사라지는
허(虛)로 득(得)과 실(失)의 몸과 마음 가볍게 봄의 새싹같이 뾰조뾰족 여름의 한 점의 바람같이 솔솔 가을의
낙엽같이 사르르 한겨울 소리없이 내리는 눈같이 보송보송
◇-내가 어느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민족의 숨결을 노래하지 않은
시인을 진정한 그 나라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라고 힘주어 피력한 바가 있다. 이렇듯 만주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시인치고 백두산이나
압록강 두만강에 대한 시를 안 써 본 시인 잘 없을 정도로 한번쯤은 써 본 것으로 안다. 그만큼 중국 국적을 가지고 중국어문화권 속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의 애향심과 민족애가 절실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하며 다행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는 뭐가 그리 다들 잘 났는지 토속적이거나 전통적이거나
민족성 짙으면 캐캐묵은 것인 양, 아니면 과거사를 노래한 듯 진부한 양 업신여기는 풍토이며 서구문화나 서구영향 받으면 그게 세계화이고 참신해
보이는 것인 양 떠들어대며 국적불명의 시를 마구 쏟아내고 있는 현실이니까 말이다. 그런가 하면, 말로만 대고구려, 우리 한민족 역사의 땅!
하며 나발만 불어대었지 주몽이 세운 고구려 제1도읍 산정인 오녀산을 올라 보았으며 알고나 있을까. 광개토대왕비에도 새겨져 있듯이 추모왕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오녀산이 원표기는 졸본성(홀승골성) 서성산이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는가. 중국역사의 현장으로 바뀜과 동시에 오녀산으로 둔갑해버린
뼈 아픈 사연도 알고 있는가 말이다. 그리고 이곳 요녕성 환인땅이 지금은 만족자치현이 되어있는 사실도 입맛을 씁쓸하게 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집안현 고구려 유적을 한번 답사하는 것이 김부식의 <삼국사기> 고구려사 만번 읽은 것 보다 더 낫다”라 했지
않은가.
요행히 조선족학교 봉창욱시인이 살고 있어 이렇게 고구려 제1도읍이었던 오녀산에 올라 바뀌어버린 역사와 가버린 세월의 무상을
시로 잘 표현하고 있다. 주춧돌도 그대로 남아있고 '고구려인 물 마시던 천지'도 마르지 않고 '청태 낀 연자돌'은 '옛사람과 숨소리 나누'고
있다고 읊고 있다. '세월의 흔적 묻은 성벽 아래로 / 바람처럼 구름처럼 / 나뭇잎들 뛰어내리'고 있다는 현장감 있는 사실적 표현도 실감을
더하고 있다. 지금은 가고 없는 왕조이지만 추풍낙엽처럼 쓸쓸키만 한 풍경이다. 시 <어머니 젖줄기>에서는 백두산폭포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읊고 있다. '당신의 흐르는 소리에 따라 / 가슴을 땅에 대고 / 머리 위로 두 손 펴 눈을 감고 / 하늘을 고이 받'드는 외경심이
돋보인다. 또한, 시 <나에게 어제가 내일이라면>에서 보면, 조선민족의 긍지가 깊게 자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할아버지께
고사리손으로 먹을 더 갈아', '할머니 따라 한번 더 산나물 캐러', '약초 캐어 할머니께 약 한 첩 더 사 드릴', '지팡이 디디며
마을끝까지 바래주는 어머니' 등에서 보듯 구구절절 가족사를 중요시 여겨 온 우리 민족의 가족애가 샘물 솟는 듯하다.
봉창욱시인은
1963년 본계 환인 태생으로 1987년 본계사범대학 졸업해 2011년 요녕신문 '압록강부간'에 시 <오녀산> <해인사 차 한
잔> 등으로 시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료녕성예술사진작가협회, 본계시사진작가협회 회원, 환인현사진작가협회 이사, 그리고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작가회 상임시인, 환인만족자치현 조선족고중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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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남영전 오정묵 김춘산 리홍규 리호원
한영남 류대식 전경업 리상학 김창영 봉창욱시인 등 중국 조선족 11인선을 선보였다. 이제는 중국 조선족 시인들의 시작품도 한국 시단의 시인들과
어깨 나란히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먼저 할 일은 작품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 선험 되어야 할 줄 안다. 한국의 진정한 좋은 시인들
그리고 뛰어난 시도 참 많은데 그쪽으로 귀를 모아야 발전이 있을 줄로 안다. 작품활동이 너스레를 떨거나 시가 허드레물건이 아니잖은가. 한국에서
중국 조선족시인들 대상으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지면이나 그룹에서 신인상들을 수여하는 등 마치 한국시단과 교류의 첩경인 양 생각하기 쉬운데,
그냥 교류차원에서 놀다 가거나 담소 나누는 자리는 몰라도 진정한 작품활동에 있어서는 심사숙고 해 볼 필요가 있을 줄로 안다. 이 지면을 위해
작품을 보내준 조선족시인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 서지월시인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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