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島의 미로
김창식
여의도汝矣島 소재 은행에서 처리할 일이 있었다. 전화로 위치를 확인해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반듯한 도로를 따라 비슷비슷한 고층건물들이 위압적으로 늘어서 있다.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 접어들어도, 그 길을 빠져나와 또 다른 길로 접어들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닮은꼴 빌딩들이 고집스레 군집해 있다. A은행, B증권, C신탁, D저축, E개발….
점심 무렵이어서인지 빌딩 출구로부터 인식표를 달고 드레스셔츠를 입은 남자들과 단정한 원피스 제복을 입은 여자들이 묶음으로 쏟아져 나온다. 귓전에 날아 앉는 쾌활한 소성笑聲. 나도 정작 그들 중 한 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길옆으로 물러선다. 발이 헛짚인다. 도로가 꺼진다. 블록버스터 SF 영화에서처럼 건물들이 겹치고 엇갈리며 주저앉는다.
내게도 삶이 깃발처럼 나부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은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 청춘과 장년을 바친 직장생활을 폄하하는 것은 불편한 일일 터이다. 하지만 그 무렵은 정신적으로는 황폐한 불모의 시기였던 것 같다. 회사에서의 승진과 경력 추구가 유일하고 가장 큰 관심사였으니까. 생각 없이 지내는 무위無爲의 편리함에 오랜 기간 길들어 있었던 듯하다.
어느 날 밤늦게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였다. 흔들리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차창에 낯선 얼굴이 보였다. 저 수상한 존재가 누구인가? 그것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좇느라 분식된 삶을 살아온 중년 사내의 모습이었다. 차창에 비친 자화상은 나를 되돌아보게 한 단초가 되었다. 그 후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대책 없는 여정이랄까, 아니면 모험?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모험이므로?
이면도로로 접어들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레고 블록처럼 규격화된 조형造形의 거리를 사람들은 공중부양 궤도에 들어선 장난감처럼 떠간다. 그곳이 그곳인 것만 같은 빌딩 숲의 소로에 들어선 나는 자본과 금융의 개활지에서 길을 잃고 초등학교 저학년 미아가 된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로봇으로 변한 내가 미니어처 두더지처럼 힘겹게 숨어든 곳은 편의점이다.
점원에게 찾는 은행의 위치를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음료로 목을 축이며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른다. 큰 빌딩 사이로 작은 빌딩들이 저마다의 간판을 달고 시위한다. 식당, 약국, 제과점, 헤어숍, 음악학원, 공인중개사무소…. 사람들이 오가고 장사치가 호객을 한다. 구급차가 경적을 울리며 길을 헤친다. 버스가 기우뚱 전용차선으로 접어들고 택시가 길가로 주춤주춤 모여든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관찰하지만 뜻을 파악할 수가 없다. 사물과 대상에 대하여 투명하지만 의미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기표記 表가 기의記意에서 미끄러져 내리듯'.
아무래도 길을,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 언제나 술래.' 전화를 걸어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휴대폰을 닫고 모퉁이를 도는 순간 가만, 거짓말처럼 찾던 건물이 나타난다. 일시에 맥이 풀린다. 은행 건물 뒤쪽을 헤맨 것이다. 그곳에서 몇 차례나 더 나아가지 않고 돌아서곤 했다. 은행 업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을 나서는 나의 귓전에 대출상담 직원의 건조한 목소리가 맴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그 조건으론 진행이 힘들 것 같군요."
뒤돌아본 빌딩 창이 햇빛을 받아 희게 반짝인다. 현기증이 나며 무엇이든 붙잡고 싶어진다. 일순 음이 소거되며 보이지 않는 촘촘한 그물망에 갇힌 기분이다. 어린 시절 마른번개가 치며 친숙했던 주위 사물이 일순 생경하게 드러날 때 백색의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 그때 잠깐 피안彼岸, 세상의 저편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껏 알고 지낸 세계가 사실은 허구이고 그곳에 조야한 부품으로 참여해 온 나를 다른 별에서 온 또 다른 내가 관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도 때로 삶에서 비껴나 일부러라도 길을 잃고 헤매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그런 상황에 놓인 나를 보며 은근히 즐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사실조차 잊은 채 자신의 무력함을 변호하거나 합리화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방황 속에서 위안을 찾고 존재의 근거를 찾으려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스 신화에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에 사는 미노타로스 이야기가 나온다. 황소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진 괴인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가 사는 터전, 그가 사는 곳에서 그는 굳이 길을 찾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걷다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뒷걸음쳐 시야를 확보했다. 또한 늘 본디 자리로 돌아올 것만 생각했다. 그러자 벽이 열리고 돌연 길이 생겨났다. 여의도와 크레타 섬. 섬圖의 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