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광원의 정신
2003.08.16. 김준호 선생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공동번역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6장 20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쫒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다 보복하지 말라. 그러나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들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말라.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그만큼만 보겠습니다.
동광원의 정신과 혹은 내부에 일어나는 한 사건을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여기 강당 뒤에 가보면 무덤이 있고 그 무덤 비석에 ‘순교 사진관 댁의 묘.’ 그렇게 써있는 팻말이 있습니다. ‘주후 1950년 10월 4일 소천’ 그런 비문을 지금 읽어보고 내려왔습니다. 그럼 사진관 댁의 사연을 지금 말씀드리면 한 말씀이 첫 말씀이라고, 동광원 초창시기의 정신과 그 모습을 그렇게 직감하시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육이오를 중심으로 전후니까 육이오 전으로 어느 날, 주일날이올시다. 그럼 사진관부인은 화학산 소반바위에서 보모 직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럼 학생들은 한 5명, 선생님은 김 수혜 선생, 그런데 주일날이면 저는 방산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을 사람들이 다 소개를 당해버리고 거기에 정 면장 이라고 정규주의 어머니의 남동생이 면장인데 밤에는 밤손님들이 습격을 하고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모두 집을 내어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고아들 한 그때 10명, 저, 귀주 어머니 그렇게 자기 남동생의 집이니까 화순군 도암면 중촌에 머물고 있다가 결국은 더 안전지대로 방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주일을 보고 있는데 사진관 어머니가 오셔서 주일예배를 같이 봤었습니다.
오후에 이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선생님 조금 뵙시다. 그래서 제가 면담을 했습니다. 그때는 보릿고갭니다. 보리가 아랫마을에는 익어서 누렇고 그 소반바위는 아직도 파랗습니다. 등고선이 아마 칠백고지는 될 것입니다. 아마, 어제 된 일을 설명하세요. 선생님 제가 어저께 이렇게, 이렇게 지냈어요. 그 사연 그 아이들 선생님은 양식이 떨어졌다고 그제 하산하시고 아무리 해가지도록 기다려도 선생님은 아니 오시고 아이들은 배가고파 하기 때문에 그제 선생님은 떠나시고 어제 일이지요. 너무 아이들이 배가 고프겠다 싶어서 자기 평생에 처음으로 그 풋보리를 땄답니다. 아이들 5명 어머니까지 6명 밥인데 눈으로만 어려서 봤던 것을 처음으로 실천해 봤는데 보리를 따놓고 생각해 보니까 이걸 어떻게 해서 아이들 밥을 만드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걸 빨리 말려야 쓰겠다 싶어서, 솥에다 불을 때고 그 보리 파란송아리를 볶아가지고 손으로 비비니까 속안에 빠지지 않습니까?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런데 너무 적어요. 식구가 6사람인데 6홉이나 되어야 밥을 할 텐데 이것이 반 홉 거리나 될 것인데 이것을 가루로 만들어야 쓰겠다. 두 번만 경험이 있어도 알 텐데 처음이기 때문에 맷돌이 있어요.
거기 소반바위에, 그럼 맷돌질을 해야 하는데 물이 퉁퉁 불어있기 때문에 다시 솥에다 넣고 말리지요. 어느 것은 타고 어느 것은 안 마르고 그렇게 해서 억지로, 억지로 불을 때가지고 손으로 비빈보리를 말렸습니다. 그래가지고 맷돌에 넣어 갈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양이 적어요. 그래 물을 많이 붓고 보리죽을 쑤었습니다. 아이들도 한 그릇 주고 어머니도 한 그릇 잡수셨다는 말을 하십니다. 그 말할 때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자 집에 시집가서 종을 부리고 살던 생활인데 갑자기 이 선생님을 산에서 만나가지고 감화를 받고 비단옷 벗으십시오. 벗고 면 베옷을 입었을 때 남편은 그 젊은 30대 청년인데 갑자기 부인이 화장을 않고 무명옷을 입은걸 보고 미쳤다고 얼마나 두들겨 패는지 참 온몸이 헌 누덕지가 되도록 맞으시고 매일 때리고 또 때리고 어제까지 고 피아노 쳐주고 비단옷 입고 화장하던 아내가 갑자기 화장을 걷어버리고 누더기 옷을 입고 그러니까 그것을 강제로 항복을 받을 량으로 그러니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석 달 반년 얼마나 매일매일 매를 맞고 그래도 비단옷을 안 입기 때문에 결국은 나가라. 그래서 가정에서 추방을 당해가지고 그러고 이 선생님을 찾아서 거기 이 선생님 고향 화성군 도암면 그 산중을 찾아왔는데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지금 소반바위에 어린 아이들이 있으니까 가서 어머니가 되십시오.
