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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카페 게시글
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당신께 드리고 싶은 새 해 첫 선물
무진당 추천 0 조회 122 12.01.06 07:45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조정육의 『동양화가 말을 걸다』20. 필자미상, <십장생도>

 

 

 

‘당신께 드리고 싶은 새 해 첫 선물’

 

 

우와! 오셨군요. 드디어 오셨군요. 1년 동안 당신을 기다렸는데 이제야 도착하셨군요. 밤길에 오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더디 오셔서 폭설 때문에 못 오시나 했어요. 군불 지펴놨으니 어서 들어와 뜨뜻한 아랫목에서 몸 좀 녹이세요. 그동안 저는 아침상을 차릴께요. 찬은 없지만 현미밥에 시래기국을 끓여놨으니 맛있게 드세요. 동치미국물도 적당하게 익었구요. 된장에 박아 둔 깻잎도, 간장에 절여 둔 고추도 마치 맞게 간이 배었어요. 여행길에서 지친 당신의 입맛을 되돌려 줄 거예요. 우선 식사부터 하신 후 커피 마시면서 밀린 얘기 함께 나누어요. 아참, 제가 당신을 위해 1년 동안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마음에 드실 지 모르지만 제가 식사를 준비할 동안 호박죽 드시면서 편안히 감상하고 계세요. 당신을 향한 새 해 첫 선물이랍니다.

 

작자미상,<십장생도 10곡병>, 19세기, 비단에 색, 151.0×370.7cm, 삼성 리움미술관

 

그림 속에 해, 달, 구름, 거북을 그린 이유

<십장생도(十長生圖)>예요. 세화(歲畵)를 대표하는 작품이구요. 새해를 축하하고 한 해 동안 액운 대신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정초(正初)에 왕이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그림이예요. 세화를 주는 풍속은 고려시대부터 세시풍속의 하나로 행해졌는데 벽사(?邪)와 진경(進慶)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대요. 나쁜 일은 막아주고 좋은 일만 생기게 해 달라는 뜻이지요.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봐요.

 

‘십장생(十長生)’은 장수를 상징하는 열 가지의 사물을 뜻해요. 해, 구름, 산, 바위, 물, 학, 사슴, 거북, 소나무, 영지가 대표적이지요. 구름 대신 달이, 바위 대신 대나무로 그려지는 등 문헌마다 장생물이 약간씩 다르게 표현되기도 해요. 조선후기에는 복숭아나무와 대나무를 추가시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십장생에 선발된 사물은 해와 구름 같은 자연물에서부터 학과 거북, 소나무와 영지 등의 동식물까지 분포지역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어요.

 

한 장소에 그려 놓았지만 그림 속으로 초청 받기 전까지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어요. 이렇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상서롭다’는 것이었어요.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게 해 주는 존재들이니 누군들 반기지 않겠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서로가 서로에게 십장생같은 존재가 된다면 굳이 이런 우의적(寓意的)인 사물을 빌리지 않더라도 만남 자체가 상서롭겠지요?

 

십장생도를 그림의 소재로 쓴 가장 큰 이유는 장수(長壽)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어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과 기원이 예술 작품으로 표출되었어요. 이런 작품 배경에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추구하던 도교(道敎)의 신선사상(神仙思想)이 큰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십장생이 있는 공간이 바로 신선들이 사는 ‘선경’(仙境)이자 불사(不死)의 ‘파라다이스’(樂土)니까요.

 

십장생도는 처음에는 궁중에서만 사용했어요. 왕, 세자의 결혼식이나 즉위식 혹은 책봉을 하는 가례(嘉禮)와, 회갑 잔치 같은 수연(壽宴) 등 국가적 행사에서 왕과 왕비의 장수를 기원하고 행사장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용도로 제작되었어요. 궁중의 모든 그림을 도맡아 그린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들의 가장 큰 의무도 왕의 어진(御眞)을 제작하는 것과 함께 십장생 병풍을 그리는 것이었어요. 화려한 채색과 깔끔한 붓질이 돋보이는 십장생도는 꼼꼼한 필력을 갖추어야만 그릴 수 있으니 실력이 최고가는 화원만이 제작한 궁중장식화였어요. 그러던 것이 왕이 신하들에게 내려주는 세화로 널리 퍼지면서 민간에서도 축수용(祝壽用) 그림으로 애용된 거지요.

 

작자미상, <백자문자도>,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각 53.6×33.8cm, 삼성리움미술관

 

당신은 왕보다 귀하고 대통령보다 소중한 사람

어때요? 너무 눈부신가요? 화려하다구요? 새해잖아요. 오늘만큼은 결핍이니 곤궁이니 하는 헐벗은 단어는 쓰지 않기로 해요. 고립이니 소외니 하는 외로운 단어도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떠들썩한 축복을 받으며 날렵하게 한 해를 시작해도 조금 걷다 보면 어느 새 생의 피로가 실타래처럼 뒤얽힌 길을 뚫고 가야 하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그저 차분히 이 순간을 즐기고 누려야 할 때. 오늘만큼은 스스로를 따뜻하게 토닥거려주고 격려해주세요.

 

원래 십장생을 포함한 길상도(吉祥圖)는 그림으로만 그려진 것이 아니었어요. 자수, 도자기, 나전칠기, 금속공예품 등 가능한 모든 매체에 길상도를 그렸어요. 오늘은 제가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만 준비했지만 세화로 그려지는 길상도는 이뿐만이 아니예요. 부귀·영화·다남(多男)·출세·재물·건강·장수...등등 인간의 소망을 담아줄 수 있는 소재라면 무엇이든 길상도로 환영받았어요.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백동자도(百童子圖), 모란도, 송학도(松鶴圖), 석류도, 군접도(群蝶圖), 약리도(躍鯉圖),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놀랍지 않나요? 눈이 닿고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길상도를 그렸다는 사실이 말이예요.

