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인과응보의 원리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재가자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인과응보의 교리일 것이다. 그런데 간혹
"착하게 살아야 좋은 일이 생기고 악한 행동을 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인과응보를 설명하면서, 이를 한문숙어로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악인고과(惡因苦果)'라고 말해야 옳다.
그런데 "좋은 행동를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점에서 보듯이 우리말에서나 '좋은(good)'이나 '나쁜(bad)'이라는 형용사를,
'하는 것'인 행위와 '받는 것'인 감수(感受) 모두에 대해서 사용한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자의 선(善)이 '좋은'으로 번역 가능하기에 "좋은 행동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를 선인선과 동일시하는 용어의 혼란이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좋은 행동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거나 "착하게 살아야 좋은 일이 생기고,
악한 행동을 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표현하는 인과는 '선인락과 악인고과'의
인과로, 좋은 행동인 선행과 나쁜 행동인 악행이, 각각 좋은 일인 낙의 감수와
나쁜 일인 고의 감수로 다르게 익어서 나타나는,
'이숙인(異熟因)-이숙과(異熟果)'의 인과응보다.
모든 법은 그 성격에 따라 선성, 악성, 무기성(無記性)의 세 종류로 구분된다.
선성도 악성도 아닌 것이 무기성이다. 선이나 악은 행하는 것이고,
고와 낙은 느끼는 것으로 그 질이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몸에 상처가 나서 오는 고통은 선하거나 악한 것일 수 없다.
또 추을 때 따쓰한 방의 포근한 안락 역시 선한 것이거나 악한 것일 수 없다.
이렇게 고통이나 안락과 같은 법이 무기성의 법이다.
따라서 '선인락과 악인고과'에서, 원인과 결과는 '다르게 익음
(이숙, 異熟)'을 의미하는 '이숙인-이숙과'의 관계인 것이다.
이와 달리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인과는 "착하게 사는 사람은 내생에도
그 성향이 계속 착하고, 악하게 사는 사람은 내생에도 그 성향이 계속 악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동류인(同類因)-등류과(等流果)'적인 인과의 일종이다.
'동류인-등류과'란 "같은(동) 종류(류)의 원인(인)이
같은(등) 흐름(류)의 과보(과)를 낸다."는 뜻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에서 '씨앗도 콩이지만
열매 역시 콩이라는 점'을 중시하면, 이는 '동류인-등류과'에 대한 비유다.
그러나 '콩을 씨앗으로 심었는데, 그 결과로서 콩싹이 나왔다."는
의미로 이해할 경우이는 '이숙인-이숙과'에 대한 비유다
6인 六因 5과 五果
능작인能作因 여력與力
karana hetu 부장不障 → 증상과增上果
구유인俱有因 호위과互爲果
sahabhu hetu 동일과同一果
상응인相應因
samprayuktaka hetu → 사용과士用果
동류인同類因
sabhaga hetu
변행인編行因
sarvatraga hetu → 등류과等流果
이숙인異熟因
vipaka hetu → 이숙과異熟果
이계과離繫果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법(緣起法)에 있다.
연기란 '의존적 발생'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아비달마 교학에서는 연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원인을 여섯으로 결과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는데 이를 육인오과설(六因五果說)이라고 부른다.
'이숙인-이숙과'나 '동류인-동류과'의 이론 모두 육인오과설에서 유래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과 같이 두루뭉술하게
알던 인과응보와 연기의 법칙을, 우리는 이런 아비달마
교학을 통해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게 된다.
속담 속에 담은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