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서 '유승준논쟁'(스티브유라고 불러야 하나?)을 지켜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코메디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유승준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도 그가 공인으로서 한 약속을 어겼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식 하나만 정확히 하자.
"약속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공인으로서 한 약속(필자도 그가 TV에서 말했던 장면이 기억난다.)을 어겼던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 얘기는 왜 나오나? 물타기 수법도 아니고.. 유승준이 국회의원인가?
어제 오늘 유승준 논쟁의 '폭팔성'을 보면서 필자의 뇌리속에 언뜻 스치는 비슷한 장면이 생각났다. 바로 '군가산점 논쟁'이다. 이 두 문제의 유사점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 병역문제와 연관된 점이고, 그 점에서 대한민국 예비역(필자를 포함하여)들의 '알맹이는 하나도 없고 무늬만 초라한 자존심'을 건드린 부분때문에 더 강렬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유승준의 공인으로서의 자세나 말바꿈의 과정에 대한 비판은 여러 네티즌들이 했으므로 필자가 중언부언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다만 유승준 지지자들중에서 일부가 말하는 '군대갔다 온것이 무슨 훈장이냐? 무슨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싸가지 없는 반응이나 일부 철없는 따순이들의 '군대는 할 일 없는 니들이나 가라! 우리 승준오빠는 절대 안돼'라는 몰상식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씹어줄 참이다.(글을 쓰면서 필자의 감정이 복받쳐 와서 말투가 거칠어지고 있다. 네티즌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먼저, 자칭 "그의 팬들"이라는 여성분들부터..
필자는 그 여성분들의 "무식함"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사실부터 고백한다. 사실 병역문제에서 많은 대한민국 여성분들이 군대문화에서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며 억눌려 있는가?를 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필자는 그 유승준의 팬들 입에서 훗날 자신의 남동생들이나 사랑하는 애인들이 군대에 갔을때 어떤 소리가 나올 지 몹시도 궁금하다. 군대의 고통에 대하여 차근차근 짚어나가보자.
필자는 밀리터리매니아이다. 아울러 필자는 현역 예비역 병장임을 미리 밝혀둔다. 철원 3사단(백골부대) 18연대 출신이다.( 올해도 동원예비군 훈련을 나가야 한다. 아 짜증나~~ ^^ )
한국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범위가 너무 넓으므로 여기서는 실제 병사들의 생활과 삶의 형태에 많은 영향을 주는 한국군의 군대문화에 대하여만 필자의 경험담을 섞어가면서 간단히 설명해보겠다.('구타'와 '통제'를 중심으로)
한국군대문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흔히 '구타'로 상징되는 군대의 폭력문화일 것이다.
현대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권력과 폭력의 차이를 "권력은 수를 필요로 하지만 폭력은 그렇지 않다는 것, 권력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함께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며 지지와 동의에 기초하지만 폭력은 도구적 수단에 의존하며 복종을 강제할 수 있을 뿐"이라 설명했는데 주로 소수의 폭력부분을 해명하는 측면이 강하다. 한국군대문화는 소수의 폭력이 아니라 다수의 폭력 즉, 권력과 결합된 폭력문화의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이 점이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다.)
실례를 들어보자. 필자의 훈련소 시절 이야기이다.
군대에서는 일종의 '시범케이스문화'라는 게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폴메탈자켓'이라는 영화에서도 이 시범케이스문화를 다루는데 결말은 상당히 비극적이다.(흔히 '고문관'이라 부르는 적응이 느린 한 병사를 집중적으로 통제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공포심과 동기유발(?)을 불러 일으키는 방법이다. - 추천한다. 한번 봐 보시라. 한 인간이 망가지는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슈류탄 투척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슈류탄 투척훈련을 해본 사람들은 다 이해하겠지만, 군대 안간 네티즌을 위해 덧붙인다. 보통 웅덩이에 슈류탄을 던지고 블럭담장밑으로 숙이는 훈련인데 한 병사가 슈류탄을 그만 웅덩이까지 던지지 못하고 바로 담장밑에 굴려버렸다.(아마 겁이 나서 그랬겠지만..) 그러니 여느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날 수 밖에.. " 팍..."
귀청찢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자 훈련교관(대위였다.)이 노발대발 달려오면서 ㅅ자와 ㅈ자 소리밖에 안하더라.