그래 보모가 되어가지고 산에 오신지 불과 한 몇 달 되었어요. 그런데 육이오 전이지만 해방 후에 양식이 참 귀한 때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양식을 구하러 가서 오시지 않고 아이들은 배가고프기 때문에 그 풋보리를 따가지고 처음으로 해본 것이지요. 두 번만 해봐도 요령이 생겼을 텐데 처음으로 해봤기 때문에 양이 부족하고 그래서 그때 왜 그 이야기를 하시냐하면 아, 이 못난 자식은 내가 선생님을 원망 했어요. 왜 어제 죽을 쑤기 위해서 물이 없는데 그 소반바위에 가보시면 압니다. 물 나오는 곳이 부엌에서 한 백 미터 내려갑니다. 절벽입니다. 애들도 배가고프지만 어머니도 배가 고파가지고 그 물을 양동이에 떠가지고 올라오는데 어떻게 다리가 떨리던지 우리 선생님이 어린 아이들 가리킬 때 어머니가 밥하면 물 좀 떠다줘라. 이렇게 지도했다면 이 어려운 때 아이들이 물을 길러다 주면 좋으련만 너무 애기들을 생활을 안 가르치고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종일 먼 산만 보고 앉아있으니 이건 교육이 부족하다. 나는 이렇게 선생님을 원망한 죄인이다. 그 말을 하시기 위해서 그 말을 하세요. 다른 이야기가 아니고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건 내가 고생을 감당해야 할 텐데 애기들이 물 좀 떠다주면 내가 밥하기 쉬우련만, 어쩌면 저 아기들을 먼 산만 보고 앉았을까? 그 마음에 시험이 컸기 때문에 내가 자복을 하지 않고는 못 올라가겠고 고 사연을 이야기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연을 들어보면 그때 그 상황이 얼마나 곤란했으며 배고픈 생활을 했으며 또 고난이 막심했으며 그 상황이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렇게 올라가시고 그날은 세월이 또 한세월 흐릅니다. 저는 그 사진관부인이 저를 고맙게 보시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세상 말로하면 비밀 된 자기 영성을 고백 하십디다 요. ‘선생님 나 부끄러워요.’ 어제 옛 남편 따라서 그 직장에 다녀오셨다고. 왜? 자기 남편이 군수 발령을 받아가지고 초임을 하는데 나와 자기는 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부부지간이 아니오? 내가 명색 남편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군수가 되어가지고 발령한 이 마당에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니오? 내 소원이니 나하고 살림을 안 해줘도 좋으니까 부임할 때 거기만 함께 같이 갑시다. 얼마나 진실한 소원하기 때문에 이 죄녀(罪女)가 그걸 거절 못하고 남편을 따라서 부임지에 다녀왔어요. 그 고백을 하시는 거예요. 그건 전 식구는 모르지요. 그 부부가 얼마나 사랑이 깊고 완전하던지 누구든지 부러워했던 부부지간입니다. 가서 보니 두 번째 결혼해 가지고 젊은 아내가 사택에 계시더랍니다.
벌써 미리 와서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따라와서 모녀가 방에 계신데 인사합시다. 그래 큰어머니 작은어머니의 친정어머니 세 명이 인사하실 때 친정어머니 다시 말하면 그 어머니가 얼굴이 파래가지고 공포를 느끼더랍니다. 자기 딸을 말리려니 참 불행하게 될 성하니까 아 큰 부인 나타났구나. 내 어린 딸은 장래가 어찌될 것인가? 그래서 어머니 염려 마세요. 어머니 행여 라도 마음 놓으세요. 나는 절대 여기 와서 살 여자가 아닙니다. 나는 예수 앞에 가버리고 나는 이 남편과는 관계없습니다. 절대 딸 걱정 마세요. 안심을 시키니까 얼굴이 좀 훤해지시더라고 아주 젊은 동생을 보고 동생 이 결혼 살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를 않소. 내가 이 짐을 못 지고 나는 버렸는데 내 대신 이짐을 와서 져 준다니 내가 당신을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그러나 고생을 할 텐데 나는 참 감사하고 미안할 것뿐이지 나는 절대 이 짓을 안 돌아봅니다. 행여 라도 의심마세요. 그러니까 그 젊은 부인이 아주 눈물을 빠치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러시더라고 그래요. 그래서 더 있어서는 안 되겠다. 내가 안 올 곳에 왔다 싶어서 내 갑니다. 그리고 떠나왔습니다. 그래요. 그 후의 일을 아주 눈물겹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게 자랑이 아니에요. 이 공동체에는 옛 남편을 만나본다. 가정을 돌보는 일이 절대 없기 때문에 내가 비밀리 다녀왔으니 선생님 내가 이런, 이런 잘 못을 했습니다. 고해하는 거예요. 그야말로 이 못난 것을 붙잡고 골방에서 제가 이 이야기를 들어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 뒷산에 그 무덤이 있고 그 비석을 제가 보고 왔습니다. 아, 그분이 여기 묻혔구나. 그런데 그분은 비석을 쓰자니 고향도 모르고 생년월일도 모르고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선생님 전기에 나와 있어요. 사진관 부인 댁, 옛날 자기 남편이 군수되기 전에 사진관을 하셨던가 보지요. 그러니까 사진관 부인 댁 그 말밖에 우리가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그분이 어떻게 세상을 떠나셨는가? 그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도 듣고 여러분도 들었겠지만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부모 형제 일가친척고향 남편 자식을 다 버리고 혈혈단신 예수님을 찾아왔지요. 그러나 그 지도자는 이 현필 선생이십니다. 그러면 서리내에서 이 선생님 말씀을 듣고 소위 말하면 일체 세상을 버리고 출가하신 어머님이신데 그분이 음악을 전공하셨던가 보지요. 찬양도 하시고 피아노도 잘 치시고 여기 도암면 현실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 오셔서 선교하셨어요. 마을 사람들 찬송 가르치시고 또 주일예배도 인도하시고 그렇게 지내신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론 가정에 계실 때에도 서로 이해가 안 되가지고 매를 맞았다는 거지 그때가 순교입니다. 전혀 이해를 못한 남편이 힘으로 항복을 시키려고 방에다 가둬놓고 얼마나 구타해 때렸어도 고개를 딱 숙이고 말 한자리 대꾸하지 않고 매를 맞고 그 일을 오래하시다 나오셨기 때문에 육이오가 끝났지요.
