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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강 창세기 24:50~67 사랑하셨으니 위로를 53.21
26.10.16(금)
이삭 결혼장인 창세기 24장을 오늘로 4주째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째 시간에는 아브라함이 자신이 믿는 종 엘리에셀게 어 자기 아들을 위한 아내를 찾아올 것을 맹세시키는 내용을 우리가 봤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은 노종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으로 찾아가서 우물가에서 기도 후에 리브가를 만나기까지의 내용을 살폈습니다.
지난 시간인 셋째 시간에는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을 대신해서 이제 그 집 리브가의 부모와 오라비에게 청원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내가이 이러해서 이곳을 찾아와서 이렇게 기도하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아주 그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내용이 종이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종이 설명한 그 내용의 주어는 철저하게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라고 종은 지금 리브가 부모에게 설명을 한 것입니다.
바꾸 말하면 그 내용은 노종 엘리에셀 자기 자신의 신앙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35절 36절 한번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장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나를 보낸 내 주인은 정말 창대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재산이 엄청나게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노년에 낳은 아들에게 그 재산을 다 상속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노종은 아브라함의 이 수단이 탁월해서 경영능력이 뛰어나서 그 사람이 뛰어난 인물이어서 창대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랬다는 거여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창대해졌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노년의 아들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 아들이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가축이 많아도 그 옛날 그 위생 시설 수준 정도에서 가축에게 전염병 한번 들면 끝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안 지켜주시면 아무 필요 없죠.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불 한 번 나면 끝나는 거잖아요. 그죠. 그때 119가 있겠습니까
또 아무리 노비가 많아도 주인 말 안 들으면 노비 많은 것이 오히려 화근입니다. 매일 서로들 모여서 붉은 띠 매고 데모만 하면 그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또 이 아브라함은 자기의 여주인이 어떻게 자식을 낳은지 잘 알잖아요. 자기 여주인은 성녀였거든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여자란 말이죠.
그런데 생리가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셨다는 것을 이 노종은 옆에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아무리 자식을 얻어도 그 자식이 어릴 때 죽어버리면 끝나지않아요.
어떻게 상속자가 되겠습니까? 그 자식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종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37절
나의 주인이 나에게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너는 내 아들을 위하여 내가 사는 땅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아버지의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
그러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 내가 자식을 결혼을 시키는데 근본이 같으면 참 좋겠다 같은 족속이면 참 좋겠다. 그건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죠. 쉽게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때 나이가 140살이고 상처한지 3년이 되어서 지금 호라비 생활을 하는 노인인데 내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아들의 아내를 데리고 오라
여러분 이것을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겠습니까?
이 엘리에셀도 자기도 늙은 나이라 자기도 결혼시켜 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행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주인은 이렇게 명령했다는 거예요.
39절
내가 내 주인에게 되 혹 여자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면 어찌하리이까한즉
이미 우리가 생각해봤죠. 그죠.
그 먼 곳에 가서 남자 얼굴도 한번 안 보여주고 어느 여자가 따라오겠느냐 질문을 했더니
40절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라
내 아들을 절대 데리고 가지 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먼저 보내어서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규수를
택하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자기 아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가나안 땅을 함께 지닐 아내의 배필도 이미 예비해 두셨음을 믿고 있는 거여요
여러분 지금 엘리에셀이 리브가의 부모에게 이야기를 할 때이 리셀은 평생 아브라함과 같이 살았잖아요.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압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가나안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제일 먼저 한게 뭐지요?
제단 쌓고 난 다음에 흉년이 드니까 이집트로 가버린 거잖아요
가서는 안 될 땅으로 간 겁니다.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죠. 한 번만 속였습니까? 두 번씩 속였죠.
