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76구역 서리집사 강홍구이며 새가정부 소속입니다.
2004 년 12월 21일은 광성교회 김창인목사님이 이임하시고 이성곤 목사님이 취임하신 1년 되는 날입니다. 광성교회가 평안하였다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했어야 했지만 교회의 상황을 보니 우리모두가 1년이라는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입니다.
제게 글 쓰는 달란트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광성교회의 문제에 대해 제 의견을 적는 것은 광성교회의 문제에 있어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하였고 그 고민의 끝에 보다 객관적 사실로 광성교회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시각이 필요하다 느꼈기 때문에 글을 올립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의 싸움은 교회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방법은 뒤로한 체 서로에 대한 비방과 루머로 얼룩진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많은 광성교인들이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 할 수 있는 저의 주장을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성곤 목사님을 지지함을 선언하였으며 이로 인한 개인적인 아픔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까지는 이런 주장을 펼 수 없었음으로 광성교인으로서 약 10여 개월을 이 문제로 고민하였다 하겠습니다. 그러하였기에 제가 고민한 시각에서 우리교회의 분쟁원인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성곤목사님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였기에 제가 객관적인 시각이라 주장하여도 이미 그 객관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고민한 사실관계의 추론을 최대한 교회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주장함으로 광성교회의 문제를 직시하여 보고자 합니다.
광성의 모든 식구들이 교회문제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고 성도들의 의무이자 권리인 예배가 거룩성과 진실을 인정받지 못하고 한 성전안에 두개의 기도회, 두개의 예배가 드려지는 현실을 보며 또한 사태의 흐름을 볼 때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기차가 서로 마주달려 오듯이 극단의 위험한 상황이 발생될 것을 염려하며 저의 주장을 밝힙니다.
또한,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었고, 기쁠 때 함께 즐거워 해주었던 나와 절친한 친구들과 새가정회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분들게 나의 辯論을 드립니다.
현재 ik광성과 광성사랑에 기록되는 글들의 많은 부분은 이제 교회의 분쟁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없이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파생되어진 사건을 그 논쟁의 주로 삼고 있습니다. 4월에 발생되었던 근본적인 교회문제(?)에서 파생되어 발생된 사건 자체를 서로 비판하며 주장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현 시점에서 교회분쟁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한 번 사건이 발생된 2003년 12월 ~ 04년 4월(약 4개월)로 되돌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이 짧은 4개월의 기간동안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교회의 지도층(원로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장로들)에서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4개월 동안에 발생된 분쟁의 원인이 무엇이었기에 父子와 같았던 김창인, 이성곤 목사를 대립과 감정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으며 우리교회를 이렇게 혼란과 혼돈의 카오스의 세계로 떨어트렸는가?
현재 발생되고 있는 많은 사건들과 주장들이 너무 상반되어 어느 한 쪽을 지지하지 않은 이상은 그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힘들며, 아마 대질하여 묻는다 하여도 진실의 여부를 알 수 없는 정도로 진실보다는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양쪽의 주장이 너무 상반됨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사건도 그러하건데 현재 시점에서 시간을 되돌려 양측의 주장들어 보면 그 사건의 발생원인부터 너무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나 사건의 시작을 객관적으로 살펴 볼 때 분명한 것은 양쪽중의 한 쪽은 분명히 거짓이 있으며, 이 거짓주장은 양측의 주장이 아니라 그 때의 상황과 정황을 근거로 하여 판단 할 수 밖에 없다.
김창인 원로목사 對 이성곤 담임목사
우리의 판단을 위해 시나리오를 구성해 보겠다. 당시의 정황을 위한 시나리오를 구성해 보면
인물 : 김창인 원로목사, 이성곤 담임목사, 부목사 15명(2004년 교회목록 기준). 장로들 교회 조직 : ...
그러나 교회의 공식조직은 사건 발생시점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음으로 교회문제의 핵심은 등장인물들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등장인물 중 각을 세우고 있는 이성곤 목사와 김창인 목사를 중심으로 문제를 생각해보고 또한 부목사와 장로들을 중심으로 문제 발생의 정황을 살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김창인원로목사측의 주장>
4개월이 되지 않은 어느 날부터인가 이성곤 담임목사가 변하기 시작했다. 믿고 데려왔고 어렸을 때부터 보아와서 믿었었는데, 성품, 인격, 신앙이 완전히 잘 못 된 사람이다. 김창인 원로목사를 핍박하기 시작했으며, 교회조직을 흔들기 시작했고, 교회를 뒤집는다고 한다. 잠시 후면 모든 것을 넘겨줄 것이데 그 때를 못 기다리고 날 핍박하며, 교회전권을 빼았으려 한다. 부목사들을 상대로 말도 안되는 회의를 진행하고, 폭언과 욕을 일삼으며, 자기의 사람들을 만들어 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모르는데 인터넷에 어떤 사람이 이성곤 목사님의 자질을 묻는 글이 올라왔고, 얼마 후 술 먹는 사진이 공개 되었다.
