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릉(穆陵.선조)의 열세 번째 왕자가 ‘영성군(寧城君.이계)’인데, 그 아래로 자손이 많고 높은 벼슬아치가 대대로 끊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의 벗 여길(汝吉)이 여러 종형제 가운데 유독 벼슬하지 못하고 부진하여, 혹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여길이 매우 질박하고 꾸밈이 적어 부진한 것이다. 그러나 천기(天機.타고난 영성)가 많아서 그에게 반드시 후손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여길이 세 아들을 낳아 내게 이름을 물어서, 내가 장남을 ‘수현(秀賢)’, 차남을 ‘수량(秀良)’, 막내를 ‘수능(秀能)’이라고 지었다. 이것은 “사람이 천지의 빼어난 기운〔秀氣〕을 얻어 태어나는데, 그 빼어남 가운데 또 빼어남을 얻어 어질고[賢], 선량하고[良], 유능하다[能].”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이 자식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이 어찌 이것을 벗어나겠는가? 어짊은 덕이 있는 것을 말하고, 선량함은 품행이 단정함을 말하고, 유능함은 기예에 통달함을 말하는데, 이것을 합하면 바로 주나라 사람이 말한 ‘향삼물(鄕三物)’이다. 따라서 수현의 덕을 표현하여 ‘경덕(景德)’이라 하고, 수량의 행을 표현하여 ‘경행(景行)’이라 하고, 수능의 예를 표현하여 ‘경예(景藝)’라고 했다. 오호, 삼형제 ‘수(秀)’야! 어린 뜻을 빨리 버리고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여 실천함으로써 각기 재능을 완성하여 때맞추어 분발하고 도약하며 높은 자리에 올라 뭇사람의 존경을 받아라. 그리하여 너희 어른이 펼치지 못한 것을 후대에 형통하게 하면, 어찌 다만 네 한 가문만의 영광이겠느냐? 성조(聖祖.조선 태조)의 어진 교화가 끊임없이 신령스러움으로 빛남을 볼 것이다. 경덕의 관례(冠禮)에 덕(德)을 완성하는 것을 축원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해서, 그 설(說)과 함께 써서 고한다.
숭정(崇禎) 다섯 번째 을해년(1875 고종12) 10월 20일 아버지의 벗 유중교(柳重敎) 쓰다.
번역: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註: 향삼물(鄕三物)이란 향(鄕)에서 세 가지 일로 만민(萬民)을 교육하여 그중 현자(賢者)와 능자(能者)를 빈객으로 뽑아 향음주례로써 대접한다. 첫째가 육덕(六徳)으로 지(知)ㆍ인(仁)ㆍ성(聖)ㆍ의(義)ㆍ충(忠)ㆍ화(和)이고, 둘째가 육행(六行)으로 효(孝)ㆍ우(友)ㆍ목(睦)ㆍ인(婣)ㆍ임(任)ㆍ휼(恤)이고, 셋째가 육예(六藝)로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