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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6312]古方4자성어11~20
서예명제(11)溫故知新
옛 것을 연구(硏究)하여 거기서 새로운 지식(知識)이나
도리(道理)를 찾아내는 일
[자해(字解)] 복습할 온(溫)/ 연고 고(故)/ 알 지(知)/ 새 신(新)
[출전(出典)]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
[원어(原語)]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동의어(同義語)] 기문지학(記問之學) 구이지학(口耳之學)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 것을 익히어 새 것을 알면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남의 스승이 된 사람은 고전(古典)에 대한 박식(博識)만으로는 안된다.
즉 고전(古典)을 연구하여 거기서 현대(現代)나 미래(未來)에
적용(適用)될 수 있는 새로운 도리(道理)를 깨닫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예기(禮記)> ‘학기편(學記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기문지학(記問之學, 피상적인 학문)은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記問之學 不足以爲人師[기문지학 부족이위인사].”
지식(知識)을 암기(暗記)해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은 실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표리(表裏)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고전(古典)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고전의 현대적 의의(意義)를 탐구(探究)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에 고전 학습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서예명제(12)仁者無敵(인자무적)
仁 - 어질 인. 者 - 놈 자. 無 - 없을 무. 敵 - 적대 적
의미-어진 사람은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
<孟子>에나오는 仁者無敵은 우리가 가훈이나 경구로 자주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仁을 가진 자는 敵이 없다는 뜻으로 오역되기도 하는
이 구절의 본래 뜻은 '仁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다'입니다.
인자라고 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자이기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적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자는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는 리더이기에 결국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은 동양의 리더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리더십 덕목이었습니다.
특히 맹자에게 있어서 인을 기반으로 한 사랑의 정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왕도정치의 기반이었습니다. 맹자의 인의 정치는 간단합니다.
'형벌을 가볍게 하라! 세금을 적게 거둬들여라!
기술개발을 통하여 백성들이 쉽게 농사 질 수 있도록 하라!
백성들에게 효제충신의 인간 도리를 가르쳐라!'
이렇게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면 아무리 강한 무기로 무장한 강대국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란 주장입니다.
맹자의 이 철학을 요즘 시대에 적용시킨다면 국가의 권력을 최소화하고
민생안정에 주력하며, 나아가 윤리와 도덕을 실천하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도 대적할 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배려와 사랑이 가득한 인의 정치!
시대와 공간을 추월한 아름다운 정치의 모습입니다.
배려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가득하면 태평성대입니다."
서예명제(13)積小成大(적소성대)
쌓을 적. 작을 소. 이룰 성. 클 대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니
띠끌 모아 태산과 비슷한 성어다.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시작되고,
9층이나 되는 노대도 한 줌의 쌓아 놓은 흙으로부터 시작된다. -노자-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여라!"라고 했던가?
지금 간난에 처해 있는가? 가진 게 없어 비참한가?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 거목이 될, 크고 튼튼한 노대를
이룰 준비가 됐다는 것이지 않을까?
머리를 싸매고 누워 고통스러워 하는 대신, 차고 나서보자.
꾸준히, 차근차근 쉬지 않고 노력을 해간다면 언젠간 이뤄지는 법이다.
정성을 다해야 하고,애정을 갖고 임해야 함은 두 말 할 것도 없는 것이고...
경쟁심을 갖기 보단, 비교를 하기보단 스스로를 열렬히 사랑하며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 가보자.
아무리 하찮아 보이더라도 자신이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보자. 자신만의 경지를 구축해 독보적 존재로서 독야청청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초라한 경지를 구축해 놓고도
마냥 행복해 하는 것처럼 , 그것이 비록 작고 초라한 것일지라도, 이만하면... 하는 식으로 만족할 줄만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만족할 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치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유의어》積土成丘(적토성구) 積土成山(적토성산)
塵合泰山(진합태산) 水滴穿石(수적천석)
愚公移山(우공이산) 磨斧作針(마부작침).
서예명제(14)登高自卑(등고자비)
登 : 오를 등. 高 ; 높을 고. 自 : 부터할 자. 卑 : 낮을 비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
중용(中庸) 제15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고,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
《시경》에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듯하고,
형제는 뜻이 맞아 화합하며 즐겁구나.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는 글이 있다.
공자는 이 시를 읽고서 "부모는 참 안락 하시겠다"고 하였다.
