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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접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합니다. 내 마음에 오셔서 영원히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 자녀의 매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누리도록 성령 충만함을 주옵소서. 나의 가정과 현장과 가는 걸음마다 복음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모든 사단의 세력을 권세있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결박하여 주옵소서. 어떤 일, 어떤 문제든지 해결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을 발견하며, 성령의 인도받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이 증거되게 하시고, 나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깊은샘 366호- 3면 (The Lead
er's Time)
후대를 위한 에세이 10
전도 이해 - “하나님의 소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을 영원히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2: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3:16)
사람을 살리는 내용이 “복음”이라면, 방법은 그 복음을 전하는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린도전서1:21-24)
참된 전도의 시작은 나의 정체성을 알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안다면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게 됩니다. 비로소 자신의 위치와 직분에 맞는 “~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잘 살아야 되는 게 아니라, “~답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자녀에게 주신 구원의 축복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녀에게 약속하신 기도 응답은 분명히 오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자녀에게 약속하신 승리는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자녀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천국까지의 인도하심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자녀에게 약속하신 사죄는 영원토록 유효한 것입니다. 이 배경을 내 삶속에서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신 그 복음을 전달하여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복음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주고, 인생의 해답을 가진 자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되는지 미션과 방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 문제, 사건, 일, 만남의 기준이 된다면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는 모든 축복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전도중의 전도는 이 복음을 증거하여 사람을 살리고 한 지역과 한 나라를 살릴 제자를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전도를 찾아 최고 행복하게 누리는 삶, 그것이 바로 전도자의 삶입니다. 내 삶의 현장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전도의 현장이요, 응답의 현장이요 축복의 현장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세기39:2-3)
깊은샘 366호- 4면 (깊은샘 Story)
시애틀의 하룻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라는 영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미국 서부의 워싱턴주 시애틀(Seattle)은 연중 300일은 내리는 비와 스타벅스 1호점으로 유명한 커피, 그리고 아름다운 야경의 도시이다. 영화에는 네군데 지역이 나온다. 시카고, 볼티모어, 시애틀, 뉴욕이다. 금번에 공교롭게도 전도여행을 가는 순서와도 비슷해서 다시 한 번 영화를 생각해 본다.
시카고에서 건축가로 일하던 샘은 아내를 여의고 실의에 빠져 있다. 그는 장례를 치루고 얼마 안되어 기분전환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 시애틀로 이사를 결심한다. 비가 많이 내리고 습하며 면적의 5분의 1이 호수인 시애틀로의 이사를 주변 사람들은 의아하게 바라보지만 샘은 개의치 않는다. 그때 8살짜리 아들 조나 볼드윈이 크리스마스 특집 라디오 방송'소망과 꿈'에 아빠에게는 새 아내, 그리고 자신에게는 새 엄마가 필요하다고 전화 사연을 신청한다.
철이 일찍 들어버린 어린 아들의 발칙한 사연 접수로 어쩔 수 없이 라디오 방송에 응하게 된 샘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절절한 마음과 고독함을 담담하게 말하므로 전국에 있는 여성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곧 엄청난 양의 구애 편지가 샘의 집에 도착한다.
볼티모어의 부모 집에서 크리스마스 기념 가족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소망과 꿈'의 방송을 듣게 된 애니는 왠지 모르게 누군지도 모르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라디오 방송 '소망과 꿈'의 진행자인 마샤 필드스톤 박사는 매일 밤 죽은 아내가 그리워 잠 못 드는 샘의 사연을 듣고 샘에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어린 조나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오게 된 것을 인연으로 애니는 빌딩 전망대에서 이들 부자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은 빌딩을 내려오면서도 계속 서로를 쳐다보며 운명적인 사랑이 아직도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놀라워한다. 미국 서부의 끝인 시애틀에서 크리스마스 밤을 해변가에 홀로 앉아 보내고 새해의 종이 울릴 때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보며 ‘너무 보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샘과 미국 동부의 끝인 볼티모어에서 옛날 영화를 보면서 ‘저 시대의 사랑은 진실했다’고 말하며 마법같은 사랑을 예감하고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애니 그 두 사람의 사랑은 미 대륙의 동부와 서부라는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크리스마스에 시작되어 발렌타인 데이에 결실을 맺게 된다.
이 영화는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목소리만 듣고도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할 만큼 운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과연 그런 사랑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세상은 넓고 삶은 다양하기에 그런 흥분될 일이 전혀 없으란 법도 없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서부에서 동부를 오가는 사랑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보다 진한 복음의 사랑을 안고 동양인으로 미국인에게 받은 복음을 다시 전달해주려고 전도여행을 떠난다. 태평양을 건너 시애틀에서 하룻밤 머물고 시카고를 지나 뉴욕으로 가는 일정이지만 진정한 만남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직 복음과의 만남을 이루게 한다. 아직도 인생문제의 해답이 없어 잠 못 이루는 당신이 있기에 우리는 거리 불문하고 날아간다. 짧은 인생살이의 행복을 위해서도 고민한다면 영원한 생명의 미래를 두고 복음을 만나 자유를 얻으라. 편안한 잠은 당연한 선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복음과 진정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현국(복음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