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깊었던 일박이일의 장성종주
한일송
연변에 옛장성이 있다.1700여년전에 만들어진 옛장성이다. 지금 연길공원에 있는 정자가 옛날의 소돈대이다. 그 아래과수원에 바로 연변에서 살던 옥저인들이 주거유적지이다. 이 옥저인들이 고구려에 흡수되면서 옥저인들을 동원하여 외래침략을 방지하기위하여 장성을 쌓은것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 고구려가 옥저인들과 함께 막고저 햇던것이 북쪽으로 오는 침입이다.력사학자들에 따르면 옛장성은 화룡에서 시작하여 서성,룡문,세린하,로투구, 팔도,평봉산 등을 거치며 성자산성뒤에 있는 마반산으로 해서 부르하통하를 건너 로류산601고지를 지나 소화룡뒤산 연길과 도문경계사이에 성새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도문 훈춘까지 갔는데 구체적인 답사가 안 이루어진걸로 알고 있다.
조선족항일투쟁사와 력사유적에 관심이 많는 리광인교수의 글을 잠간 인용해본다.
《연변 고고학자들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고구려장성은 지금의 화룡시 원 토산진 동산으로부터 시작하여 화룡, 룡정, 연길 구간을 거쳐 연길시 동쪽의 하룡촌 계림 일대에까지 이름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룡시의 원 토산진, 서성진, 룡문향, 룡정시의 원 세린하향, 동불사향, 팔도진, 연길시의 원 연집향, 청차관, 도문시의 장안진 경내를 거치지요. 그 총길이는 근 150킬로메터라고 합니다.》
리광인교수는 장성유래를 설명하면서 오늘의 연변일대는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전에 북옥저사람들이 살았고 기원전 28년에 고구려에 예속된후 북방으로부터 오는 크나큰 위협인 읍루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북옥저사람들을 동원해 쌓았고 그 목적은 군사적방위였다고 말한다.고구려장성의 년대는 1700년으로 치달으며 산속에 누워있지만 무인산중인데서 연변의 사학계에서 누구도 답사해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고고학자들도 잘 모르는 실정이라고 리광인교수가 설파한다.그런것을 산을 사랑하고 우리 문화유적을 사랑하는 산행인들이 위성사진으로 장성의 위치를 확인한후 위성위치탐측기를 가지고 답사를 하는데 문인으로 나 첫사람이니 왜 흥분되지 않으랴!
오랜 력사에 누구도 해보지 못한것을 기록하기위해 나선 내 맘이 격동된다.
쏘허룽뒤산성곽이 바로 지금 골프장자리계림촌 북산에 위치해있다.근자에 화룡,연길,도문등산애호가들이 곡수부터 연길쏘허룽뒤산에 있는 성곽까지 장성따라 종주하기로 기획하였다. 저도 산무님의 추천으로 일박이일 장성종주에 가담했다. 내 마음은 전날부터 흥분되기 시작하였다. 중국문인이나 한국문인들이 해보지 못한 이 구간의 장성종주에 가담한것이 나에게 있어서 어쩜 행운인거 같았다.
도문구간과 연길구간의 장성종주를 책임진 아리랑님과 공원님 모두10명이 참여했다가 두명은 정심식사를 도문테비중계소산정에서 하고 하산했다.
우리의력사적인 옛장성종주는 화룡,연길산행인들이 도문역에서 도문산행인들과 합류하여 곡수에서 출발하는것으로 시작하였다.
출발하는 곡수에서 본 장서유적은 파괴되여 형편없었다. 무너져 내리고 파간 자리를 배경으로 우리 일행은 기념사진을 남겻다.