공자가 그 집 부모는 참 안락하시겠다고 한 것은
가족 간의 화목이 이루어져 집안의 근본이 되었기 때문이니,
바로 행원자이(行遠自邇)나 등고자비의 뜻에 맞는다는 말이다.
등고자비란 이와 같이 모든 일은 순서에 맞게 기본이 되는 것부터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 속담과 뜻이 통한다고 하겠다.
맹자 진심편(盡心篇)에서도 군자는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닷물을 관찰하는 데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그 움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
마치 해와 달을 관찰할 때 그 밝은 빛을 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은 그 밝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그만 틈만 있어도
반드시 비추어 준다. 흐르는 물은 그 성질이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워 놓지 않고서는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군자도 이와 같이 도에 뜻을 둘 때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높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또 불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 남의 삼층 정자를 보고 샘이 나서
목수를 불러 정자를 짓게 하는데, 일층과 이층은 짓지 말고
아름다운 삼층만 지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좋은 업은 쌓으려 하지 않고 허황된 결과만 바란다는 이야기다.
서예명제(15)敎學相長(교학상장)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서로의 학문(學問)을 발전(發展)하게 한다는 뜻.
가르칠 교(敎)/ 배울 학(學)/ 서로 상(相)/ 길 장(長)
출전(出典) - <예기(禮記)> ‘학기편(學記篇)’
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也(수유가효 불식불지기지야).
雖育至道 弗學不知基善也(수육지도 불학불지기선야).
是故學然後 知不足 敎然後 知困(시고학연후 지불족 교연후 지곤).
知不足然後 能自反也(지부족연후 능자반야).
知困然後 能自强也(지곤연후 능자강야).
故曰(고왈), “敎學相長也(교학상장야).”
兌命曰(태명왈), “斅學半 其此之謂乎(효학반 기차지위호)?”
비록 맛있는 안주가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고
비록 지극한 도(道)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훌륭한 것을 알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배우고 난 뒤에야 자기의 부족함을 알며 가르쳐 본 연후에야 자기의 앎이 보잘것없음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알고 난 뒤에야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며, 앎이 보잘 것 없음을 알고 난 후에야 학문(學問)이 넉넉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서로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열명(悅命)에 이르기를,
“가르치는 것의 반(半)은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교직(敎職)에서 가르치는 일을 맡아하는 선생님들이
잘 명심(銘心)해 두어야 할 교훈(敎訓)인 것이다.
서예명제(16)有志竟成(유지경성)
있을 유, 뜻 지, 마침내 경, 이룰 성
굳건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낸다
漢나라를 찬탈한 왕망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劉秀(유수)의 수하에
경엄이란 장수가 있었다. 원래 글 읽는 선비였던 그는 병법과 무예에
뛰어나 적잖은 전공을 세움으로써 유수의 신임은 각별했다.
마침내 유수는 後漢의 光武帝(광무제)가 되었는데 어느날 광무제는
경엄에게 張步(장보)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나라의 맥을 이은 후한이 세워졌지만 아직도 각지에는 상당한 병력을
가진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장보의 병력이 가장 세었다.
경엄이 공격해 온다는 보고를 받고도 장보는 풋내기의 烏合之卒(오합지졸)로
여겼다가 초전에서 크게 낭패를 보았다.
파죽지세로 진격한 경엄의 부대는 임치의 동쪽 성에 이르러
장보의 주력부대와 맞붙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경엄은 허벅다리에
화살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부하들을 독려하며 앞장서 싸웠다.
그러나 고전을 면할 수 없었다.
이런 전황을 보고 받은 광무제는 몸소 군대를 이끌고 경엄을 도우러 나섰다.
그때 경엄의 부하 한 사람이 원군이 올 때까지 잠시 후퇴했다가
병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싸우자는 건의를 했다. 그러자 경엄은 호통치며 말했다.
"황제가 오시는데 소를 잡아 술상을 차려놓고 맞지는 못할망정
어찌 섬멸하지 못한 적군을 남겨둔단 말인가?"
사기충천한 경엄군은 임치를 함락했고 원군을 이끌고 온 광무제는
이렇게 경엄에게 칭찬했다.
"옛날에는 韓信(한신)이 역하(歷下)를 함락시켜 한나라의 기초를 이룩하더니
이제는 그대가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게 했구려.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루어낸다(有志者事竟成)더니."