이 사건이후 이성곤담임목사는 나를 더욱 핍박하였다. 도저희 이곳에 있을 자신이 없다. 이성곤담임목사가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 같다. 또한 떠나기 싫지만 이성곤 목사가 원로목사실을 강제로 폐쇄하려 한다. 그래 그래도 내가 데려온 사람인데 내가 자리를 피해주고 물러나 교회를 돌봐야 겠다. 그래서 광성교회 원로목사실에서 떠났다.
<이성곤목사측 주장>
담임목사로 취임하고 나서 교회를 바로 치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회장실인 내 방 뒤에는 김창인 원로목사님이 계시고, 교회의 행정적인 모든 부분은 자신의 측근 인사들과 직접 결제하고 직접 지시하신다. 당회와 재직회 등 공식조직은 이미 그 기능을 잃고 있었고 재정은 비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원로모사님은 다른 것은 신경쓰지 말고 설교만 잘 준비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교회는 평안해 질 것이라 한다.
목사님은 후계구도로 나를 지명한 것은 은퇴후의 실질적인 교회 운영을 김창인목사님이 계속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이었다 실제 모든 권한은 김창인 목사님에게 있다. 권한은 없는데 책임만 있는 담임목사이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실질적으로 교회 예산이 잘못 쓰여지고 있었다 많은 한국교회가 그렇듯이 광성교회도 잘못된 부분이 상당부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형식적인 재정보고 및 비투명하게 운영된는 교회재정, 원로목사님 측근들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원로목사님의 지시를 정직하게 수행하고 있는 당회, 아무것도 모르는 대부분의 성도들...
이 교회에서 난 어떤일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원로목사님에게 내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나의 의견은 목사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로목사님은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한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겠다.
이 시나리오는 당시의 약 4개월 동안의 정황을 i광성과 광성사랑을 읽고 내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물론 진실 무엇인지에 대한 서로의 주장이 너무 다르다.
그러나 나의 상식적인 생각으로 판단하여 보자 이성곤목사님은 대양교회에서 나름대로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15년의 목회생활을 접고 광성교회로 오셨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말그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과 김창인목사님을 신뢰하는 마음 그리고 가족 뿐이었으리라. 그런 목사님이 취임 4개월도 되지 않아 김창인목사님을 핍박하고, 부목사들과 대립하며, 교회조직을 흔들려고 했다. 그 이유는 광성교회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큰 비약이다. 만약 정말로 그런 생각이 있다면, 하찮은 내가 생각하더라도 김창인목사님을 안심시키고, 부목사들과 사이를 유지하여 한 사람 한 사람 씩 내 사람을 만든 후에 쿠테타라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서둘러서는 손해를 본다. 평생을 광성에서 머물수 있는데 왜 그 일을 서두르겠는가?
고작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38년간 교회를 담당한 김창인목사님이 바로 뒤 당회장실에 계신데 이성곤목사님이 그처럼 무모하게 교회권력을 위한 싸움을 시작했을까? 이것이 진실인가? 아니면 이 한국교회의 많은 곳에서 발생되고 있는 물질주의, 비민주성, 비투명성을 개혁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싸움을 고독하게 시작하였는가?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가?
첫째. 광성사랑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성곤목사님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교회권력을 손에 넣고자 이 싸움을 일으켰는가? 이성곤목사님이 김창인목사님과의 Power 싸움에서 4개월만에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는가?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 사회적으로 공인된 이력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 볼 필요성을 느낀다. (교회홈페이지 이력참조)
<김창인 목사 이력>
[학력] 1958 부산신학교졸업 1963 장로회 신학대학 본과졸업 1964 동아대학교 졸업 1983 아시아 연합 신학대학 및 훌러신학교 공동목회학 박사과정 졸업 1987 목회학 박사학위 취득
[시무 경력] 1958 부산 남부민교회(현 은성교회) 전도사 1964 부산 대성교회 강도사 1966 서울광성교회 담임목사 2004 서울광성교회 원로목사
[교계 활동] 1978 서울남노회장 1981 대한동남노회장 1982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서기 1984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충무대행 1985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출판위원회 위원장 1989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유지재단 이사장 1991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1993 기독공보이사장 1994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연합사업대책 위원장 1995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훈련원 원장 1996 평신도 교육대학원 원장 1997 교회와 신앙 이사장
[사회 활동] 1985 전주 예수 병원 이사(8년) 1986 예수 간호전문대학 이사(6년) 1987 전주 예수병원 이사장(6년) 1987 아세아 연합신학대학 이사 1987 학교법인 영신학원이사장(현재) 1995 기독교 방송국 이사 1998 부산 장로회 신학대학 총장 2000 부산장신대학교 총장(현재)
<이성곤 목사 이력>
[학력] 1980 장로회신학대학교 졸업 1982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1988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졸업 1993 미국 멕코믹신학교 목회학 박사
[시무경력] 광성교회 교육전도사 광성교회 전임전도사 광성교회 부목사 대약교회 담임목사(1998~2003)
이것이 공식적인 이력이다. 누가 이분을 연약하다고 할 것이며, 불쌍하다 할 것인가? 38년의 목회생활동안 더 많은 사람들-경제, 정치, 법조계-이 김창인 목사님의친구이자 지인인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당신이 생각할 때 이 두분에서 누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창인 목사님이 교회개척 시기의 초기 신앙생활을 지킬 수 있었다면, 아프고, 가난하고, 없는 자들을 위한 목자였으리라.. 그러나 위의 화려한 이력속에서 과연 그럴 시간이 있었을까?