자기 아내가 생리가 끊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네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웃었잖아요 비웃었잖아요. 사라도 비웃었지 않습니까? 그러던 사람인데 나이가 들어서 자기 자식을 결혼을 시킬 때 이렇게 철저하게 믿음의 사람으로 변해 있더라는 거예요
누가 변화시킨 겁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거여요 내가 아는 아브라함 주인은 예전에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주인을 이렇게 바꾸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러분의 부모의 잔소리가 자식을 바꿉니까? 못 바꿉니다.
하물며 내 몸으로 낳은 자식도 내 말로 못 바꾸는데 남의 자식이 낳은 내 남편을 내 말로 바꾼다 이것 안 되죠. 내 아내를 바꾼다. 이건 불가능한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불화의 원인이죠.
하나님만 바꾸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때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을 바꾸시는 거여요 그것을 지금 고백했습니다.
43절
내가 이 우물곁에 서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기르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니이다 하며
하란에 도착했는데 어느 여자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자인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물가에서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누구든지 소녀가 물길러 올 때 내가 그 소녀에게 물 한잔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나에게뿐만 아니라 낙타들에게까지도 물을 준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소녀로 내가 믿겠습니다.
자기가 기도한대로 되면 자기가 결정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두신 소녀가 있는데 나는 알 길이 없으므로 그런 방법으로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러가지 조건이 있을 수 있는데 나에게 물을 줄뿐만 아니라 낙타에게까지도 물을 주는 사람이면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이라고 내가 믿겠습니다.
왜 그렇게 엘리에셀이 생각했을까?
이미 말씀드렸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남이 못 보는 걸 보는 사람 그 사람이 남이 못하는 걸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물한 잔 달라고 할 때 물을 안 줄 수도 있잖아요. 그죠.
물 한 잔 달라고 할 때 그 사람에게만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뿐만 아니라 먼 길을 온다고 지친 낙타까지도 눈에 보인다면 내 주인 집안 믿음의 조상 집 며느리로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기업을 이어받을 믿음의 여인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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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만약 그때 리브가가 이 노종에게만 물을 주고 낙타가 눈에 안 보였다 그러면 리브가는 제외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선택한 여자일 수가 없었다고 그랬습니다. 자 그렇게 기도했는데 리브가가 나타나서 자기에게도 물을 주고 그 열 마리나 되는 물을 그렇게 많이 먹는 물탱크 같은 낙타 열 마리에게 다 물을 줬단 말이죠.
47절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코걸이를 그 코에 꿰고 손 목거리를 그 손에 끼우고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그 소녀를 만나서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하기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내가 요행이 운이좋아서 만났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는 기도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엘리에셀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엘리에셀이 이 내용을 통해서 고백한 세가지의 신앙 고백만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여러분의 신앙고백으로 여러분의 삶속에서 실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는 생명의 능력의 구주이시다.
하나님만이 내게 응답하시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우리가 믿고 살아간다면 우리 인생은 바뀌지 않을 수 없죠.
지금 엘리에셀이 리브가의 부모에게 한 말 이것을 한마디로 딱 압축하면 어떤 말이 되겠습니까?
내가 지금 당신에게 청혼한 것은 전혀 내 뜻이 아니라 이건 전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어요
내가 리브가를 만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지금 당신 앞에 와서 이렇게 청혼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겁니다.
자 오늘 본문 50절 입니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엘리에셀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자 리브가를 이제 이삭의 아내가 되게 하심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 라반은 리브가의 오빠지요 브두엘이 아버지이고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다 이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므로 우리가 가타 부타 말할 일이 아니다.
내 개인 의견을 좋다 나쁘다 할 일이 아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믿음이 엘리에셀에게 전이되는 것 우리 보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이 가서 내 아들의 아내를 데려와라 아니 장본인도 데려가지 않는데 어떤 여자가 오겠습니까?
