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에 바보와 읍에서 저녁을 먹으며 기어이 술을 마신다.
바보더러 동료의 차를 타고 와 내 차를 운전하고 가라고 했는데,
자기 일에 운전부탁 힘들다고 자기가 운전하고 왔다.
할 수 없이 내차를 읍에 두고 동강으로 간다.
토요일 아침에 늦으막히 출근하는 바보의 차를 타고 과역정류장까지 온다.
그를 보내고 읍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얼른 오지 않는다.
터미널 안은 약자들의 집합소다.
남녀 노인들과 아픈 친구를 끌고 가는 여인네 등이다.
교통약자 지원인가를 쓴 조끼를 입은 남자가 군내버스에서 내리는 할머니를 손잡아 준다.
동초 부근에서 내릴 수있는 군내버스는 거의 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할 수없이 직행표를 2,000원 주고 산다.
고흥 터미널에 내려 축협하나로마트까지 부지런히 걷는다.
바람이 쌀랑하고 햇볕도 전혀 없다.
중심가를 지나 차에 오니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를 끌고 능가사 앞으로 간다. 국공탐방 안내소를 들르지 않고 개천 옆에 세운다.
학교설명회에서 간식으로 준 비닐봉투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물만 한병 챙겨 능가사로 들어간다.
날은 흐리지만 상춘객들이 걸어간다.
범종각 앞의 목련은 활짝 피었고 벚꽃도 반쯤 피었다.
동백은 땅바닥에 시든 것과 싱싱한 꽃이 함께 있고, 쳐진 가지 끝에도 붉다.
사적비를 보며 폰의 설정을 고치려다가 있는 그대로 찍고 다리를 건너는데 물이
소리내며 힘차게 흘러내린다.
8봉의 봉우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침 집에 창밖으로 볼 때 멋진 구름을 볼 수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른 모양이다.
야영장엔 텐트 몇 개가 조용히 서 있다.
팔영산장을 지나 숲길로 접어드는데 계곡에 물이 힘차게 흐른다.
팔영산에 꽤 다녔지만 가장 많은 물을 본다. 이른 봄인데.
몇 팀을 추월한다. 땀이 난다. 바위 사이를 하얗게 흐르는 물 앞에서
배낭을 벗고 얼굴을 씻는다. 겉옷도 벗고 머리에 수건을 감는다.
흔들바위도 지나친다. 작은 골짜기에 하얀 물이 흐른다.
노란 히어리 높은 가지 끝에 가득한데 다가가지 못한다.
유영봉에 이르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성주봉의 가파른 계단도 고개만 숙이고 오른다.
직벽에 가까운 바위 사이엔 예전에 밟았던 철판 등이 보인다.
점암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
난 그들의 삶을 지켜볼 자격이 없다.
봉우리를 지날 때마다 건너 봉우리가 제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두류봉 오르는 길도 스틱에 의지하며 올라본다.
칠성봉 가는 길에 바위 사이의 동굴은 지나치고 통천문을 지나 바위 앞에서 인증한다.
목이 마른데 먹을 기분이 아니다.
적취봉까지 내쳐 바로 탑재로 내려간다.
편백숲에서 몇 산꾼을 지나친다.
히어리와 진달래를 보며 내려와 하얀 물이 넘치는 사방댐을 지난다.
야영장엔 텐트와 차가 더 많아졌다.
길 가의 벚꽃도 어느 새 더 피어났다.
다시 능가사에 들러 가닥없이 사진을 찍고 차문을 연다.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8봉을 도는데 3시간 10여분이 걸렸다.
간식 봉투를 찾으러 관사에 가 보니 없다.
차에 돌아와 다시 가방을 뒤지니 빨랫감 속에 들어 있다.
혼자 쓴웃음을 지으며 차 옆자리에 봉투를 풀어 놓고 동강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