그리고 아리랑님의 안내로 출발하였다. 장성따라 가다 해가지면 하루밤 풍찬로숙해야하기에 저마다 챙긴 등산장비가 적지 않았다. 텐트,침남,잠깔개 그리고 식사도구 등 사람마다 밤에 잘 때 갈아입을 옷등이 나름대로 많기도 했다.나도 새 면내복을 준비하고 식사거리와 간식을 준비했다.주먹만큼한 사과배를 많이 갖고 갔는데 지고 가는것이 버거워 쉴참이면 나누어주기에 급급했다. 그것을 보고 아리랑님이 나머지 사과배를 자기 배낭에 넣는다. 나머지 우리 일행은 10시반경에 땀벌창이 된채로 장성따라 가다가 한 무명산꼭대기에서 첫번째 봉화대를 발견하엿다. 여럿이 봉화대에 올라가 멀리 사면을 바라보며 그 옛날 봉화가 타오르던 정경을 그려보았다.
북경에서 영화제작에 관심을 갖고 있는 영화인은 아가위열매를 찍느라 여념이 없엇다.
그리고 계속 장성따라 12시경이 되여 도문테비발사중계소에 이르렀다. 사람들 반가와하는데 어미개는 금방 새끼 열마리를 낳아서 그런지 못시 경계하는 태세였다. 중계소집안에서 정심식사를 한 우리 일행은 담배한대 태울사이 없이 집체 사진을 남기고 두사람을 먼저 하산시키고 8명이 장성종주를 진행하기로 했다. 장성따라 서쪽으로 가는 우리 일행을 멀리까지 바래주는 어미개가 정심새에 정이 들었나부다.우리는 걸음을 재우쳐 가다가 한시반경에 또 하나의 봉화대를 발견하였다. 봉화대는 누가 도굴한 흔적이 보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봉화대가 주저앉아서 큰 무덤같아보인것이 도굴자들의 눈에 든거같았다. 파고 또 파내려가도 쌓은 돌들이니 도굴자들은 손씻고 가버린것이다.
오래전의 장성인지라 위성사진으로 보아내고 지도와 위성위치탐측기까지 가지고 왔지만 장성을 따라 령과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면서 장성로정을 오낀적도 있다. 그래서 강한 산비탈에서 여기저기 찾느라 반시간나마 체력을 허비하였다. 그때면 아리랑님이 지도를 꺼내 놓고위성위치탐측기로 정확한 로정을 현지에서 탐색한다. 그새 체력이 딸리는 나는 배낭을 멘채 자리에 누워 흰구름이 둥둥 떠가는 하늘을 쳐다보며 땀을 식혔다. 아리랑님은 내가 힘들어 하는거보고 등산지팽이를 준다. 나한테 하나 있는데도 두개 가지고 량손으로 짚으며 걸으면 체력소모가 슬된다며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관심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친구란 제목으로 민조시 한수 써보았다.
우정
지팽이
선물받고
장성 오르니
친구가 그립다
산행친구들은 서로 의지하며 산속에서 날달리 우정을 돈독히 해가는 사람들이다.
오후 세시반좌우에 우리는 깊은 골짜기에 이르러 아리랑대장의 지시에 따라 저마끔 텐트를 치기 시작하였다. 저마끔 잽싼 솜씨로 텐트를 치는 모습이 특공대답다.나는 연길 산인행의 박회장과 함께 텐트치고 로숙하는데 모든것을 박회장이 다 해준다. 그새 나는 속옷을 갈아입고 나서 잔심부름을 하였다. 해는 어느덧 꼴깍 산정숲속으로 살아져버렸다. 로숙할 텐트가 완성되니 인차 저녁식사준비를 재우친다. 아리랑님이 가져온 가스로가 은을 낸다. 누룽지를 넣고 라면을 넣고 끓이는데 다른 냄비에서는 삼겹살을 삼는 구수한 냄새가 배가 고픈 우리들의 식욕을 부추긴다.까만 뭇별이 반짝이는 골짜기서 하는 야외만찬은 별맛이다. 서로 하루 피곤을 식사로 달래려는듯이 만포식하고 있다. 저마다 머리에 단 전조등이 까만 밤을 밝혀주는데 나만이 없다. 북경에서 온 산행인은 깜직한 램프같은 전등도 가져와서 나무에 걸어 놓아 환상적인 기분을 자아내게 하였다. 핸드폰도 라지오청취도 불가능한 깊은 골짜기에서 우리는 식사후 커피를 끓여마시면서 풍찬로숙의 밤을 즐겼다.