아들을 데리고 갈까요? 아니다. 데리고 가지 마라 여호와께서 당신의 사자를 먼저 보내어서 반드시 예비해 두실 것이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엘리에셀에게 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이 도보로 800km 되는 그 먼 거리를 가서 기도하고 리브가를 만나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자기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전이 받았던 그 믿음대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믿음이 지금 브두엘과 라반에게 그대로 또 다시 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바른 믿음의 사람이 될 때 그 믿음은 계속 전이되어 가고 확장되어 가는 것을 나옵니다.
같은 공간에서뿐만 아라 수백킬로 떨어져 있는 곳까지 그 믿음이 전이 되더라 그 말이여요
51절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지금 엘리에셀이 하는 이야기를 리브가도 다 들었습니다.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50절 다시 보십시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거기 네모표를
한번 해보십시다.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가부를 말할 수 없다. 공표하시고
51절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데리고 가서 공표 하시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네모표 한번 해보십시다.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되게 하라 공표 한번 해보십시다.
그러면 네모끼리 줄을 연결해서 한번 읽어 보실까요. 시작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느니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공표 줄친 것 한번 읽어 보십시다.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데리고 가라 되게 하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의사가 없습니다.
내 뜻이 필요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내 뜻대로 하나님을 끌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내 뜻을 버리기 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비로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52절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자 이제 내 딸을 데리고 가시오 그리고 당신이 얘기한 대로 이삭의 아내가 되게 하십시오
지금 이 엘리에셀이 그 먼길을 걸어가면서 믿음으로 가기는 가지만 아 어떻게 만날까? 만나면 뭐라고 할까? 참 긴장했겠죠.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순적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소녀를 만났을뿐만 아니라 그 부모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데리고 가라고 허락했습니다.
그러 여러분 같으면 누구한테 감사해요.
예 제일 먼저 이 소녀의 부모하고 오라비 한테 감사해야지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엘리에셀을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리브가의 부모가 허락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렸습니다.
53절 보면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줍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한 뒤에 사람들에게 감사의 예물을 전했습니다
이 엘리에셀은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우선순위를 혼동하고 살아갑니까?
우리는 급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일이 이루어지면 우리 같으면 먼저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메어사는게 아니라 내일을 도와준 사람에게 매여 삽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 앞에서 비굴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우선 순위로 삼아야 됩니다. 그때에만 사람 관계도 바로 맺어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루어 갈 수 있는 거예요.
오늘 새벽 기도의 시간에 보니까
권윤호 목사님께서 현란한 속임수 이런 단어를 썼습니다.
그 축구 선수 중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은 다 속임수 잘 쓰는 선수들이아요. 상대 선수 속이는 선수거든요.
왼쪽으로 가는 것처럼 폼 잡으면서 오른쪽으로 드리볼 해 가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들도 하나님 앞에서 현란한 속임수를 쓴다는 거여요
급하면 하나님 먼저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만 지나가면 하나님은 안중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급할 때 내가 찾는 그것이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현란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여요. 아주 좋은 표현이죠.
그런 현란한 속임수로는 절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 없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엘리에셀은 신앙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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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절
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자 이제 임무가 다 끝났습니다.
정말 그 먼 길을 가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소녀를 쪽집개로 집어내듯이 정확하게 찾아 냈단 말이죠.
그래서 음식을 먹고 그날 편안히 자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집주인에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뭐라고 이야기 했겠습니까
저같으면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저라면 제일 먼저 뭐라고 얘기했을까 주인한테 자 이제 이 어디 뭐 구경할 곳 있습니까? 전 이렇게 물었을 겁니다.
이제 임무 끝났잖아요. 그러면 그 먼길을 걸어갔는데 나도 좀 놀아야 되잖아요 그리고 그 옛날에 그 어 그 수백 Km 멀리 떨어진 곳을 갔다고 하면 언제 또 그 그곳에 가 볼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좀 관광지도 돌아보고도 추스르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종이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말이 나로 하여금 주인에게 돌아가게 하소서 바꾸어 말하면 당신의 딸 데리고 지금 가도록 허락해주소서 이 이야기입니다
소녀를 찾았지만 자기 주인에게 그 소녀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의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엘리에셀의 위대함이 있고 그 주인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 위대한 신앙인 밑에서 위대한 신앙인이 나오는 것이죠.
