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2교구 본사. 융건릉을 빠져 나오면 1.7km지점에 숲으로 둘러싸인 용주사가 있다.
854년(문성왕 16)에 염거화상 창건했던 갈양사(葛陽寺)의 옛터에 952년(광종 3)에 창건된 사찰이다. 고려 광종21년(970)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륙재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때 소실된 후 폐사가 되었으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고 낙성식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했다고 전한다.
1790년(정조 14)에 사일(獅馹)이 팔도 도화주(八道都化主)가 되어 철학(哲學) 등과 함께 팔도 관민의 시전(施錢) 8만 7000여 냥을 거두어 갈양사 옛터에 145칸의 사찰을 창건하였다. 이 절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 명복을 빌어 주는 능사(陵寺)로 창건되었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가 되어 승풍(僧風)을 규정하였다. 그 뒤 1900년에 용해(龍海)가 중수하였고, 1911년에는 30본산의 하나가 되어 수원·안성·남양·죽산·진위·음죽·용인·고양·시흥 등에 있는 49개 사찰을 관장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790년에 건립한 대웅보전, 지장전(地藏殿),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범종각, 법고각(法鼓閣), 봉향각(奉香閣) ,천보루(天保樓), 나유타료(那由他寮), 만수리실(曼殊利室), 삼문각(三門閣), 일주문, 수각(水閣), 동별당(東別堂) 등이 있다. 또 문화재로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佛說大報父母恩重經版), 금동향로,청동향로, 용주사 상량문,전적수사본(典籍手寫本)용주사 병풍,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 대웅보전 내 수미단에 봉안된 목조삼세불좌상 , 화성 용주사 남무대성인로왕보살번 ,화성 용주사 목조감실 ,화성 용주사 지장전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일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