 

길상도가 넘치게 풍부하다는 사실은 그만큼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일 지도 몰라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치기 쉽고 부서지기 쉬우면 매 순간 힘을 얻고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이 필요했을까요? 겉으로는 대쪽같이 강한 사람도 조금만 마음을 열고 속살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죽순처럼 여리디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러니 올 한 해는 아무리 뻣뻣하고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대쪽 같은 겉모습에 속지 말고 무조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기로 해요. 알고 보면 그는 약한 사람이거든요.

 

제가 <십장생>을 병풍에 그린 이유는 장수를 축원하는 사물을 한꺼번에 많이 그려 넣을 수 있기 때문이예요. 이렇게 좋은 의미가 담긴 장생물인데 기왕이면 하나라도 더 많이 그려 넣으려다보니 긴 그림형식이 필요했어요. 긴 그림에는 병풍이 가장 적합하더라구요. 내용은 내용대로 넣을 수 있고, 공간에 따라 신축적으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어요? 물론 10폭이나 되는 긴 병풍을 꼭 십장생의 의미만을 음미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예요. 장식성과 보온성도 겸하기 때문이죠. 병풍을 방안에 넓게 펼쳐놓으면 밋밋한 공간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도 있고, 겨울에는 웃풍이 센 한옥의 바람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어요. 지금 당신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웃풍 걱정할 일은 없겠지만 마음 속에 웃풍이 뚫고 들어올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당신, 갑자기 왜 웃어요? 이렇게 화려한 십장생 병풍은 궁중에서나 쓰는 화려한 장식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지요? 왕이 고관대작들에게 주는 새해 선물도 이 정도로 큰 병풍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잖아요? 우리같이 가난한 서민들이 누리기에는 너무 눈부신 사치라는 것을.

 

물론 잘 알지요. 그러나 이젠 시대가 달라졌어요. 저한테 당신은 왕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예요.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재벌 총수만이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당신도 그들만큼 충분히 그런 사치를 누릴 권리가 있어요. 집이 좁다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 그림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요. 컴퓨터 바탕 화면에 깔아 놓으면 충분해요. 문화와 권리는 소유하는 자의 몫이 아니라 누리고 향유하는 자의 몫이예요.

 

장수의 지름길은 건강

아침 준비 다 됐어요. 어서 식탁으로 오세요. 장수의 지름길은 아침밥을 챙겨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대요. 작년 이맘 때 당신과 헤어져 돌아서는 순간부터 내내 생각했어요. 당신한테 주는 세화에 올 해는 어떤 내용을 담을까 하구요. 처용(處容)상이나 종규(鐘?)상이 좋을까. 닭이나 호랑이가 좋을까. 막강한 힘을 가진 이런 부적 그림을 붙여놓으면 당신이 1년 동안 살아갈 때 앞길을 막는 사악한 기운을 모조리 정리해 줄 테니까요. 요지연도(瑤池宴圖)나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같은 축수적인 그림도 생각해봤어요. 당신의 1년이 서왕모가 베푸는 요지연에 초대받은 것처럼 행복하기를 바랬으니까요. 부귀영화와 자손번영의 행운을 누린 팔자 좋은 노인네 곽분양을 그려 주면 당신의 1년도 그를 닮아가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당신이 고혈압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때 생각했어요. 당신이 올 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병장수(無病長壽)’가 아닐까 하구요. 아무리 화려한 파티에 초대받은다 한들 내 몸이 아프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은다 한들 골골거리며 산다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최고겠지요. 오늘 아침상에 흰 쌀밥과 고기국 대신 현미밥에 시래기국을 올린 이유도 다 그런 배려에서였어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예요. 저는 1년 후 새 해 첫날에 다시 올께요. 내년 이맘 때 다시 만날 때까지 한가지만 꼭 기억해주세요. 제가 삼백 예순 다섯 날 동안 당신을 위해 아침마다 눈부신 태양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설령 당신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도 저는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새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저는 오로지 당신의 삶이 풍부한 지혜와 행복으로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하루도 잊지 않고 동쪽 창문을 비출께요.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당신.

 

*이 글은 『주간조선』2012년 1월 2일자(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88100023&ctcd=C09&cpage=1)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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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06 09:24

    첫댓글 무진당님 주신 멋진 선 물 선물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았어요ㅎㅎ
    불로장생 할 듯 마구 마구 솟아나는 기운^^!
    아싸파이팅~이 힘찬 기운 몽땅 모아 무진당님 건강 기원드려요~파이팅아싸

    나눔은 나눌수록 커지고 주는 사람도 함께 받는 것!
    무진당님 덕분에 참 행복했음을 감사드리며 힘찬 새해되세요.

  • 12.01.06 09:17

    <십장생도>와 <백자문자도>... 무진당님께서 정성껏 준비한 식탁에 앉아
    일년동안 상서로운 일들로 가득할 풍요로운 축복의 마음 양식을 섭취하고,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십장생같은 존재가 되리라 발원합니다.~ 패밀리

    무진당님의 건강 회복을 위한 우리의 기도축원이 빛처럼 밝고 환하게
    무진당님의 세포 하나 하나에 생명력을 꽃피워 드릴거예요.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무진당님! 사랑1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12.01.16 15:11

    그림에 문외한인데 구수한 풀이를 해 주셔서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심오한 뜻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었는데....
    쾌유를 빕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12.02.06 17:55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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