55절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우리와 열흘를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이 리브가의 오빠와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이 당연한 얘기죠. 그죠. 어제 밤에 느닷없이 그 엘리에셀이 찾아와서 이제 데리고 가겠다. 오케이 허락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데리고 가겠다. 이건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거든요. 이제 딸하고 헤어지면 여동생하고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그래도 며칠 한 열흘 정도 그 작별 기간이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못해 주었던 것도 해주고 음식도 좀 더 맛있게 먹이고 해야 될 거란 말이죠. 그래서 며칠 더 있게 하라
56절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기에서 만류하지 마소서 하는 것은 나를 지체하게 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종은 1초 1초 지체되는 시간이 아까운 거예 여분 이때 뭐 핸드폰이 있겠습니까?
이메일이 있겠습니까? 펙스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당도하기 전까지는 주인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이 종은 1초라도 빨리 주인에게 가서 이 사실을 구하고 소녀를 보여 주어야 자기의 임무가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엘리에셀은 자기의 정체성을 결코 잊지 않는 종이였습니다.
56절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엘리에셀 자기에게 형통한 길을 주신 것은 자기를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주셨다는 거여요
그러니까 나는 일초라도 빨리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행하시는 일이 형통해지기를 원하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아닙니다. 그러면 그 형통한 길이 여러분을 타락시킬 수 있습니다. 그 형통한 길이 여러분을 하나님과 무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형통한 길을 원한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함이어야 합니다.
그때에만 내가 형통한 길을 가면서도 여호와를 모른다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내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인식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57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고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이 엘리에셀이 지금 당장 떠나야 되겠다고 워낙 굽히지 않으니까 리브가의 오빠와 어머니가 하는 너 정말 지금 당장 가고 싶니 그러니까 어머니와 오라비가 리브가를 불러서 그 말을 물을 때 그들이 기대하는 바가 뭐예요.
리브가가 저 며칠있다. 갈래요. 이거 지금 기대하는 겁니다.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우리 불러서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자 그랬는데 리브가가 뭐라고 그래요.
그가 대답하되 가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자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믿음이 엘리에셀에게 전이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엘리에셀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믿음이 브두엘과 라반에게 전이 되었습니다.
그 믿음이 리브가에게까지 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진행되고 믿음으로 지금 매듭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엘리에셀의 말을 리브가가 다 들었거든요
이건 지체할 일이 아니란 말이죠.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남자를 여자에게 데려간 것이 아니라 여자를 남자에게 데려가셨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리브가는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내가 가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리브가의 오빠와 아버지 어머니는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여동생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거여요
그런데 리브가는 가겠다는 것입니다. 왜 리브가에게 있어서는 만남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결혼은 나와 함께 살던 가족과 헤어지는 것보다 만남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 만남이 중요해서 헤어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은 헤여져야 할 사람이 보내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결혼을 하는데 헤어져야 하는 헤어짐의 연연한다 이 결혼은 바른 결혼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요 결혼하는 당사자들이나 보내는 사람들이나 만나는 두 사람의 만남이 가장 크다는 것을 피차에 인정할 때 그 결혼은 정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이 될수 있다는것이지요
가겠습니다하고 결심을 밝습니다.
59절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할지어다
이제 딸의 결심을 알고 오빠 부모가 이제 리브가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축복해서 보냅니다
천만인의 어미가 되거라
그러니까 네 가문이 너로 인해서 번성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 씨로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대적자가 없기를 바란다.
이것은 옛날 그 근동 지방에서 이렇게 결혼하는 딸을 위해서 모든 부모가 의례적으로 해주는 축복의 덕담이란 말이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리브가가 시집가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죠. 천만인의 조상이 믿음의 어머니가 되고 그의 후손들이 대적의 성문을 얻었단 말이죠.
