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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골사모(골프를사랑하는모임)-gftour 원문보기 글쓴이: KGPGA
신입 캐디는 골퍼가 여자분이건 남자분이건, 연세가 많이 드신 분이건, 남동풍이건 북동풍이건, 비가 오건 말건 교육받은 대로 똑같은 거리를 부른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거리를 부른다고 똑같은 결과가 생기는 건 아닌 게 문제다.
한 신입이 아침에 일 나가서 파3홀 거리를 180야드를 부르고, 그 고객이 홀인원을 하였다.
거리를 정확히 불러줘서 홀인원했다면서 신입 캐디를 칭찬했다.
그런데 투라운드가 잡혀 두 번째 라운드에서 같은 홀, 같은 핀 위치에서 똑같이 180야드를 불렀지만 이번에는 그린 뒤로 훌러덩 넘어가 OB가 되었다.
아침에 칭찬받았던 담당 캐디, 오후 라운드 때는 죽었다 살아났다.
오르막 지형에서는 같은 거리를 불러도 여자 분들이나 비거리가 안 나는 분들은 어김없이 짧을 때가 많다.
그러면 바로 싸늘한 눈빛과 함께 이런 질문이 날아온다.
“언니야, 이 거리 맞아? 잘못 부른 거 아냐?” 물론 거리는 맞다. 하지만 골퍼에 따라 볼의 탄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센스있는 캐디라면 고객 볼의 탄도도 눈치 채고, 오르막에서는 어떤 클럽을 선택해야 하는지까지 잘 알고 있다.
물론 일차적으로 골퍼 스스로 정확한 거리와 탄도 그리고 볼이 낙하 후 런이 얼마나 생기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파3홀의 거리는 티마크를 옮기지 않는 이상 불변의 거리이다.
170야드짜리 파3홀이었는데 네 분 모두 비거리가 너무 짧은 분이었다.
가랑잎 하나만 날려도 앞바람이라며 더 센놈으로 클럽을 바꿔 달라던 연약하고 청순 가련한 남자 분이었다.
‘아! 170야드 불러드릴까? 아니면 좀더 크게 180야드 불러드릴까? 아휴! 고민된다.’ 어느 한 분이 먼저 물어보셨다 .
“여기 한 200야드 되나?” 헉! 고객님 눈에는 이게 200야드로 보이나 보다.거리를 몇 야드라고 불러드려야 할까?
그러자 동반자 왈, “무슨 이게 200야드씩이나, 190야드 밖에 안 되어 보이는구먼.”
나는 170야드 파3홀을 정확한 거리인 양 190야드라고 불러드렸다.
그리고 어느 누구 하나 의심의 눈빛없이 우드를 들고 힘껏 내리 치셨다.
네 분 모두 잘 맞았고 그린 오버되신 분 없이 홀아웃하셨다. (이런 건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안 되는 현상? ㅋㅋ)
몇 년 전 내게 거리를 너무 짜게 부른다며 계속 짜증을 내던 분이 계셨다.
평지였고 150 말뚝 옆에서, 150이라고 불러도 계속 짧았다.
앞바람이라도 살랑 살랑 불어줬다면 “호호호~ 앞바람 때문인가 봐요”라고 위로해주었겠지만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정직한 날씨였다.
아무리 신경쓰고 또 신경써 거리를 불러줘도 항상 10~15야드씩 짧은 거였다. 내가 보기엔 그 분은 7번 아이언을 잡으셨지만, 절대 그 거리가 나가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데 스스로는 150야드를 7번으로 보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분은 화가 난 듯했다. 그땐 나도 나의 거리를 믿지 않는 고객을 이해할 수가 없어 몇 홀을 대화 없이 지나갔다.
다시 핀까지 150야드짜리 파3홀이었다. 미친 척하고 서비스 차원에서 거리를 크게 한번 불러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165야드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볼은 홀인원이 되어 버렸다.
“언니가 처음으로 거리를 제대로 불러주었네~.”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파3홀의 거리는 언제나 150야드다. 하지만 그분 마음속에 있는 그 홀의 거리는 평생 165야드일 것이다.
그래서 조금 구력이 있는 캐디들은 첫 3~4홀은 정직한 거리를 부른다. 그게 골퍼와 거리 궁합이 잘 맞으면 끝날 때까지 정직한 거리를 부르는 데 힘쓴다.
하지만 매번 짧거나 100야드 말뚝 옆에서 100야드를 불렀는데도 짧다고, 거리 잘못 불렀다고 항의가 들어오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슬슬 거리에 인심 팍팍 추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단체팀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1조 나간 캐디가 아예 무전기로 쏴악 날리고 간다. “우리팀 파3홀 000야드라고 불렀습니다
.” 1조 팀이 신체 건강하고, 캐디와 궁합이 잘 맞는 분들이라면 정직한 거리가 무전을 타고 날아온다. 그럼 2조, 3조는 1조의 거리랑 똑같이 부른다.
하지만 1조에 속한 분들의 비거리가 너무 짧은 분들이라면 170야드 파3홀이 그냥 170미터로 변신하는 건 한순간이다.
왜냐하면 그늘집에서 파3홀 거리 이야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깐 말이다. 가장 힘든 건 장타자와 단타자가 함께 왔을 때다. 파3홀에서 장타자 한 분만 온그린이 되고 나머지 세 분이 온그린이 안 되면 난리가 나기도 한다.
“언니야, 이 거리 아니다. 훨씬 더 봐야 해~.” 온그린시킨 분께서 거리는 맞다고 항변해 주면 좋은데, 나몰라라 하는 식으로 캐디를 팽개쳐 두는 날이면…아휴~ㅠㅠ.
그래서 같은 거리라도 여자분이거나 거리가 짧다고 불만인 분에게는 사실 좀더 크게 부른다. 야드목이 미터로 변신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언니야, 내가 보니깐 거리말뚝을 잘못 꼽았네. 이건 야드목이 아니고 미터목이야.” 골퍼들을 이렇게 만든 건 몇몇 연습장과 잘못된 거리말뚝을 꼽아 놓은 골프장의 책임도 있다.
연습장에선 분명히 7번 아이언이 150야드 지점에 떨어지는 것을 봤는데 필드에 나오면 고작 135야드 밖에 안 나간다면 그건 캐디가 거리를 잘못 불러준 게 아니라 연습장의 거리표시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좀더 길어보이게 하려고’ 150야드가 아닌 곳에 150야드라고 표시해 놓으니 골퍼들은 그걸 그대로 믿고 혼란을 일으키는 셈이다.
골퍼들도 ‘평균거리는 가장 잘 맞았을 때의 샷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캐디는 스스로 장타자라고 착각하는 골퍼를 만나면 거리를 크게 불러준다.
우선 고객의 사기를 저하시키지 않으려는 1차적인 목적도 있지만, 온그린에 성공시키도록 도와줘야 하는 2차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캐디에게 자꾸 거리 지적을 많이 하면 캐디는 의기소침해져서 오히려 더 정확한 거리 판단을 하지 못한다.
칭찬은 고래도 스탭을 밟게한다 하지 않는가. ‘캐디가 잘 말해 주었는데 내가 잘 못 쳤나 봐요.’라고 말해준다면 담당 캐디는 오히려 미안해하며 더더욱 정확한 거리를 전해드리는 데 힘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캐디라는 직업은 ‘전문 캐디’ 말고는 사라질 직업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골프장에 가면 거리가 야드인지 미터인지, 그린 중앙 기준인지 그린 앞 에지까지인지 이제는 골퍼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골프의 즐거움 중 하나인 거리 보기와 그린 라인 보기를 너무 캐디에게 의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