그 때 같이 계셨던 사진관 어머니 이발소 어머니 비문을 보니까 이름을 알겠는데 김순예 자매 그때 세분이 육이오가 끝났기 때문에 광주에 이 선생님이 계신단 말씀을 듣고 걸어 가셨지요. 그길 다녀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홈실, 광주 무등산을 거쳐서 광주 갈 양으로 소라니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 인민군이 후퇴하다가 거기에서 집결하고 있던 것을 몰라보고 딱 들어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민군도 자기들이 살 양으로 밖에서 들어온 사람은 전부 살피는 것이거든요. 보따리를 까보고 보따리를 까보니까 수상한 사람이거든요. 성경이 나왔단 말입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우리 원수들이다. 잡아라. 묶어라. 사지를 틀어라. 세 사람이 묶여서 뒷산으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짐에서 성경이 나왔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우리의 원수다. 이 사람들을 직결 처벌하라. 그래서 이 사람들을 뒷산으로 끌고 갔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가 짐작하건대 총살은 못해요. 왜? 국군이 쫒아오니까 총알을 아껴서 죽창으로 세분을 찔러서 살해한 거지요. 군인들 인민군들이 그렇게 무참히 순교를 당하신 것이 구전이지요. 우리가 들어서 아는 것이니까 그 확실한 사건은 전기에 나와 있어요.
그러면 평소생활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아 사진관부인이 이런 모습으로 거기서 순교를 당하셨다. 그 남편한테 그 무제한으로 매를 맞고 하루 이틀이 아니고 그 몇 달 근 일 년 이년 그렇게 매를 맞고 웃음으로 그를 대하고 떠났던 그러신 분이니까 거기서 순교를 당할 때도 그렇게 축복을 하시며 눈물을 머금고 기도하시며 순교 하셨겠다. 그건 짐작이 있을 뿐이지 실제로 확실한 것은 우리가 모릅니다. 그리고 순교하신 무덤이 세 분 계시더만요. 아까 가보니까 순교 박정화의 묘라. 이분이 소위 말하면 이발소 부인이란 말씀입니다. 이발소 어머니 그때 나이가 30대고 20 조금 넘으셨지요. 아주 젊은 부인들이지요. 쪽만 안 쪘으면 처녀와 같이 젊은 분이셨는데 그분도 사진관 댁과 똑같이 이 선생님의 감화를 받아가지고 출가하신 분이시지요. 그 어머니 일이야 전기에도 조금 나와 있지만 더 확실한 구전이 있다고요. 세분을 다 똑같이 대나무 꼬챙이로 살해를 했는데 쪼끔 급소를 안 맞아서 안상했던지 이발소 어머니는 딱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살았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때 본 사람이 목격하기를 창자가 배 밖으로 나왔답니다. 창자를 정신이 왔으니까 자기 손으로 이렇게 잡고 딱 배를 움키고 기어간단 말입니다. 안 죽었으니까 지혜가 있잖아요? 거기 집이 한 채 있는데 그 농촌 집이라는 것이 울타리는 없지요.
마당 겸 울타리 거기 솔잎을 긁어가지고 놓은데 밤중이니까 그 속으로 들어갔답니다. 이 모진 생명이 안 죽으니까 숨었단 말입니다. 그 이튿날 시체 셋을 확인하러 와서 보니 하나가 없다. 놀래가지고 그 사이에 살아가지고 국군한테 고발해버리면 자기들이 죽거든요. 자기들이 살 소위 말하면 지혜지요. 이 사람이 어디 갔나? 피 자국을 따라가 보니 그 산골짜기에서 집으로 들어가 거기서 피가 끊어졌단 말이지요. 총을 들이대면서 여기 어제 밤에 사람이 숨지 않았느냐? 내놓아라. 그럼 주인은 모르지요. 절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는 모르오. 거짓말 마라. 죽인다. 총 놓는다. 그러니까 가만히 이발소 어머니가 상황을 보니까 내가 만일 이 이입을 열지 아니하면 이 무죄한 주인들이 죽겠다 싶어서 ‘나 여기 있소.’ 하고 기어 나왔단 말입니다. ‘나 여기 숨었소. 그 사람들은 모르요.’ 그 주인들이 해꼬지 당하니까 자기가 푹 뛰어나왔단 말입니다. 가자. 이년 그래 끌고 갔단 말입니다. 그래 두 분이 죽은 무덤 시체가 따로 있고 여기 집사님이 보니까 그분은 따로 딴 데서 죽고 있단 말입니다. 두 번 살해를 받은 것입니다. 두 번째 죽음을 당하신 거지요. 순교를 했어요.