커피까지 마시니 밤8시였다. 도시에서 이 시간대는 밤뉴스를 보는 초저녁이다. 하지만 산에서는 잘 시간이다. 우리들은 이미 정해 놓은 화장실에 가 볼일을 보고 저마끔 자신이 잘 텐트속에 속옷을 입은채로 들어갔다. 별은 총총한데 우리들은 낮의 피곤으로 저마다 코를 구르며 꿈나라로 깊이 빠져 들었다.
깊은 밤 몇시였을가? 텐트를 요란하게 하는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 침낭속에서 잠을 깨고 머리를 내밀고 보니 눈개비가 마구 쏟아지는것이였다.
<<아차! 내 신발, 내 신발이 비에 젖어요>>
내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박대장이 안심의 말을 해준다.
<<내 미리 신발하고 배낭을 이중겹으로 된 텐트속에 잘 덮어 두었으니 시름놓소.처음 로숙하는게 춥지 않소>>
너무나 고마운 소행이고 따뜻한 관심이였다. 산행에서 매사에 실수가 없어야함을 절실히 느꼈다. 비가 더 오면 어쩌랴 한것이 다행이도 여우눈개비였다.
아침5시 박회장이 기상해서 일어났지만 나는 침낭속에서 나오기 싫어 잠이 안오는데도 혼자 누워있었다. 박회장,아리랑 등 여러 산행선배들이 아침먹거리를 끓이느라 분주히 바삐 도는데 이 후배는 칭남속에서 꼼지락거린다.
아리랑님이 추운거 같애도 나와서 몸을 움직이란다. 그래서 일어나 텐트속에서 나오니 자신의 등산옷을 껴입으라고 준다. 리더들의 살뜰한 배려가 고마웠다. 산행에서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점검하는것이 기본인이라는것을 배운 좋은 기회였다.
아침식사를 재빨리 끝낸 우리는 인차 저마끔 텐트 등 장비를 정리하며 배낭에 넣고 출발준비를 다그치였다. 이튿날 아침 7시,출발을 앞두고 기념사진을 남기고 우리는 인차 높은 장성이 뻗어간 높은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북경의 산행인은 텐트의 친구가 코구르는것까지 대비하여 귀막개까지 준비해왔다. 산행준비의 철저함을 엿볼수 있었다. 그는 올 여름에 연길서부터 도문까지구간의 부르통하에서 혼자 표류를 감행한 모험을 즐기는 사나이다. 첫인상에는 핸섬한 도시서생으로 보였는데 등산하며 보니 중독이 깊이 든 등산매니아였다.12시경에 여러개의 봉화대를 지나다 우리 일행은 처음으로 뚜렷한 흔적이 있는 성곽을 보았다. 산꼭대기장성에 있는 성곽에는 군사들이 주둔해있으며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들의 침공을 대비한거같았다.
우리는 유서깊은 긴고래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했다.이 긴고래가 연변항일투쟁력사에 길이남는 해란강대참안이 발생한 유서깊은곳이다. 중국당사에도 기재되였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들은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계속하여 쏘허룽방면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후 두시경에 우리 일행은 지금 골프장북쪽산 즉 옛날의 계림촌의 북쪽산의 성새를 발견하엿다.여기까지 오면서 우리는 16개의 봉화대를 발견하엿다.아리랑님은 봉화대의 위치와 높이를 일일이 위성위치탐측기로 확인하고 메모한다. 력사는 기록의 력사인데 아쉽게도 이 장성을 지키던 사람들은 전쟁준비에만 정력을 몰붓고 기록을 남기지 않아 우리 후세들은 장성을 쌓은 구체적 력사자료를 확보하기 매우 어렵다. 천하를 얻고 문자와 말을 잊어먹은 만주족처럼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이 그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온 장성이 천년력사속에서 눈과 비바람의 세례를 이겨내고 오늘까지 남아 있어 우리한테 무언의 대화를 시도한다.박학봉교수가 력사서에 밝힌 성곽자리이다. 우리는 성새를 자세히 돌아보고 그 옛날 군사들이 주둔했을 성곽안에서 맛있는 정심식사를 마련했다.
