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건의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수사를 받다 멕시코 교도소를 탈옥한 뒤 53년을 가명으로 숨어 지낸 미국 여성 샤론 킨이 지난 2022년 캐나다 앨버타의 작은 마을에서 자연사한 사실을 미국 당국이 3년 만에야 확인했다고 AP 통신이 30일(현지시간) 전했다. 얼마나 신원을 철두철미 숨겼으면 반 세기 넘게 숨어 지낼 수 있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겠다.
킨의 손에 목숨을 잃은 이는 세 사람이었다. 25회 생일을 맞기 전에 미주리주 출신의 남편, 남자친구의 아내와 멕시코의 한 바에서 유혹한 남성이었다. 1969년 12월 7일 멕시코 여성 교도소에서 탈옥한 것으로 알려진 뒤 그녀의 행적에 대한 실마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속성 때문에 팟캐스트 방송들이나 TV 쇼들에 자주 등장했고 심지어 책 '난 그냥 보통 소녀, 샤론 킨 이야기(I’m Just an Ordinary Girl: The Sharon Kinne Story)'도 나와 있다.
그런데 결국 익명의 제보 덕분에 당국은 그녀가 2022년 1월 21일 앨버타의 한 작은 마을에서 디에드라 글라부스란 가명으로 살다 자연사했음을 확인했다고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잭슨 카운티 보안관실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에 따라 그녀에 대해 제기된 모든 혐의에 대해 이번 주에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다. 회견에 나선 더스틴 러브 경사는 "어느날 책상 건너에 그녀를 앉혀두고 신문하게 되길 바랐으며, 그녀의 뇌를 갈라보고 싶었는데, 맞아, 불행히도 살아 생전의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자기 일을 잘 해냈다"고 허탈해했다.
그녀의 가족도 회견에 초대돼 이번 일로 사건이 종결됐음을 알리는 성명을 큰 목소리로 낭독했다. 성명은 “샤론은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에 결코 직면하지 못했으며, 자녀들에게 처리할 일을 물려준 여성이었다. 그녀는 생각 없이, 회개하지도 않고 커다란 폐를 끼쳤다”고 질타했다.
샤론 킨은 열여섯 살에 결혼해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외곽 인디펜던스의 목장 자택에서 살고 있었다. 1960년 3월에 스물다섯 살 남편 제임스 킨이 잠자다 머리 뒤에 총격을 받아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아이를 기르던 샤론은 경찰에 두 살배기 딸이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아빠?”라고 묻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때 총성이 울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침실로 뛰어들어가 아이 손에 남편의 22구경 반자동 피스톨이 들려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사망 원인은 우발적인 총기 사고로 규정됐다.
그러나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법정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언론 보도와 수사 결과에 따르면, 샤론은 남편의 생명보험금과 집 매각 대금으로 새 차를 뽑으러 갔다가 자동차 거래상 월터 존스를 만났다. 그녀는 존스의 결혼 생활을 끝내도록 종용했는데 존스는 마다고 했다.
해서 샤론은 같은 해 5월 존스의 아내 패트리샤를 꼬여 냈다. 패트리샤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 작전이 벌어졌다. 패트리샤는 네 발의 총격을 받고 주검으로 발견됐는데 샤론은 깜짝 놀란 척 연기하며 함께 있었던 다른 남자친구에게 "그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뻔뻔함을 드러냈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경찰에 털어놓지 말라고 채근했지만 남친은 경찰에 알렸다. 다음달 1일 샤론은 패트리샤 존스 살해 혐의로 기소됐고, 경찰은 남편 제임스 킨의 사망 사건도 다시 들여다봐 잭슨 카운티 대배심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1961년 6월 샤론은 남성들로만 채워진 대배심으로부터 무죄 평결을 받았고, 법정 안에 갈채가 쏟아졌다.
이듬해 1월 샤론은 남편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미주리주 대법원은 배심원 선정에 잘못이 있었다는 이유로 판결을 번복했다. 이에 재심이 열렸지만 이번에는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러브 경사는 오늘날 같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면서 "우리 사법 시스템은 65년 만에야 먼 길을 돌아왔다”고 했다.
샤론은 1964년 9월 새로운 남자친구와 멕시코로 달아났다. 같은 달 그녀는 바에서 한 남자를 만나 호텔로 유인했다. 새벽 3시쯤 총성이 울렸는데 프란시스코 오도네즈란 이름의 그 남자가 죽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킨은 오도네즈 살해 혐의로 1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탄도 검사 결과 샤론의 멕시코 모텔에서 발견된 총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그 총은 패트리샤를 살해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탈옥하기 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멕시코 언론들이 붙인 별명이 '라 피스톨레라'(La Pistolera)로 총잡이란 뜻이다. 1965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난 그곳을 떠나면서, 캔자스시티와 인디펜던스를 떠나면서 세상은 어딜 가나 똑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어디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행적에 대한 실마리는 2023년 12월 익명의 제보가 올 때까지 전혀 잡히지 않았다. 장례 대행사가 지문을 보관하고 있어서 신원 확인이 가능했다. 수사 결과 그녀는 종적을 감춘 뒤에도 여러 차례 결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7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임스 글래부스란 남성과 결혼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가명으로 가정을 꾸렸다.
잭슨 카운티 보안관실의 론다 몽고메리 경위는 “피해자 가족 뿐만 아니라 본인 가족에게도 영향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남겠다고 했다고 당국은 전했다.
1970년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는데 다만 적어도 1979년부터 앨버타에 살고 있었다고 러브 경사는 말했다. 그는 샤론의 인생에 대해 아는 이들의 제보를 기다린다며 특히 1969~79년에 행적들을 제보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러브 경사의 마지막 말이다. “난 이미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가족 모두에게 생전에 그녀를 붙잡지 못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누군가 제보할 것이 있었는데 그녀가 죽을 때까지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냥 일이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