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에는 제주산 귤과 한국산 배도 간간이 보였다. 하지만 중국산 배와 감귤이 밀려오는 탓에 상황은 만만찮았다. 중국산 <골든> 배의 경우 국산에 견줘 가격이 20% 저렴하고, 중국산 감귤은 가격이 제주산의 절반에 불과했다. 앤드류씨는 “도매시장을 포함해 현지의 중저가 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은 가격에 가장 민감하다”며 “한국산이 맛과 향은 뛰어나지만 값이 비싸 수입물량은 중국산이 한국산에 비해 80배 더 많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일부 중국산 배의 경우 한국의 <신고> 품종을 가져다 중국에서 키운 뒤 상자에는 버젓이 ‘한국배’라 표기하며, 국산 농산물의 입지를 잠식하고 있었다.
다음날 찾은 쿠알라룸푸르 솔라리스 지역의 대형 마트 ‘BIG’. 중·상류층이 주 고객층인 이곳에서는 한국산 ‘고품질’ 농산물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소포장(250g)된 <매향> 딸기가 눈길을 끌었다. 딸기를 살펴보던 주부 사나씨는 “한국산 딸기는 미국산에 비해 쫀득하고 모양도 예뻐 값이 비싸도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마트 관계자는 “이집트·미국·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산 딸기가 들어오지만 한국산은 10여년 전부터 고품질 딸기만 들어와 프리미엄 상품으로 인식된다”고 전했다.
<거봉> 역시 미국산 씨없는포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가격은 <거봉>이 1㎏에 60링깃(약 1만8000원), 미국산 포도는 34링깃(약 1만원)이지만 판매량은 비슷했다. 마트 관계자는 “<거봉>은 달콤하고 알이 굵어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다”며 “중·상류층들은 가격이 비싸도 품질이 좋으면 지갑을 연다”고 말했다. <캠벨>도 가끔 들어오기는 하지만 껍질이 두껍고 씨가 많아 크게 인기는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중·상류층 마트에서도 한국산 배와 사과는 입지가 위태로워 보였다. 한국산 <신고>는 중국산 <골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산 <팩햄>과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가격은 중국과 남아공산에 비해 한국산이 개당 약 1500원 더 비싼 수준. 한국산 배를 살펴보던 앨리스씨는 “과즙이 풍부하지만 1~2인가구가 먹기엔 크기가 너무 크다”며 “가격과 품질을 동시에 따졌을 때 큰 이점을 못 찾겠다”고 말했다. 사과의 경우 프랑스·뉴질랜드·일본·미국산 등이 판매되고 있었지만, 한국산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품질 대비 비싼 가격이 문제로 꼽혔다.
다행히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최고급 마트에서는 다양한 한국산 과일·채소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타워 인근에 있는 이세탄백화점. 농협 수출 통합브랜드인
◆할랄 ‘걸음마’, 한류 ‘붐’=2013년부터는 ‘할랄’식품도 본격적으로 말레이시아 수출길에 올랐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믿는 말레이계가 인구의 60%, 중국계가 25%, 인도계가 10%인 이슬람 국가다. 특히 말레이시아 이슬람부흥부(JAKIM)가 발행하는 ‘할랄인증’은 세계적인 공신력을 가진다. 현재 말레이시아 할랄인증을 받은 국내 농식품은 60여개. 하지만 할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해 보였다.
앞서 둘러본 마트에는 모두 할랄식품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현지에서 생산한 할랄인증 쌀을 포함해 네슬레·코카콜라 등 다국적기업들이 생산한 분말차·음료, 태국산 향신료, 중국산 소스류가 판매대에 가득했다. 말레이시아 할랄개발공사(HDC)에 따르면 현재 유통 중인 할랄식품은 1000여개에 이르는데, 그만큼 기존시장이 단단히 형성된 모양새였다. 한국산 할랄식품은 라면과 떡볶이·김치·김 정도. 마트 관계자는 “한류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들이 김치와 떡볶이에 관심을 보이지만 할랄인증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산 제품이 주목을 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류는 실제로 ‘붐’이라 할 만했다. 한인타운인 몽키아라지역에 있는 한국식당의 손님 10명 중 평균 7명은 현지인이었다. 또 한국 프로그램만 방영하는 TV채널이 다섯개 있고, 도심 곳곳에는 한국 드라마 포스터가 흔했다. 10여개의 한인마트 곳곳에서는 한국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고추장·된장을 구매하러 온 현지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현지 유통 관계자들은 할랄과 한류를 연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한국산 식품 유통업체인 KMT의 이마태오 대표는 “할랄인증만 받고 판매되길 기다리기보다는 한류·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현지 유행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덕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쿠알라룸푸르지사 차장은 “한류 드라마 주인공들이 먹는 음식이 현지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며 “한국 드라마의 간접광고나 한류스타와 연계한 홍보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출처 농민신문 쿠알라룸푸르=김해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