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에 처음 온 것은 2004년 이었다.
당시 나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되지도 않을 고시를 준비하면서 아시는 분의 일을 거들고 있었다.
당시 아시는 분이 미얀마의 카렌족을 지원하시는 활동을 했는데 그들에게 학교를 설립해주고 물품을 지원해주는 역활을 하셨다.
미얀마 카렌주로 갈려면 대부분 운남성의 쿤밍을 거쳐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또 1시간을 가고 다시 내려서 4시간 차를 타고 가야 중국과 미얀마의 국경도시로 갈 수 있었다.
미얀마와 중국의 국경도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국경도시와는 다르게 철조망 하나 없는 단지 신발을 벗으면 건너갈수 있는 우리 말로 실개천 하나로 나라가 분리되어있었다.
미얀마 사람들도 솔직히 자유롭게 중국을 드나들수 있었고 중국 사람도 미얀마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심지어 중국 번호판을 든 차들이 미얀마 국경을 우회해서 드나들고 있는 광경은 쉽사리 볼수가 있었다.
당시 나는 중국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거기까지 어떻게 갔는지 나자신도 놀랄 정도였으니까
여기서 당시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당시 나와 후배는 미얀마 와 중국 국경마을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어야 했다. 호텔에 들어가서 안되는 영어로 방있냐고 묻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자 나는 안되는 실력으로 한자를 써가면서 여기가 호텔인지 물었고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텔에 하루밤에 얼마냐는 말을 못해서 계산기를 대면서 금액을 이야기하였다.
근데 하룻밤에 130원이라는데 나보고 300원을 내라는 것이다 , 그리고 언제 체크 아웃해야 하냐고 물어보니까 중국종업원이 한자로 '명천'이라고 써주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그당시에는 황당했다. 왜 호텔비가 130원인데 나한테는 300원을 달라고 하냐고 한참을 싸우고, 에이 더럽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씨우네라고 한참 속으로 욕을 했다. 그리고 왜 나보고 내일 아침에 나가라고 하냐고(밝을 명자에 하늘천)막 싸웠다..... 그리고는 결국 의사소통이 안되서 나는 그 다음날 아침 9시에 방을 체크 아웃하고 나오야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300원은 팅진이고 명천은 내일이라는 뜻을 알지만... 그 당시 얼마나 황당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호텔에 나와서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중국 시골 식당에 들어갔다. 나머지는 재료를 알수 없어 콩나물하고 가지와 배추, 그리고 밥 2개를 시켰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나? 정말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계산을 할려고 하니까 3원을 달라고 했다. 그때우리는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중국이 싸기는 정말 싸네 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7일 후 귀국... 그런데 귀국하고나서 부터 식욕이 없고, 힘이 하나도 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뭐라고 아픈것 같지는 않는데... 하도 힘들어서 병원에 갔다..
의사왈: 최근에 동남아나 다른데 갔다왔어요?"
저: 네
의사: 어디요
저: 중국이요
의사: A형간염이네요. A형간염은 시간 지나면 나는 간염이니까 걱정안해도 돼요.. 그리고 외국나가서 음식 가려드셔야 해요
흑. 결국 우리가 싸다고 먹었던 1.5원짜리 밥이 외국인인 나에게는 A형간염을 가져온 것이었다.
그 후 3번인가 다시 중국에 일이 있어서 방문을 하였다.
그사이 나는 결혼도 하고 애도 가지게 되었고 새로운 가정의 가장이 되어있었다.
가장이 되고 나니 가족의 생계가 걱정이었고 새로운 발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그래서 나는 아시는 분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로 어려운 난관의 연속이었다. 하나하나 일을 할때마다 줄을 타는 기분이었고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 무기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일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내가 중국에 와서 회사를 세우고 세우자 마자 한국에 납품하는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나는 중국말을 잘하지 못한다. 항상 통역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고, 그 일마저 턱에 차올라와 어절줄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를 견딜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 처음와서 5개월 동안 먹었던 3원의 국수가 아닌가 한다. 물론 내 가족과
처음 나는 혼자 중국에 왔다. 임신한 마누라를 부모님꼐 맡겨놓고....
