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1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일 – 나뭇잎은 뿌리에서, 다시 뿌리로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4-15).
나무뿌리는
그늘만큼 뻗고
높아질수록 깊어진다.
뿌리에서 나오는 나뭇잎은
끝까지 달려
그늘도 되고 생기도 품는다.
나뭇잎은
가을이 되면 맵시를 내고
겨울이면, 落葉歸根 − 뿌리로 돌아간다.
나뭇잎이 찬바람으로
낙엽 될 때
나동그라져 찢기는 아픔을 겪는다.
나무뿌리는
찢겨서 절며 오는 나뭇잎을
희망으로 환대한다.
갯고랑 가에
촘촘히 앉거나 선 소나무가
산을 이루니 솔뫼이다.
병막(病幕: 솔뫼 초입 언덕) 지나
갯고랑 건너면
재복당(再福堂)에 이백 년 전 사내아이 울음소리 쟁겨 있다.
아이는 자라며
나뭇잎에서 뿌리를 흐놀고
뿌리 생각으로 잎을 그렸다.
삼십 년 전 솔밭에 앉아 그리던
나이테마다 옹이 박힌 그림을[1][2]
그 아이 이백 살이 되는 날 마무리 해본다.
[1] 생명계통수(phylogenetic tree)
[2] 삼도통제사(김예직) 신도비명에서 발췌
▲夫人李氏 廣興守夢殷之女 以丁卯五月五日生 年十七 歸于公 後公十六年卒 壽七十三 祔公葬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는 광흥창수(廣興倉守) 몽은(夢殷)의 따님으로, 정묘년(명종22년, 1567) 5월 5일에 출생하여, 17세에 공의 배우자가 되었고, 공보다 16년 후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73으로 공의 무덤에 부장(附葬)하였다.
▲公有三子一女 守溫宣務郞早
圽守良監役 守儉縣監 女適郡守韓翼明
공은 3남 1녀를 두었으니, 수온(守溫)은 「선무랑」인데 일찍 죽었고, 수량(守良)은 「감역」이요, 수검(守儉)은 「현감」이요 따님은 「군수」 한익명(韓翼明: 淸州人)에게 출가하였다.
▲宣務一子大聲 監役二子一女 大亨 大聲 大聲出繼 女進仕成後述 庶子大律 縣監一子二女 大任正郞 女長主簿沈榎 次爲吾先大夫 行判書 東沙公諱挺緯繼室 庶子大鼎 大鉉 庶女愼世基 郡守三子三女 鼎相僉正 斗相判官 柱相都事 女長鄭以和 次生員任垕 次牧使吳始益
「선무랑」(守溫)은 1남이니 대성(大聲)이요, 「감역」(守良)은 2남1녀이니, 대형(大亨), 대성(大聲)인데, 대성은 수온의 양자로 가고(出繼), 1녀는 「진사」 성후술(成後述: 昌寧人)에게 출가하고 서자는 대율(大律)이었다. 「현감」(守儉)은 1남 2녀이니, 대임(大任)은 「정랑」이요, 장녀는 「주부」 심가(沈榎: 靑松人)에게 출가하고, 다음은 나의 선대부 「행 판서」 동사(東沙)공 휘정위(挺緯)의 계실이요, 서자는 대정(大鼎). 대현(大鉉)이요, 서녀는 신세기(愼世基: 居昌人)에게 출가하였다. 「군수」(한익명)는 3남 3녀로서 정상(鼎相)은 첨정이고 두상(斗相)은 판관이고 주상(柱相)은 도사를 지냈다. 장녀는 정이화에게, 차녀는 생원 임후에게, 막내딸은 목사 오시익에게 시집갔다.
▲大聲一子一女 宣傳官纘夏 進士李國英
대성(大聲)은 1남 1녀이니 찬하(纘夏)는 「선전관」이요, 1녀는 「진사」이국영(李國英: 全義人)에게 출가하였다.
▲大亨四子三女 重夏 鼎夏 相夏 纘夏 纘夏出繼 女長兵使閔鏞 次朴自華 申漵 庶子從夏 光夏 成後述一子琇
대형(大亨)는 4남 3녀이니, 중하(重夏), 정하(鼎夏), 상하(相夏), 찬하(纘夏)인데, 찬하는 출계(대성의 양자)하였고, 장녀는 「병사」민용(閔鏞: 驪興人), 다음은 박자화(朴自華:密陽人), 다음은 신서(申漵:高靈人)에게 출가하고, 서자는 종하(從夏). 광하(光夏)이었다. 성후술은 외아들 수(琇)가 있었다.
▲大律一子一女 益夏 女洪應龜 正郞一子鎭夏 庶子昌夏 胤夏 女李弘慶
대률(大律)은 1남 1녀이니, 익하(益夏)이요, 1녀는 홍응구(洪應龜: 南陽人)에게 출가하였다.
「정랑」(大任)은 1자이니 진하(鎭夏)이요, 서자는 창하(昌夏), 윤하(胤夏)이요, 딸은 이홍경(李弘慶:全州人)에게 출가하였다.
▲主簿三子三女 廷謙 廷泰 廷益 趙以遠 閔命錫 朴溟羽 先考四女 長生員壯元李浹 次李性鴻 次權週 次進士李萬維
「주부」(沈榎)는 3남 3녀를 두었는데 정겸, 정태, 정익, 이고 딸은 조이원, 민명석, 박명우에게 시집갔다. 오정위(先考)에게 시집간 수검의 따님은 4녀를 두었는데 첫째는 생원에 장원한 이협에게, 둘째는 이성홍, 에게 셋째는 권주에게, 넷째는 진사 이만유에게 시집갔다.
▲大鼎一女萬戶睦昌浚 大鉉一子弼夏
대정(大鼎)은 1녀이니 「만호」목창준(睦昌俊:泗川人)에게 출가하였다.
대현(大鉉)은 1남이니 필하(弼夏)이었다.
▲世基四子 文建 行建 成建 德建 僉正三子二女 宗建 宗運縣監 宗迪都事 女縣監金鼎臣 生員洪萬通 判官五子一女 都事宗老 宗大 次參奉宗揆 宗彦 宗秀 女歸于不侫 都事一子二女 進士宗岱 女朴慶裕 李弘模
신세기는 4명의 아들을 두어 문건, 행건, 성건, 덕건이고 첨정(한정상)은 3남 2녀를 두어 종건, 현감 종운, 도사 종적이고, 딸은 현감 김정신, 생원 홍만통에게 시집갔다. 판관(한두상)은 5남 1를 두어 도사 종로, 종대, 참봉 종규, 종언, 종수이고 딸은 저(오시만)의 처이다. 도사(한주상)은 1남2녀를 두어 진사종대이고 딸은 박경유, 이홍모에게 시집갔다.
▲正郞公 以公宅兆不利 旣遷厝于先壟外岡坎坐之原 又將伐石 謨不華者銘 屬之不侫 不侫辭以匪其人 正郞公 强之曰 此先相公意 子何解焉 乃銘曰
「정랑공」(大任)이 공(예직)의 묘지가 불리하다고 하여, 이미 선산의 바깥 산등성이(先山外岡) 감좌(坎坐)의 언덕에 이장하고, 또 비석을 마련하여, 겉보기만 화려하지 않은 자의 명문을 구하더니, 불초에게 이를 청하므로, 불초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고 사양하였다. 정랑공은 굳이 말씀하되 『이는 선상공(先相公)의 뜻이니 자네는 어찌하여 면하겠느냐?』하였다. 이에 명문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