아리랑님이 많이 수고하신다.맛나는 식사, 일박이일의 장성종주를 여기서 마치고 후날 나머지 구간인 로류산601고지를 따라 마반산으로 이어지는 곳까지 가자고 약속을 하고 우리 일행은 연길구역을 향해 걸음을 재우쳤다. 이제부터에 연길산인행 박회장의 안내로 동북에서 가장 큰 골프장인 해란강 골프장을 산정에서 조감하고 천년송이 있는데로 내려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북경에서 온 dp가 성자산성을 바라보며 감탄한다.
<<정말 난공불락의 요새네요. 방어하기 좋고 공격하기 힘든 산성이네요>>
<<그렇소 그래서 포선만노가 저기에다 동하국의 서울을 정하고 18년간 통치했다오. 흥기하고 있는 몰공기마군의 공격으로 망하고 포선만노도 죽음을 당했다는 력사기재가 있다오>>
<<네 그 몽골기마군들이 먼저 화룡평원성을 점령하고 성자산성의 량식래원을 끊어 놓고 공격했다네요>>
황성옛터가 서서히 저녁노을속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 일행들이 멀리 바라보이는 성자산성을 향해 초점을 맞추고 저마끔 샤탸를 누른다. 뜻깊엎던 일박이일 옛장성종주는 잠시 여기서 일단의 막을 내리고 우리는 도문에서 오신 아리랑님, 해돈님, 신행태보님,영화제작이 꿈이라는 dp님과 화룡의 두 산행인과 연길에서 다시 좋은 산행을 할것을 기약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첫댓글 너무나도 부러운 산행이였군요. 한창 나이일땐 저도 렵총에 강아지 동반하여 메돼지 노루 꽁무니 쫓아다녔었는데. 아쉽군요. 지금은 산행이라면 저보다 더 맘씨고운 여자들이 제 배낭을 챙겨준답니다. 세월아~어느 누가 내 배낭을 챙겨줄가? 멋진 산행글에 이땅에서 살아온 옛사람을 그려보면서 한동안 서성이다 갑니다.
두만강님 일빠로 댓글 정말 고맙습니다.백당나무열매를 따온당신에게 당신은 구기자술마시고 나는 저녁방송때문에 맥주마시며 한창 말햇지요.나는 당신이 따온 백당나무열매을 입에 께물어 보았는데 말오줌내보다 더하네요.안얼어 그렇나요.하여간 인생의 거울님이 말해 잘안 관상용열매나무입니다.
번성했든 옥저지만 강한 지도자가 없었기에 위나라와 고구려의 지배를 받아 해체되고 고구려에 흡수된 옥저 그역사의 현장에서 장성종주의 긴 산행의 여정에서 지난 옛 역사의 현장을 가만히 않아서 듣는 영혼은 역사시간의 학습한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군요.참 좋은 일행과 함께 무엇인가 보람을 남길수 있는 일반 산행이 아니 의미있는 산행을 하셨네요. 봉화대도 많고 역사의 현장에서 옥저인과 고구려가 몽골의 침입자를 막기위한 수고로움이 엿보입니다, 의미있는 글 잘보고 갑니다, 영혼.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 하세요!!.
연길에 오시면 1700년전의 성새에 령혼님을 모시고 술한잔하며 달과 동무하고 싶습니다.령혼님의 글에서 동년의 추억을 되새기게 되며 내 어린시절에 있었던 일을 추억하며 저도 동년의 추억을 써보렵니다. 많은 조언 바랍니다. 님의 필력이 부럽습니다.
