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일차 명상 일지
도우미 아주머니 오시는 날이어서
명상 관련 자격증 3개 한꺼번에 딴 것도 자랑하고
신랑이 수고했다고 플렉스한 가방과 립스틱도 자랑하고
지난번 군법당 포교 때 피엑스에서 산 달팽이 크림과
립스틱 사고 받은 파운데이션 샘플 등, 명절 앞두고
골고루 챙겨드렸더니 쇼핑 좀 자주 하라며 좋아하셨다
이분이 울 아들 낳고 바로 오시기 시작해서
지금 16-7년차 우리 집에 일 다니신 분인데
내가 내돈내산 명품관에서 쇼핑한 걸 첨 봤다고
이렇게 속이 후련하고 개운하셨던 적이 없다며
제발 가방도 좀 사고 화장품도 좀 사고
젊은 사람(응?)이 친구도 좀 만나고 다니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셔서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여자들은 이상한 부분에서 대리만족이라는 게 있다
돈이 없어 못 지르지 쓸 줄을 몰라 못 지르겠냐며
돈 있는데도 안 쓰면 답답하게 보고 소비를 권장한다
그리고 팍팍 쓰는 걸 보면 자기가 쓴 듯 흡족해한다
"자기 스스로 안 쓰는 쪽을 선택해서 절제하나 보다
그쪽으로 아예 관심이 없구나" 생각은 잘 안 한다
나는 사람을 잘 만나지도 않고 사교생활을 안 하니
명품백도 화장품도 크게 필요도 관심도 없는데도 ㅋ
그래봤자 멋내는 것도 한철이고 곧 늙을 텐데
얼마 안 남은 젊음(응? ㅋㅋ)을 십분 즐기란다
그런 거 보면 역시 대중들에게는 붓다의 가르침보다
솔로몬의 지혜가 더 설득력 있고 인기가 있는 듯
(하긴 불경에도 아내에게 장신구를 잘 사주는 것이
남편의 도리라고 명시되어 있긴 하다 ㅋ)
전도서에서 솔로몬(으로 추정되는 화자)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니 쓸데없이 헛심 쓰면 뭐 하나
주어진 나날을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라
야훼께서도 그것을 원하고 보면서 기뻐하신다고
나 역시 젊을 때는 이 말씀에 빠져 신봉했고
한계가 있는 삶이기에 더더욱 쾌락이 주어질 때
실컷 누리고 살겠다는 개똥철학으로 살았다
부처님이 출가하겠다고 하시자 절친 우다인도
이와 똑같은 논리로 말렸다 생사를 넘어설 순 없네
언젠가는 죽을 목숨 죽으면 썩어질 몸
살아 있고 건강하고 부유한 동안 마음껏 향유하라고
부처님은 이에 대해 왜 그럴 수 없는지 논박하시고
끝내 갓 태어난 아들과 아내를 남겨둔 채 떠나셨다
팔만대장경 전체를 통틀어 내가 가장 감동을 받고
우러러 마지않는 유성출가의 장면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한밤중에 말을 타고 성벽을 넘어 출가하시는 장면
아 이분은 참으로 출격 대장부다 큰 영웅이시다
이 결단의 한 걸음이 인류의 정신사를 바꾸어놓았다
나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평생 수없이 자문했다
결혼 직전 머리를 깎으려다가도 왜 못했는가
왜 그런 단호함 그런 결기 그런 내적 확신이 없는가
관심도 없는 것을 소비하라고 권하는 세태에 맞서
왜 관심 없다고 끝까지 똑 부러지게 주장을 못하고
적당히 장단 맞추며 적당히 둥글게 살고자 하는가
포교사가 되거나 명상 자격증을 따는 등의 일도
어쩌면 나 자신에게는 별로 간절하지도 않고
오히려 돈 대주는 우리 신랑이 더 좋아하는데
왜 주위 사람이 반긴다고 귀찮은데도 하고 있는가
그 사람들은 왜 또 남의 일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정작 자기 삶은 외면하고 대리만족으로 뿌듯해하는가
화엄경에 보면 먼저 중생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 후에
바른 가르침으로 교화하라는 법문도 나오긴 하지만
어설프게 남의 답 빌려와 합리화하려 들지 말고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죽는 날까지 응시하며
묻고 또 묻는 것, 그것이 내 일이라고 믿자 이 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