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리와 통공의 신비
묵시 4,1-11; 루카 19,11-28 /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2024.11.20.
온갖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성경, 그 중에서도 복음서의 말씀은 진리로 대접받기는 커녕 부뚜막 뒤웅박 신세로 내쳐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복음을 진리와 동일시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현세의 삶만을 애지중지하며 살지만, 복음에서는 현세와 내세의 통공을 중시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육신 생명만이 아니듯이 우리의 삶은 영혼 생명이 이루는 통공에 의해서 생기를 얻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복음의 진리와 통공의 신비에 대한 묵상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미사의 독서인 요한 묵시록 4장에는 하늘에 열린 문으로 사도 요한이 본 환시의 하나인 네 생물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묵시 4,7) 묵시문학적 암호로 되어 있는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록한 네 복음서의 각 제1장들을 생물의 특징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이 날쌘 사자로 붙여진 이유는, 그 제1장에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마치 포효하는 사자의 소리 같고 또 16개장에 이르는 전편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의 생략하고, 길에서 길로 옮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역동적인 활약상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붙여졌습니다.
마태오 복음이 사람으로 상징된 이유는 그 제1장에 사람들의 역사를 알게 해 주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28개장에 이르는 전편에서, 이제 갓 예수님의 세례를 받은 신자들에게 그분을 본받아 하느님의 사람으로 성숙해 갈 수 있도록 그분의 가르침을 집대성하여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천사이기도 합니다. 그 가르침이 산상설교, 파견설교, 비유설교, 공동체설교 그리고 종말설교입니다.
루카 복음의 상징이 황소가 된 연유는, 그 제1장에 유다교의 사제였던 즈카르야가 아들 요한을 갖기 전에 당번이 되어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사의 제물 중 가장 크고 귀한 것이 황소였기 때문입니다. 24개장에 이르는 전편에서 루카 복음은 구약성경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처음부터 하나 하나씩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는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씌어졌습니다. 그래서 마르코와 마태오가 각각 하느님 나라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전하는 대목을 루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사회적으로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의 제1장은 한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시는 말씀으로서 예수님을 소개하는데, 그 광경이 마치 높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독수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요한 복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1개장에 이르는 요한복음의 전편에서 사도 요한은 마르코, 마태오, 루카가 전한 예수님의 공생활을 한 차원 높여서 영원한 생명으로 이룩하는 파스카에 대해 재조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생활의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에 대해서도 요한은 세족례 이야기로 대치하면서 그 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먹고 마심으로써 당신을 기념하여 계승하라시던 예수님의 당부는 서로 발을 씻어 주는 행위로 상징되는 상호 섬김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알려줌으로써, 다른 복음사가들이 십계명을 압축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이라고 전해준 것을 더 간추려 전해주고 있습니다. 높은 창공에서 지상의 먹잇감을 꿰뚫어 보고 수직 낙하하여 꿰차는 독수리처럼, 세상에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연 귀한 진리를 꿰뚫어보는 관상의 안목입니다.
교회에서는 이 네 복음서를 한 해의 전례력에 고루 배치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 마태오, 루카 복음은 대림과 성탄시기에 배치하였고, 사순시기에는 네 복음서의 주요한 대목 40군데를 골라 배치하였으며, 부활시기에는 요한 복음을 배치하였고, 연중시기에는 마르코-마태오-루카 복음서 순으로 배치해 놓았습니다. 이는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을 듣고 하느님 백성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바라는 취지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의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한 배려에는 성인들의 통공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복음에 따라 살다가 죽어서 천상에 오른 영혼들은 생애에서 이룩한 거룩함의 정도에 따라서 천상에서의 책임과 역할을 부여 받게 됩니다. 이를 일깨워주는 것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미나의 비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을 때 세상의 빛으로 살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한 미나씩 받은 하늘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자는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받은 은총의 열 배를 벌었다는 것은 그가 행한 사도직의 사랑이 그만큼 컸다는 뜻입니다. 다섯 미나를 번 신자도 있었습니다. 열 미나를 번 신자는 열 고을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 받았는데, 이는 열 고을만큼의 지상 신자들을 영적으로 통공하며 이끌라는 책임입니다.
그런데 한 미나를 받고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신자에게는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이 악한 종아, 이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루카 19,11-28) 책임과 권한의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현상이 영적으로도 벌어집니다. 지상 생애와 천상 생애가 이렇게 해서 연결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벌인 노력이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되는 까닭은 바로 천상에서 우리를 돕는 열 미나급과 다섯 미나급의 성인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례상으로는 대축일로 기념하는 열 미나급의 분들이 예수님, 성모 마리아, 세례자 요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이고, 다섯 미나급 축일로 기념하는 분들은 사도들입니다. 이에 준하는 성인 성녀들은 기념일로 거행합니다. 이러한 전례상의 등급들의 성서적 근거가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미나의 비유입니다. 적어도 셋이나 두 미나급의 수준에서 우리는 자기 주보성인의 영적인 이끄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명으로 불리울 때마다 우리는 그 주보성인의 삶을 부지불식간에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의식과 행동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미나의 비유에 담긴 영성은 현세적으로도 발휘되는 영향력을 암시합니다. 객관적으로야 우리 모두는 70억이 넘는 지구상 인류의 한 사람일 뿐이지만, 영적으로는 그가 한 미나를 받아서 벌어들이고 있는 미나만큼 동시대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선한 영향력의 은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큰 사람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익명의 아나빔이 시편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사도 요한은 로마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용감하게 견디어 내며 신앙 진리를 증거하고 있던 소아시아 교회 신자들을 격려하느라고 네 복음서를 상징적인 언어로 소개하였습니다. 이들 복음서에 담긴 생명의 말씀을 귀하게 받들고 그에 따라 역시 각자의 인생을 귀하게 살아가는 취지였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진리로 알아보고 살아가는 신자들의 삶은 거룩하고 거룩하며 거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요한의 취지에 따라서 미사 중에도 복음을 선포한 후에 성찬 전례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천사들의 이 찬미 노래를 거듭 외치고 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세상의 죄악이 유혹할 때 사자처럼 날쌔게 뿌리칠 수 있고, 사람들의 답답하고 지리한 족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묘한 섭리로 하느님께서 개입하셨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지켜보고 언제 개입할지를 헤아리고 계신 하느님께 찬미 드리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작은 사랑이 천국의 입장권임을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독수리의 혜안으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미사의 복음 환호송은 이러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요한 15,16)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네 복음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지요?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 이 복음서의 말씀들이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는지요? 기도하건대, 복음에 따라 기획하고 추진하는 여러분의 삶이 여러 미나급의 영향력으로 우리 동시대의 구도자들에게 영적인 매력을 풍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힘은 복음 진리요 통공의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