그런데 이건 여담입니다만 세바스치안 이라는 성인이 그때는 인간이 화가 나서 사람을 죽이니까 귀족의 딸이 세바스치안을 편애했기 때문에 세바스치안을 죽이지 않도록 활을 쏘되 허벅다리 살에다 놓기로 하고 백만금을 돈을 주고 매수했답니다. 심장만 안 맞으면 자기가 살려서 옛날에 자기 남편으로 삼으려고 귀족의 처녀가 매수했기 때문에 죽기는 죽었어도 심장은 안 맞은 일이 있어요. 세바스치아누스가 살고 보니 비밀리에 큰 암실에 가둬놓고 나수었어요. 그래 대성통곡을 한 거예요. 오, 주님 저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저는 주님 품에 안겨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텐데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나는 어찌하여 예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예수님은 나를 다시 살 게 하셨을까? 그쯤 되면 사는 것을 슬픔으로 아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세바스피아누스가 자기가 산 것을 슬퍼하는 장면이 있어요. 나는 어찌하여 예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나는 어찌하여 나를 버렸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 순교를 당했는데 나는 어찌하여 나 홀로 살아야 하나하고 우는 대목이 있는데 다시 체포당해 가지고 두 번 살해당하지요. 그래서 세바스치아누스는 그 영광스러운 순교를 두 번 당했다고 해서 아주 성스럽게 생각하지요. 한번 죽는 것도 영광인데 두 번 죽었다고 두 번 순교 당했다고 그렇게 기뻐한 것도 있어요.
그런데 순교한 것은 영광이지요. 그러나 그 사진관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서보면 면류관이 두 개 일거에요. 절대 자기생명을 아끼지 않기를 두 번했다고, 그 주인집 식구를 살리기 위해서 나 여기 있소. 나요. 그 자원해서 뛰어나온다는 것은 그것은 사랑완성이지요. 절대 완덕을 성취하신 거지요. 절대 사랑완성 그렇게 해서 두 번 순교를 당하신 것이 지금 들어나 있어요. 목격한 사람이 있고 우리가 귀로 듣고 있어요. 그리고 세분이 똑같이 순교를 당하셨는데 김 순예 자매님은 청춘과부로 이름만 결혼했지 그때 육이오 전후에 청년들이 많이 암살당했어요. 죽었어요. 그러니까 쪽은 쪄서 비녀는 질렀지만 처녀의 몸으로 아주 젊은 청춘이었지요. 같이 이 선생님의 제자이니까 어머니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길을 가다가 같이 살해당했다는 말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우리한테 전해진 것이 없지요. 그런데 그분 언니가 살아계시지요. 지금 죽곡면 동계리에 다행히 생년월일을 알았고요. 1927년생이에요. 5월 20일 생인데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이야기이니까요. 참 젊었지요. 이렇게 해서 동광원이 뭐요? 누군가 그래요. 어떻게 삽니까? 정신은 뭐요? 그러면 이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지만 그 이 선생님이 가장 사랑하던 제자 유별나게 사랑하던 제자가 이세분이신데 선생님께 문안가기 위해서 순교를 당했던 요 이야기만 들어봐도 한말을 천말을 알아듣더라고 이것이 동광원의 내력이다 말씀입니다. 이것이 동광원의 사건이고 동광원의 거동의 모습이라 그 말씀입니다.
물론 책을 사보시면 다 사연이 들어있어요. 그러나 저는 듣고 본 것을 보충해 들어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증거를 해야 백 년 후라도 우리 후배들이 그 말씀을 듣고 이 정신을 이어가겠다. 끊김
어떻게 가르쳤을까? 화학산 속에서 어떻게 가르쳤을까? 그분은 성경말씀 그대로 ‘예수님 말씀이니까 우리는 그대로 순종합시다.’ 뭐 계명이 있을까? 훈시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지요. 어린아이들 9살 10살 12살 그때 부모님들이 바친 애기들 그때 제가 가르쳤습니다. 그것뿐이에요. 요절 외우고 그렇게 사는 거지요. 아 가난하면 행복하다. 배고프면 행복하다. 혈혈단신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이 남원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대개 10세 전후에요. 열 살 못 먹었을까? 더 먹었을까? 그런 사람들이 광주에 와서 살 때 제가 같이 살았지요. 어린것들이 제가 어린아이들 데리고 삽니다. 새벽 그때 꼭 4시면 일어나서 예배를 보지요. 새벽에, 열두시 예배 봤지요. 또 밤, 저녁 밥 먹고 예배를 봤지요. 하루에 세 번, 그러면 그것도 길게 안 봤어요. 꼭 한 시간 그러면 하루에 세 시간은 뭐 설교가 있던지 그런 건 없어요. 어린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지요. 어제저녁에 부른 노래 ‘갈보리산’ 그때는 노래도 많지 않아요. 꼭 그 노래 하나뿐 이에요.
아주 처음이니까 그리고 성경말씀 보시고 그러면 긴 해석안하시고요. 그게 생활인데 그러면 어머님들 생활이 목격 안하시고 살아계신 분도 계실 거예요. 하루에 삼작이 어머님들의 생활양식입니다. 하루에 삼작 보리쌀이던지 쌀이던지 하루에 삼작만 드세요. 그러면 물론 두 끼 잡수시지요. 한 끼는 냉수 한 그릇 삼작으로 죽을 쑤시는데 철칙이 십일조 떼십니다. 삼작l의 십일조니까 정확하게 왜 뗄 수 있냐? 식구가 20명 30명인데 50명이니까 계산해보면 딱 십일조가 나와요. 그러면 십일조는 어떻게 쓰냐? 주일날이면 쑥떡을 하십니다. 어린것들은 주일 돌아오기를 어린것들이 아마 그렇게 고대하고 기다려. 쑥떡 어머니가 쑥떡 해주신다. 어머니들이 십일조 걷어가지고 쑥떡 해놓으시고 잔치 하시지요. 쑥떡 나눠주면 애기들이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러면 어머니들은 하루 삼작이지만 소년 소녀 어린것들은 하루에 한 홉입니다. 보리쌀이든지 쌀이든지 꼭 한 홉을 주세요. 그래 하루에 처음에는 세끼먹지요. 어머니들은 하루에 삼작, 애기들은 하루에 한 홉, 그렇게 애기들을 키웠습니다. 그래도 저도 먹지요마는 십일조 떼니까 구작을 먹지요. 애기들도 배고프고 저도 배고프고 그러니 생활이 더 곤란해져요. 식구들이 많아지니까. 아침은 굶지요. 두 때 하루에 두 홉 그것도 일주일은 가능하지만 일 년이 지나니까 살이 다 빠져나가요. 어린애들은 비비꼬기 시작하지요. 이 넙적 다리 살이 다 빠져버리니까 꼬여요. 애기들이 뼈만 드러나요. 애기들이 수척해가요.