[출전]《後漢書》
서예명제(17)易地思之(역지사지)
易 바꿀 역 地 땅 지 思 생각할 사 之 갈 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이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말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인 하우(夏禹)와 후직(后稷)은 태평한 세상에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씩 지나가도 들어가지 않아서
공자(孔子)가 이들을 매우 훌륭하게 생각했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서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으로만 살았는데,
공자는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도(道)를 즐긴 안회를 칭찬했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같은 뜻을 가졌는데,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治水)를 잘못해
그들을 빠지게 했다고 여겼으며,
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잘못해
백성을 굶주리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라고 했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 안회의 생활방식을 통해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말했다.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이치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조직의 상하관계는 물론 가족과 친지
그리고 부모 자식, 부부관계에 이르기 까지....
서예명제(18)居安思危(거안사위)
살 거. 편안 안. 생각사. 위태로울 위.
사는 것이 편안할 때 앞으로 닥칠 위태로움을
생각해 둠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았을 때였다.
당시 세력이 막강했던 진(晉)나라는 11개국의 제후(諸侯)들과
동맹을 맺어 초나라를 응징하는데 앞장섰다.
결국 이들 동맹국이 정나라를 도와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후 정나라는 진나라의 은혜에 감사하여 많은 무기와
3명의 악사(樂師), 16명의 미인을 보냈다. 진나라 왕 도공(悼公)은
이 사례품의 절반을 승리를 이끄는데 공을 세운
충신 위강(魏絳)에게 주면서
그의 공을 치하하고 위로하였다.
하지만 위강이 아뢰길,
“생활이 편안하면 위험을 생각하고,
생각하면 준비를 갖추어야 화를 면할 수 있다
(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는 이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라며 사양하였다.
*유의어 : 유비무환(有備無患)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음을 뜻하는 말.
*관련속담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출전 : 『좌씨전(左氏傳)』
서예명제(19)四海兄弟
四: 넉 사. 海: 바다 해. 兄: 형 형. 弟: 아우 제
사방이 형제라는 뜻으로, 천하 사람들이 마음과 뜻을 같이 한다면
누구나 형제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
[출전]《논어(論語) 안연(顔淵)》
사해형제(四海兄弟)라는 말은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마우가 근심하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유독 나만 없소이다.”
그러자 자하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죽음과 삶에는 명이 있고,
부유함과 귀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했소이다.
군자가 조심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고 남과 접촉하는데 공손하고
예의가 있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형제입니다
(四海之內, 皆兄弟也.).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는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사마우에게는 사마환퇴(司馬桓退)라는 형이 있었는데
천하에 악명을 드날리는 악한으로 송나라에서 일어났던 반란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여 망명하여 떠도는 신세였다.
사마우는 이를 걱정하여 자하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자하는 모든 일은 운명에 달려있다고 하고 군자가 공경으로서
남을 대하고 예를 지킨다면 천하의 누구와도 형제처럼 지낼 수 있으니
어찌 형제가 없음을 걱정하겠느냐고 위로한 것이다.
서예명제(20)韋編三絶(위편삼절)
[자해(字解)] 다룬 가죽 위(韋) / 엮을 편(編) / 석 삼(三) / 끊을 절(切)
[출전(出典)]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의미(意味)] 책(冊)을 묶은 끈이 닳아서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독서(讀書)에 열중(熱中)한다는 말
孔子晩年而喜易(공자만년이희역)
云云, 讀易韋編三絶(운운, 독역위편삼절)
공자(孔子)는 만년(晩年)에 '역(易)'을 좋아하여
단(彖), 계(繫), 상(象), 설괘(設卦), 문언(文言) 등의 편을 정리하였다.
공자(孔子)는 죽간(竹簡)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여러 번 '역(易)'을 읽었다.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내가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나는 '역(易)'의 문사(文辭)와
그 뜻과 이치(理致)에 다 통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학문(學問)하는 이의 노력을 말할 때 위 문구(文句)를 인용하기도 한다.
공자(孔子)는 '역(易)' 뿐 아니라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자장편(子張篇)」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어디서인들 배우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으셨겠습니까?"라고 했으며
「팔일편(八佾篇)」에는,
"공자(孔子)께서는 태묘(太廟)에 들어가셔서는 모든 일을 물으셨다."
라고 한 것을 보아도 평소 공자(孔子)가 어떤 자세로 학문(學問)에
임(臨)하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