교관왈 "이 새끼가 지 동료들 다 죽일라고 작정한 새끼구만.." 그러면서 들고 있던 총(거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그 병사의 머리를 쳤다.
( 하이바(헬멧)가 날라가고 그 병사는 쓰러졌다. 그러자 군화발로 머리를 이리 저리 밟고 그 광경을 180여명의 눈동자가 숨소리도 내지 못한채 보고만 있었다. 필자는 그 광경이 충격적이었는데 왜냐면 군대가기전 이미 구타라는 것이 있다는 줄은 알았지만, 사병끼리의 문제인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장교가.... 할 말이 없었다.)
이게 시범케이스다. 그 교육적 효과(?)는 탁월한 것이었다. "나도 잘못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불과 10여년도 지나지 않는 최근의 일이다.(YS때)
사실 구타문화는 한국군대의 치부중의 치부이다. 그것도 식민잔재의 성격을 지닌.. 구타의 기원은 멀리 일제시대로 올라간다. (조선 시대의 기록을 보면 신분질서가 군기를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후기에 양반들이 군역을 회피하면서 평민들만 군대에 가고 평민들 상호간 실력주의(장교의 대부분이 평민들)의 모습을 띠게되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의 구타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제는 한국인들에게는 죽어도 총을 쥐어주지 않으려 했다.(길고 긴 독립투쟁 과정에서 일본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식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상황이 최악으로 몰리자 1942년 징병법을 도입하면서 한국인들도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평상시에도 반항적인 한국인들에게 총을 준다는 사실에 일본 내부에서도 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것이 장교와 하사관은 일본인이 사병들은 한국인을 기용하고, 반란을 예방하고자하는 목적으로 상습적이고 조직적인 구타와 폭력을 가했던 것이다.(예외적으로 성분검증이 끝난 친일분자들중 일부를 장교로 임명하기도 했다. 필자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경멸하는 이유중 하나이다.)
해방 후 구 일본군 출신의 많은 병사들과 장교들이 한국군의 지휘관이 되었고, 당시 '국방경비대'라 불린 한국군의 모습은 경찰조직과 더불어 친일파의 아성으로 자리잡는다.(일본군에서 출연진만 바뀐 붕어빵이 되었다.) 더구나 30년 군사정권아래에서 군대는 '복종의 미덕을 기르는 국민교육장'이 되었고, 그 교육적 효과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되어있는 '군대문화'(하면 된다? 박통이 즐겨 썼던 말이라던데, 이 말처럼 우스운 말이 어디 있을까? 이북의 '명령만 내리소서'와 하나도 다를 바 없잖은가?)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흔히 '군대가서 사람되었다'라는 말을 한다. 좋게 표현하면 군대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는 말일것이고, 신랄하게 표현한다면 복종의 미덕을 길렀다는 말일 수도 있다.(긍정적 의미로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자립심을 키운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아무리 국방부나 정부에서 구타근절을 부르짖어도 한국사회가 상사의 명령에 '맹목적으로'(부당한가 아닌가?를 따지지 않고) 복종하는 부하직원을 요구하고 그것을 바라는한 도로아무타불이다.
두번째 군대가 힘든 이유중의 하나는 이런 구타뿐만이 아니라 통제로 시작해서 통제로 끝나는 억압적인 생활분위기때문일 것이다. 군인을 통제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왜냐면 그들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물리력을 소유하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인데 쉽게 말해서 대규모의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라는 성격에서 출발한다.(막말로 그 아그들이 불만 갖기 시작하면 어느 나라든지 절딴난다. 대표적인 나라가 3세기 후반 50여년간 34명의 군인황제가 출현했던 쇠퇴기의 로마제국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나라의 문민통제가 고급지휘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사병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이 특징이다.( 군사정권의 치적(?)중의 하나일것이다. 박통의 유명한 말이다. 올바른 국민교육과 안보관의 확립은 군대의 일차적인 임무라나? )
몇가지 필자의 경험담과 일화를 곁들여 소개해 보겠다.
군에서는 보통 8시간을 잔다고들 한다. 하지만 필자의 복무경험으로는 하루 6시간 정도가 정확하다. 왜냐면 '야간근무'때문인데, 아마 군경험이 있는 대다수 예비역들은 필자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보통 근무시간 30분전에 깨운다. 그리고 한시간 근무서고 나서 보고하고 옷 갈아입고 자리에 누우면 다시 30분은 흐른다. 자, "24시간" 통제받는 불쌍한 대한민국 군바리들의 실상을 들여다 보자.