그러면 그 리브가의 부모 친정 식구들이 축복을 잘 해 줘서 그런 겁니까? 그렇지 않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리브가의 이름의 뜻이 뭐라고 그랬죠.
라바크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동이어 맨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리브가가 하나님께 자신을 동여 메는 사람이 되었기에 믿음의 조상에 믿음의 여인으로 들어가서 그 가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었던 것이죠.
61절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이제 리브가 친정집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수백 km 길에 올랐습니다.
옆에 누가 있는가 여자 종들이 있고요.
또 엘리에셀이 있고 엘리에셀 수행했던 수행원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가운데 리브가의 핏줄이 있습니까?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먼 길을 가는데 자기하고 피를 섞은 가족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리브가는 지금 그 길을 갑니다.
왜 그 길을 가지요 그 길이 새로운 창조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30:01
결혼은 창조입니다. 나 혼자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자식이 태어나고 가정이 이루어지고 이거 창조지 않아요
그 창조를 위해서 리브가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기를 라바크 동여 메었을 때 그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결혼하는 것이 내가 가정을 일구는 것이 단순히 그저 사람이 만나는 인습에 의한 제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의 행위라고 믿는다면 정말 우리 가정 결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 것이죠.
그때에 이삭이 이제 카메라가 24장의 카메라가 이삭에게 돌아갔습니다. 지금 이게 소설이라고 하면 여기에 무슨 말이 제일 먼저 나오겠어요. 한편 이렇게 한편 이삭은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때에 이삭이 부엘라헬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옇음이니라 그러니까 네게브는 가나안 땅 남방 이거든요.
그 남방에 있던 이삭이 이제 자기 가축을 먹일 초지를 찾아서 이리저리 옮기는 가운데에 그 남방에서 부터 지금 리브가가 오는 길목 저 위쪽으로 지금 가서 지금 가축을 먹이고 있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이삭이 네게브에서 왔다. 남쪽에서 왔다. 이렇게만 얘기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굳이 본문은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다. 이렇게 밝혀 놓았습니다
성경은 단 한 구절 한 단어도 의미없는 단어가 없다. 그랬죠. 브엘라해로이의 뜻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창세기 16장에서 배웠습니다.
아브라함의 여종 사라의 종이었던 하갈이 아브라함의 씨를 갖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본처인 사라가 학대하지 요.
그 학대를 이기지 못해서 하갈이 도망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방 샘곁에 탈진해 있을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 하갈을 위로해주고 다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갈이 그 샘 이름을 뭐라고 붙였느냐하면 브헬라헤로이 뜻이 나를 살피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이 말이에요
바로 이삭이 나를 살피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우물에서부터 지금 왔다 이게 무슨 말이여요
이삭은 자기 아버지가 신뢰하는 종을 보내어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해서 아내를 데려오라 하는 것을 보고 그래 아버지 잘합니다.
그리고 가만히 남의 이야기 보듯이 수수 방관하고 있지 않았다는 거여요 아브라함도 철저하게 나를 살피시고 감찰하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엘리에셀을 통해서 자기에게 자신을 위해서 이미 예비해 주신 배필을 보내어 주실 줄로 믿는 믿음 속에서 있었음을 이 구절이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 나 자신을 아시잖아요.
내가 모르는 것까지 하나님께서 다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내 우리 집에 있는 노종 엘리에셀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온다고 할지라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여자가 하나님께서 나를 짝지어 주시기 위한 배필임을 믿는 믿음으로 지금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에요.
63절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여기에 묵상이라고 하는 단어는 수아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구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묵상이라고 하는 것은 소리 없이 지금 기도했다 수아 기도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삭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자신의 아내가 자기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나더라도 그 아내를 나의 반쪽 나의 배필로 믿고 사랑할 것을 다짐하는 기도 속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통 기도하면 누가 기도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까? 여자가 기도하는 걸로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새벽에 남편이 여자보고 기도하러 가라고 이렇게 자기는 기도 안 해도 여자만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가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있는 우리 남성 동지들 다 잊지 마십시다.