그때 처음 동광원 시작하기 전에 일 년 반 약 이년이라 할까 그때 고아들 다섯 명 데리고 그때 청소 자기 이 선생님 형이 막걸리 장사하시던 술집을 양보해 달라고 해서 사가지고 거기에서 고아 5명을 데리고 그때까지 살림하시던 귀주 어머니를 모셔 와서 보모가 되고 저는 광주에서 공부하던 사람을 데려다가 선생을 삼고 그리고 출발했지요. 수레기 어머니 조카였어요.
8명 일 년에 한사람씩 만원 총 생활비를 한분이 냈습니다. 김사우사 그럼 내가 식구 8명을한 명에 만원씩 8만원을 내가 내겠소. 그래서 8만원을 가지고 1년을 살았던 겁니다.
아주 정확했어요. 그렇게 살림을 하는데 귀주 어머니 첫날 부임했어요. 그런데 쑥떡베지요.
쑥색으로 만드신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그때 40갓 넘고 50줄이니까 아주 젊으셨어요. 머리칼이 까마시고 그때만 해도 종이상자에 보따리 싸주니까 짐이 있지요. 그 한보따리 갖고 집을 인계받으신 분이 여기오신 김 집사님이라고 두과부가 살던 집이니까 점포어머니에게 양보해버리고 혈혈단신 옷 한 벌 싸가지고 보모로 오셨어요. 첫날밤에 저는 선생이고 철야를 합니다. 밤새도록 어머니가 살아오신 사연 이야기를 해요. 예수 믿고 보모로 발탁되어 가지고 어머니가 되시기까지의 발자취를 이야기 하십니다. 그때 이야기가 생생합니다. 동광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나는 그게 동광원이다 그거에요. 그러면 왜? 이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을까? 한 10년 전에 능주 교회에 오셨기에 하도 젊은 청년이 유망해서 내가 이야기 했다고 내 소원이 다섯 가지요. 그때는 과부가 아니고 남편이 살아계시니까 남편이 죽을병이 걸렸어요. 그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데 내가예배당에서 기도하는데 이 선생님이 당신은 뭔 기도해요? 하고
그래서 내 기도는 다섯 가지요. 독립, 첫째가 독립을 위해서 하나님 우리나라를 독립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합니다. 또 한 가지는 어떻게 문둥이들이 동냥하면 딱하고 불쌍하던지 문둥이들이 살 곳을 하나 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해왔다고 또 이 딱한 것들이 부모 잃고 어린 애기들이 우는걸 보면 이 부모 없는 애기들이 살 곳을 주세요. 그렇게 딱딱 세었다고 그래요. 그리고 남편이 예수를 안 믿기 때문에 내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에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주십시오. 그럼 네 가지지요. 또 한 가지는 역시 사회적인 관계에요. 자식 없는 노인들 그 늙어가지고 자식 없이 불쌍하게 사는 자식 없는 노인들이 잘 살 수 있는 집하나 주세요. 내가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렇게 이야기 했다는 겁니다. 이 선생님한테 그렇게 그 말 한번 말했는데 십년 전에 한말 딱 기억해가지고 귀주집사 당신이 십년 전에 그렇게 기도한단 말 내가 들었는데 이 고아들의 어머니가 되시오. 그랬다는 거예요. 십년 전에 내가 한번 이야기 했는데 그걸 기억하시고 당신 고아들의 어머니가 되십시오. 당신 기도가 그것 아니었소?
그래서 내가 왔습니다. 그럽니다. 그런데 오늘 와서 생각해보면 내 다섯 가지 기도가 다 이루어졌다 그거요. 평생 기도하던 독립이 이루어졌지요. 해방되던 2년 후의 이야기니까 그렇게 사무치게 원하던 독립이 이루어졌어도 내 기도가 응답되었소. 또 들으니 소록도에 나병원이 생기고 또 들으니 광주에 양로원이 생기고 그때 고아원이 있는가 모르겠소. 어쨌든 그 소원이 자기 남편은 회개하고 믿고 세상 떠나시고 기도 다 들어 주시고 이제 고아원이 있단 말도 들었지만 나 같은 것도 불러서 내 평생소원인 고아들의 엄마가 되라니 나는 천명인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고 순종하고 왔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엄숙하니 십년 전의 교인 말 들었다가 기억하시고 십년 후의 그 어머니의 소원을 알고 당신 보모가 되십쇼. 참 천 명이지요. 아 이 선생님이 그렇게 일 하시는구나. 그이야기를 들었어요. 누구 고백을 들어주시고 다 기억하시고 그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 두 살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그 이야기가 기니까 밤새 들었지요.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제가 다 못 하지 않아요? 요약해서 간단하게 이야기 드린다면 우리 집안이 불교집안 이었습니다.
