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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한 시대의 사려분별로도 취소할 수 없는 한 순간에의 굴복, 그 엄청난 대담,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은 죽은 자의 약전에서도 자비스런 거미가 덮은 죽은 자의 추억에서도 혹은 텅 빈 방에서 바싹 마른 변호사가 개봉하는 유언장 속에도 찾을 수 없다. 다 <다야드밤(공감하라)>
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단 한 번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ㅇ | ㅇ 115 The awful daring of a moment’s surrender Which an age of prudence can never retract By this, and this only, we have existed 405 Which is not to be found in our obituaries Or in memories draped by the beneficent spider Or under seals broken by the lean solicitor In our empty rooms DA 410 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ㅡ 24'16" Dayadhvam: I have heard the key Turn in the door once and turn once only We think of the key, each in his prison ㅇ |
10) 웹스터의 『흰 악마』 5막 4장. <그들은 재혼하리라. 벌레가 너의 수의를 좀 쓸기도 전에, 거미가 너의 비명에 얇은 그물을 치기도 전 에.> 엘리엇의 원주.
11) 「지옥편」 33장 46행. 우골리노는 아이들과 함께 탑에 갇혀 굶어 죽은 일을 회상한다. <그때 아래서 그 무서운 탑의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었지요.> 엘리엇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공감하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엘리엇의 주는 F.H. 브래들리의 『현상과 실재』 346페이지로 계속된다. <외부에서 받는 내 감각도 내 생각이나 감정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내 경험은 밖으로 닫혀진 원, 내 자신의 원 안에 속한다. 그리고 모든 요소가 흡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원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원에 대해 불투명하다....... 요컨대 영혼에 나타나는 하나의 존재로 간주될 때 전세계는 각자에게 그 영혼에게만 특이하고 개인적인 것이다.>
114 - 115
1) 황동규의 TS앨리엇 황무지 주석에서 p 114 ;
「지옥편」 33장 46행. 우골리노는 아이들과 함께 탑에 갇혀 굶어 죽은 일을 회상한다. <그때 아래서 그 무서운 탑의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었지요.> 엘리엇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공감하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엘리엇의 주는 F.H. 브래들리의 『현상과 실재』 346페이지로 계속된다.
즉, "외부에서 받는 내 감각도 내 생각이나 감정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내 경험은 밖으로 닫혀진 원, 내 자신의 원 안에 속한다. 그리고 모든 요소가 흡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원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원에 대해 불투명하다....... 요컨대 영혼에 나타나는 하나의 존재로 간주될 때 전세계는 각자에게 그 영혼에게만 특이하고 개인적인 것이다."
▶ T.S. 엘리엇은 시 '황무지'의 제5부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우골리노 백작의 이야기와 철학자 F.H. 브래들리의 문장을 나란히 배치했다. 이 두 인용구는 인류가 겪는 근원적인 고독과 소통의 불가능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단테의 지옥편에서 우골리노 백작은 굶주림의 탑에 갇혀 자식들이 차례로 죽어가는 비극을 겪는다. 탑의 문이 밖에서 잠기는 순간, 우골리노와 아이들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되며 자신들만의 폐쇄된 공간에 고립된다. 엘리엇은 이 감옥의 이미지를 인간의 정신적 세계로 확장한다. 탑의 문이 잠기듯,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자신이라는 '자아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브래들리의 철학적 문장이 우골리노의 비극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브래들리는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식할 때, 결코 객관적인 외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외부에서 오는 감각, 예컨대 타인의 눈물이나 비명조차도 일단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과 다를 바 없는 '나만의 경험'이 된다.
'밖으로 닫혀진 원'과 '내 자신의 원'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자아의 폐쇄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원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한다. 아무리 옆에 있는 사람과 겉모습이 비슷하고 같은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내가 느끼는 슬픔과 타인이 느끼는 슬픔은 서로 다른 원 안에 존재한다.
'모든 원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원에 대해 불투명하다'는 말은 타인의 마음을 결코 온전히 들여다볼 수 없음을 뜻한다. 타인의 고통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우리는 그 감정을 투명하게 공유할 수 없다.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서로에게 불투명한 존재일 뿐이다.
결국 이 세계는 각자의 영혼에게만 허락된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이한 공간이 된다. 우골리노가 탑에 갇혀 타인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굶어 죽어간 것처럼, 현대인들 역시 각자의 자아라는 탑에 갇혀 살아간다. 엘리엇은 이 두 텍스트를 결합하여,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완전히 공감하거나 소통할 수 없는 '독방' 같은 존재임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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