처음 중국에 와서 직원을 뽑고, 사무실을 마련하고 나는 중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기업 판촉물 납품이기에 많은 물건을 봐야하고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직원1명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잊지 않았던 것은 1.5원의 밥이었다. 내가 1.5원의 밥을 먹고 A형 간염에 걸리지 않는다라면 내가 그럴수 있다라면 나는 이들과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나는 5개월 동안 대부분을 중국 베이징의 가장 싼 국수집에서 점심을 때웠다. 3원짜리 국수를. 그리고 저녁에는 마라탕과 양꼬치를 하면서 맥주를 마시곤 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상챠이를 자연스럽게 먹고 중국의 3원짜리 국수도 거리낌없이 먹게 되었다. 아침에는 1.5원짜리 전병을 먹으면서 출근을 하게 되었고, 중국 사람들과 안되는 중국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학원에 7일밖에 다니지 못하고 한번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해서 잘하시는 분들이 보면 웃기지만 말이다.
어제 베이징에서 청도로 다시왔다. 10시간 짜리 입석 기차를 타과왔다. 발하나 붙일 공간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기차에서 중국의 아저씨 아줌마들과 같이 살을 부대끼면서 같이 왔다.
자랑을 하고 싶어서도 고생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도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내가 타고 싶어서 탄것도 아니었다. 지금 현재 나는 베이징과 청도에 사무실이 있는데 베이징에 취업비자가 되어있어서, 취업비자 연장 신청을 하러 다녀오는 길이라 여권이 출입국 관리소에 맡겨져있어서 비행기를 탈수가 없었다.
기차표는 어제와 오늘 전부 매진이라서 기차표 자체가 없다고 했다.
간신히 기차역에서 기다리다가 어제 저녁 22:20분에 베이징역에서 출발하는 청도 열차에 입석으로 몸을 실을수가 있었다.
입석표를 끊으면서 아 기차타면 자리를 바꾸어야지, 돈주고 사면되겠지 생각을 했는데 기차간은 발을 딛을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결국 청도에 오는 내내 서서 와야만 했었다.
처음 3시간은 짜증의 연속이었다. 아이 힘들어 죽겠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그냥 여기서 내려서 자고 내일 아침에 차로 가거나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자리가 화장실 옆에 서있었던 지라 수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갈때마다 완전히 오징어처럼(물론 내 몸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나는 잘알고 있다) 몸을 구부려야 했다....
한참 불만이 고조로 다가서는데... 갑자기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하나...
그래 내가 여기 왜와있지? 내가 왜 이전하고 틀린 생각을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1.5원짜리 밥을 먹을수 있으면 성공할수 있을거야라는 생각 그리고 3원짜리 국수를 먹으면서도 행복하였던 때가 있었고, 어떻게든 중국인 친구를 사기기 위해서 일부러 친한척 한적도 있는데,......
내가 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수많은 중국 사람들은 짜증 안내고 가고 있는데......
결국 입석 10시간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반성의 시간을 주었다.
그래 나는 성공하지 않았다. 지금도 외줄타기를 하고 있고 정말로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내가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외국인이라고 어느새 나를 스스로 규정하고 내가 발딛고 있는 이땅의 사람들과 나를 차단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었다.....
10시간의 입석 참으로 고마운 시간이었다......
흘린 땀만큼 나에게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날씨가 우충충하다. 날씨가 덥다....
그래서 짜증도 나고.....
내가 살아가야할 조국에서 피어나는 촛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금할길도 없다.
이제부터 나는 초심을 다시 기억할려고 한다.
그 초심이 나의 생활에서 시작되는 삶의 태도를 바꾸었으면 한다.
그리고 내 초심이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었으면 한다.
생활도 열심히 하고 촛불도 열심히 지지하는 내가 되어보고 싶다..
정말 열악한 인간의 고백이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렇게 글로 남겨놓으면 다시 이 공간의 이글을 읽어보면서 나를 다잡지 않을까 해서 말도 안되는 글을 적어본다...
첫댓글 다시 청도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ㅋㅋ 언제 한잔 하셔야 할텐뎅. 일을 정리해야 되서. 약속한 일도 해야 하는뎅
참으로 고생 많이 하셨군요..대가로 많은 것을 느끼셨다니 다행입니다..건승하십시오..^^;;
ㅇ ㅏ 정말 좋은글 입니다 ... 보고 또보고 ....