사람의 욕망은 여러가지가 있다. 식욕, 성욕, 생존본능등.. 하지만 흔히 잘 까먹는 것이 수면욕구이다. 인간의 수면시간은 오피(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아프리카의 나무위에 출현한 이래 계속 증가했다고 보는 것이 인류학계의 통설이다.( DNA분석연구에 따르면 수면중일때와 활동할때 분비되는 특정 호르몬의 차이분석결과라고 한다.) 실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 안지오에서 미군 300여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다.(참고로 안지오는 산악지형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안지오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된 채 사투를 벌이던 2만여명의 미군들이 사흘 밤낮동안 계속된 격전에서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하루 비가 내리고 전투가 약간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포탄구덩이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미군들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독일군의 공격은 재개되었고, 급히 부대의 소대장들이나 중대장들은 날아오는 총탄을 무릅쓰고 포탄구덩이를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깨웠지만 "눈뜨고 총맞아 죽느니 자다 죽는게 낫다"며 계속 잠을 자는 병사들이 상당수였고, 결국 포탄구덩이에서 익사한 사람이 300여명이나 되었던 웃을 수 없는 실화가 있다.
필자의 부대에서 불침번이 근무시간을 알리는 방법이 있다. 침상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원터치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관등성명(옛! 일병...)이 튀어나오야 한다. 안나오면? 바로 베개가 면상위로 날라올 것을 각오하고 재수 없으면 침상 아래 놓여있는 군화로 얼굴을 맞을 수도 있다. 좀 인간적인 고참들은 "야.. 근무야!" 한마디 해주기도 하지만.. 물론 상황이 여기서 종료되면 억한 심정은 들지 않는다. 내가 잘못한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대책임(연좌제로 부를 수 있겠다.)을 지운다. 좋게 말하면 동기유발(? 어떡하면 안깨지나..)이고 군대식으로 말하면 '갈군다'고 표현한다. 다음날 소대를 관리하는 고참상병에게 그 고참이 한마디 던진다. " 요새 얘들은 깨워도 안 일어나고.. 소대 잘 돌아간다." 그러면.. 사다리타고 내려간다. 상병은 일병 조인트(무릎정강이) 한번 까고 그럼 일병은 머리 돌아가서 그 날 저녁 식사후나 점호 후 이등병들 집합시키고.. 그리고 묻는다.
"어제 근무 깨진 새끼 누구야?" 그럼 당사자가 나오고 그 사람이 확인된 후 그 동기들과 바로 위아래 얘들을 때린다.(요샌 도구가 아니라 주먹으로 뚝뚝 치는 수준이라고는 하는데 확인하지 못해서 자신없다.) 이 연좌제의 핵심은 당사자는 절대 손가락하나 건드리지 않는데 있다. 그럼 그 얘는 어떻게 되나?
시샛말로 왕따가 된다.
필자에게도 바로 위 고참때문에 참 속이 많이 상했던 경험이 있다.(허구헌 날 걸리니 나중에는 전출 안가나?란 생각도 들었었다.)
필자의 인격수양이 부족해서 그런지 몰라도 인간적인 원망(좀 잘 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으면 하는..)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글을 쓰면서 여러가지 추억들이 생각난다. 소대 막내시절에 먼저 기준을 잡기 위해 기상나팔소리 듣자마자 옷갈아 입고 군화들고 연병장으로 뛰었던 기억(왜냐면 기준잡는데로 식사순서가 결정되어 4개소대(1,2,3,화기소대)중에서 2등안에는 들어야 욕을 먹지 않았다. 문제는 4명 다 필자의 동기들이었고 말 그대로 내가 살기 위해서 동기를 밟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연애편지를 600통이나 받은 후배놈이 병장때 헤어져서 탈영했던 사건(우리중대 40년 역사상 병장탈영은 최초였었다. 탈영전에 외박 데리고 나가서 술사주며 달랬는데 필자의 정성이 부족했나보다. 지금도 가끔 전화연락이라도 주고 받는다.)