큰아버지가 불이사(不二寺) 지금 있어요. 그 불이사를 창건하시고 중이 되시고 또 큰아버지의 어머니가 할머니지요. 그런데 그 할머니는 불교의 신앙이 깊으시고 우리 할아버지는 천주교를 믿고 기도를 많이 하셨고 우리 어머니는 아직은 확실한 종교가 없고 우리 할머니는 아주 신실한 불교신자인데 내가 두 살 세 살 때부터 나는 동생들이 많으니까 그 집안 목사가 몇 분 나왔지요. 동생들이 또 오빠도 목사였지요. 그러니까 그런 집안이기 때문에 일찍 할머니 집에 의탁을 해서 할머니가 데리고 잠을 잤답니다. 귀주 어머니는 할머니 슬하에서 컸어요. 그런데 자기가 일곱 살 먹던 해던가 확실히 모르겠어요. 일본과 한국이 합방이 되더랍니다. 어머니가 할머니가 대성통곡을 아이고 우리 임금님을 일본 놈이 잡아갔단다. 잡아갔단다. 우리 임금님을 일본 놈이 잡아갔단다. 대성통곡을 하시고 울 때 일곱 살 먹은 게 같이 울었다고 그래요. 같이 울고 할머니 울면 같이 울고 새벽이 되면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기도를 하시고 우리 임금님을 보내주십시오. 우리 임금님을 보내주십시오. 그래 할머니 따라서 같이 그 소리를 하고 두 손 합장하면 같이하고 달이 뜨면 할머니가 밤중에 달을 보고 빌 때 우리 임금님 보내주십시오. 우리나라 독립해 주십시오. 같이 그 기도를 열일곱 살 먹을 때까지 새벽이면 꼭 세시가 되면 찬물로 목욕하시면 같이 따라하고 할머니가 우시면 같이 울고 할머니가 기도하면 같이 따라 하기를 십년 열일곱 살이 먹었는데 할머니 기도가 왜 안 이루어질까?
할머니같이 기도해서는 우리나라는 독립이 안 되겠다 할머니를 믿을 수 없다. 라는 의심이 생기더라고 그래 할머니 기도는 안 되겠다. 그러면 두 살 먹어서부터 항상 동경하며 쳐다보던 화학산 속에는 바위가 있는데 바위 속에는 장수가 계시고 밤중이면 장수가 나와서 칼 연습을 하신다는데 안 되겠다 할머니 따라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화학산으로 뛰어 들어가서 장수를 만나가지고 칼 쓰는 법을 배워가지고 내가 장수가 되어가지고 한국 사람을 군인을 만들어 가지고 일본사람을 전쟁을 해가지고 내가 독립을 해야지 내가 기도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요. 열여덟 살 먹어서 그래서 할머니 몰래 어찌됐든지 화학산에 있는 장수를 만날 양으로 그런 꿈을 꾸고 있는데 어머니가 안방으로 오라하더니 ‘얘야 너는 나이가 열일곱 살이니 여자는 출가하는 법이다. 혼처가 좋게 났으니까 결혼할 준비를 하라.’ 그 말씀을 하시더라. 그래요. 그때 자기가 원통하고, 원통하고 내가 여자던가 그때까지는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 그날 밤 야속하게도 자기가 여자인 것을 깨닫게 되고 살맛이 없단 말이에요. 내가 남자여야 장수한테 찾아가서 전술을 배우고 전쟁을 일으킬 텐데 이놈의 몸뚱어리가 여자라니 나는 죽어버려야겠다. 그날부터 죽을 결심을 하고 단식을 해. 철두철미하게 죽을 결심을 하고 밥을 안 먹어. 그 말을 않고 굶고 딸이 병이 드니까 전 가족이 이건 분명 입을 열수 없으니까 절대 말 않거든.
그러니까 짐작으로 이 애가 갑자기 그 혼처가 맘에 안 들어서 이걸 반대하는 거다. 본인이 시집가기 싫어서 그러니까 그걸 포기하자. 아주 그 집안 덕망이 높고 세상말로 세도가 높고 돈이 많고 좋은 집안인데 애가 그걸 싫어하나보다. 그렇다면 아무리 아까워도 그 집을 포기하고 다른 집을 혼처를 구하자하고 혼처를 바꾸시더라. 그래요. 그래도 밥을 안 먹어요. 죽을 결심을 했으니까 혼처를 또 바꾸셔 상대를 또 바꿔 그러니 자기가 더 죽겠어. 부모가 뭐이라고 내가 밥을 안 먹는 것은 혼처가 나쁜 것이 아니고 내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는 절망에서 이렇게 굶는 것인데 부모가 이러신다 싶어서 급기야 안 되겠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운명이 박덕해서 혼인을 해야 부모를 안심시키겠다. 내가 자식인데 어떻게 부모께 이렇게 불효할 수 없다 싶어서 그럼 희망은 있다 이거에요. 그러면 부모가 하신대로 무조건 결혼한다. 왜 그때는 남녀가 첫날밤에 쳐다보고 그 안 때는 절대로 얼굴을 보지 않을 때 아닙니까? 그때만 해도 그러니까 남자를 전에 알아야지만 누군지 모르니까 첫날밤에 들어서 이야기를 해보고 그 인격 됨됨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결혼식을 하고 첫날밤에 내가 이 이야기를 해보고 이 사람이 장수를 날수 있는 혈통이라면 내가 몸을 허락하리라. 정식으로 결혼생활 할 것이고 이 이야기를 해봐서 그 혈통이 뭐 그냥 밥이나 죽이는 남자라면 절대 수절을 해야겠다.