녜! 그런날이 왔으면 합니다.님은 그만한 실력을 갗추신 분이라 몇배 더 좋은 글을 쓰실것입니다,기대됩니다.우리 고운 인연 지속 이어가면서 生을 노래합시다. 항상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영혼.
좋은 글 잘 보고 가요,
김소월시가 생각납니다.산유화시가요
뜻깊은 장성종주의 산행기를 즐감하고 갑니다.
당신과 함께 가서 좋은 사진 남겻으면 후에 함게 갑시다 장성따라 걷기
의미있는 문화유적 답사기 잘 읽었습니다. 또 한차례 력사 학습이네요. 락동강님 답사사진을 올리지 않아 제가 락동강님게 문의 하지도 않고 문인산악회 코너에 올렸습니다. DP님 찍은 사진 인데 그대로 올렸습니다. 설명은 락동강님인데 부탁합니다.?
교수님 리플감사합니다, 사진올려주시여 너무 고마웠구요. 언제 함께 등산하는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대조영 이란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고구려의 후손인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꼭 알아야만 되는데도 자료가 없다보니 참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후세에 길이 남길것이 없는것처럼 아쉬운것은 없다고 보아요.옛 선조들의 슬기로움도 볼수가 있고 봉화대도 흔적을 찿을수 있다는 점에 감명을 받았습니다..멋있는 역사 탐방 기행문을 본것 같아요 락동강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정보를 비롯 감동있는 글도 보게 하였고요.참으로 좋은 글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강변노을 님 대조영이 서울 세운 수도성터에 가서 하루밤자며 하늘의 별을 헤여 보앗으면 합니다.바램인데.....
잊지못 추억으로 남게될 멋진 문화유적답사를 하셨네요.좋으글을 올려주셔서 앉아서도 좋은 력사공부를 하였습니다.감사합니다
지기님 함께 좋은 산행갑시다 중국에 오면....
뜻깊었던 문화유적답사 기행을 읽으면서 력사학습을 하게 되였습니다 .등산겸 학습 멋진글 즐감하고 갑니다 .
항상 댓글을 달아주시며 고무새주시는노을빛님 내 마음에 저녁노을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자유스러런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다녀가심에 고맙습니다,
너무 좋은 잊지 못할 추억이네요..또 좋은 력사이기도 하네요...감명깊게 보앗습니다...
보아주시여 감사합니다.
뜻깊은 산행을 하셨네요 . 락동강님은 문인으로서의 첫 사람으로 연변에서의 장성을 산행하셧네요 .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다시한번 연변에 력사을 알았습니다.
문인으로 첫사람이란 자호감 저를 끝까지 장성따라 걷게 햇어요.
아주 뜻깊은 산행이였군요 그날 병원에 찾아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연변에 장성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유서깊은줄운 몰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따님 완쾌되셧나요.다녀가심에 감사합니다.
동참해서 교욱받을 기회 놓친것이 한스럽기반 합니다 휴
앞으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답사에 함께 하는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고고학에 조혜가 깊으시군요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십시요.
과찬입시니다. 연변에 오시면 연길시에서 가까운 장성이나 문화유적답사를 안내하고 싶습니다.다녀가심에 감사합니다
락동강님의 뜻깊은 산행의 덕분에 연변에 문화유적-옛장성에 대해 잘 알게 되였습니다.감사합니다.
겨울이 돼서 무지개 살아졌나 했는데 코스모스향기가 싱그로운카페에 칠색무지개가 나타나니 더 환해집니다. 늦은밤에 초롱불밝히시며 카페에 빛을 더해주니 참 좋네요
정말로 뜻깊은 일박이일이네요 부러워요 민조 씨 잘 쓰셨네요 ~멋진님 발자국 따라 저도 장성성주 잘 올라가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