읽을 거리에 너무 목말라 일병 4호병 시절 취침시간에 화장실에 몰래가서 숨겨온 스포츠신문을 후래쉬를 켜고 보면서 행복해 했던 기억..
앞에서 언급한 폴메탈 자켓이란 영화에서(미국도 월남전까진 징병제였다.) 고문관으로 적응을 못하는 뚱보 '레오나드로'(영화속 이름이다.)를 주인공이 돌봐주다가 나중에 집단으로 구타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대원들이 침상에서 자고 있는 레오나드로를 수건으로 묶은다음 수건속에 비누를 말아서 배를 한번씩 때리는 장면인데 주인공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소대원들의 '때리라'는 재촉을 받고서 결국 힘껏 때리고만다.
수건을 풀어주면서 하는 어느 소대원의 대사 "넌 오늘밤 그냥 악몽을 꾼거야 "
얼마후 주인공이 침상에서 레오나드로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귀를 막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죄책감이 버무려진 얼굴표정연기는 필자가 본 영화들중 가장 명장면중의 하나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이다.
어쩌면 영화속의 주인공이나 필자의 고문관 고참에게는 군생활의 경험이 '악몽'이었을 수도 있다. 필자처럼 적당하게 '카르페디엠'(피할수 없으면 즐겨라..)을 추구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자기자신을 단련시키는 수행의 장소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군경험을 한 대부분 한국 젊은이들은(필자를 포함하여) '상실감'을 느낀다. 단순히 지식을 잃어버렸다거나 머리가 굳었다거나 시간을 허비했다는 차원의 상실감이 아니라, 별 거부감 없이 타인들에게 맞기도 하고 나중에는 때리기도 하는 그러면서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정글의 법칙을 체험하면서 뭐라할까? '내면의 순수함'(인간에 대한 믿음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필자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해본것은 군대에서였다.)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언젠가 필자 여자동기는 자기 애인이 군대가서 변했다는 말을 했는데 아마 이런부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정리하기로 한다면 이런 험악한 환경에서 군생활을 하는 경우가 보통의 대한민국 젊은 수컷들의 운명이다. 따라서 필자도 한국군의 군대문화가 혁신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후배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그점에서 유승준이 병역을 겁내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일부 공익요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솔직히 필자의 속내에는 공익도 싫은가?라는 약간의 어이없음도 존재함을 고백한다. 집에서 해주는 밥, 식사, 잠자리.. 적어도 자다가 베개로 얼굴맞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현역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의 말대로 "합법적으로" 병역의무를 회피한것도 사실이다. 미리 예단하지 말자고? 그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제발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해달라. 도대체 합법적이면 모든 가치판단(도덕적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면 일반인들의 면제비율보다 9배가 넘는다는 고위 공직자들을 포함한 소위 한국의 기득권 주류사회의 합법성을 가장한 불공평한 병역의무이행에 대하여는 뭐라고 말할 수 있나? 그냥 부모 잘못만난 운명이려니 해야 하나? 왜 비판받아 마땅한 일을 비판하는 것이 잘못인가? 이 비판이 왜 단순한 열등감(?)으로 치환되는가?
우리 속담에 "거지 쪽박은 깨는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작금 한국군의 상황이 지극히 열악한 것은 사실이고 '군사문화'(복종의 미덕)를 익히는 실습장이 되어버린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힘들었지만 내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넓게는 국가와 민족)을 지켰다"는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초라한 "자존심"일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고통분담이 힘없는 일반 서민들에게 불공평하게 돌아간다는 것이고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단순한 열등감인가? 정확하게 표현하자. 이것은 분노이다.
유승준에게 주는 필자의 마지막 선물이다. 앞으로 TV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는 불편함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덧붙여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중에서 가사 변경 ^^)
너는 군대에 가서 맞기 싫다고 하였다.
나도 군대에 가서 맞기 싫었다.
너는 군대에 가서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기 싫다고 하였다.
나도 군대에 가서 기상나팔 소리 듣기 싫었다.
너는 짠밥은 맛이없어 먹기 싫다고 하였다.
나도 짠밥 냄새만 나면 밥맛이 떨어진다.
너는 행군할때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쓰린 아픔이 싫다고 하였다.
나도 행군할때 내 발바닥이 곰발바닥으로 변했으면 하였다.
너는 TV에서 군대는 자신을 단련하는 좋은 장소라고 말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