남자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요. 가정에 행복이 없습니다. 기도만이 남자의 헛된 야망을 정화시켜 줍니다.
기도만이 여자를 자기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의 반쪽인 인격체로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기도만이 남자로 하여금 바깥 세상을 나도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동력을 줍니다.
그래서 이삭은 기도하면서 아내를 맞습니다.
63절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기도를 하고 기도가 끝났을 때 눈을 들어 보매 보매라고 하는 히브리 말이 라아라고 되어 있는데 라아라고 하는 것은 그냥 무심코 본다는 것이 아니라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매일 그 길목에서 기도하면서 살피는 겁니다. 언제쯤이면 올까? 그런데 낙타들이 오는지라
이 낙타를 봤다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그 낙타를 끌고 오는데 지금 엘리에셀이 보이는 거죠. 그죠. 그런데 여기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하면 우리 번역에는 빠져 있는데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그 사이에 신내라고 하는 히브리 말이 있는데 그것은 보라는 감탄사입니다.
이삭이 기도하다가 눈을 들어 한번 살펴보는데 저기서 보라 왔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엘리에셀이 왔다는 건 그게 지금 낙타를 타고 있는 여자도 보이는 거잖아요.
그런데 64절 보십시다.
리브가가 눈을 들어 똑같죠.
이삭도 눈을 들어 공표 공표해서 딱 연결 하십시다.
그러니까 이삭이 기도한 뒤에 눈을 들었데 그 순간에 리브가도 눈을 탁 들었습니다.
거리는 뭔데 이 시선이 뚜뚜뚜뚜 하고 탁 부딪혔습니다. 정말 아주 극적인 장면이죠. 그래서 부부는 서로 눈을 보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서로 눈을 들여다 보면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것 너무 너무 잘아시지 않아요
64절에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렸습니다.
당시의 그 예법이 여자는 낙탈 타고 지나가다가 낙타를 탄 남자가 오면 상대가 누구이든지 낙타에서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리브가가 내려서
65절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 오는 자가 누구냐
배회하다는 이 말은 할일없이 설렁설렁하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까?
그 말이 아니라 원문은 종에게 말하되 들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마주오는 자가 누구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지금 리브가가 서로 눈을 들어서 시선이 탁 마주쳤습니다.
이삭은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자기 종의 형체만 봐도 알잖아요. 엘리에셀 아 그러면 저 낙타 위에 있는 여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여자이구나 그래서 즉시 들을 가로질러서 지금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리브가가 직감적으로 자기 남편감인 줄 알았죠. 확인하는 겁니다. 저 사람이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뭐라고 얘기했으니까? 내 주인입니다. 내 주인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서 설명할 때는 뭐라고 그래요. 내 주인이 자기 아들을 위해서 아내를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리브가를 데리고 지금 이삭을 만나는 순간부터 이삭은 더 이상 주인의 아들이 아니라 주인이 었습니다. 네 주인이니라
그랬더니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여기에서 너울이 기록된 히브리말 차이프라고 하는 것은 얼굴을 가리는 베일이 아니라 온몸을 휘 갚는 천을 의미합니다.
40:02
당시의 처녀들은 그렇게 온얼굴 온 몸을 휘감는 차이프를 사람들 앞에서 썼다고 그럽니다. 그것이 당시의 예법이죠.
그러니까 리브가는 자기의 남편될 사람을 보고 아 이제 뭐 자기 남편될 사람이고 다 결정되었기 때문에 예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남편될 사람이기 때문에 예의를 지키는 행동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랑하면 예의가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아무렇게나 합니다.