저도 글을보고 많은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것 같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시구요 홧팅입니다.
대단하십니다. 반성을 하게 되는군요. 학생 때 양저우차오판 한접시에 훈툰 한그릇으로 저녁 때우던 그때가 무럭무럭 기억납니다. 그래도 참 맛있었는데.
대단하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홧팅입니다. 아자아자!!
무엇을 하든 초심을 잃지 않으면 꼭 성공하리라 생각해봅니다. 중요하지만 쉽게 잊을 수 있는 단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모두 화이팅 합시다.
멜로디 님의 초심... 저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네요..화이팅~~! 입니다.. 盡人事 待天命 이지요? 작은일에도 감사해 하며 최선을 다하여 주위에 좋은 모범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말 저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성공하실겁니다..아니 성공하셨네여..버스도 타보셨겠지여..이젠 성공만 남으신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헐 .. 그냥 마음을 적은 것 뿐인데 부담스러운 글들이 올라와서 짐이 되네요.. ^^ 이국땅에서 흘린 땀이 성공의 거름이 될거라 믿습니다. 모든 분들이 화이팅 하는 날들 되었으면 합니다.
저랑 비슷하게 사시는 분 여기 또 계시네요... 좋은 글 감동... 또 저에게도 저의 지금의 현실을 다시 곱 십어 보게끔 해주는 글들 감사합니다... 홧팅 하시고요...힘네세요.... 요즘 2원짜리 버스는 에어컨도 빵빵합니다^^;
안그래도 오늘 지묵까지 버스타고 갔습니다. 청양에서 4원 ^^
여권을 출입국관리소에 맡길경우 노란딱지(여권 보관증)를 주는데 이것으로 비행기를 탑승할 수있습니다. 물론 사진이 있는 다른 증명서(중국의 공작증이나 전문가증등)가 있어야 겠지요...출입국관리소에서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사진확인도 해 줍니다. 다음에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사서 고생하지 마시길...허긴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고 하니까...좋은 경험을 위해서라면 괜찮으시겠고....
네 그렇군요. 근데 제가 취업비자 연장이러서 전문가증하고 여권을 다 맡겼습니다. ^^ 취업증 연장도 해야 해서요.^^감사합니다.
대단하시네요~!! 아마 중국 에서 성공 하시는 분 중에 한분이 되지 않겠나 생각해 봄니다~
가슴속 무언가 뭉클해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반드시 성공 하실 겁니다~^^
잘 지내시죠? 공예성 멜로디님. 뚱 아저씨??? ㅋㅋㅋ 지난달 만나뵈었던 ? 아줌마 기억하시나요? 열심히 흘린 땀내가 나는 글 잘 읽구 가네요. 이번 청도행엔 뵙구 식사라두 하시죠. 3원 짜리국수라도....
아 잘기억하고 있습니다.^^ 일 잘보셨나요? 놀러오세요 언제든지 저희가 도움드릴수 있는 것은 도움을 드리지요.^^
그대 가는곳마다 꽃향 그윽 뿜으소서....
꼭 성공하실겁니다...화이팅!!!!!!
곤명에서 1시간이면 빠오산 공항..거기서 루이리 다리건너면 미얀마 접경 지에까오경제무역구 같군요.. 청나라 때 변방경계를 위해 강을 건너 미얀마 땅을 일부 점령해서 초소를 만들고.. 음~ 다시 가보고 군요..그 빠오샨에는 한국정신대 출신 할머니가 60년째 고향에도 못가고 살고 계셨는데.. 루이리 미얀마 접경 경치만 아름다우니..참고하세요.. 지금은 미얀마 군사정권의 숨통이고..중국의 미얀마 침공 .. - 그 전에 북경에서 청도가는 완행 버스를 모르고 탓더니..14시간인가.. 골목 골목 구경 다 시켜주고.. 심지어 운전사네 고향 어머니 까지 만나고..(20킬로를 노선에서 벗어나서 닭 두마리 전달 하는 거 같더라고요).. - 쥬~ 청꿍..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