결심을 하고 엄마 나 시집 갈라요. 그 말하고 결혼식을 했답니다. 그러니 집안에서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결혼식을 딱 하고 첫날밤에 둘이 이야기를 해보니까 한말 두말 세말 네말 죽 해보니까 아 이 사람의 씨를 받아갖고는 저 소같이 일하는 땔나무꾼이나 낳지 절대 지도자는 안 되겠다. 나라를 위한 백성은 안 되겠다 해서 딱 결심하고 나는 식은 했지만 절대 나는 이 남자와 관계를 맺지 못 하겠다. 이건 천명이다. 한국의 처녀로 태어나 운명이 박덕해서 결혼했지만 이런 씨를 받아놓으면 결국은 이 독립은 늦어진다. 밥이나 먹을 사람이 태어나면 결심하고 몸을 지키기 시작하는데 한 달이가도 두 달이가도 석 달이가도 그 남편이 매를 든 거예요. 기어이 밤마다 매를 때리고 가둬놓고 매를 때리고 그런데 얼마나 논일 밭일 소 키우는 일을 분명히 하기 때문에 시아버지가 욕심을 딱 내가지고 집안에 일꾼이 없다가 남자이상에 일 잘해주니까 시아버지가 아들한테 매를 뺏어버리고 시아버지 방에 가서 피신을 시키는 거예요. 밤마다 그렇게 하기를 일 년 이년 싸우고 이젠 이것이 귀신이 들렸다. 절대 이것은 본뜻이 아니다. 신이 들렸으니까 굿을 해야 한다고 큰굿 작은 굿을 냅다 했다. 귀신 나가라고 귀신도 안 나가서 끝까지 고집을 부리니까 결국에는 무관해요. 그러나 절대 시아버지는 아이구, 내 딸 내 자식 내 자식 절대 아들의 매를 못 때리도록 보호해 주는 거 결국 시아버지 방에서 세월을 보내고 남편 잠깐 들어가서 방이나 소제해주고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자로서 이십대 스물일곱 먹도록 밤새도록 시간이 끝이 나겠어요? 그런 소설이 없지요. 맨발 벗고 막 오리를 쫓겨 가고 쫒아오면 내빼기도 하고 잡혀가기도 하고 머리가 다 빠지기도 하고 질질 끌고 오기도 하고 발로 차버리기도 하고 그렇게 기어이 몸을 지키고 절대 내가 이 씨를 안 받아야겠다. 그러니까 남편이 젊은 나이에 전염병이 드시더니 자꾸 회생이 안 되고 그때는 생명을 바쳐서 간호했대요. 좋은 약이라는 것은 다해서 재산을 다 팔아서 봉양을 하고 간호를 하고 그러니까 남편이 하루는 밖에서만 간호하지, 방에는 안 들어가고, 부인 다시 말하면 말을 높여가지고 방에 좀 들어오시오. 내가 할 말이 있소. 아 부인 내가 큰 죄를 지었소. 내가 이렇게 병들어 죽을 시간이 되고 보니 나 깨달았소. 나는 당신을 오해했소. 나는 한 여자로 태어나서 당신이 나한테 시집온 여자인줄 알고 내가 그렇게 과격하게 매를 때렸소. 내가 이렇게 천벌을 받았소. 용서해 주시오. 내가 오늘날 아는 것은 당신은 하나님의 딸이오. 당신이 죄가 많아서 그랬던지 하늘나라에서 땅에 와 내 집에 온 손님인데 간단하게 내 부인인줄 알고 내가 손을 들었소. 용서하시오.
나는 오늘부터 절대로 당신을 내 부인으로 안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딸로 보고 나는 당신을 스승으로 삼겠으니까 이제는 내 옆에 오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안심하고 방에 들어오셔서 일 보십시오. 그리 선언하시고는 깍듯이 존경하시더라고요. 그래 참 본의 아니게 귀부인이 되었지요. 아 부인 들어오십시오. 어떻게 이렇게 나 같은 놈에게 약을 대려 주십니까? 이 은혜를 못 갚겠습니다. 그러면 어르신께선 예수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한번 낳았다가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 믿고 돌아가시면 절대 죽지 않소. 부활하십니다. 예수님 믿고 부활하시고 하늘나라에서 만납시다. 네 그러면 예수님 믿겠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을 데리고 오십시오. 그렇게 예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자기 남편이 구원을 받은 것이지요. 아 부인 내가 잘못했소. 용서해 주시오. 내가 모르고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그래서 남매지간이 되었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자기들은 아들딸이시고 이렇게, 이렇게 세월지내시다가 그 남편은 급기야 하늘나라 갈 시간이 되어서 임종을 했답니다.