그래서 자기 사람들 앞에서 자기 험담하고 좋아하는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습니다. 여러분 내 아내 내 남편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은 절대로 상대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한 몸으로 보신다. 그랬죠. 내가 내 남편에게 예의를 다하고 내 아내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은 나를 존중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남편과 아내에게뿐만 아니라 밖에 나가서도 내 남편과 아내를 높여서 말하는 사람은 결국 그 사람이 존경받습니다.
험담하면 다 사람들이 즐거워하지만 속으로는 그 사람을 격멸합니다
왜 다 똑같은 한 몸이니까 또 리브가가 남편될 이삭을 보자말자 차이프로 온 몸을 가리고 얼굴을 가렸다 이 얘기는 우리가 또 우리 삶 속에 적용한다고 하면 결혼하는데 외모는 절대적인 조건일 수 없다는 거죠.
이삭은 얼굴도 모르고 못 보고 결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외모 지상주의입니다. 그래서 서로 속는 거죠.
요즘은 이제 워낙이 의학이 발달되어서 아니 무슨 얘기하려고 그러는데 웃으세요. 의학이 발달돼서 그렇지 않습니다만 그 예전에는 그이 마마를 앓는 분들이 가끔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 우리 말에는 곰보라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아마 나이 어린 아이들은 곰보라는 말을 모를 거예요. 본 적이 없으니까
근데 우리 어릴 때에는 그렇게 얼굴이 얽은 분을 본적이 없으니까
어떤 남자가 부모들이 결혼을 시켰는데 모르고 결혼하고 보니까? 얼굴이 얽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평생을 사랑한 거예요.
남들은 곰보라고 놀리는데 곰보 아내를 평생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곰보 아내가 먼저 죽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곰보의 그 남편이 그 장식장에서 울면서 남 눈에는 곰보라도 내 눈에는 꽃이더라 이러고 울었다는 거여요
그래서 장례식이 다 끝난 뒤에 그 남편에게 아니 곰보가 뭐 그렇게 예쁘다고 좋다냐고하냐 그랬더니 아니라고 여러분이 사람들 얼굴에 뭐 점이 하나 있으면 이거 무슨 점이라 그래요. 매력 포인트라 그러잖아요
이 곰보를 사랑하면 그 구멍 구멍마다 사랑이라는 것이어요 구멍마다. 매력 포인트라는 겁니다. 하는 거여요 외모를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곰보가 문제가 안 된다는 거죠.
그 마음이 아름다우면 그 맘마 자국까지 아름다워진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앞둔 우리 청년들은 정말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때에만 상대의 중심을 볼 수 있고 본질을 알게 되는 것이죠.
66절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누구에게
이거 큰일 날 일이잖아요
이 아브라함이 지금 이거 뭐 소리소리 지르고 왜 나한테 보고 안 했느냐고 지금 화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왜 내 주인이 내 아들의 아내를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데려온 이 여자는 내 주인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아닙니다.
며느리가 되기 전에 이삭의 아내입니다.
그래서 먼저 이삭에게 가서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물론 아브라함에게도 이야기하고 다음에는 이삭이 얘기 했겠죠.
그런데 여기 어디에도 아브라함이 이것 때문에 화가 났다던가 비졌다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떠시겠습니까? 노발대발 해야 되는 거죠.
여기에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 내 가정에서 내 자식이 앞장서야 될 때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죠. 나이가 들어가면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요.
하나는 노인이 되는 길이 있고
하나는 어른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나이가 늙어 갔음에도 어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에게 모든 것을 넘겨줍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어른으로 대접받습니다.
노인은 끝까지 내 중심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편치 않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내 아들의 아내를 데려오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자기의 노종 엘리에셀이 당연히 아들에게 가서 먼저 보고하는 것을 당연하게 아브라함도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조상이 된다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교회 열심히 다니고 기도 열심히 하고 성경 많이 읽고 이런게 아니라는 걸 우리가 알게 되죠. 그죠.
