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버리다
- 강미정
난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가 좋더라
욕설 같은 바람이 얇은 옷을 벗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앞쪽은 젖은 옷처럼 찰싹 붙고 그 뒤쪽은 불룩하게 헐렁한,
마음이 바람의 날을 벼리고 있잖아
절규하며 날뛰는 힘을 견디며 파랗고 날 샌 노래를 부르잖아
봐, 깊게 사랑했던 마음이 들끓을 때
당신은 울음소리에 몰두할 수 있지
당신이기에 어느 한 가슴이 가장 먼저 울 수도 있지
내가 알았던 세상의 모든 길을 지우고
다시 당신이라고 불렀던 사람이여,
저기 망망대해를 펼쳐두고 출렁임을 그치지 않는
당신의 침묵이 폭풍우가 되는 바다가 참 좋더라
폭풍우에 스민 울음소리가 들리잖아
나를 부르는 웃음소리가 들리잖아
마음이 바람의 날을 세워 밀며 밀리며 견디는
저 애증의 극단 중간에 침묵을 두고
세상이 되고 길이 되었던 당신이 가슴으로 와서
폭풍이 될 때 나는 휘몰아치는 바다가 좋더라
- 『문학마당』(2009,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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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자나깨나 파도치는 바다만 보며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법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성인봉 자락이었지만 불끄고 누워있으면 늘 철썩이던 바다-
울릉도에서도 바다는 당신이었고, 고향이었고 그리움이었지요
거기에서 시를 얻었고, 시를 아꼈으며 시의 길을 걸었습니다
집채만한 파도가 촛대바위를 삼킬 듯 밀려올 때 멀티오르가즘도 느껴가며 쓴 술도 마셨지요
결코 침묵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해보았지만 아직 침묵은 이어지고 있나봅니다
휘몰아치는 바다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겠지요?