하나님의 선한 싸움에 선 사람은 과연 누구이며, 진실을 가장한 거짓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또한 술문제를 피하기 위해 자기편을 만들고 없는 김창인목사님의 비리(?)를 만들었다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처음 도덕성 문제는 이야기 되지 않았다. 당시의 핵심은 술문제 였으며, 이것은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당시 광성교회를 나눌만큼의 문제는 아니었으리라. 또한 김창인목사님이 정공법을 택하지 않은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목회기간 중 그 어떤 모임도 허락하지 않았고, 자신의 뜻에 반한 여러 모임과 사람들을 폐지하거나 활동하지 못하게 하였고, 강공법으로 모든 것을 치리하였다.
그런데..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아무의견 없이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교회에서 물러 나셨다. 김창인목사님 답지 않은 행동이며, 그 행동이 옳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3년동안 기도하고 데려온 후임자가 김창인목사님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술문제로 인해 교회가 흔들렸다면 나서서 장로들과 당회원들에게 이해와 협력을 구했어야 했었을 것이다.
둘째, 교회의 당회구성원 중 장로 장립을 살펴보자(교회일람) 현재 교회성도들의 분열이 있기전 당회의 분열이 있었고, 이 당회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김창인 목사님의 향후 구상에 대한 추론이 가능하다.
1964 한태선, 홍상현 ; 2 명 1968 박태완, 채운종,이연근; 3 명(4년) 1971 박경민 : 1 명(3년) 1973 김대훈, 한수봉 : 2 명(2년) 1974 윤동익, 박광일(5월), 김대훈, 한수봉(12월) : 4 명(1년) 1976 문태곤, 윤점용, 김동수 : 3 명(2년) 1980 김흥광, 성백경, 양덕신, 우용기, 지기상 : 5 명(4년) 1989 김종서, 김종필 : 2 명(9년) 1992 전종철, 박자호, (이상민), 공정관, 엄주식 : 5 명(3년) 1998 김훈, (문숭사), (윤명원), (이호재), (지광호),박명근, 송운홍, 이경남, 최성락, 홍행남 : 10 명(6년) 2001 김건균, (깁부일), (박기백), (박종덕), (박태수), (석성환), (송재선), (오광현), (이동흥), (조용현), (한성철), 김영수, 김진환, 박인규, 백상기 : 15 명(3년) 2002 구시회, (김경안), (김주안), (김택환), (김형일), (손현규), (이용찬), (이한기), (장재관), (조성수), 김성희, 방덕선, 엄호섭, 이연희, 조성수, 조옥향 : 15 명(1년)
위의 년수는 장로장립이 있었던 기간이며, 괄호안의 이름이 현재 김창인목사를 지지하는 24장로들이다. (2004년 4월 기준으로 , 현제 김부일 장로님는 24장로에서 탈퇴하였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의 퇴임은 2003년 12월... 왜 김창인 목사님은 4년 동안 40명의 장로가 갑자기 필요 했을까?
34년 동안 세운장로들보다 4년 동안 세운 장로들이 더 많다는 것은 무었을 의미하는가? 또한 은퇴를 앞두고 무슨 생각으로 자격미달인(연령미달) 사위까지 넣어가며 이렇게 많은 장로들을 세웠는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한 교회세습이나 교회권력(돈, 명예, 권위 등)에 광성교회 또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100억대의 예산, 영신학교, 하늘빛학교, 광성기도원 등등.. 아직도 할일이 많은데 은퇴라는 나이에 묶여 물러날 수 밖에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도 교회의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개인적인 혼란스러움이 나를 힘들게 한다. 또한 선동적인 문구와 감정적인 주장으로 객관적인 사실근거 없이 서로를 비방할 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성과 이성으로 판단하자고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