67절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여기에 이삭의 또 위대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결혼은 부모에게서 독립시키는 것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자기 며느리 감을 구하지 않고 아들의 아내감을 데리고 오게 하고 그 아내가 아들이 흡족해 하는 것으로 자기는 만족해야지 내게 얼마나 좋은가 안 따지지 않아요.
그런데 이삭은 아 우리 아버지가 나를 이제 자기의 그늘에서 독립시켜 줬다. 그래서 아빠 빠이빠이 아버지하고 이제 나 상관없이 살래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독립시켜 주었는데 부모는 독립시켜 주었는데 자식은 자기의 아내를 자기 어머니의 장막 속에서부터 삶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죠. 그런데 어머니 텐트 장막은 그대로 있었단 말입니다.
이것이 부모 자식사이에서 결혼의 원칙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독립시켜 주지만 자식은 부모님의 삶을 궤적 위에서 자기 생을 꾸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을 독립시켜 준다고 하는 것은 형편도 안 되는데 은행에서 빚을 내어서 반드시 딴방 구해주라 이 얘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같은 집에서 살 수도 있죠.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독립인이 되었음을 인정해 줘라 그 얘기거든요. 그런데 자식은 부모가 독립시켜 주지만 부모의 궤적 위에서 자기 삶을 시작함으로
부모 자식의 그 두 고리가 연결이 되어서 그 가계가 하나의 쇠 사슬로 계속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공표하십시다.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뭘 얻었다고요 위로를 얻었더라
지금 어 25장 20절 보면 이삭은 40세의 리브가를 맞이했거든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나서 지금 40살이 되어서 아내를 얻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삭이 아내를 얻어서 위로를 받았더라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삭이 사랑했기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
여러분 부부 지간은 서로 위로를 받으려고 하면 서로 피곤한 관계가 됩니다. 내가 사랑하면 위로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면 격려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지도 않고 왜 위로 안 해 주느냐 왜 격려 안 해 주느냐 그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 창세기 24장이 어떻게 됩니까?
철저하게 믿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믿음으로 진행되고 믿음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성경 열심히 읽고 그저 기도 열심히 하는 그 개인 경건 훈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조상의 그 신앙의 꽃은 어디에서 피는가?
내 자식의 결혼을 어떻게 시키느냐 그 끝난다는 겁니다.
그 속에서 그 신앙이 유산으로 계승되는 거지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은 좋지만 자식의 결혼을 시킬 때는 철저하게 세속적인 가치를 따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믿음이 계승되지 않습니다
50:02
이 이삭과 이 리브가의 결혼을 아브라함 엘리에셀 브두엘 라반 리브가 이삭 여기 관련되는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이 결혼이 이루어지게끔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족장들 가운데에 이삭만 유일하게 일부일처의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그 신앙이 바로 이 이삭을 매개로 해서 야곱에게 넘어가고 12 족장에게 넘어가고 이스라엘에게 넘어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가정을 꾸려가고 또 결혼을 했거나 할 사람들인데 우리가 철저하게 믿음을 하나님과의 사랑관계 내 부모 자식을 믿음으로 만드는 씨줄과 날줄로 삼으십시다
믿음속에서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어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씨줄과 날줄로 살아갈 때 그 결과는 하나님에 의해 행복한 가정 믿음의 조상 믿음의 가문이라는 예술품으로 빚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모든 가정들이 그와 같이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창세기 24장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행하였던 것은 이삭의 결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키는데 세속적인 가치관을 쫓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진행했고 믿음으로 매듭지었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믿음이 엘리에셀에게 전이되었고 또 브두엘과 라반에게 전이되었고 리브가에게 전이 되었습니다.
결혼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주위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일구어낸 결과가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이었고
그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아름답게 이루어졌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가정을 주실 것이기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무쪼록 믿음을 하나님과 가족과의 관계를 바르게 짜아가는 씨줄과 날줄로 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의해 가장 아름다운 예 술픔 행복한 가정 복된 가정으로 아름답게 매일매일 짜여 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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