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석대피소에서(3)/잠자리잡기대회참가기
2009.5.30.토. 지리산 세석산장.
세석대피소 안으로 들어서니 널따란 마루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잠자리예약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인터넷으로 예약하고도 오지않은 빈자리를 재배정하는 자리였다.
아마 100명쯤 될까? 여자 2-30? 남자 7-80명?
모두들 마루바닥에 자유형으로 널부러져 앉아있었다.
지리산국립공원 관리소 직원인 중년사내, 깡마른 체구에 깐깐칼칼한 목소리로 안내를 시작하였다.
불현듯 오래전 그러니깐 정확하게 36년전, 논산훈련소 대기병 시절의 그 조교가 떠올랐다.
거침없는 말투 속에 겁을 줘가면서 질서를 잡아가던 그때의 황망스런 분위기가 떠오르다니.....
나는 학적변경된 자라는 이유로 갑작스레 강제징집당한 스물두살의 청년이 되어있었다.
왜 그때 논산훈련소 대기병으로서의 첫날밤이 떠올랐을까?
논산훈련소호랑이조교왈;‘침상 3열에 선다! 실시!’
대기병들은 무슨개에 쫓기는 닭처럼 푸다다닥후다다닥 번개처럼 움직였다.
논산훈련소의 대기병들은 한시라도 빨리 훈련병으로 ‘팔려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야 하루라도 먼저 군번을 받고 제대날짜가 하루라도 빨리 오는 것이니까...
그래도 세석대피소에서는 그때의 막막함이나 황망한 불안감은 없고 단지 어찌 진행되는지 진한 호기심과 편안한 자유가 있었다.
자유가없는 곳으로 강제로 ‘팔려나가는 것’과, 비록 불편해도 하룻밤 새로운 자유경험을 하는 잠자리잡기하고는 하늘땅의 차이만 할까?
아무리 관리직원이 겁주듯 소리를 쳐도 실실 웃어가며 어찌 귀추가 되어질 것인지 자못 기다려질 뿐이었다.
수남과 용환은 뭣이 그리 재미있는지 대기자들 옆에 서서 실실 웃으며 즐기고 있고.. 우리의 럭셜짱은 혹시나 뭐가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되는지 또 옆에서 서성이는데...
관리소직원이 이를 보고는...'한명숙전총리처럼 생기셨네요. 왜 그리 서계시나요?'하였다.
럭셜짱은 졸지에 잠자리대기자들 앞에서 노무현님 영결식장의 한명숙 전총리가 되어버렸다.
관리소직원 가라사대; '환자 있으면 나오세여!'
손가락을 붕대로 감은 젊은 남자가 나오니...'골절상을 입은 환자 이상만 환자입네다' 하며 면박을 주어 들어주지 않고 날려버렸다.
'그럼 진행하겟슴다. 여자 우선, 연장자 우선입네다'
'먼저, 여자분들!'
봄순양은 여자우선 년장자 우선원칙으로 2번째로 당당하게 안전하게 잠자리를 배정받앗다.
남아있던 여자들은 모두 잠자리 배정을 받았다.
이제는 남자들 순서.
'60세 이상 나오세여'
한사람이 나왓다.
'다음은...59세!'
나를 포함하여 둘이 나왔는데 내가 생일이 빨라 역시 2번째로 당첨!
우리들 나이가 대피소 잠자리잡기대회에서는 절대적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나이 든 것도 서럽거든 잠자리 잡는 것까지 나이잡수었다 어려워서야 되겠느뇨?
5학년고급반 중늙은이 벗님네들아, 인터넷예약 못하였다고 걱정불안들 하들마시라.
지리산대피소 잠자리는 언제든지 가능하니 하루라도 젊을 때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 좋을 것이니 그리 하는 것이 여하?!
럭셜번개짱의 말이 모두 맞아들었다.
당초 인터넷부킹에서 4마리기러기 잠자리만 확보되엇을때, ‘걱정할 거 없다. 다 수가 있응게'
' 여자 우선 연장자 우선이니...봄순과 희동을 대기자로 분류해놓자’ 하더니...
잠자리를 배정받아 들어간 침상은 논산훈련소의 대기병 침상과 거의 비슷한 수준.
옆구리를 세워 자는 칼잠수준만 아닐 뿐 옆 사람이 닿을 듯 전혀 여유공간이 없이 비좁기만 하였다.
지금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한참 더울 여름날은 어떨까?
신영복님은, 가장 두려운 것이 사람의 체온때문에 옆에 함께자는사람을 증오해야 하는, 한여름날의 감옥생활이라고 하엿는디...
‘이 나이에 왜 이 고생을 하지?’ 자문해보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이런 경험하는 것도 이때가 마지막 아닐까?
또 언젠가 훗날 그때 그러했었지 할 것 아닌가!
이제는 무엇이든지 우선은 저지르고 보는 것이 좋은 것 아닐까 해보았다.