그래 청풍 어머니도 과부지요. 청춘과부인데 내가 살길은 다른 길은 없다. 재봉틀 하나를 의지하고 그리고 청풍어머니도 과부시고 아들하나 낳으셨으니까 우리 둘이 자식을 둘이 키웁시다. 한사람은 낳고 한사람은 키우고 그렇게 해서 김 집사님을 두 과부가 아들삼고 키웠답니다. 한번 가본일 있거든요. 누가 보면 귀족적이고 멋지고 성스럽지요. 두 젊은 과부가 애기 하나를 키우셨답니다. 그렇게 재봉틀을 의지하고 일생을 바느질품을 들어서 사셨지요. 그래 세 식구 꼭 먹을 양식만 버는 거예요. 절대 욕심 부리지 않고 양식 떨어지면 남의 저고리나 치마하나 해주고 그 쌀이나 보리쌀 한 되 받으시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셨어요. 그러신데 보십시오. 교회 잘 다니셨답니다. 남편 세상 떠나시고 그때 귀주 어머니를 만났어요. 귀주 어머니 과부되시고 두 분 사이는 한 몸이지요. 어 야! 오늘 우리 집에 오게 땔 나무 군이 말을 잘하데, 맨발 벗고 젊은 청년인데 성경을 잘 푼단 말이 세. 어디 한번 가볼까 그래 와서 보니까 이 선생 머리 싹 감고 젊은 청년인데 맨발벗고 홋바지 입고 들어와서 성경말씀을 가르치는데 예법 잘 가르치더라고 그래요. 두 과부가 들어보니까 그렇게 해서 귀주 어머니 작은방에서 이 선생님 오시면 무릎 꿇고 잠깐 들어와서 과부 집이니까 방석에 앉지 않고 잠깐 들어가서 이야기 했다고 그래요. 그때 그 이야기 했다는 거예요.
당신은 뭘 기도하시오? 나는 다섯 가지 소원이 있소. 그렇게 해서 그 소원을 한번 말 했는데 나를 기억해가지고 십년 후에 당신 소원이 기도 아니오? 당신 고아원을 세우고 싶어 했지요? 고아원을 창설할 테니 와서 보모가 되시오. 그래 내가 왔습니다. 이러시더라구요. 자 대강 이야기 끝났네요. 어머니 이야기 그런데 밥을 차릴 때 그분이 남존여비를 계셨던가 학생들이 고아가 다섯 명인데 나까지 여섯이요. 여섯 사람 밥과 반찬은 꼭 김치를 썰 때도 껍질은 어머니가 잡수시고 네모반듯하게 썰어가지고 철저한 가정교육 있으세요. 남자상에는 꼭 임금님 온 것같이 애기 다섯 나 여섯 남자상은 깨끗이 차립니다. 김치 한 그릇 죽 한 그릇이라도 꼭 그래요. 사진관 부인도 보모로 오셨어요. 후보로, 아까 어머니는 정보모이고 부보모로 오셨다고요. 소반 바위로 발령 받기 전에 연습으로 하지요. 한 반년동안 거기서 예절을 배우는 겁니다. 그러면 사진관 부인은 부잣집 마나님 아닙니까? 고춧가루는 일 년 분 사놓으면 사진관 부인이 고춧가루를 많이 쳐 먹나 봐요.
그러면 ‘여보십쇼, 살림은 이러면 안 됩니다. 여기는 부잣집이 아니요. 이거 일 년 먹을 고추 가룬데 그렇게 많이 치면 됩니까?’ 이렇게 가르쳐요. 방하고 정자가 딱 붙었거든, 그러니까 방에가 있어도 다 들려요. 그럼 예 그래 안 해요. 어물 쩡 하고 마는데 그럼 고춧가루 또 쳤어. 한번 말하면 들어야지 왜 두 번 말시켜 가르쳤어요. 반찬을 담을 때 남자상에다 삼각형난거 쪼가리를 놨다 이건 뭔 짓을 해요? 남자상에는 반듯한 걸 놓으라고 했는데 왜 이런 걸 차렸냐고 막 꾸지람을 하세요. 방에 다 들려요. 어떻게 부끄럽고요. 방에서 가만가만 말씀하시지만 가만가만 말해도 다 들려요. 매일 꾸지람 입니다. 어떻게 엄하게 가르치는지 철두철미하게 가르쳐요 아 그분도 군수 부인이고 그런 귀한 집 마나님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깨끗이 가르칩니다. 막 훈수를 해요. 이건 이렇게 하고 반찬은 이렇게 차리고 수저 이렇게 놓고 그렇게 양념은 이렇게 치고 옷을 이렇게 빨고 그걸 다 배워가지고 발령을 받아가지고 가셨어요.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냥 그렇게 쉽게 가르치지 않고 엄하게 똑 떨어지게 가르쳤어요. 그래서 육 개월 동안 보모 직을 배워가지고 보모로 취직을 시키시더라고요. 그런 것이 문제는 삼작가지고 밥을 어떻게 해서 밥을 먹게 하느냐? 그것이 문제 아니겠어요? 아무리 적게 한다 해요. 쌀을 더 넣지 않아요. 그럼 한 끼 세 끼 밥을 먹으려면 일작해야 하는데 또 십일조 띠었으니까 일작이 못되지요. 그 규모라는 것은 보통 규모가 아니에요. 오늘 여러분이 해 보시지요. 일작 쌀을 내어가지고 풀을 뜯어오든지 쑥 뜯어 오든지 사람이 먹게 해보세요. 그럼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 년 넉 근이 살았거든요. 어머니들이 그 규모를 가지고 그래 철두철미하게 규모를 가르쳐요. 칼로 베듯이 여간 마음을 놓아버리면 동이 떨어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