수십명이 한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이니 여기저기 두런도란 시끌버끌 대피소 잠자리는 소란가득!
나처럼 잠결이 예민한 사람은 고생 좀 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환하게 전등불이 켜져있고 주변은 소란하기 그지없는데도 우리의 쫑상옵하는 벌써 잠속에 떨어지니 어찌나 부러운지...
관리소 직원이 들어오더니 밤 9시에 소등할 것이니 미리미리 해야할일 해두라 하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20여분?
유난히 빛나서 까칠하고 무섭기까지 하던 전등불이 꺼졌다.
대신에 으스름한 불빛만이 대피소침상을 비추는데 여전히 잠은 오지 못하고 코고는 소리 쩝접대는 소리 식쉭대며 바람소리같은, 숨넘듯 그러나 숨은 안넘어가는 소리등 어수선한 여러소리소란속에서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난 조용조심하게 대피소 밖으로 나왔다.
자정이 지났을까 아닐까?
대피소밖은 안과는 달리 으쓱하게 추운 것이 한겨울 이상 수준이었다.
희꺼먼 구름들이 가득 몰려왔던 저녁밥 먹을 무렵하곤 아주 딴판 세상이 되어 있었다.
그사이 세상이 완죤히 뒤바껴있었다.
대피소 주위는 까맣게 어둠에 쌓여있지만 밤하늘은 맑고 높아 하늘쪽으로는 시야가 훤하게 트여나왔다.
하늘을 우러러보니 하늘은 별들의 잔치! 초롱초롱한 별들이 떼지어 지리산위 하늘을 찬란히 수놓고 있었다.
맑고 밝게 어린별 엄마별 아빠별 처녀별 총각별 중년아줌마아찌별 5학년고급반별들까지 수많은 별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총총한 별, 지리산 꼭대기에서 만나니 더 특별하였다.
별이 내 눈으로 쏟아질 듯 달려온다는 표현이 맞을까? 맞을 것이었다.
몇해전 정환이 잡아준 구례산동 초등학교숙소에서 보았던 별무리, 그리고 또 얼마 전 에디오피아의 곤도르에서 보았던 별무더기, 또 그리고 먼먼 어린시절 보리밥 저녁 먹고 모깃불 피워오르는 평상 위 시골고향 밤하늘의 별떼가 생각되었다.
하늘을 떠나 대피소 주위를 둘러보았더니...아니! 아직도? 대피소식탁 두세곳에서는 가족들인지 연인사이친구들인지 희미한 불빛앞에서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두런도란 모여있었다.
부럽기도 하고 샘나기도 하였다.
만일 내가 40년전에 이곳에 왔더라면???
대피소에 들어가지 않고 저렇게 오손도순 속삭였을까?
들어갔다가 잠오지 않는 별밤에 누구누구를 불러낼 수 있었을까?
그때는 손전화가 없었으니 불러내지 못했을 것이라꽁??? 애절한 뜻이 있었다면 무슨 길이라도 찾아냈겄지비!
상상은 자유, 공상도 자유, 망상까지도 자유!
자유자유! 누구의 통제없는 자유로운 이 좋은 세상만만세!
별을보고 다시 대피소침상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잠님은 드시지 않아 이리뒤척 저리꿈질하는데...
대피소에서는 추가로 대기잠자리를 제공하는지 새로운 잠꾼들이 들락날락 시끌버끌하며 침상통로에까지 쳐들어와 잠자리를 깔고 있엇다.
허이고데이고야..오늘밤 잠은 다 잤구나 싶엇는데 언제 잠이 들었을까?
꿈속일까? 럭셜번개짱의 기상나팔손전화소리가 잠결에 들렷다.
용환옵하; ‘엉, 벌써 4시네!’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고 옷깃을 여미고 지리산 산행 제2일째를 시작하였다.
새벽 4시 10분쯤 우리는 손전등으로 어둠을 더듬으며 해돋이를 보러 해맞이를 하러 촛대봉으로 향하였다.(계속)
첫댓글 우와, 엄청 스릴과 샤쓰 빤스가 있었구나아~ 어렵게 얻은 잠자리로 말할것 같으면 여성용, 남성용으로 나뉘어 있고 ... 말하자면 지난 가을 황토방 잠자리보다 좀 못하다는 뜻인가? 5학년 고급반으로서 평소 몸관리를 잘하여 지리산에도 번쩍번쩍 올라가는 그대들에게 표창패를 주고 싶노라!
우리 나이엔 하고 싶은 건 하는 것이 건강에 좋으니 나는 강타의 표창패 수여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을 것이다, 친구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하이고~!!! 고생하셨수다. 우리집에서는 그러는 나는 "성질고약한 사람"으로 치부됩니다. 오마니가 잠을 주무실려고하면 보던TV소리도 최소로 줄이고 불빛이 조금도 보여서는 안되고.... 아마도 나도 세석에서 잠을 못 잤을것 같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